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랜드 하우스

그랜드 하우스(II)

오선닥 2014. 3. 26. 14:40

포텔

무료 숙식제공

국영호텔

 

닭장차

이동호텔

안에는 닭은 없고

사람만~

 

 

 

  

그랜드 하우스

제2회

   

유치장

 

유치장이라는 말은 초보적이고 유치한 표현이다. 철장 손님들은 이곳을 포텔(Police Hotel)이라고 한다. 모텔이나 오피스텔을 부르듯 아주 자연스럽게 발음한다. 국영호텔을 품위 있게 불러줘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늦은 저녁이지만 첫날이라 한 차례 면회가 허락됐다.

가까운 곳에 사는 친척 아저씨가 찾아와서 면회박스의 창살을 잡았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인데……, 이게 뭐람?”

 

아저씨는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장우는 싱긋이 웃었다.

 

“아저씨, 염려 마세요. 잠시 조사받고 나갈 겁니다.”

 

그러곤, ‘저는 법이 있어야 철장을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뻔했다. 법의 작동을 막는 브레이크를 누군가 밟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면회 때 받아뒀던 간편복으로 갈아입었다. 세관 조사받는 이틀 동안 입고 있었던 양복은 구길 대로 다 구겨졌다. 구겨진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자존심과 체면도 구겨져 어떤 다리미로도 펼 수 없는 상태다.

 

“장우 피의자는 내일 검찰 조사가 있겠습니다.”

 

순경은 ‘사장’이라는 단어를 떼어버리고 피의자 호칭으로 기를 팍 꺾어 놓는다. 검찰조사가 끝난 후에는 피고로 승격하겠지.

 

국가가 먹여주는 장소이니 국가의 명령을 따라야 하고, 어떠한 시비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암시하는 것 같기만 하다.

 

포텔의 밤은 훤하다. 방 감시를 위해 전등은 끄지 않은 상태다.

 

철창의 바깥과 안은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존경과 멸시, 승리자와 패배자가 창살을 두고 구분된다. 빛이 가려진 구석을 찾아 잠을 청하는 투숙객은 잠이 깨기 전까지는 행복하다. 세상은 잠을 자는 동안은 공평하고 아름답게 작동하는가 보다.

 

아침에는 눈물의 빵이 아니라 도시락이 들어왔다.

‘눈물의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

명언으로만 기억했던 말이 현실로 ‘팍’ 한 대 정신을 때려준다.

 

지인이 사식(私食)을 넣어줬지만, 먼저 들어온 투숙객에게 먹도록 놔두고 장우는 눈물의 도시락을 먹었다. 우선 먹어보자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먹을 만하다. 어릴 때의 보리밥보다 낫다. 4천원짜리 사식인들 별반 이보다 더 맛이 있었을라구.

 

서울에서 첫 비행기로 내려온 여자가 면회소의 구멍 뚫린 유리창 사이로 나긋하게 말한다.

 

“죄인만 이런 곳에 오는 것은 아니에요. 변호사를 선임해서 알아볼 테니 당신은 몸만 잘 챙기세요.”

 

지혜가 묻어나는 솔로몬의 잠언 같다.

목소리의 톤이 작다. 유리창 구멍을 왜 많이 뚫어놓지 않았는지 불만이 솟는다. 다발총으로 한번만 더 쏘아도 구멍이 우르르 뚫렸을 텐데.

 

장우는 본능적으로 회사 일이 걱정된다.

 

“급한 일이 있다면 윤 전무한테 메모 받아와요. 시급한 결재사항이라든지…….”

 

그리고 여자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필요하리라.

 

“이곳은 염려 말아요. 법적 문제이니 법으로 해결될 거요.”

 

의무감 같은 말을 유리 구멍으로 보냈다.

진작 새장에 갇힌 본인은 아무런 힘도 없으면서.

