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랜드 하우스

그랜드 하우스(I)

오선닥 2014. 3. 15. 15:47

1995년 여름은

참으로 유별난 계절

 

장우(張宇)는

큰집(Grand House)에서 여름을 났다

 

이름 덕이라 하면

약 오를 일?

 

 

 

 

그랜드 하우스

제1회

 

 

호사다마

 

장우(張宇)는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이름을 우(宇)로 지었는데, 집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지은 후 할아버지는 아주 흐뭇해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성(姓)을 잘 타고나서 장우(張宇)는 큰집이라는 뜻도 되니 앞으로 떡잎이 크게 될 사람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바람 대로 손자는 커서 한미합작회사를 설립했고, 사업은 1년 반 만에 크게 번창했다. 누가 봐도 이름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짧은 기간 동안 회사가 활발하게 돌아가자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부산 바닥에서는 마피아 혹은 야쿠자 돈이 들어온 것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산항에 입항하는 배의 척수가 두 번째로 많은 회사가 되었으니까.

 

1995년 6월 30일

이때면 여름이 시작할 무렵 아닌가.

 

이른 오후.

서울 테헤란로 사무실에 두 낯선 사람이 들이닥쳤다.

들어서자마자 신분증을 코밑에 들이대고,

 

“부산세관 조사과에서 왔습니다. 고발이 들어왔네요.”

 

상대방의 반응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책상 위 서류함과 서랍을 뒤지기 시작.

 

천리 길을 왔으면 커피 한잔 할 만한데 서랍과 캐비닛을 뒤지며 쥐잡기에 바쁘다. 난데없는 상황에 직원들은 동공이 두 배나 커져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다. 점퍼차림의 두 남성을 보고 여직원들은 어깨까지 떨기 시작한다.

 

작달막한 점퍼가 서류를 뒤집으며 사람도 보지 않고 한마디 던진다.

 

“중고선을 들여오려면 신고를 하셔야죠.”

 

선임자인 모양이다.

그리고 함께 온 부하 조사관이 거든다.

 

“어제 부산항에 입항한 부크울리스호는 매입한 거죠? 서류를 보면 용선으로 위장한 것 같은데 결국 밝혀질 겁니다.”

 

장우는 그들이 서울까지 온 이유를 대충 짐작할 것 같다.

 

다분히 위협적인 분위기는 대어를 낚았다는 자신감이―좀 과장하자면―가죽점퍼를 찢고 나올 지경이다.

 

보급품 선적을 위하여 잠시 부산항에 기항한 러시아 선박 부크울리스호는 파나마의 오션리프사와 한국의 SH해운 간에 체결한 공동운항계약에 의해서 운항되는 선박이다. 북태평양의 한국 명태 어획물을 적재하러 가는 도중 선식 및 선박부품을 공급 받고자 부산에 기항한 것이다.

 

“공동운항으로 위장했군요. 이건 명백한 중고선 밀숩니다.”

 

공동운항계약서를 집어든 젊은 점퍼는 해운에 대해서 조금 아는 듯하다.

전직이 선박회사 직원 아니면, 해양계 학교를 나왔는지도.

 

밀수라는 말에 어처구니없어 장우는 오기가 생겼다.

 

“모든 서류는 책상에 있으니 보든지 가져가든지 하세요.”

 

구린 데가 없을 때는 사람이 담대해지는 법이다.

 

대리점계약서, 용선계약서, 공동운항계약서 등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오히려 챙겨주었다. 고발인이 누군지, 고발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공동운항계약 사실을 알았다는 점은 귀신의 능력 수준이다.

 

그럼 공동운항(Agreement of Joint Operation)이란 무엇인가?

전적으로 장우 사장이 개발한 아이디어다.

계약서 내용의 요지.

 

북태평양 어획물 운반에서 파나마의 오션리프사(실제 러시아 선주)와 한국의 SH해운 간에 체결한 계약으로, 운임수입으로부터 선박의 임차료(H/B: 월 1입방피트당 45센트 = 월 10만 달러)와 운항비(연료비, 항비, 하역비 등)를 합친 총비용을 뺀 금액을 선주(오션리프사)와 대리점(SH해운)이 90:10으로 나누어 갖는다. 또한 대리점은 화물주선 수수료로서 운임의 5%를 취한다.

