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16

65.화해와 희망을 싣고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능가하는 시청률을 보이는 ‘지금우리학교는’이 드디어 미국까지 1위를 찍었다. 세월호와 연관되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도 특색이다. 드라마 속에 세월호 상징인 노란리본을 단 장면이 그렇고,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어가 사용되는 것은 전율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여객선은 월수금에 인천항, 화목토에 제주에서 출항한다. 저녁 7시에 출항해서 이튿날 오전 9시 목적지에 입항한다. 2021년 12월 10일 오후 7시 믿음호의 항해사들은 출항 준비에 바빴다. 처녀항해인 만큼 오랜 진통 끝에 출산한 산모처럼 승무원들은 울컥하고 설렜다. 마지막 홋줄이 부두에서 풀려나자 출항 뱃고동이 울렸다. 객실 창밖으로 연안부두가 저만치 멀어지고 인천대교가 빠르게 지나가면서 배는 속도가 붙었다. 국내 카페리로는 처음으로 도..

소설/더 세월 2022.03.18

64.여객선 믿음호 취항

길을 내는 사람은 외롭다. 복고와 향수는 진정성 추구의 방편일 수 있다. 조준되지 않은 사격이 의미가 없듯 진정성 없는 세월호 수습은 의미가 퇴색된다. 세월호 8주년을 맞이하여 사고 당시를 돌아보는 것은 진정성 추구의 작업이기도 하다. 각오를 단단히 하면 지나간 슬픔에 지금의 눈물을 낭비해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따른다. 살아남은 자로서는 환경을 바꿀 수 없으니 자신을 바꾸어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된다. 인생 무대의 주인공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삶이 스스로 플롯을 지닌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은 것은 인간 본성이다. 컴컴한 선실에 갇혀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희망의 유무가 문제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모르겠으나 공원을 거니는 서정민의 걸음걸이가 균형을 잃었다. 세월호 계절이 다가오면 무의..

소설/더 세월 2022.02.23

63.가족이라는 울타리

2022년 4월 16일이면 세월호 사고 8주년이 됩니다. 세월호 사고의 기록 소설 ‘더세월’이 사고 5주년을 맞이하여 2019년 4월에 발간된 바 있습니다. 발간된 책은 주간 해운잡지사 코리아시핑가제트에서 1년 반 동안 연재되기도 했습니다. 소설은 모두 62절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금년 4월 16일 8주년을 기하여 3절을 추가해서 개정판을 발간하고자 합니다. 역사 기록 소설인 만큼 주인공의 가족 이야기와 세월호 후속선의 출현, 가족의 여객선 승선 경험을 담은 뒷이야기까지 전합니다. 우선 추가된 절부터 연재 시작하겠습니다.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세월호가 인양되어 부두에 직립한 후 사고의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서정민과 이순정 부부의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결혼 전부터 함께 근무하면서 세월호 피해자인..

소설/더 세월 2022.02.11

34.선상파티

탐사항해 임무를 끝내고 한국으로 귀항할 준비 선상파티로 서로를 위로합니다 34. 선상파티 북극탐사 항해는 대체로 성공리에 끝마쳤다. 사흘 후면 놈 항에 입항하며 많은 사람들이 하선하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귀국일정을 헤아려보면서 비행기 시간과 호텔 예약, 서울 도착 시간을 살피면서 이것저것 생각하기에 바쁘다. 특히 여름 휴가철이라 호텔이나 항공기 예약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저녁 식당에 들어선 해양기상 연구원은 눈이 둥그레졌다. “배를 탄 이래 이렇게 많은 음식 처음 보네.” 해삼, 장어, 육회, 연어, 새우…… 쇠고기, 돼지고기…… 칠면조 고기는 웬일이람? 초밥, 김밥, 샌드위치, 장터국수…… 포도, 수박, 토마토…… 송편, 찰떡, 색깔떡…… 등등 포도주로 시작한 술은 산사춘, 복..

33.북극항로

기후변화는 뱃길마저 바꾸어 북극에 배가 다니기 시작하고 무역 항로의 획기적 변화가… 33. 북극항로 북극항로가 열리는 것은 확실하나 언제, 어느 정도냐가 문제다. 빙하 때문에 막혔던 바다가 열린다는 것은 신천지가 등장하는 것과 같다. 러시아와 알래스카, 캐나다는 북극해 연안에 여객선이 마음대로 왕래하는 날을 상상하며 마치 환상을 보듯 감탄할지 모른다. “얼음 땅이 이렇게 될 줄이야!” 2012년 9월 최초로 북극항로 전 구간이 해빙된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오는 2020년엔 연간 6개월, 2030년엔 연중 항해가 가능하다는 대담한 전망을 내놓았다. “어쩜 이런 현상이?” 북극항로의 나라들이 고맙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놀라는 표정을 지을 만하다. “그럼, 지구상 바다에 배가 못 다니는 구간은 없어진다는 뜻인..

