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랜드 하우스

그랜드 하우스(III)

오선닥 2014. 4. 4. 09:25

구치소

구중궁궐

미로 찾기

 

성명 증발

번호가 대신

죄인이로소이다

 

 

 

 

  그랜드 하우스

제3회

  

구치소

 

경찰서에서 숙식한 지 열흘 만에 소위 말하는 ‘큰집’으로 옮겨졌다. 기소가 되었다는 뜻이다. 왜 열흘 만이냐고? 법적으로 유치장은 열흘이 상한이란다.

 

구덕산 북쪽 자락에 자리 잡은 소 외양간 같은 건물이 여러 채 줄지어 있는 게 부산구치소다. 주위의 산 능선을 따라 철조망이 휘감고, 철조망 바깥에 참호가 파져 있다. 안으로는 일반 울타리와 높고 두터운 담벼락이 보인다. 그 안으로 동작감지센서지대와 울타리가 있고, 다시 안으로 여러 분획된 담벼락이 있는데, 그 안에 들어서야 사동(舍棟)이 나타난다.

 

“구중궁궐이네!”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말할 것이다.

 

피고의 신분을 접수한 구치소는 말 그대로 ‘그랜드 하우스’임에 틀림없다. 건물을 분획하는 담벼락은 철문으로 된 통용문이 있고, 입구부터 수용자 방까지 7~8개 문에는 경비대가 보초를 서며 문을 여닫는다.

 

미로 같은 복도에다 철문이 겹겹으로 설치되어 있어 지도와 나침반이 없이는 어느 곳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구조다. 수형자는 열쇠꾸러미를 주워도 맞는 열쇠 찾느라고 헤매게 된다.

(2000년부터 대부분이 지문인식자동문과 감시카메라로 대체되었고, 설치된 문을 전부 지문인식기와 보안카드, 비밀번호로 열고 들어가곤 한다.)

 

구치소와 교도소가 다른 점은 전자는 미결수, 후자는 기결수가 숙식하는 곳.

재판이 끝나지 않은 장우는 당연히 미결수 신분에 속한다.

 

구치소에 들어서자 교도관이 항문검사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옷을 벗고, 모두 똥꼬 까!”

 

다섯 명씩 한 조가 되어 엉덩이가 까발려진다.

 

“오리걸음 시작!”

 

벗긴 뒤 오리걸음을 시키는 교도관은 머리를 낮추어 한 구멍 한 구멍 점검을 시작한다. 비닐에 싼 담배나 마약이 항문에 꽂혀 있다면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오리걸음을 끝내고는 똥색 옷을 입힌다.

 

장우의 수인번호는 4095.

 

이제부터 장우라는 이름은 사복(私服)과 함께 보자기에 싸여지고, 대신 수인복(囚人服)에 붙은 네 자리 숫자만 그의 존재를 대변할 뿐이다. 독립투사인 이육사는 수인번호가 264였다나.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은 이 땅의 해방과 독립을 가져온 투사였지만 장우의 존재는 어떻게 기록될 건가.

 

수인복으로 말하자면, 구치소는 똥색이고 교도소는 파란색이다. 미결수와 기결수의 구분이다. 그런데 구치소에도 가끔 파란색 옷이 보인다. 그것은 구치소에서도 아주 기본적인 일, 예컨대 취사장, 이발, 청소 등 수용자 업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결수는 법적으로 출역(出役)을 하지 못하니 형이 확정된 기결수 중에서 뽑아 일을 시키는 것이다.

 

긴 복도를 따라 인솔해 가던 교도관이 어느 방 앞에 멈추고는,

 

“4095번, 이 방으로!”

 

쇠문을 열고 장우를 밀어 넣는다.

 

세 평 남짓한 방에 여남은 명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재소자의 시선이 일제히 신참 입소자에게 쏠린다. 그것 때문인지 방안으로 들어서자 7월 중순의 화끈한 더위가 장우의 얼굴로 왈칵 몰려든다.

