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랜드 하우스

그랜드 하우스(VII)

오선닥 2014. 5. 19. 17:08

죄가 있으면

재판을 받아야 하고

 

재판은 법과 양심에

의하여 이뤄진다

 

 

 

  

그랜드 하우스

제7회

 

 

출정 길

 

한 달 후 여름밤.

 

별빛은 더위를 뚫고 내려와 구덕산 자락의 외양간 지붕에서 부서진다. 그 지붕 밑 닭장 안에서는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뭇 군상들이 침을 튀기며 논쟁을 벌이고 있다. 유독, 내일 열리는 장우의 재판에 대해 이야기가 많다. 장우의 공소장이 어마어마한 죄를 포함하고 있어 법정에서 진행될 심문 내용이 사뭇 궁금해지는 것이다.

 

도대체 공소 내용이 어떡길래?

 

- 피고는 외국에 유령회사를 설립하여 중고어획물 운반선의 용선계약과 선박대리점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으로 선박임대차에 따른 관세를 사위의 방법으로 포탈하여 선가 94억 원에 대한 관세 1억5천만 원을 포탈하였다 -

 

구치소 입감 후 열흘 만에 발급된 공소장의 내용은 대충 그랬다.

 

피고는 대표이사와 법인 둘이므로 결국 금액은 곱빼기가 되는 셈이다. 금액과 형량은 함수관계이니 감우들의 동정어린 눈빛이 장우에게 쏟아질만하다.

 

대표에게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회사에게는 일반법을 적용했다. 아마도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이니 책임이 무겁다는 뜻이겠지. 궁금하면 이유를 ‘생각하는 로댕’에게 물어봐야 하나.

 

생명이 없는 회사가 법정에 서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법정의 의자에 앉아 있을 회사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은 짓궂은 일인가.

 

장우는 2주 전 감방 안으로 전달된 얇고 누런 등기봉투 하나를 받고 애매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형사4부합의부에서 발송한 ‘피고인소환장’이 좀 엉뚱했기 때문이다.

 

-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하여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수가 있습니다 -

 

이미 구속돼 있는 사람을 ‘도망할 염려……’ 운운했으니, 차라리 웃음을 참으라는 형벌을 가하는 것이 낫겠다.

 

형식의 극치가 따로 없구나, 대한민국이여!

 

이 저녁.

외양간 담장 너머 바깥세상은 씨앗처럼 반짝이는 불빛에 형벌 같은 아름다운 삶이 만들어지고 있겠지. 여름의 더위는 알몸을 밤송이 까듯 이불 바깥으로 밀어 내며 정사를 재촉하고 있을지 모른다.

 

담장 안과 바깥은 이렇게 지척에 두고도 전혀 딴 세상을 보여준다.

내일이면 바깥세상을 약간이나마 창 너머로 볼 수 있으리라.

출정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참, 출정이 뭐냐고?

 

미결수가 사건 수사를 위해 검찰에 가거나, 심리·증언·결심·선고를 위해 법원에 가는 것을 말한다. 출정은 교도소나 구치소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기에 수갑을 채우고 포승으로 결박하게 된다.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이 수갑과 포승으로 스타일이 구겨지고 기분이 나쁠 수 있으나 죄의 값은 그렇게 냉혹하다.

 

출정하는 날, 구치소 마당.

닭장차를 기다리는 남녀 수형자들이 줄을 서 있다.

 

이때 두 남녀 수형자가 서로 가까이 다가갔다.

여자가 쪽지를 전해주려 하자 교도관이 낚아챘다.

 

“이런 행위, 안 돼!”

 

교도관이 펼쳐본 쪽지 내용은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였다.

 

그들은 같은 회사 직원으로 거액의 회사 공금을 인출하여 신혼부부처럼 허니문을 즐기다가 붙잡혀 들어왔다. 같은 옷과 고무신을 신은 많은 사람 속에서 짝을 알아보는 것은 동물적 감각 수준이다. 이런 걸 누가 불장난이라고 하겠는가.

 

조금 떨어진 곳의 다른 풍경.

교도관의 인솔 하에 여성 수형자들이 한 무더기 지나가고 있다.

갑자기 남성들이 휘파람을 불어대며 한마디씩.

 

“빠앙에는 이쁜 것들만 모였나. 내 원~ 미쳐!”

 

“미팅 좀 시켜주면 안 되나?”

 

“돌아버리겠네!”

 

암내만 맡으면 미쳐 날뛰는 사냥개로 변하는 남성 수형자들.

그동안 정신수양을 많이 했을 터인데 본능을 꺾는 데는 역부족이다. 가난하더라도, 더러는 무미건조하더라도, 종종 선택에서 소외당하더라도 바깥의 평범한 일상이 좋았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호송버스 닭장차는 여자가 맨 마지막 타고 맨 먼저 내린다. 자연히 여자가 앞쪽 좌석 차지다. 젊은 애인 둘은 앞뒤 떨어져 앉아 부끄러움으로 거의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닭장차가 법원 건물에 도착하자 수형자들이 차에서 내려 대기실로 들어간다. 점심때가 되자 도시락이 배달된다. 내용물은 모양만 다를 뿐 구치소 수준과 다를 바 없다. 재판 순서가 다가오자 포승만 풀고 수갑은 찬 상태로 법정에 들어간다.