32.연구 작업

얼음 연구는 어떻게 이뤄질까요 실제 과정을 소설 속에서 경험할까 합니다 32. 연구 작업 쇄빙능력시험이 몇 번 더 필요하다. 새로운 목적지 77N 160W 부근에 다다랐다. 북쪽으로 올라감에 따라 여름인데도 아침 기온은 영하 4도까지 내려갔다. 낮이 되자 햇빛이 나오고 갑판에 쌓였던 눈이 많이 녹았다. 눈은 철판의 색깔에 따라 온도가 다른지, 하얀색의 구조물엔 눈이 그대로 있는 반면 초록색 갑판엔 눈이 말끔히 녹았다. 헬리콥터가 빙빙 돌아다니다가 괜찮은 얼음덩어리를 발견했다고 연락해 왔다. 미국인 얼음팀은 오랜만에 밥값을 하게 됐다고 좋아했다. 곰감시인은 갑판 4층 연돌 옆에서 곰이 다가오는지 망을 보기 시작했다. 이젠 자신의 임무가 주어져 보수를 받아도 미안하지 않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지만 북극..

31.얼음을 찾아서

북극탐사항해의 두 가지 과제는 북극항로 개척과 북극 개발 그래서 임무는 중요하고요 31. 얼음을 찾아서 배는 북위 76도를 따라 정서(正西)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멀리 해빙(海氷)이 보이나 그리 단단하지는 않아 보였다. 약한 얼음을 밀고 지나갈 때 해면에서 사각사각 얼음 갈아내는 소리가 들렸다. 당직을 마치고 아침을 먹을 때 양외란은 러시아 유빙항해사와 마주했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 차이는 어떻습니까?” 양 극지를 다 경험한 그녀로서는 두 지역의 얼음의 차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전문가의 견해를 듣고 싶었다. “남극의 얼음이 빨리 녹습니다.” 유빙항해사는 간단한 결론을 내리고 설명에 들어갔다. 남극의 해빙에는 해조(海藻), 크릴 등이 섞여 있어 빨리 녹는다. 해조는 해빙의 바닥이나 가운데에 들..

30.연구원의 과제

처음 보는 눈무지개 한마디로 감탄입니다 행운이 다가올 것 같은 느낌 기대해도 좋으리라 30. 연구원의 과제 연구 해역인 척치해(Chukchi Sea)는 대서양과 태평양에서 기원한 따뜻한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분포와 경계면에 대한 연구는 계속 진행 중이다. 해양물리학자는 이번 항해에서 대륙붕에서 대륙사면으로 단면을 따라 해수의 물리화학 성분을 측정해본 결과 태평양과 대서양 기원의 해수가 각각 다른 수심에서 유입되고 있다는 잠정 결론을 얻어냈다. 유입 해수는 수심 480미터에서 최고가 되었다가 천천히 낮아지는 것이었다. 날씨가 좋고 구름이 아름다우니 배 바깥을 구경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남자들 위주로 슬리퍼를 준비하다보니 여자들이 발보다 큰 슬리퍼를 신고 있는 것이 많이 보였다. 남성이 ..

29.얼음과 안개

얼음 바다에서 조사할 일이 많은데 다국적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팀의 역할이 크다 29. 얼음과 안개 2010년 7월 23일(금) 놈을 출항한 지 일주일째다. 간밤에 목적지로 가다가 안개가 심해 배가 멈춰 섰다. 안개는 북극해에서 종종 얼음 다음으로 문제가 된다. 다행히 자욱한 안개는 곧 비로 변했다. 북극에서 눈을 보기 전에 비를 볼 수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그러나 비는 한 시간을 못 채우고 그쳐버렸다. 북극 얼음은 작지만 남극 얼음보다 더 단단하다. 염분이 적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는 말한다. 얼음이 많으면 파도가 얼음에 눌려 바다는 덜 사나와진다. 배는 여기저기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꺼운 얼음을 깨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는데, 갑자기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세 시간 동안 배는 겨우 2..

28.시차 적응

시차 적응이 어려울 때는 술자리를 만드는 게 좋은데 한잔하면서 나누는 농담이 재밌고요 28. 시차 적응 고문 중에 가장 고통스런 것이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잠으로 고생해본 적이 없는 양외란은 오늘은 불면으로 고문을 당하고 있다. 배는 진동하고, 밖은 훤하고…. 새벽 4시가 됐는데도 눈이 멀뚱멀뚱하다. 머리맡에 있는 형광등마저 오늘따라 유난히 떨고 있었다. 책상 위에 걸어놓은 엄마의 사진이 자꾸 웃으면서, 오늘은 제발 이야기 좀 하자고 눈꺼풀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너 맘대로 배 탔으니 오늘 내하고 대화 좀 하자.’ 엄마는 그렇게 태클을 거는 자세로 비쳤다. 양외란은 이렇게 오랜 시간을 뒤척이며 잠을 설쳐본 경험이 없다. 정말이지 엄마가 지금쯤 저녁 밥상을 차려놓고 딸과 대화할 준비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