 

비쩍 마르고, 얼굴에 번개가 스친 듯 한쪽 뺨에 얕은 칼자국이 보이는 친구가 일어나 장우를 방 안쪽으로 데리고 간다.

 

자칭 방장(方丈)이라고 하면서,

 

“여기가 당신 자리요. 똥 냄새 때문에 고향에 온 느낌을 가질 거여.”

 

장우를 똥통 옆 자리에 앉히고는 신고를 시킨다.

관세법 위반으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걸려 입소했다는 소개를 받자, 젊은 재소자 한 명은 ‘통 크게 걸렸네!’ 하고 비웃듯 웃는다.

 

똥통으로 통하는 문은 투명비닐로 가려져 있다. 허튼 짓은 하지 말라고 투명하게 해뒀지만 며칠 전 어떤 교도소의 장기수 한 명이 화장실 쇠창살을 쇠톱으로 절단하고 도주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수용소의 방은 잡거실과 독방으로 나뉜다.

잡거실은 여러 명이 사는 방으로 3평 정도에 10명 정도를 집어넣어서 칼잠을 재운다.

(2000년대 이후 1인당 1평 이상을 인권조례에서 규정하고 있다)

 

독방은 체포될 당시부터 문제가 많아서 잡거실에 넣기 곤란한 죄수이거나 잡거실에서 사고를 친 죄수를 가둔다. 그러나 독방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다. 0.5평의 방에 쭈그려 앉아서 새우잠을 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인권조례 덕분에 독방도 1.5평정도로 넓어져 덩치가 커도 다리 쭉 펴고 누울 수 있다)

 

구치소는 덜하지만 교도소는 특징상 재소자들끼리 심각하게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가 빈번하여 독방에 가기 위해서 일부러 사고를 치기도 한다. 또 교도소에 두 명을 입감시킬 때는 극도로 주의한다. 싸우다 죽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 죄질은 1급 ~ 4급으로 나눈다. 4급은 죄질이 극히 흉악하고 감방에서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다.

 

“품위로 봐선 범털 대우를 받을 사람이 여기에 오다니…….”

 

높으신 분들은 교도소에 가면 범털이라며 대우를 받는다.

방장은 그런대로 사람을 알아보는 것일까.

장우는 허리를 굽혔다.

 

“부족하지만 잘 부탁합니다.”

 

특별히 부탁할 일도 없지만, 입소일로 서열이 정해지는 세계인지라 신참자로서 취할 자세는 이것뿐이다.

 

첫날 저녁밥이 들어온다.

반찬은 국과 김치와 단무지로 간단명료하다.

배식구로 들어오는 보리밥은 하루 정도는 거부감이 있겠지.

 

그러나 하루가 지나기 전에 혀는 까칠한 밥에 순치되고, 다꾸앙의 맛에 아양을 떨기 시작한다. 세상의 어떤 것도 자신을 배려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장우의 몸이 먼저 깨달아 가는 것 같다.

 

 

 

접견실

 

정식 재판이 시작되자 러시아 선주는 점점 다급해졌다.

 

공동운항은 고사하고 선박운항을 협의해야 할 파트너의 수족이 묶여 있으니 당황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SH해운이 파나마 유령회사와 결탁하고 중고선을 매입하여 관세를 사위(詐僞)로 포탈했다고 주장하는 한국 당국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드디어 러시아 선주는 한국의 관계기관에 송부할 공문을 작성했다.

 

관계자 제위에게,

 

러시아 선주인 폐사는 한국대리점인 (주)SH해운과 선박용선을 통한 공동운항을 체결한 것일 뿐, 부크울리스호와 관련하여 선박매매 사실이 전혀 없음을 알립니다.

 

따라서 한국대리점을 중고선 매입자로 간주하여 대한민국법을 적용하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으며, 이에 장우 대표이사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증명합니다. 만약 선박매매 사실이 밝혀질 때는 폐사가 전적으로 책임질 것을 약속합니다.

