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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이혼

스님이 변호사를 만났다. “성불하십시오.” 카페에 들어선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인사하자, 노트북을 앞에 두고 타이핑 준비를 하고 있던 변호사는 얼굴을 찡그렸다. “저는 기독교여서 다른 쪽으로 가보시지요.” 상대의 무뢰한 행동에 개의치 않고 스님은 얼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 “혹시, 장기독 변호사님 아니십니까?” 변호사는 당황했다. “예? 그럼 방금 통화한 임대불 고객님이신가요?” “예, 예, 그렇습니다.” “아, 고객님이 스님이셨나요?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본격적 상담에 들어갔다. “아니, 저한테 의뢰하신 게 이혼소송인데… 스님이 이혼소송을…?” “제가 이혼이라는 걸 한번 진행해 보려 하는데, 잘될지 모르겠네요.” “아, 제가 여러 직종에 계..

뒤바뀐 신랑

청년 동악이 장가를 든 날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면서 한밤중까지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종로 골목의 한 대문 앞에 기대어 있다가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잠시 후 그 집의 하인이 나와, “에구, 신랑이 취해서 여기 쓰러져 있군 그려.” 동악을 둘러메고는 신방에 뉘었다. 동악은 비몽사몽간에 깨어나서 옆의 신부를 보았다. “아이구, 우리 어여쁜 부인!” 신부를 끌어안고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깨어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여기가 뉘 집이오? 그대는 누구시오?” 동악이 낯선 여자를 보고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근데, 나으리는 대체 누, 누구시오? 여자도 놀라 말을 제대로 이을 수 없었다. 서로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여자의 신랑이 전날 밤 친구들..

배짱 좋은 허생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 허생의 이야기. 집안 곡간에는 곡식 한 톨 없고 식량 구하러 밖에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천하태평 허생은 오로지 방안에서 주역이라는 책만 읽고 며칠 끼니를 걸러도 상관하지 않았다. 책 읽는 일 외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날 마루에 나가니 아내가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앉아서 울고 있었다. 아내가 머리카락을 팔아서 식량을 구해온 것을 알아채고 허생은 탄식하며 말했다. “조금만 더 고생해 주오. 그 사이 머리도 자랄 테고.” 그러고는 갓을 챙겨 쓰고 집을 나가버렸다. 밖에 나가서 돈을 구해올 모양인가? 허생은 그 길로 개성의 갑부 백가(白哥) 어른을 찾아갔다. 그는 백 부자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백가 어르신, 돈 천 냥만 빌려주시오.” 이에 백 부자(富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