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랜드 하우스

그랜드 하우스(VIII)

오선닥 2014. 5. 31. 17:51

새가 새장을

빠져 나오고

 

장우는 철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랜드 하우스

제8회

  

선고 공판

 

장우가 국비 무상급식을 제공받은 지 95일이 된다.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라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지금이 가을이군.

길다고 하면 긴 세월, 그런대로 잘 견뎠다.

 

인생의 구석진 부분을 요모조모 체험했었지.

독야청정하고 혼자 잘난 체하다가 험악한 세상에서 호되게 매를 맞은 것이다.

스스로 합리화함으로써 답답한 가슴에 숨구멍을 만들어 본다.

 

그래.

 

한 알의 보리도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열매를 맺는다. 봄에 심으면 열매를 맺지 않는다. 유배지에서 정약용과 김정희는 각각 <목민심서>와 <세한도>라는 걸작을 남겼다고 했지. 중국의 사마천은 거세당한 성기(性器)를 비통해하면서 <사기>라는 역사서를 남겼고. 소련의 솔제니친은 강제수용소 10년의 경험에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노벨수상작을 남겼던 것.

 

고통→걸작

 

뭐든지 단순 논리로 결론을 맺으려는 장우의 습성이 재발한다.

문제를 그런 식으로라도 귀결 지우니 어딘가 후련함이 느껴진다.

 

어제 저녁.

감방의 60대 조한량은 재판을 하루 앞두고 있는 장우에게 다가왔다.

 

“목욕재계하고 정수 떠다 빌어야제?”

 

신령님에게 빌 것을 다그쳤다.

그러면서

 

“빵빵한 궁디를 만딜려면 목욕 정성에 달렸대이~”

 

지극정성 없이 석방돼 마누라 궁둥이 만지겠느냐는 것이다.

욕탕이며 정수사발이 있을 리 없지만, 그는 더 큰 소리로 ‘똥통 앞에 가서라도 빌어야 한다’고 야단이다.

 

참 불량 노인이다.

고삐를 잡았는데 소가 따라왔고, 나중에 소도둑이 되어 있더라고 능청을 부리는 노인은 감방을 재미로 드나드는 사람같이 보인다.

 

세상은 종종 6하원칙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강한 것은 부러지고, 맑은 물에는 고기가 놀지 않으며, 미인에게 재물이 붙지 않는 것처럼.

 

사실 여기만큼 신앙생활이 활발한 곳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미신을 많이 믿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재판하는 날에는 빗질도 방 안쪽으로 해서는 안 되고, 밥을 비벼먹어서도 안 되며, 계란을 깨서도 안 된다. 라면을 먹으면 면발처럼 징역이 길어질지 모르니 이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네.

 

10월 13일

선고 공판

 

누군가가 장우의 흰 고무신을 깨끗이 닦아 문 앞에 고이 모셔놓았다. 출정을 기다리는 순간은 감우들에게도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 최후의 심판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특히 장우의 경우처럼 무거운 형량이 예상되는 사람의 출정 날엔 모두들 극도로 긴장하며 조심하게 된다.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모두들 침묵으로 일관한다.

 

교도관의 호송을 받으며 장우가 문을 나서는 데, 수형자들이 한마디씩 한다.

 

“집행유예만 받아도 대성공이라우.”

 

“징역 일 년만 받아도 괜찮을 텐데……”

 

서운한 것은 누구하나 무죄를 예측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장우는 갑자기 자신이 외로워졌다.

지난 3개월의 조각난 기억이 까치놀처럼 빛을 발하며 사라지려 했다.

 

잘 될 거라고 위로해 보지만 자신이 서지 않는다. 앞서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참담한 판결로 고개를 떨어뜨리고 더 큰 방, 교도소로 가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달과 별은 하나님 것이고 베개는 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장우는 베개에 성경을 얹어 놓고 통독도 시도했으나 그 하나님은 냉정하여 자기편이 아닌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원심력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앞으로는 구심력으로 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하려 했으나 그 하나님은 또한 무표정했다.

 

“지은 죄가 커서 그런가요?”

 

장우는 겁도 없이 물어보았다.

 

“네 죄는 매우 크도다.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네 마음은 무죄만 주장하고 있으니 아직도 회개하지 않는구나.”

 

그 하나님은 꾸짖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죄를 지었는지 딱 부러지게 말씀해주세요.”

 

싸움을 걸어보기도 했다.