그래서 그런지 의미도 없는 미소가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 한다.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3분이지만 대화는 이 시간조차 다 채울 필요가 없다. 눈빛으로도 알 만큼 알아버린 것이다.

 

애들에게는 부득이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당부 말을 빌리기로 했다.

 

“이 사실을 애들에겐 알리지 말아요.”

 

소용이 없는 줄 알면서도 당부해 놓았다. 여자는 ‘알아서 할 테니 자기 영역에 대해서는 신경을 접어라’는 눈치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고3 어머니는 대통령도 못 건드린다고 했잖은가.

 

면회자가 떠난 후 철망을 친 쓰레기차가 모시러 왔다.

닭장차.

 

 

 

검찰청

 

오전부터 검찰청 조사가 시작된다.

단체로 호송되어 검찰청에 출근하는 형국이다. 닭장 손님들은 대기실에서 조사 순서를 기다린다. 각자는 범죄유형별로 배정되어 조사를 받는다.

 

담당검사는 땅딸한 체구로 이 바닥에서 출세를 자신하는 유형으로 보인다. 적어도 장우의 사건은 자신의 승진에 결정적 보탬이 될 거라고 믿는 것 같다. 대어는 갈망하는 자에게만 낚인다고 강의하려는 눈빛 ― 찬란하다.

 

“크게 일을 저질렀는데, 있는 그대로 털어놓으세요. 그게 빨리 끝내는 길입니다. 저쪽 수사관 의자에 앉으세요.”

 

분위기 제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담당검사가 모를 리 없다.

 

수사관은 검사의 눈빛 지시를 받고 조서를 만들기 시작한다. 세관 조사과에서 작성되어 올라온 서류를 보며 전문기법으로 질문을 한다.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타이핑 손을 멈췄다가 상대를 빤히 쳐다보고, 약간의 쉼표를 찍은 다음 질문에 들어가는 것도 전문적인 수법에 속한다.

 

위협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옆의 한가한 수사관이 일어나 피의자의 의자를 발로 힘껏 찬다.

 

“여기가 커피숍인 줄 알아? 이 양반, 옆에서 보자 하니 안 되겠구먼.”

 

의자가 휘청했으나 장우의 엉덩이는 잘 붙어 있다.

 

협박 도우미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덩치에서도 압권이다. 날 선 반말이 포르테로 거칠게 올라간다. 이만하면 없던 것도 거짓말로 불어야 한다. 조사실에 이런 타입 한두 명 박아둘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검찰조사 때 바지에 오줌을 쌀 뻔했다는 어떤 여성 피의자의 TV고백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수사관은 힘을 얻었는지 세차게 몰아붙인다.

 

“중고선 불법반입, 여기에 서류가 있잖습니까? 이건 어마어마한 밀수라고요. 탈탈 털어 놓으세요.”

 

수사관은 책상 위에 있는 용선계약서를 높이 쳐들었다. 장우의 죄가 크다는 것을 강조하는 모션이다. 비록 선령이 30년 이상 되었지만 선박의 감정가격이 95억원이나 되었으니 그들에겐 이만한 실적의 행운은 없을 거라고 믿는 것 같다. 포대기로 죄를 덮어씌우기만 하면 특진이 약속되는 것처럼.

 

살벌한 분위기에서도 장우가 이성을 붙잡고 있는 증거는 다음 대목이다.

 

“부산항에 정박한 배는 풀어주세요. 불법으로 억류하면 정부에서 어마어마한 피해액을 보상해줘야 합니다.”

 

장우로선 정말 걱정돼서 한 말이다.

 

문제의 선박 부크울리스호는 열흘째 부산에 억류돼 있다. 검찰에서 밀수를 입증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정부는 용선료는 물론 항만체류비용 일체를 러시아 선주에게 보상해줘야 한다. 그래도 검찰은 자신만만해 하고 있다.

 

부산지방 신문에 대서특필로 인물이 떴다.

