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랜드 하우스

그랜드 하우스(IV)

오선닥 2014. 4. 15. 19:43

온갖 사람들

다양한 죄의 종류

 

잡동사니가 모인

잡거실의

인간 이야기

 

 

 

 

 

그랜드 하우스

제4회

 

 

잡거실

 

여럿이 수감된 곳을 혼거실 혹은 잡거실이라고 한다.

 

이곳에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은 더위를 물씬 안고 찾아왔다. 8월의 더위가 정신력을 꺾기 시작했다. 잠자리를 준비해야 한다. 겨울엔 원시적 우정의 대상일 수 있는 옆 사람이 여름엔 부당한 증오의 대상이 된다. 베개에 땀이 흠뻑 젖을 때는 짜증이 천정까지 솟아오른다.

 

열 사람이 나란히 누워서 어깨를 포개고 자면 사람들 간, 몸과 벽과의 남은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한 수(首)가 더 들어왔다. 간통죄에 걸린 친구다. 열한 명이 되었다. 좁은 방에 이 숫자는 끔직한 현상이다. 아홉 명만 되었을 때는 그런대로 어깨를 움직일 수 있었다. 왜 여름에 죄인이 많은가. 옷을 너무 얇게 입고 다니는 여성들에게도 일정 책임이 있다고 성토하곤 한다.

 

신입자 정태균이 베개를 안고 방 한가운데로 간다. 겨울엔 중앙이 상석이지만 여름엔 중앙이 말석일 수밖에 없다. 신입자는 가운데 누워 양쪽 체온에 부대껴야 한다.

 

바로 옆 자리 김달수가 짜증을 부린다.

 

“이 여름에 당신 한 사람 때문에 어떤 상황인 줄 알어?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옆집 아줌마와 자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

 

공기업 청탁 행위로 변호사법을 위반한 김달수는, 이웃 아줌마와의 썸싱으로 걸려 들어온 신입자를 빗대어 한마디 쏘았다.

 

신입자 정태균은 눕지도 앉지도 못하고,

 

“어떻게 누워야 할까요?” 어리둥절해한다.

 

“발 냄새가 고약하더라도 거꾸로 누워.”

 

하는 수 없이 이 저녁은 모두가 옆 사람의 발 냄새를 맡으며 엇갈려 자기로 합의했다. 땀 냄새보다는 발 냄새가 견딜만하다는 뜻이다.

 

이런 더위에는 변기통 옆이 오히려 상석으로 바뀐다. 장우는 그 자리를 상급자에게 물려준 지 오래다.

 

밤중에 변기통에 가려면 사람을 밟고 가든지 가랑이 사이를 딛고 가든지 해야 한다. 간혹 가랑이 중심 부위를 밟았다간 살인에 버금가는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텐트를 강력하게 쳤을 때 물건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감옥 안의 죄수 80%가 돈, 성, 권력과 관련된 케이스다.

 

11호실을 거쳐 가는 수형자 중에는 유난히 간통죄가 많다. 평균 네 명 정도는 늘 체류하는 셈이다. 낮에는 이들의 사건 전말을 듣다보면 대중소설 읽는 것 이상의 흥미를 펌프질한다.

 

운전기사 이진우는 사장 부인과의 카섹스, 상무 박정호는 부장 부인과의 모텔 투숙, 30대 류돈명은 친구 부인과의 1박2일 행차, 과장 심유충은 여직원과의 야근 사건, 체육교사 김정길은 여교사와의 숙직실 밤샘, 교수 김호길은 대학원생과의 불륜 등 ― 대충 이런 것들로 소송을 당한 것이다.

