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능가하는 시청률을 보이는 ‘지금우리학교는’이 드디어 미국까지 1위를 찍었다. 세월호와 연관되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도 특색이다. 드라마 속에 세월호 상징인 노란리본을 단 장면이 그렇고,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어가 사용되는 것은 전율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여객선은 월수금에 인천항, 화목토에 제주에서 출항한다. 저녁 7시에 출항해서 이튿날 오전 9시 목적지에 입항한다.
2021년 12월 10일 오후 7시
믿음호의 항해사들은 출항 준비에 바빴다.
처녀항해인 만큼 오랜 진통 끝에 출산한 산모처럼 승무원들은 울컥하고 설렜다.
마지막 홋줄이 부두에서 풀려나자 출항 뱃고동이 울렸다.
객실 창밖으로 연안부두가 저만치 멀어지고 인천대교가 빠르게 지나가면서 배는 속도가 붙었다.
국내 카페리로는 처음으로 도입된 '실시간 화물적재중량관리체계'(Block Loading System)로 적재 상황을 살피며 선박의 균형을 잡았다.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꼽힌 화물 과적과 복원력 감소를 예방하고자 선사와 한국해운조합이 공동 개발했다. 항해사들은 휴대용단말기로 화물 적재공간에 실리는 화물 무게를 위치별로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출항 전 선박의 복원성을 확인했다.
선박 1∼4층 화물 적재공간에서는 화물을 바닥에 단단하게 고정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차량 바퀴는 일일이 바닥에 고정해 세월호와 같은 불량 고박이 없도록 했다.
인천항에서 도선사가 몰고 나온 선박을 인계받은 선장은 좁은 수로를 빠져나온 뒤 당직 항해사에게 선박을 맡기고 휴식을 취했다.
해기사 출신인 서정민은 선장과 담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자동항법장치로 항해사의 운항 미숙에 기인한 오작동은 적어지겠군요.”
서정민은 자신이 실무에 있을 때의 경험을 상기하며 말했다.
“자동 업데이트되는 전자해도를 사용하므로 도움이 많이 됩니다.”
자동운항으로 항해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돌발 변수를 원천 차단할 수 있어 편안한 자세로 커피를 마시며 조선(操船)할 수 있다고 믿음호 선장은 덧붙였다.
그는 세월호 자매선에서 장기간 항해사로 근무한 경력 덕분에 항로의 특성을 잘 알고, 인천과 중국 간에 다년간 국제여객선 선장 경력이 있어 믿음호 운항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서정민은 노란색 '세월호기억팔찌'를 착용한 오른팔을 들어 보이며, "만약에 똑 같은 사고를 만나면 내 뒤로 선박에 단 한 명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각오로 이 팔찌를 차고 있다"며 또 한 번 선장을 하겠다는 듯 비장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팔찌의 의미를 믿음호 선장은 충분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정민의 가족 여덟 명은 ‘믿음호’의 처녀항해에 올랐다.
예약이 쉽지 않았으나 대가족 여행을 감안하여 일찍부터 준비한 결과 승선에 성공했다. 발열 체크, 마스크 착용은 코로나 시대 필수이다. 여객터미널 플렛폼을 따라 체크인 코스로 들어가면 티켓과 신분증을 확인한 후 티켓 바코드를 대고 통과한다. 플랫폼을 통과하면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고 크루즈선 입구로 향한다.
준호와 준서, 소라는 배에 오르면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두 살배기 아기도 데리고 갔다. 아기 이름은 화균이다.
임신 초기에 그들 부부는 태어날 아기의 작명에 대해서 의논했는데, 아들이든 딸이든 두 가정의 ‘화해’의 뜻으로 이 중 한 자를 택하기로 합의하고,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화’에 ‘균’을 붙여 ‘화균’이라고 이름 지었다.
세월호의 치명적 실수였던 화물과 평형수의 불균형이 사고의 원인임을 인식하고, 서정민은 아기 이름에 대한 아내의 의견을 물었다. 그녀는 워라밸 단어도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춘다는 뜻이니 ‘균’이라는 글자는 태어난 아기에 딱 맞는 이름이라며 바로 동의했다.
가족 여덟 명은 마루형 스탠다드 객실을 예약했다.
대가족이 한 장소에서 14시간을 함께하는 것은 감동이며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이팔봉 할아버지와 윤수조 할머니는 3대가 한 객실에 머문다는 사실에 배멀미나 피로감을 잊고 좋아했다. 객실 마루에서 식구들이 뒹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두 노인은 젊음으로 돌아간 것처럼 행복했다.
세월호 사고를 떠올리면 도저히 배를 탈 수 없을 것 같았으나 딸과 사위의 끈질긴 권유로 이 회장은 가족을 따라 나왔는데 승선의 불안과 염려는 안개처럼 사라졌다.
그래도 큰딸을 잃은 그를 위로하기 위해 윤수조 할머니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장님께서는 그날 따님의 일이 이런 배에서 일어났다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어요.”
“이렇게 좋은 배에서 일어났다는 게 믿기질 않습니다. 그래도 여사님과 가족들이 함께 여행을 하니 먼저 간 큰애와 함께 지내는 기분이어서 좋아요.”
분위기를 밝게 하려는 노회한 회장의 정성이 녹아 있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사돈마님의 호칭이 여사님으로 바뀐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며, 두 노인 사이에 나타난 특별한 변화의 하나였다.
윤 여사는 이 회장의 건강을 위해 유심히 보아둔 게 하나 있었다.
“배 안에 안마실이 있다는 걸 들었는데 거기에 가서 봄 쉬시렵니까?”