<모 선박회사 사장, 중고선 불법반입으로 구속되다>

 

그리고 저녁 9시 뉴스에 장우의 옆얼굴 모습이 나왔다. 영광굴비처럼 줄줄이 오랏줄에 묶여가는 사람들 속에 그의 모습이 잠시 비쳤다. 한 친구가 이를 보고 친절하게 서울의 여자에게 알려줬다.

 

그녀의 반응은 역시나 침착했고, 별일 아니므로 잘 수습될 거라는 대답이었다.

두 전직 대통령이 수인복으로 엮여가는 판에 일개 선박회사 사장은 부끄러울 게 없다는 뜻인가.

 

어쨌든 장우는 하루아침에 거물이 된 셈이다.

큰물에 놀 사람은 뭔가 다르다. 손목이 아니라 몸체가 묶인 점도 크게 놀았다는 증거.

특종이 어떻게 전개되려나.

 

경찰서 유치장과 검찰청 조사실을 오가며 매일 조사가 진행된다.

조서는 검찰이 의도했던 대로 꾸며지고, 죄는 눈덩이처럼 크게 뭉쳐졌다. 없던 죄도 똘똘 말아서 만들면 훌륭한 작품이 된다.

 

다행스럽게도 배는 입항 열하루 만에 풀려났다. 장물이 풀렸으니 사람도 곧 풀려나겠구나 하고 기대해보지만 대어는 그물이 너무 촘촘해서인지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다.

 

철장 안에는 단기 투숙객과 장기 투숙객이 있다.

교통위반으로 하룻밤 단기 투숙한 청년은 아침에 철문을 나서면서 괜히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이것도 인간미로 표현해야 하나.

 

맨 끝 철장은 이틀 동안 비어 있다가 오늘 여성 손님 한 분을 맞았다. 아가씨 손님이다. 얼굴이 반반하고 몸체가 딴딴한데 구태여 이런 곳에 들어와야 하나.

 

“쟤 넘 빵빵해. 팬츠 텐트 치게 만드네!”

 

장기 투숙객이 한마디 했다.

 

창살 너머로 여자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보인다. 부채꼴 방 배치는 수감자를 효율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설계한 것이겠지만 방들끼리 서로를 마주보는 눈요기의 재미도 있다.

 

별(전과)이 몇 개 붙은 룸메이트의 설명에 의하면(얼마 전 신문에 났다면서), 아가씨는 은행고객 돈 2억을 챙겨 애인과 줄행랑쳤다가 일주일 만에 붙잡혔다. 그런데 투숙 사흘 만에 그녀는 풀려났다. 훔친 돈을 다 갚고 고객의 선처로 형이 중지된 것이다.

 

오늘은 서울 여자가 윤 전무를 대동해 면회를 신청했군.

윤 전무의 손에는 큰 가방이 들려져 있다. 그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려는 전무의 모습이 너무 어색해 장우는 웃지 않을 수 없다

.

“윤 전무, 뭐 하는 거요? 여긴 회사가 아니라구. 그냥 말로 해요.”

 

“운임 수금과 선박수리 건이 하도 많아서요. 사장님.”

 

사장님 호칭, 참으로 오랜만이다.

 

“웬만하면 임원회의에서 결정하고 결과만 알려줘요.”

 

여우에게 호리병에 든 음식을 먹으라 하면 어쩌나.

그래도 착하고 충실한 임원이다.

 

오늘은 특별히 10분의 면회시간이 허용됐으나 3분면회보다 더 짧은 것 같다.

그동안 외부 소식에 굶주려 왔다는 뜻일까.

 

여자가 면회를 마무리하려 한다.

 

“변호사를 선임했어요. 미국에서 해운을 전공한 우희준 변호사라네요. 잘할 거라고 믿으니 조금만 참아요.”

 

그렇지. 유명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해서 해운을 전공했다 하니 한 사람 빼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겠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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