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랜드 하우스

그랜드 하우스(V)

오선닥 2014. 4. 26. 22:45

홀로는 싫어요

같이 있게 해줘요

 

같이 있는 세상이 좋아요

인간들의 냄새가 좋아요

 

 

 

 

그랜드 하우스

제5회

 

 

독방

 

혼자 수감된 곳을 독거실 혹은 독방이라고 한다.

독방은 잡거실 사이에 혹은 별사(別舍)에 있다.

 

사형수는 보통 미결수 10명 정도와 함께 잡거실에서 지낸다. 경우에 따라서는 독방을 쓰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을 쓰기에는 위험하다는 이유다. 일반죄수의 흰 수형번호와는 달리 빨간 수형번호는 위압감 내지 공포를 줄 수도 있지만 세상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보통 인간에 불과하다. 그 독기도 몇 년 지나면 다 빠져나가고 결국은 보통의 인간자세로 바뀐다.

 

넥타이공장!

 

사형수는 여기에 언제 불려갈지 매일매일 삶과 죽음 사이에 살고 있다. 사형집행은 한 번 하지만 그들은 수십 번의 죽음을 당하는 특이한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하얀 장막 뒤에서 전기 스위치가 철컥 내려가는 소리에 몸서리친다.

 

지존파나 막가파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살해하고

토막내고

소각하고……

 

무지막지하게 흉포한 그들도 안에 들어오면 꺾이는 인간이 된다.

세상에서는 대화할 상대가  없고 사랑할 가족이 없던 그들.

여기서는 쬐금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

 

면회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잡거실이 부럽다. 독방에서 쓸쓸히 생을 마쳐야 한다는 것은 바로 죽음과 같은 것이다.

 

교도소에 사형 집행이 있던 날.

한 사형수가 처절하게 발악하며 끌려갔다. 전날까지만 해도 담배꽁초 하나로 싸우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돌아다니던  그들이었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의 모습을 본 한 친구는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다.

 

“저렇게 가고 말 것을 내가 왜 이렇게 살았지?”

 

그는 회개한 나머지 형을 다 마치고 출감해서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 되었다. 눈치 빠르게 삶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교도소 독방에는 원래 모범수가 아니라 악질범이 자리한다. 때로는 능력자나 교주들을 일반 재소자와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서 독거를 허용하기도 한다. 원래는 독거가 원칙이지만 시설 부족으로 20% 미만의 사람들만 독거를 하고 그 외는 사실상 강제 혼거를 하는 셈이다.

 

교주급 인물은 옥살이를 고난의 길이라고 하면서 포장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엄숙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옥살이도 수행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지난번 11번 방에서 쟁투행위가 벌어졌다.

장우가 풀어 놓은 사식을 두고 두 사람이 다투었다.

 

“크림빵은 내가 좋아하는 건데 당신이 먼저?”

 

입방일 순서로 3번째가 4번째에게 소리쳤다.

4번째는 가만있지 않았다.

 

“아무나 먼저 먹으면 되는 거지, 뭐!?”

 

“이 자식 봐라. 나이 많다고 봐줬더니!”

 

거친 주먹으로 다섯 살 위 어른에게 한방 갈겼다.

어른은 재수 없게 이빨이 하나 날아갔다.

아무 일도 아닌 걸 갖고 일이 크게 발전해버리고만 것이다.

 

폭력은 3번째를 독방신세로 만들었다. 소위 징벌방으로 보내진 그는 먹방이라 불리는 어두운 ‘생활지도실’에서 편지나 서신을 받을 수 없고, 면회도 안 되며, 먹고 자고, 용변보며 체 바퀴 생활을 해야 했다. 손발이 묶인 채로 밥을 먹게 되자 울컥 하는 자신의 행위가 후회스러웠겠지만 때는 늦었다.

 

운동하러 가는 중 독방을 지나면서 장우는 독방 문창살을 통해 한 마디 건넸다.

 

“생활이 어떠세요? 나중에 크림빵을 넣어드릴게요.”

 

“그땐 감정 조절이 안 돼 미안했어요. 고마워요.”

 

교도관이 보지 않아 다행이었다.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 조폭이나, 타인으로부터 괴로움을 당할 위험이 있는 연예인도 독방에 기거하는 경우가 많다.

 

전직 대통령 등 범털은 독방에서 고독을 많이 배웠을 것이다.

방에는 TV, 수세식 화장실, 세면대, 창문이 달려 있고, 선풍기가 작동하지만 고독에서 해방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권력행사는 쓴물이 따른다는 진리를 터득했을까.

