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 허생의 이야기. 집안 곡간에는 곡식 한 톨 없고 식량 구하러 밖에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천하태평 허생은 오로지 방안에서 주역이라는 책만 읽고 며칠 끼니를 걸러도 상관하지 않았다. 책 읽는 일 외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날 마루에 나가니 아내가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앉아서 울고 있었다. 아내가 머리카락을 팔아서 식량을 구해온 것을 알아채고 허생은 탄식하며 말했다. “조금만 더 고생해 주오. 그 사이 머리도 자랄 테고.” 그러고는 갓을 챙겨 쓰고 집을 나가버렸다. 밖에 나가서 돈을 구해올 모양인가? 허생은 그 길로 개성의 갑부 백가(白哥) 어른을 찾아갔다. 그는 백 부자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백가 어르신, 돈 천 냥만 빌려주시오.” 이에 백 부자(富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