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랜드 하우스

그랜드 하우스(VI)

오선닥 2014. 5. 3. 21:51

가족의 소중함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

 

작은 소식이

용기와 희망을 주고~

  

 

 

                                         

  그랜드 하우스

제6회

    

 

접견대기실

 

“4095번 접견!”

 

방의 창살 틈으로 종이쪽지 하나가 장우에게 전달됐다.

접견 왔다는 쪽지.

 

접견은 확실히 낯선 용어이다. 면회라는 익숙한 단어를 두고 이렇게 부르는 것은 형무소를 교도소로 부르는 이유처럼 신선한 느낌을 주려는 언어의 마력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접견은 누구나 기다리는 것이지만 사형수들은 ‘접견’이라는 용어에는 불안감을 느낀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매일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면회 온 사람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20개의 접견창구가 모자랄 정도로 면회자의 대기시간이 길다. 강화유리를 사이에 두고 만들어나가는 대화는 삶의 고뇌를 비춰준다.

 

여자가 면회를 왔다.

16번 접견창구.

 

여니 때처럼 안부부터 시작했으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하다. 서울에서 급히 내려온 그녀에게 오후 2시의 날씨는 체온 조절을 위해 땀방울을 밀어낼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미끈한 이마가 마치 좋은 탈출구라도 되는 듯 땀방울은 그쪽으로 집중되어 있다.

 

창살이 없었더라면 장우가 닦아주었을 것이나 여자는 스스로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훔치면서 말했다.

 

“잠자리가 어때요? 어제 대구에는 37도였다는데.”

 

“호강하러 온 거 아니니까. 참을만해.”

 

장우의 느긋한 말을 듣고 여자는 안심했다는 듯 웃음을 보이고는 동반한 여자를 소개했다.

 

“오늘은 당신 팬을 데리고 왔어요. 하마터면 나 몰래 당신과 결혼할 뻔한…… 이쁜이.”

 

참 이상한 마누라다. 더위를 마셨나.

질투심도, 배알도 없나.

 

이쁜이 최연희는 염려스런 얼굴을 하면서 어쩔 줄 모른다.

 

“우 씨, 이 더위에 괜찮으세요? 자꾸만 같이 가자고 해서……이렇게.”

 

모처럼 이름 한 자만 불러지는 건 오랜만이다.

 

“고맙습니다. 연희 씨. 이런 데까지.”

 

여자가 최연희를 데려온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라이벌 싸움에서 장우가 자신을 선택했을 때 최연희가 순순히 물러서줬다. 70년대 이런 페어플레이가 있었다니 대한민국이 자랑스럽지 않은가.

 

창살 틈으로 대화하는 장우는 여름이 무르익어 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최연희의 옷차림이 얇고 화사했다. 투명한 망사 옷이 수형자들에게 남성을 자극할 수 있으나, 이런 것조차 참으면서 자유 잃은 철창 안에서 남성을 죽이는 훈련도 필요할 것이다.

 

“영치금하고 책 한 권 넣었어요.”

 

여자는 옆의 최연희를 살짝 보면서 말을 이었다.

 

“책 이름은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요’인데 연희 씨가 직접 골랐어요.”

 

“고마워요. 연희 씨.”

 

그런데 하필 책 이름이?

아, 그녀가 떠나던 날의 뒷모습이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다.

 

최연희는 핸드백의 자크를 만지면서,

 

“요즘 유행하는 팝송,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 카세트테이프도 가져왔는데, 넣어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고맙습니다만 감방엔 카세트가 없어요.”

 

21세기에는 감방에도 카세트나 TV도 넣어줄 것이다, 라고 말하려 했으나 참았다.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의 의도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그것도 모르고.”

 

최연희는 겸연쩍은 듯 미소만 지었다.

5분 후 면회를 마치고 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접견을 마치고 나가려는데 옆 창구가 시끄러웠다.

접견자와 수형자 간에 격렬한 언투가 벌어지고 있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바깥의 여성 접견자의 목소리가 격앙했다.

 

“합의하지 않으면 풀어주는가 봐라!”

 

“좋아, 네 엄마 목은 두 개나 되나?”

 

여자의 엄마가 사건의 장해요인이라도 되는 듯 안의 남성 수형자는 목소리를 세웠다.

교도관이 옆에서 대화내용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도 자기들과는 무관하다는 듯 완전히 막가파 투쟁이다.

 

“철창 안에서 협박해봤자 눈 하나 깜짝할까 봐.”

