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극지 탐사 항해

2.연구소 출근

오선닥 2019. 10. 18. 14:43


▲회의실


연구 과제물을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여
좋은 결과를 내야겠지요



2. 연구소 출근 

 

  올림픽 이듬해 1월 3일 연구소에 첫 출근하는 오선덕.
  출근길에 차를 몰고 가는데 마치 배를 몰고 가는 듯 울렁거림을 느낀다. 운전석 의자가 파일럿 의자(선장이나 도선사가 배를 조종할 때 앉는 의자)처럼 흔들거리는 착각도 직업병이라고 해야 하나.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는 마치 피칭(배의 세로 흔들림)하는 느낌. 가끔 차가 좌우로 흔들릴 때는 롤링(배의 가로 흔들림)을 타는 기분.


  연구소 직원에 대한 소개는 송 회장이 직접 한다.
  “내가 말한 오선덕 선장이오. 일 년 동안 연구소에서 함께 일하게 될 사람이오.”
  자기 회사 소속 선장을 소개하는 데 뿌듯함을 느끼는 송 회장이다. 전문 연구원만 있는 연구소에 선장을 합류시킨 것은 자신의 탁월한 판단이라고 만족해하는 것 같다.


  연구소는 선주협회 사무실의 바로 위층에 있다. 같은 층에 협회장의 사무실이 붙어 있어 연구의 진행 상황을 회장이 수시로 체크해 보기가 쉽다. 협회장이 중점으로 추진하는 사업인 만큼 연구소를 자신의 업무실과 같은 층에 둔 것은 효율성을 따질 때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서로의 인사가 끝나자 여성 연구원 한 명이 무릎을 세워 일어난다.
  “오 선장님, 커피 한 잔 끓여드릴게요.”
  사람의 첫인상은 참 이상하다.
  다방커피 500원(2020년이라면 5,000원)을 아낀다는 의미가 아니라, 처음 만난 사람에게 대뜸 커피를 권하는 여성의 대범한 아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붙박이 주방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면 장차 사무실 근무가 어색할 것 같아 그는 속으로 그녀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나중에 단체 소개가 있겠지만 그녀는 전계린 박사다.
  옆의 연구원들이 주방으로 들어가는 그녀에게 의미 있는 눈웃음을 보낸다. 설마 커피를 한 잔만 가져오지는 않겠지, 하는 눈치들이다. 기대에 부합되게 그녀는 커피 네 잔과 유자차 한 잔을 가져와서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유자차 한잔은 그녀의 것이다.
  팀장 박기용 박사가 먼저 커피잔을 받아들고,
  “고마워요.”
  감사 표시를 하자, 오선덕의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의 존재감이 위축돼버렸다.
  ‘연구실 분위기 괜찮네. 원래 연구실이라는 게 이런 거군. 선박보다 분위기가 좋은데.’
  오선덕은 신기한 느낌으로 커피 향을 즐겨나갔다.


  선원선박연구소는 선주협회가 운영하는 연구기관이다. 연구소엔 네 명의 연구원과 한 명의 원장이 있다. 모두 박사 출신이다. 태스크포스(T/F) 팀에는 원장을 제외한 연구원 네 명 모두 동원됐다. 여기에 오선덕 선장이 추가된 것이다.
  박용기관: 박기용 박사 52세 팀장
  해사법학: 이해출 박사 48세 연구원
  해운물류: 류승운 박사 42세 연구원
  전자기기: 전계린 박사 31세 여성 연구원
  선원선박: 오선덕 선장 40세 연구원

  연구원 중에 여성이 포함된 것이 특이하다. 전계린 박사는 여성 선원 문제에 대해 중점적으로 탐구할 것이다. 그녀는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선박의 자동화에 전자기기의 역할에 대한 연구도 하게 된다. 대통령 딸도 전자공학과 출신임을 늘 강조하곤 하는 여성이다.


  동양의 풍토에서 여성 선원 도입을 검토한다는 것은 혁명에 가까운 시도다. 연구 과제인 「선원 및 선박의 근대화」는 선주협회가 최우선 추진하는 중점사업으로 일 년 안에 끝내야 한다. 그러므로 연구원 모두 워밍업을 줄이고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운항사제도의 실현성에 대한 연구다.
  운항사란 자동화선박에서 선박의 운항, 기관의 운전 및 선박의 통신 등 선박운항에서 복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다기능 해기사를 말한다.
  운항사는 면허등급에 따라 1급에서 4급 운항사까지 구분하지만, 선박 내 직무에서 1등 운항사에서 3등 운항사까지로 구분한다.


  연구 단계에서는 복수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했으나 현실적으로 걸림돌이 많아 결국은 통신사를 없애고 항해사가 업무를 대신하도록 한 꼴이 되고 말았다. 세계적으로 인원 감축의 필연성 때문에 선박자동화의 강화를 통해 운항사 제도가 점진적으로 현실화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현재의 1급∼6급의 항해사·기관사 면허 제도를 유지해 나갈 것으로 생각된다.
  시대는 바뀌어 통신사들의 손때 묻은 모스 키는 역사의 유물로 남게 됐다. 유무선 모두가 직접 음성 전달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니 구태여 돈(‧) 쓰(-) 하는 식의 부호가 필요 없는 것이다.


  범세계적으로 선원직 기피 현상은 선박시설을 근대화시키고 선원제도를 합리화시켜야 하는 환경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운항사 제도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운항사를 채용하는 곳은 일부에 그치고 있다.
  50만톤짜리 큰 배를 선원 20명 정도로 어떻게 운항하는가는 기술적인 문제보다 고독의 문제라는 엉뚱한 장애요소가 거론되기도 했다. 야간 순찰은 어떻게 하며, 비상시 선수미 450미터에 달하는 배를 어떻게 왕래하며, 또 수리는 어떻게 할 건지… 온갖 문제점이 노출된 바 있다.


  현실감각을 살리면서 연구하자는 의견이 있어서, 정부와 상의한 끝에 대학 실습선을 일시적 연구소로 사용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 달은 연구소에서, 두 달은 실습선에서, 나머지 아홉 달은 연구소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으로 계획이 확정된 것이다.


▲여성 항해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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