 

교도소에 머리 좋은 사람, 손재주 좋은 사람, 말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화자는 만담가 수준이다. 여자들이 유혹에 걸려드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식구통(배식구)은 20x20센티 크기다. 이것은 안과 밖을 소통시키는 유일한 구멍이다. 통과하는 물품은 식사는 물론 간식, 내의, 책, 연애편지 등 다양하다. 온갖 물품의 통로로서 식구통은 대단한 소통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종이 바둑을 두다가도 누군가가 남녀 연애행각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든다. 듣는 사람의 관심이 집중적인 것은 혹시 써먹을 데 없는지 호기심의 발동일 수 있다. 신문이나 TV가 없으니 면회 때 구전으로 들은 세상살이가 귀중한 뉴스가 된다.

 

불량식품에 걸린 이방우는 중국에서 고추를 사와서 아름답게 염색하는 법을 습득했다. 거기다가 유통기한을 속여 판매하고는 십억 대의 이윤을 남겼다.

 

이방우가 이 방에 들어온 첫날 두부와 인연을 가졌다.

부방장이 친절하게 지시했다.

 

“내일 새벽 창밖에 딸랑딸랑 종소리가 날 거야. 소리가 작으니 귀를 쫑긋 세워서 잘 듣다가 종소리가 나면 두부 세 모만 달라고 해.”

 

“……?”

 

“못 사면 여기 있는 사람 전부 아침 굶어야 하니까, 꼭 사야 해!”

 

“네.”

 

그날 밤 이방우는 긴장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어 새벽에 울린다는 종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침식사 시간 두부를 못 사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는데, 두부를 내놓으라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이 35년 인생 그가 속은 유일한 사건이었다.

먹는 것으로 장난쳤다고 해서 부방장이 단단히 놀려준 것이다.

 

상표도용을 한 이정규는 쿠치, 사넬 등 유명상표를 대량으로 찍어두었다가 국제시장에서 새 옷이나 가방에 붙여서 팔았다. 직원 한 명이 이 고속질주 사업을 이실직고한 것이다.

 

이현진은 성형외과병원에서 남자간호사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보톡스 시술을 하다가 부작용의 피해를 입은 여성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후 불법의료행위로 철창에 입성했다.

 

사장 조천제는 대표이사 직위를 이용해 매출을 속여 회사의 재산에 막대한 손해를 끼쳐 배임 횡령죄로 걸려들었다. 십여 명의 가명 직원에게 급료를 지급한 것도 꼬리가 너무 길었다.

 

부동산중개업자 서용수는 땅 하나를 네 명에게 불법으로 전매하다가 부동산법 위반으로 걸렸다. 일주일 만에 5억을 벌었는데 탈세를 토해내야 함은 물론이다.

 

친족 폭행죄로 들어온 왕주국은 중학생 아들을 야구방망이로 때려 기절시킨 사건을 저질렀다. 무릎을 벗겨가며 걔를 낳았는데, 이게 자기 엄마한테 붙어서 자신을 왕따시켰다나. 엄마가 술주정 남편을 가만히 둘 리 없었다.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던 이태민은 근무 중 애인과 영화를 보다가 근무이탈로 걸려들었다. 두 번까지는 시말서로 무마가 되었으나 세 번째는 용서되지 않고 결국 철창신세로 발전한 것이다.

 

하우스도박을 주선하던 김도수는 가정주부가 낀 남녀 혼성도박단 수십 명이 외진 비닐하우스에서 억대 아도사키(後先) 도박을 벌이다 출동한 경찰에 모두 붙잡혔다. 도박 전과가 있는 전문꾼 속에 가정주부가 끼었으니 돈은 누구에게 갔는지 뻔하다.

 

저녁시간이 되기 전 지루할 때 김도수가 도박의 시범을 보였다. 마술사가 따로 없다. 없던 카드도 만들어낸다. 소매 안에 숨겼는지 눈 깜짝할 사이 손바닥에 쥐어져 있다. 방바닥에 여러 장을 늘여놓고 짚는 카드를 귀신같이 알아낸다. 아도사키의 황제답다.

 

장우처럼 관세법에 걸리는 사람은 최근 많지 않다. 박정희 정권 때 밀수를 최악의 범죄로 간주하여 엄벌주의로 일관한 후 관세법위반은 많이 감소했다. 요즘 관세법에 걸린 자는 간 큰 사람이다.