 

“넌 잘못이 없냐? 내가 가만 둘 것 같아?”

 

“그래봤자 넌 독 안에 든 쥐야. 집문서만 주면 돼. 더 요구하지도 않어.”

 

간통으로 걸려 들어온 남자를 협박하는 대화 같은데.

 

죄의 백화점.

돈이 일만 악의 뿌리다. 사회와 가정의 비정상이 비등점에 올라와 있는 건가.

보이는 가치에만 매달리고 숨어있는 가치에는 관심이 없나.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장우는 수형자들이 모여 있는 접견대기실에서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의 대화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형님, 그 담배는 서면 작은 형님께서 공급했습니다. 합!”

 

덩치 크고 배가 나온 젊은 수형자가, 대기실의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키 작고 깡마른 중년 수형자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이때 형님은 더욱 더 허리를 뒤로 제친다.

 

“모처럼 피웠더니 맛이 괜찮던데……. 서면 그놈 열심히 할 거야. 지켜보지.”

 

형님은 젊은이를 앞에 놓고 가는 목에 잔뜩 힘을 주며 말했다.

 

조금 지나자 연거푸 여러 덩치들이 형님 앞을 지나가면서 90도로 허리를 꺾고 인사했다.

 

담배로 인한 문제는 조직폭력단에서 비롯한다. ‘큰집’에서 담배 조달은 열 배의 폭리를 취한다. 담배 연기가 누구 입에서 피어나왔는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수형자도 교도관도 입을 열지 않는다.

 

감방 생활의 지혜는 특허수준이다.

 

빵봉지를 가늘게 찢어 둥굴게 말아 세차게 비비면 마찰열 때문에 길이가 대여섯 배로 늘어난다. 두 줄로 새끼를 꼬아 대여섯 개를 이으면 빨랫줄이 된다.

 

페트병에 요구르트를 넣고 식빵이나 밥알을 넣어 낮에는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밤에는 이불 속에 껴안고 자면 발효되어 시큼한 감방 막걸리를 만든다.

 

긁어모은 솜털에 라이터돌을 쇠톱 조각으로 튕기면 불이 붙는다. 불이 사라지기 전에 담뱃불에 옮겨 붙이면 성공이다.

 

어린이들은 따라하면 안 된다.

    

 

                       

                 

     특별접견실

 

감방생활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접견이다.

교도소는 수형태도의 급수에 따라 매월 한 번에서 네 번까지 접견이 허용된다. 그러나 구치소는 매일 한 번씩 접견이 가능하다. 미결수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 때문일 것이다.

 

오늘 특별접견이 있었다.

이곳에서 일반접견과 변호사접견 외에 특별접견이 가능하리라곤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여자는 서울에서 목사 한 분을 모셔왔다.

평소 그녀의 팽만한 가슴이 믿음과 봉사정신으로 빵빵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기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기어코 대형교회의 부목사 한 분을 비행기에 태워 동행해 온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남편 기도해주실 거지요?”

하면서 협박조로 데리고 온 것 같지는 않다.

 

특별면회실에서 셋은 머리를 세잎 클로버처럼 마주했다.

손을 무릎위에 얹자 기도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시련이 있는 줄 압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지켜주셨습니다. 배는 안전하게 항구에 정박하라고 만든 것이 아니라 험한 파도를 뚫고 항해하라고 만든 것입니다. 약한 마음을 성령으로 강하게 붙들어주시어 황파를 헤쳐 나가게 하시고, 진리와 정의가 세상을 바로 세워나가게 하시옵소서. 마음의 평화가 하늘에서 이뤄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게 하시옵소서.”

 

기도는 이렇게 시작하여 5분간이나 계속됐다.

칸막이 너머 교도관이 기독교로 전향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었다.

 

‘기도하면 우연한 일이 일어나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덕담하면서 목사는 옳은 일이라면 비판을 무릅쓰고 소신을 펼치라고 했다. 그리고 기도는 쉬지 말고.

 

‘이 분은 무죄를 확신하는구나!’

 

장우는 영양제 링거를 맞은 것처럼 전신이 평온해지는 중이다.

모처럼 말씀 한 도막 얻은 것이 이렇게 큰 힘이 될 수도 있는구나!

 

접견 때마다 무죄는 어려우니 집행유예라도 받아내도록 노력하겠다는 변호사의 말에 신물이 나 있었는데, 장우는 모처럼 진정한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목사는 전직 어선 3항사였다. 수산전문학교를 나와 3년간 원양어선 생활을 청산하고 신학교에 들어갔던 것이다. 전직이 비슷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공감이 이뤄진 것인가.