 

그럼 공동운항의 결과는,

 

공동운항의 목적을 위해 뉴욕 회사에서는 제3국에 편의운항회사 오션리프사를 설립했다. 일반 용선계약과 다른 점은 고정비용(H/B: 하이어베이스)을 낮추어 대리점이 약간 유리하도록 합의한 점이 주요 포인트다. 결과적으로 SH해운은 한국 수산회사의 어획물을 주선함으로써 특별한 리스크 없이 매항차 운임의 5~15%를 안정적으로 취할 수 있는 셈이다.

 

조사관은 챙길 만한 것은 챙겼다는 듯 의기양양하다.

 

“러시아 선주 주소와 선박 리스트 좀 주시겠습니까?”

 

“러시아어로 돼 있는 거 있잖아요. 영어로 된 것도 있고요.”

 

“배들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큰 건수를 건졌다는 듯 그들은 서류를 박스에 넣었다.

그리고 말을 잇는다.

 

“며칠내 사장님과 한 번 더 만나야겠습니다. 확인할 것도 있고요……. 혹시 외국출장 계획은 없으시죠?”

 

“염려마세요. 꿈쩍도 하지 않고 협조하겠습니다.”

 

유의미한 미소를 짓는 그들은 손에 넣지 못한 것이 있다. 중고선 선박매매계약서다. 배지도 않은 아이가 나올 리 없지만,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압수수색을 마무리했다.

 

차 한 잔 마시지 않고 사무실을 떠나는 그들.

그래도 푸짐한 서류 속에 무언가 죄목에 합당한 꼬투리가 들어있을 거라고 믿는지 은은한 미소까지 띄웠다.

 

사흘 후 윤 전무와 주 부장, 부산 사무소장이 부산세관에 불려갔다. 약식 조사를 받았다. 회사 대표를 조사하기 전에 임직원을 먼저 부르는 게 수사의 기본원칙이다. 물고기를 잡을 때 그물을 변두리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듯.

 

며칠 후 아침, 사무실에서 서류를 결재하고 있는 중 전화가 따르릉.

 

“사장님께서 부산에 좀 내려와 주셔야겠습니다. 보충조사가 있고 해서요. 내일 오후 3시경 조사실에 도착하시면 좋겠습니다만…….”

 

조사계장의 전화였다.

털어도 먼지 안 날 텐데.

 

장우는 의기양양하게 부산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의자에 몸을 기대면서 미소를 지었다.

세상은 대충 훑어보아도 재미있구나. 자신과 같은 사람을 밀수꾼으로 몰다니. 그것도 팔목시계도 아닌 산더미 같은 배라니?

 

 

 

철장

 

조사실에 도착한 장우에게 배도민 조사계장은 직접 뽑아온 커피를 건네준다.

 

“사장님, 우선 커피 한 잔 드시죠. 고발건이라 조사는 해야 하고……. 그렇다고 대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푸근한 마음으로 진술해 주세요. 가능하면 빨리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조사는 마라돈 식으로 진행되었고 진술은 타자기 손끝에서 빠르게 복사되었다.

장우는 묵묵히 진술만 하려고 했으나 워낙 궁금하여 질문을 참을 수 없다.

 

“고발 이유는 용선입니까, 매입입니까?”

 

“냉동운반선협회에서 중고선 매입이라고 주장합니다. 러시아 선박이 워낙 많이 입항하고 해서요.”

 

고발자의 신원은 대화중에 드러났다. 고발은 대체적으로 가까운 데서 나오는 법. 몰려오는 러시아 선박에 대해 운반선협회는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조사가 곧 끝난다는 것은 빈말이고, 누가 시켰는지 짬뽕이 배달되어 왔다. 벌써 저녁시간이다.

 

“여쭤보고 시켰어야 하는데……. 시장하실 텐데 드시죠.”

 

퇴근시간 이후라 사무실에는 다른 직원은 없다. 짬뽕의 힘으로 조사는 계속되었고, 어느새 저녁이 지나고 자정이 된다. 오랫동안 타이핑에 어깨가 쑤시는지 계장은 자주 몸을 비틀어댄다.