 

눈동자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모습으로 장우를 쳐다보았다.

 

“밀수품 가격이 얼마에요?”

 

“95억.”

 

“뭔데?”

 

“선박.”

 

“크게 한방 터뜨렸네. 7년 징역. 이 방에서는 젤 강짜. 이제 방장 하시우.”

 

전과 12범 사기꾼 전도준은 형량을 혼자서 다 정한다. 대부분 들어맞다. 죄의 전말을 정확하게 제공해주기만 하면 경력 판사의 판결을 능가한다.

 

아무리 감방 안의 농담이라 하더라도 장우에게 7년 옥살이를 점치는 것은 너무 하다. 절망의 마지막은 사망이 아닌가.

 

이러니 교도소라는 학교를 한번 다녀오면 범죄 기술을 습득할 뿐만 아니라 법률지식이 일취월장한다. 권력과 법에다 논리까지 추가해서 시동을 걸면 불법 전문기술이 기막히게 작동한다고 거드름을 피운다.

 

여자의 어느 부위가 낮과 밤에 취약하다는 것까지 가르치고, 애인한테 용돈은 어느 순간에 요청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실전 위주 교육을 한다.

 

전도준은 재미나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뜸을 들이고,

 

“요즘 구치소 밥이 맞지 않아 죽을 지경이여. 혹시 우유나 빵 좀 들여놓을 사람 없어요?”

 

입맛을 다신다.

 

이럴 땐 의례 장우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영치금이 제일 많이 적립된 그는 무엇보다 특별면회가 자주 있다. 장우가 면회를 마치고 들어오면 빈손일 때가 없다.

 

“오늘 면회하면 한 보따리 풀게요.”

 

장우는 기꺼이 나섰다.

 

“사과를 꼭 넣어라구. 요즘 비타민이 부족해서.”

 

신임 방장 왕주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편하다.

전임 방장이 이틀 전 김해교도소로 옮긴 후 신임 방장은 야구방망이 기질을 보이려 한다.

 

이런 곳에서는 당연히 있는 사람이 풀어야 한다.

거래처 접대를 위해 룸살롱의 수백만 원치 술값에 비하면 며루치 안주 값도 안 된다.

 

면회 때마다 영치금은 제한금액 3만원씩 들어왔다. 이 금액의 간식은 엄청난 양이다. 외양간(구치소)에는 비싼 물건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모두 면세인지라 물건이나 먹거리는 양이 푸짐하다.

 

사람들에게 제일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면 계란프라이, 탕수육, 군만두, 자장면 정도다. 때로는 진한 우유도 그립고 탁 쏘는 콜라가 생각난다. 주로 어릴 때 맛있게 먹던 것이 본능적으로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여기에 있을 리 없다.

 

왜 진한 우유인가. 안에는 유효기간이 2개월이나 되는 묽은 우유만 나오기 때문이다.

맛동산도 인기다. 군대 건빵을 찾기도 한다. 군대에서 허기를 달래주는 효자 군것질이었으니까.

 

저녁 10시 취침시간 전에 색다른 논쟁이 벌어졌다.

몇 명은 읽고 있던 성경책이나 불경책을 접어두고 논쟁에 합류했다.

 

“옆방의 신입자는 이틀간 굶었다고 하는데, 이건 단식입니까, 금식입니까?”

 

불량식품에 걸린 자가 묻자 대답이 쏟아진다.

 

“무슨 종교냐가 문제지.”

 

“굶는 중에 기도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둘 다 불법이라구.”

 

이번엔 다른 질문으로 들어간다.

박사 사모님과 간통에 걸린 친구가 질문한다.

 

“이 방에서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전도하면 변호사법에 걸립니까?”

 

변호사법에 걸린 친구가 잽싸게 대답에 나선다.

 

“목사나 신부, 스님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변호사법 위반이지.”

 

참 별난 논쟁도 다 있네.

잡거실은 또 하나의 아고라 방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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