 

선원출신 목사를 데리고 온 것을 여자는 더 자랑하고 싶어 한다.

 

“목사님한테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당신은 무죄일 수밖에 없답니다. 조금만 참으면 될 것 같아요.”

 

재판은 목사가 하는 것이 아니고 머리 좋은 판사 세 명이 하는 건데.

어쨌든 참는 것은 장우가 9단 아닌가.

주어진 시간이 끝나가자 장우는 일어서면서 여자에게 말했다.

 

“서울까지 목사님 편하게 모셔요.”

 

이때 어주호 목사는 장우의 손을 꼭 잡으면서,

“아녀요, 부산 친구 만나보고 야간열차 타고 혼자 올라가려 합니다. 염려마세요.”

하고 말했다.

 

목사의 손은 어선 생활에서 얻었던 굳은살이 아직도 약간 까칠하게 느껴질 정도다.

 

감방의 감우들은 장우의 특별접견을 부러워하면서도 좋아한다.

돌아올 때는 먹거리를 듬뿍 방바닥에 깔아놓기 때문이다.

 

“특별접견 하려면 얼마 줘야 해요?”

 

먹기만 하면 되는데 꼭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친구가 있다.

여니 때와 마찬가지로 방장이 나섰다.

 

“임마, 그런 거 묻는 법 아냐. 궁금하면 특별접견 신청해봐.”

 

방장은 항상 장우 편이다.

푸짐한 먹거리를 공급해줘서 고맙고, 무엇보다 11호실에서 가장 무거운 형을 받을 가능성이 많은 장우에게 동정심을 보이고 싶은 것이다.

 

감방 안의 여름이 발목을 묶어놓았는지 도무지 흘러가질 않는 중에 회사 일은 자꾸 복잡해져 가는 것 같다.

 

닷새가 채 지나기 전에 여자는 또 특별면회를 신청했다.

편안하게 연애 기분이나 챙길까 했더니 여자는 몇 가지 서류를 가방에서 꺼냈다.

이번에는 뭔가.

 

“윤 전무가 직접 사인을 받아 오랍니다.”

 

내용은, 거제 조선소에서 수리한 러시아 선박의 수리비를 선주가 송금하려는데, 사장의 친필 서명 없이는 송금할 수 없다는 선주의 메시지였다.

 

“윤 전무더러 수리비 내역을 꼼꼼히 체크한 다음 지불하도록 전해줘요.”

 

장우는 210만 달러 수리비 송금을 부탁하는 서류에 서명을 했다.

올챙이 꼬리가 달린 서명으로서는 최고가의 서명이 되는 셈이다. 그것도 감방에서.

 

서명된 서류를 가방에 챙겨 넣는 여자는 뭔가 할 말이 더 있다는 듯 주춤거린다.

못 잡았던 손이라도 잡고, 아니면 붙이지 못했던 입술이라도 붙여보려는 미련 때문인가.

 

“당신이 걱정할까 봐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여자는 가방 끈을 잡은 채 머뭇거렸다.

 

“뭔데?”

 

“강 부장이…….”

 

“강 부장이 뭐~. 빨리 말해 봐요.”

 

첨부터 이야기를 꺼내지 말든지, 그녀는 자꾸 머뭇거리며 사람을 걱정스럽게 만든다.

 

“거래처 운임을 몰래 빼돌렸는가 봐요. 받은 어음을 명동 사채시장에서 할인해서……. "

 

그리고 말을 이었다.

 

"위조 인감으로 은행에서 인출했다나요. 얼굴 익은 총무부장이라 은행에서도 의심하지 않았답니다.”

 

“얼마나?”

 

“7억쯤. 경리 구선희가 중간에 눈치를 채고 전무한테 보고해서 4억은 회수했답니다.”

 

“…….”

 

“나머지도 회수한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그 친구는 나와 보통의 관계가 아니잖아. 내 원.”

 

이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거다. 감방 안에 있는 사장을 배신한 것도 나쁘지만, 무엇보다 사랑하는 후배를 그 자리에 앉힌 장우 자신의 행위가 더 미웠다. 인생을 미워해야 할 지경이다.

 

여자는 무릎을 세우고,

“말하지 않았을 걸 그랬네…….”

하면서 남자의 손을 꼭 잡았다.

 

걱정 한 조각 남긴 여자는 입술은 그냥 가지고 상경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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