 

장우는 외양간 입소 후 한 달 만에 첫 재판을 받는 셈이다.

검사와 판사가 해운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해 수사와 법률 심리에 예상 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제대로 모르면 풀어나주지~참.

중얼거려 보지만 귀 기울이는 자는 없다.

 

 

 

 법정

 

103호.

형사4부합의 법정.

 

가벼운 범죄나 소액 범죄는 형사단독(판사 1명)에 배정되나, 장우의 경우는 가중범죄에 해당되어 형사합의(판사 3명)에 배정됐다.

 

법정경위는 피고인들을 방청석 앞 피고석으로 일사분란하게 안내했다.

자리에 앉기 전 장우는 방청석을 돌아봤다. 가족이 어디에 앉아 있는지 알 수 없다. 수갑 찬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포승에 묶여 닭장차에서 내리는 모습까지 보았으니 이 정도야.

 

장우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 명의 판사가 앉아 있는 법대(法臺)를 올려다보았다. 법대를 바라보고 중앙에 부장판사(재판장), 왼쪽에 우배석판사(주심), 오른쪽에 좌배석판사(배석)가 앉아 있다.

 

또 법정을 바라보고 왼쪽에 검사, 오른쪽에 변호사가 자리하고 있다.

법대 밑에는 참여관과 서기가 앉아 열심히 기록을 준비하고 있는 중.

 

머리가 반백인 재판장이 목에 위엄을 잔뜩 넣고 재판을 시작한다.

 

“검찰 측, 심문하시죠.”

 

판사의 신호를 받고,

얼굴이 유난히 둥글고 목이 짧은 검사는 준비된 원고를 읽어나갔다.

그러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힘을 싣는다.

 

“피고는 용선을 가장한 중고선 매입을 한 자로, 그 수법이 너무도 교활하고 악랄하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허용하는 최대중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의기양양하면서 자신에 차 있는 검사의 목소리에 판사는 싸움이 재미있게 진행된다는 듯 이번에는 변호사 쪽으로 눈을 주었다.

 

“변호인, 의견 주세요.”

 

답변을 위해서 우희준 변호사가 일어섰다.

역시 준비된 원고를 읽어 나간다.

 

“중고선 반입의 증거는 전혀 없고, 피고의 거듭되는 진술과 같이 용선일 뿐인 바, 밀수의 증거는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무죄임을 말씀드립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혹시 용선 과정에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동안 국가를 위해서 해기사로서, 회사 경영자로서 열심히 애국한 점을 감안하여 선처가 요구됩니다.”

 

제기랄.

무죄 주장에 무슨 선처가 필요하나.

불필요한 사족은 왜 붙이나?

 

이래서 어설픈 선무당 지식이 위험하다. 미국에서 해운을 전공한 박사출신이라고 해서 선임을 했더니, 실망스런 변론에 실망만 쌓여갈 뿐이다.

 

변호사접견 때마다 선박의 무소유와 무점유를 주장하라고 강조했는데 엉뚱한 변론을 하다니.

장우는 흥분한 나머지 수갑 찬 손목에 힘이 들어가 통증이 느껴졌다.

 

“이렇게 말 안 듣는 변호사 첨 보네.”

 

그는 입 밖으로 소리 낼 뻔했다.

 

재판이 무미건조하다는 듯 우배석판사는 턱을 괴고 졸고 있다. 피고인들은 생사가 걸려있는 문제인데도 저렇게 태평스럽다. 그러나 좌배석판사는 호기심에 찬 눈으로 피고와 방청석을 두리번거리며 쳐다본다.

 

어느 쪽이 고참 판사일까.

물론 졸고 있는 쪽이다. 여유가 있어 보이니까.

 

이때 검사가 증거자료를 제시하겠다고 했다.

 

“밀수 선박 가격이 94억원으로 감정되었습니다. 여기에 감정인증서를 제출합니다.”

 

한편 변호인은 용선계약서와 대리점계약서를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두서너 주 만에 열리는 재판마다 검사와 변호사의 의견은 녹음기처럼 되풀이할 뿐이다. 재판장도 마냥 영어로 되어 있는 서류들이 귀찮고 짜증스럽다는 표정이다. 너무 큰 사건이라 대충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 번째 재판에서 파나마 법인 ‘오션리프 트랜스포트’사의 로메오 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앞으로 나오시죠.”

 

영어통역에 따라 라틴계 사장은 증인석에 섰다.

판사는 표정에 위엄을 얹고 어깨에 힘을 주었다.

 

“여기는 대한민국 법정입니다. 멀리서 비행기 타고 오셨으니 재판에 도움이 되게 사실대로 진술해주세요.”

 

그리고는,

 

“귀사는 선박 부크울리스호를 SH해운에 재용선 주셨습니까?”

 

러시아 선박을 용선해서 한국 회사에 다시 빌려줬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예, 사실입니다.”

 

로메오 사장은 질문에 대답하면서 수형복을 입은 장우를 힐끔힐끔 쳐다보곤 했다.

 

‘이 사람이 뭐를 잘못해서 수갑을 차고 있지?’

 

하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아무튼 멀리서 날아와 증인을 서준 그가 감사했다.

 

장우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구나.

죽이든 밥이든 재판의 결과가 빨리 나와야 할 텐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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