“그런 곳이 있었나요. 한번 가 봅시다.”
두 노인은 안마실에 들어서자 조심스레 의자에 앉아 자동안마 모드에 들어갔다.
스위치 작동에 서투른 이 회장을 옆에서 도와주는 윤 여사의 행동은 마치 연인의 정성 같아 보여,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친할 수 있구나, 감탄할 정도였다.
크루즈선에 승선하여 서정민 부부가 늦은 저녁 테라스로 나갔다.
“그날 저녁은 제법 둥근달이 밝았는데…”
사고 전날 세월호 갑판에 올라가 쳐다본 달을 떠올리며 서정민은 아들 화균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이순정에게 나직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이순정은 언니를 생각하면서, 일부러 아이를 들어 안고는 눈시울이 적셔지는 기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언니가 조카를 보고 위로받을 거예요. 무척 기뻐하겠지….”
그녀는 확실히 언니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들은 언니가 준 선물로 여길 정도였다.
“추억이 되는 사진 한 장 찍어 처형에게 보낼까요.”
서정민이 핸드폰을 열고 엄마와 아이의 모습을 담았다.
생명이 왜 태어났는지 이유를 깨달은 것처럼 사진 몇 장을 더 찍었다.
출항하자 오후 8시경에 특별한 이벤트로 ‘선상 불꽃놀이’가 있었다. 자정에 펼쳐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의 이유로 빨리 시작한 것이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갑판으로 이동했고, 준비된 불꽃이 일제히 검은 하늘로 솟구치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세월호 출항 시에도 불꽃놀이가 있었는데 그때의 탄성이 기억으로 살아나 서정민은 오히려 마음에 가시가 걸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준호와 준서, 소라는 게임방, 영화관, 휘트니스, 빵집, 카페, 노래방을 쭉 한 바퀴 돌았다. 그들은 영화관에는 들어가지 않고 영화 제목만 보았다. 영화 제목 ‘러브 보트’는 크루즈 여행에 어울렸으나, 그들은 카페에서 ‘아이스라테’를 즐기고,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즐기기 위해 영화관은 패스했다.
이제 모두가 대학생이 된 그들은 신조 취항한 여객선에서 경험할 일이 너무 많았다. 장남 준호는 군대 휴가를 얻어 탑승에 합류했는데, 그가 근무하는 해군 함정에 비해 너무 다른 크루즈선의 레저 시설에 깜짝 놀랐다. 휘트니스에서 소라에게 근육 자랑을 했을 때 대학 초년생인 소라는 엄지를 올려 보이며 오빠의 건장한 모습을 처음 본다며 감탄했다.
세월호에서 엄마를 잃은 소라는 4층과 5층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통로를 혼자서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 모습이 오빠들에게 들켰다. 소라는 평소 듣고 들은 사고 이야기를 회상하며 엄마의 사투 장면을 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슬픈 표정을 지은 적이 없다는 걸 강조하듯 소라는 밝은 웃음을 보이며 어린 동생 화균을 데리고 키즈존으로 갔다. 반대편 복도를 따라 가면 키즈 클럽이 눈에 들어오고, 어린이용 천막이 보인다. 흩어진 인형이 보이는데, 벌써 놀다간 어린이가 있었다는 뜻이다. 뛰어다니지 말라는 글귀는 여기가 배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듯하다. 펫룸을 지날 때 애견들이 장난치는 모습에 화균은 눈을 떼지 못했다.
5층 로비 리셉션카운터 주변에는 여행자를 위한 휴게공간이 마련돼 있어 간식을 먹거나 독서, 스마트폰 게임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소파 옆에는 USB 포트가 달려 있고, 태블릿 PC, 노트북을 들고 사무실로 이용할 수 있다. 카운터 맞은편에는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믿음호는 이튿날 새벽 세월호 침몰 현장인 맹골수도를 우회했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할 때 '지름길'인 맹골수도를 돌아가면 왕복 기준으로 16킬로미터 가량 운항 거리가 늘어나지만, 선사 측은 안전을 위해 손해를 감수했다. 맹골수도를 우회하면서 왕복 기준으로 운항 시간도 40분이 더 걸리고, 유류비용도 200만원이 추가로 필요했다.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 여행자들은 상갑판으로 올라갔다.
6시 30분경 수평선 너머로 붉은 해가 떠올랐다. 또 한 번의 탄성과 환호가 터졌다. 스마트폰과 카메라 샷을 누르는 소리가 일제히 들렸다.
서정민은 해상생활 중에 해가 뜨고 지는 장면을 수없이 보아왔지만 지금의 일출은 뭔가 달랐다. 죽었다 살아난 자신의 운명을 되돌아보며, 일출 광경에서 사라진 생명이 떠오르고 절망에 짓눌린 희망이 떠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믿음호는 14시간의 항해를 마치고 오전 9시 제주항에 도착했다.
처음 제주항이 눈앞에 들어왔을 때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차례차례 붉은색 철제 계단을 따라 내렸다. 승객 정원 810명보다 훨씬 적은 190명을 태우고 가볍게 처녀항해를 마친 것이다.
제주항 여객터미널에 도착하여 미리 예약한 밴을 타고 8명 식구는 제주 시내 관광에 들어갔다. 뱃길 여행과 제주 관광이라는 두 테마 여행을 하게 된다.
가족은 이 회장이 경영하는 제세실업 소유의 리조트에 짐을 풀었다. 여기에서 3박을 하면서 가족이 무언지 철저히 느껴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가족이란 사랑과 치유의 원천임을 깨닫고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새기게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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