 

“그건 사람의 생각이고 내 생각은 다르다. 정말 죄가 없느냐?”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이런 식이니, 도통 대화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오늘 장우는 출정합니다. 알아서 하세요.”

 

방문을 나선 장우는 닭장차에 호송되어 법원에 도착했다.

 

수갑 찬 손을 앞으로 하고 법정에 섰다.

긴장을 풀기 위해 엊저녁에 읽었던 성경 구절을 떠올렸다.

 

-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

 

그래서 불평을 유보하고, 피고석에 앉아서 판결문을 청취할 준비에 들어갔다. 초조감의 실체를 이때만큼 뼛속 깊이 느껴본 적이 없었다. 법대에 앉아 있는 세 판사의 얼굴이 염라대왕 형제처럼 보였다.

 

재판장이 마이크를 앞으로 잡아당긴다.

장우는 움찔거렸다. 가슴의 무게를 재어보니 두 근과 세 근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다.

침묵이 가장 무섭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

 

“피고 장우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형은 유예, 추징금 47억원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피고 SH해운에게 추징금 47억원을 선고합니다.”

 

‘억!’ 하는 절망 대신에, 장우의 귀에는 ‘집행유예’라는 단어가 구세주로 들렸다.

가슴이 가라앉았다. 족쇄에서 풀려나는 것만으로도 족하기 때문이다.

 

보름 전 결심공판에서 검사는 장우에게 7년 징역과 3억 벌금을 구형했었다. 이 형량은 언젠가 한 수형자가 장난삼아 예측한 수치와 일치해서 예감이 좋지 않았던 터였다.

 

자유가 주어지면 돈도 명예도, 심지어 목숨도 쓰레기로 보이는 것일까.

두 피고의 추징금 합계 94억원이 무섭지 않다. 손목에 수갑이 풀리는 마당에 돈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세상의 색깔이 바뀌어졌는데.

 

재판이 끝난 후 출소를 위해 짐 꾸리러 감방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장우에게 몰려들었다.

 

“결과가 어떻게 됐어?”

 

방장은 장우를 위로할 언어와 가슴을 충분히 준비하고 있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외양간에 갇혀 있을 장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보이고 싶은 것이다.

 

장우는 차분하게 재판 결과를 발표했다.

형량을 듣고는 사람들이 놀라면서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집행유예는 5년이 최고한도래~

벌금형 유예는 무슨 뜻이람?

회사도 추징금을 물어야 해?

합계 추징금 94억원이 애 이름이야?

어쨌든 풀려났으니 축하합니다!

항소는 할 거죠?

 

쏟아놓는 말을 귀에 담아 두기에는 용량 초과다.

 

가족들에게 연락 좀 해달라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주는 자도 있다.

그래야지. 풀려나는 사람이 얼마나 부럽겠어.

 

 

 

출소

 

입었던 옷과 신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랜드하우스(큰집)를 나서는 장우.

여름옷이 스산한 가을바람에 약간 얇아 보인다.

 

“철문 열고 나오는 데 그렇게 오래 걸렸어요?”

 

여자는 세 시간을 큰집 정문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같이 온 여동생은 그까짓 옷과 신발은 던져버리면 되는데 뭐 땜에 꾸물거렸냐고 야단이다. 지난 3개월도 참았는데 3시간을 참기가 힘드냐고 장우가 반박해도 막무가내다.

 

“이건 어디까지나 오빠를 위한 인내심 투자에요. 생과부 언니 불쌍하지 않아요?”

 

여동생은 여자를 쳐다보다가, 한 박자 늦춘 후 장우를 쳐다보았다.

장우는 시치미는 이때 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룸메이트들에게 인사 좀 하느라……. 그리고 혼자 나오기가 미안해서…….”

 

말을 얼버무렸다.

 

“어지간히 정들었나 보군. 오빤 아직도 그 방의 편안함과 게으름을 잊지 못하는구려.”

 

“별 소리를~.”

 

여자와 대화할 시간을 여동생이 빼앗고 있는 형편이다.

장우는 오늘만큼은 얌전하기로 했다.

 

이때 여동생이 옆에 있는 자기 남편과 귓속말을 하고는 장우에게 다가왔다.

 

“늦게 나온 죄로 이거나 잡수유!”

 

졸지에 두부뭉치가 장우의 얼굴을 공격했다.