 

러시아 극동해운

대표이사 니콜라이 카르펜코

 

 

여름이 익어가는 무더운 날에 구속된 파트너 장을 생각하면 본사나 뉴욕 회사로서는 기도 안 찰 노릇이다. 장우 사장 덕분에 장밋빛 사업을 구상하여 마구 전진할 즈음에 계획이 꼬여버렸으니 말이다.

 

장우는 선주에게 보낼 메시지를 수기로 썼다.

 

“계획한 공동운항은 일단 중지하고 예전 벙법으로 영업해주세요.”

 

메시지는 여자를 통해 회사에 전달됐고, 회사는 선주에게 팩스로 보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선박은 예전처럼 쉬지 않고 한국의 항구로 들어온다.

 

매일 한번 허용되는 5분의 면회는 하루 1440분을 대표하는 금싸라기 같은 시간이다. 짧은 순간에 인간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감정을 표현하는지 지켜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시간을 넘기면 다음 면회자가 앞 사람을 제치고 면회창구를 점령한다.

 

이 짧은 순간을 위해 여자는 서울에서 비행기로 내려왔다가 올라간다. 항공사는 사연도 모르고 충실한 고객에게 표창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처음 얼마간은 매일, 다음은 이틀, 그리고 사흘에 한번 다녀갔다. 비용부담은 물론, 몸이 말이 아니고, 고3의 딸도 걱정이다.

 

“엄마, 내 걱정 말고 아빠만 신경 쓰세요.”

 

동요하지 않는 딸의 이야기를 여자는 전해주었다. 이런 기특함은 아빠의 피를 물려받았나.

고1의 아들은 아버지가 부재중일 때 자신이 가장의 몫을 해야 하므로 ‘체력은 가정의 힘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바스켓볼 하기에 땀 흘리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평소 아버지의 소신에 호응한다는 뜻인가.

 

여자가 면회 오지 않을 때는 5분의 시간은 다른 사람에게 귀중하게 할애된다.

회사직원, 친척, 친구, 거래처……

여자는 면회신청을 접수하여 조율하는 지혜를 보인다.

 

거액의 외상이 밀린 술집의 마담이 어떤 루트를 통해 알았는지 쪽지를 보내왔다.

<외상은 나중에 갚아도 좋으니 사장님 건강 유의하세요>

이런 쪽지를 받아서 전해주는 친구 녀석의 두골이 제 자리에 붙어 있는지 궁금하다.

 

변호인접견과 특별면회는 수감자에게는 특식과도 같은 것이다.

 

변호사는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다가도,

 

“특가법 위반이라 검찰의 주장이 아주 끈질깁니다. 물론 무죄로 밀고 나가겠습니다만…….”

 

꼭 말미에 가서는 피할 구멍을 열어 놓는다.

장우는 열이 받쳤지만 말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밀수품은 돌려주고 사람만 묶어두는 법은 없지요. 변호사님은 이 논리를 펴나가세요.”

 

“검찰은 계약서를 증거로 들이대니 더 철저한 대응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선 사장님 건강부터 챙기세요.”

 

아니, 엉뚱한 걱정.

세 끼 따뜻한 밥 먹어 살이 찔 정도니, 건강 걱정일랑 접고 한 몸 빼내는 데 집중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변호사도 돈 받고 몽니를 부릴 수 있으니까.

 

입소 사흘 만에 특별면회를 신청했다.

중요한 서류는 대표이사의 서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업무의 중요성을 이해해주는 구치소의 배려가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를 느끼게 한다.

 

30분이라는 특별한 시간이 주어졌다.

여자가 옆에 앉아 향내를 풍겨줘서 좋았고, 윤 전무가 회사의 미주알과 고주알도 보여줘서 좋았다. 부산항에 매일 배가 들어와 회사가 너무 바쁘다는 소식은 장우를 너무 기쁘게 만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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