 

“저희도 피곤해서……. 이제 쉬시죠. 가까운 24시사우나에 가서 몸이나 좀 푸시자고요. 어차피 저희들도 집에 갈 순 없으니까요.”

 

일이 만만치 않음이 감지된다.

늦게까지 앉아 있었던 엉덩이는 마른 시루떡처럼 딴딴해졌고 허리는 쓰리다.

 

사우나는 세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세 사람은 사이좋은 이웃아저씨처럼 다정하게 탕에 들어갔다. 벌거벗은 몸을 서로 쳐다보면서 억지웃음을 짓는 중에 피로가 풀린다.

 

“사장님, 스팀사우나에 들어가실까요? 땀을 빼면 상쾌해질 겁니다.”

 

처음부터 네 마음대로잖아!

앞장서서 사우나실로 가는 계장의 사람 휘어잡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의 작은 몸에 달린 남성이 너무 커서 만류인력이 잘못 작용할까 위태로움을 느낄 정도인데, 계장은 그걸 자랑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은근한 웃음을 짓는 것은 또 뭐람. 서로를 다 보여줬으니 숨김없이 이야기하자는 무언의 강요인가.

 

몸을 닦고 나와서는 옆의 여관에 들어갔다.

 

“이런 일은 저희들도 힘듭니다. 밤샘한다고 월급 더 받는 것도 아니고요. 내일 일찍 마무리 짓고 상경하시면 되겠습니다.”

 

부하 조사관의 사무적인 위로의 말이었다.

 

이튿날 일찍이 세 사람은 세관으로 출근했다. 조사는 계속되었고, 필요한 서류는 왜 그리 많은지. 진술서는 프린트되어 손도장으로 마무리 확인됐다.

 

“조사는 끝났지만 일단 뒤 건물 2층으로 가셔서 대기하십시오. 연락이 갈 겁니다.”

 

서울로 보내지 않고 대기실로 보낸다?

대기실에는 제각기 얼굴을 한 대여섯 명이 앉아 있다. 밀수와 관련된 사람들은 숨기려는 본능 때문인지 이야기를 꺼려한다. 차라리 피로해진 몸이나 눕히자.

 

오후 7시 무렵 되어서야 장우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

건장한 젊은이 둘이 방 앞에 나타났다.

 

“구속입니다. 중부경찰서로 가시죠.”

 

정신을 가다듬기에는 의외의 상황이다.

장우는 일단 현실을 인식하고, 동행자에게 가족에게 전화 걸 시간을 허락 받았다.

 

“아무래도 오늘 서울로 올라가긴 힘들 것 같아. 지금 중부경찰서로 가고 있어요.”

 

눈치 빠른 여자는 놀라기보다는,

 

“짐작했던 대로군요. 서울에서도 알아볼게요.”

 

그녀의 반응은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파고다공원에서 가마니 깔고 손님의 미래를 꿰뚫어 보기에 적합한 사람이 자신과 같이 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뿐더러, 같은 침대 시트를 깔고 살았다는 게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철거덩!

 

철장문이 열리고 동행자는 그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죄명은 ‘밀수’일 텐데 무엇을 몰래 가져 왔는지 그의 수중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울 충무로 애견동물병원 거리를 지날 때 흔하게 보이던 철장이 내 집이 될 수도 있구나. 참 신기하고 묘한 기분이다.

 

경찰서 유치장에는 일곱 명이 이미 들어와 있다.

새로운 손님을 바라보는 눈은 미지근하기만 하다.

‘뭐 또 억울한 놈 잡혀왔군’ 식이다.

 

크기가 같은 철장 방이 부채꼴 모양으로 빙둘러 5개나 마련되어 있다. 손님이 많을 때는 이 숫자도 부족하다고 한다. 시장경기는 불황이어도 여기는 호황인가 보다.

 

톨스토이였던가. 사람이 거듭나려면 학교, 교회 그리고 감옥에 가보아야 한다고 말했었지. 이 조건에 장우는 무난히 합격한 사람이라는 점에 대문호의 통찰력은 범상치 않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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