 

 

  

운동장

 

하루 한 시간의 운동시간은 별미에 속한다. 이 시간에 깨달은 행복의 개념은 손에 잡히지도 않는 작은 만족에서 온다는 것이다. 운동기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대로 달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무신을 신은 채 팔굽혀펴기나 단순히 왔다갔다 하는 정도인데도 가슴이 뿌듯해진다.

 

한 친구가 가까이 다가와서 장우에게 말을 걸었다.

 

“흰 고무신을 신으니 점잔해 보이지 않아요?”

 

“그렇네. 점잖은 선비같이 보입니다.”

 

“선비 같으면 뭐합니까. 대어들은 다 빠져나가고 피라미들만 남았는데…….”

 

“여러 명이 걸렸나 봐요?”

 

“간부 시키는 대로 고해성사하다 보니 요렇게 걸렸지요. 감옥은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요.”

 

너무도 심각하고 점잔하게 말하기에 장우는 내용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도 쉽게 잡담하며 경험담을 나누는 곳이 운동장이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 자선과 같은 것이다. 삶에 배여든 고난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 상대는 감격의 눈물을 마다하지 않는다. 세상이 외면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위로이다.

 

이번에는 머리를 빡빡 밀어붙인 친구가 옆에 와서 말을 걸었다.

팔목에 그려진 용 모양의 문신이 그의 얼굴 위로 꿈틀거리며 올라갈 것만 같았다.

 

“형씨 사건번호 어떻게 돼요?” 용 문신은 물었다.

 

“95고합495.”

 

“형씬 죄가 제법 큰가본데…….

 

“왜요?

 

“‘고’와 ‘합’이 들어 있잖아우. 1심 형사 합의부네요.”

 

중학생도 알아들을 정도로 그의 설명은 질서정연했다.

 

민사사건은 '가', 형사사건은 '고'로 분류하고, 그 뒤에 합의부사건에는 '합', 단독사건에는 '단'을 붙여서 사건을 분류하고 있다. 고등법원의 사건은 '나'(민사사건), '노'(형사사건), 대법원의 사건은 '다'(민사상고사건), '도'(형사상고사건)등으로 표시한다. 형량이 높은 범죄는 합의부에서 진행한다.

 

갑자기 담벼락 너머 여자구치소 쪽이 왁자지껄해서 쳐다봤다. '

 

“종훈 오빠 힘내! 영아는 우리가 잘 보살피고 있어요.”

 

그러면서 뭔가 적힌 종이를 창문 틈으로 흔들어댔다. 폭소가 터졌다.

옆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이 종훈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정부 고위직 남성 간부와 유명 여성 연예인과의 간통 사건이 신문에서 대서특필된 적이 있었다. 운동장 나가는 시간을 어떻게 알았는지 여자 죄수들이 장난을 만들어낸 것이다. 교도소엔 별난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임에 틀림없다.

 

자매결연 이야기를 하는 중, 소년티를 갓 벗은 한 젊은 친구가 호기심으로 끼어들었다.

 

“자매결연이 뭐에요?”

 

“교회 목사나 절 스님이 찾아와서 면회도 하고 영치금도 넣어주고 하는 거지. 음식도 싸들고 찾아오기도 하고.”

 

“그분들이 왜 결연을 맺으려 하지요?”

 

“하나님과 부처님이 서로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잡아당기는 거지. 당기는 것이 지나치면 팔이 찢어질 수도 있고…….”

 

이중결혼자가 설명을 그럴듯하게 했지만 들은 자는 이해를 접수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했다.

 

운동 후 5분의 샤워시간은 8월의 무더위를 이겨내는 귀중한 시간이다. 샤워는 여러 사람에게서 묻어나온 땀 냄새를 청산하고, 간혹 변기통에서 손장난 때문에 가랑이에 묻은 남자를 씻어내는 기회이기도 하다.

 

“야, 불량식품 씨, 바나나 포에 왜 흰 고로쇠물이 많이 묻었어?”

 

아도사끼 씨가 옆 사람의 가랑이를 힐끗 보며 장난기를 보였다.

불량식품 씨가 잽싸게 그 부분에 비누칠을 해대는 것이 우스꽝스럽다.

 

샤워를 하면서 간단한 속옷을 빨고 있는데 비눗물을 헹구기 전에 다음 대기자가 쳐들어온다.

남는 게 시간인데 이때는 왜 전쟁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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