물컹한 두부가 입속으로 들어가다가 양 뺨으로 흘러나왔다. 반은 입에 물렸고, 반은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순백의 두부만큼 깨끗한 삶을 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녁은 일식집에서 신선한 생선을 먹어야 한다고 제부가 주장하자, 여동생이 자기 남편의 제안에 힘을 실었다.

 

“신혼 기분은 신선한 생선이 좋아요. 그리로 고!”

 

네 사람이 탄 차는 해운대로 향했다.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일식집은 깨끗했다. 장우는 테이블 밑의 홈 바닥에 내려놓는 두 다리가 무척 편하게 느껴졌다. 석 달 동안 방바닥에서 고통당한 다리에게 모처럼 휴식을 제공했다고 생각하니 빚 갚은 기분이다.

 

창문을 통하여 희미한 어둠을 뚫고 내려다보이는 바다.

활어처럼 팔딱거리는 청춘의 전성기를 보낸 바다.

저 바다에 얼마나 많은 자유가 있는가를 이 저녁 한꺼번에 느끼는 것 같다.

 

두 쌍이 마주 앉은 테이블에 생선이 깔리기 시작했다.

 

광어의 허연 살집이 맛깔나게 인상적이고, 참치의 붉은 뱃살이 여자의 부끄럼 같고, 대게의 버티고 있는 다리가 힘 있어 보였다. 두 마리의 도미는 더블베드에 누운 것처럼 얌전했다. 적당한 곡선으로 휘어진 새우는 성적 자극을 건드리는데…….

 

“연어에 젓가락이 먼저 가네요.”

 

돌잔치의 아기 손을 지켜보듯 여동생은 장우의 젓가락이 어디로 가는지 한참 보고 있었다. 장우는 연어의 생태에 감탄한 바 있었다.

 

“알을 낳기 위해 강 상류로 치고 올라가는 연어의 점프력이 대견스러워서.”

 

“제2의 신혼을 위해 그런 점프력이 필요하겠지요. ㅎㅎ”

 

“쓸데없는 소리. 항소해서 검찰과 싸우려면 근력을 키워 놓아야 한다구.”

 

“오빤 나와서도 재판 생각이유? 어쨌든 풀려났잖아. 오늘 저녁은 언니한테만 신경 쓰세요.”

 

“하긴, 네 언니 그동안 고생 많았었지.”

 

“알긴 아시는구먼!”

 

장우는 몇 초간 생각을 가다듬었다.

명예회복과 사회고발이 자신의 임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때 여동생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여자에게 웃음을 보인다.

 

“언니, 부끄럼 타는가 봐. 신랑한테 대화가 없어?”

 

오누이 간의 대화만 듣고 있는 여자에게 미안했던 걸까.

여자는 의견을 발표할 권한이라도 얻은 듯 입술을 열었다.

 

“우희준 변호사가 항소심에서도 변호인으로 선임되었음, 희망하고 있어요.”

 

“고맙긴 하지만 우변은 내 사건만큼은 안 돼. 아직은 미약해.”

 

장우가 말했다.

 

“그래도 집행유예를 받아냈잖아요.”

 

“내가 바랐던 건 무죄라구. 항소심 변호인 선임은 생각할 시간이 더 있으니까…….”

 

장우는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거액의 추징금을 붙이고도 집행유예로 판결한 재판부의 결정.

여자가 그 이유를 알려준다.

 

“재판부는 사건 내용이 하도 헷갈려, 피고인이 불구속 상태로 항소심에서 싸워보라는 의미라나요. 구속기간을 3개월 이상 연장하는 것도 무리였다고 변호사가 말하더군요.”

 

“그렇군.”

 

최고한도의 집행유예와 벌금형 유예를 선고한 이유를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

 

신선한 생선은 몸의 세포를 신선하게 해준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마음의 세포를 새롭게 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호텔방은 한 인간의 95일간 가정 공백을 정상으로 돌려놓기에는 너무 어색하다. 신혼 첫날밤보다 더 낯선 분위기가 지속된다. 일식집의 두 마리 도미처럼 나란히 누웠으나 손이 어디로 먼저 가야할지 방향을 모른다.

 

“서울 집으로 바로 올라가는 건데.”

 

장우는 후회가 되기도 했다.

호텔에서 폼을 잡아보겠다고 한 것은 착각이었다.

어색함이 자연스러움으로 바뀌려면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석 달이 그렇게 길었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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