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극지 탐사 항해

1. 올림픽 신드롬

오선닥 2019. 9. 27. 08:11

2010년경 한 여성 항해사가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며
남극과 북극을 탐사 항해하는
장면을 그린 소설



제 1장 연구소에서 일어난 일


 운항사제도의 기초가 되는
<선원선박 근대화> 연구를 위한
선원선박연구소가 있다 


1. 올림픽 신드롬
                              
  88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의 껍데기를 많이 변화시켰다. 고속도로와 대로의 명칭에 ‘88올림픽’이 붙는가 하면 공원과 주택단지 이름에 ‘올림픽공원’, ‘올림픽아파트’가 붙었고, 흥미롭게도 유흥업소 웨이터까지 ‘88보이’ 명찰이 붙곤 했다.
  서울 강남 유흥업소가 개발이익으로 배가 부른 졸부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할 무렵, 강북 무교동 일대에는 극장식레스토랑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고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웃 일본이 70년대에 벌써 성인영화와 스트립쇼가 성행했던 것에 비해, 한국에는 그런 아기자기한 문화가 없어 어른들이 못내 심심해하고 있을 때 올림픽을 만나 성인문화가 날개를 달아버렸다.

  쇼룸에는 젊은 여성이 나체로 팽이처럼 도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실팬츠만 걸친 여성을 데리고 한 청년이 마술을 공연하고 있는데 마치 여자의 몸에 붙어 있는 실오라기를 다 풀어준 느낌이다. 정부의 일시적인 해제라고 하지만 이들에게 다시 옷을 입히려면 한없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대한민국이 올림픽 신드롬에 빠져 있을 즈음 오선덕 선장은 2년 반 동안 탔던 배에서 하선한다. 회사의 명령이라곤 하지만 하선의 이유를 모른 채 그는 사물 가방을 대충 꾸려 들고 배의 현문 사다리를 내려왔다.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왜 하선하지?”
  미련스럽게 한 배에 2년 반을 승선하고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하선하면 알게 된다는 회사의 언급이 그에게는 여전히 궁금하기만 하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짧은 전보문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울산항 도착 즉시 선장 교대 예정. 인계인수 준비 바람」
  예견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전보문을 이미 세 번이나 읽었다.
  울산항 도착을 일주일 앞두고 날아온 전문을 통신장이 모스부호를 받아 타이핑해서 전해준 것을 그는 통신실 의자에 앉아 심호흡을 하며 읽고 또 읽었다. 아랍어로 써놓아도 이처럼 해석이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회사에서 귀띔이라도 해줬었을 거 아닙니까?”
  궁금해 하는 선장을 위로한답시고 통신장이 말했지만 남의 말같이 들렸다.
  전문을 자꾸 들여다보고 있는 선장이 딱해 보였던지 통신장은 자신이 되러 미안하다는 듯 안절부절 표정이 불안하다.
  “글쎄 말예, 아무리 한 배를 오래 탔더라도 이렇게 취급하면 안 되지. 장기 승선에 상을 줘도 모자랄 판인데….”
  오선덕은 통신장 들으라고 일부러 혼자서 역정을 부렸다.

  그는 2년 반 동안 승선한 배와 친할 대로 친해버렸다. 배 귀신이 되든 말뚝을 박든 오랫동안 철판을 딛고 살았다. 10개월의 의무 승선기간이 지났는데도 배를 안방으로 착각하고 오래 눌러 있었던 것은 분명 잘못 되었다.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흔히 보는 강에 띄워 놓은 보트하우스라면 모르지만 이런 외항선에 장기 승선은 기네스북감이다. 자신은 미련한 놈을 넘어 신기한 놈이다. 더 기가 찰 노릇은 오래 쓰기 위해 침대를 까발려 햇볕에 바싹 말려 놓았다는 점이다.
  결국 고삐에 끌려 회사로부터 강제 하선당한 꼴이다.
  혼자의 생각이지만 일류 선장이 하루아침에 삼류 선장 취급받다니?
  그의 온갖 심사가 교차한다.
  울산지사에 들렀을 때 지사장은 머뭇거리듯 말한다.
  “본사에 가시면 회사의 특명이 있을 겁니다. 저희로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혹시 있을 질문을 미리 막으려는 듯 지사장은 말을 줄였다.

  하선하는 짐은 무겁지 않다. 2년 반 만에 이사하는 육상의 이삿짐이라면 10톤 트럭 한 대 분은 되었을 테지만 그에겐 트렁크 두 개밖에 없다. 그동안 동거동락 하다가 함께 내리는 가방들이다. 


  12월의 하늘엔 뭉텅이 구름이 눈이나 비를 안고 금방 쏟아질 것만 같다. 구름조차 자꾸 걸음을 서두르는 느낌이다. 본선 업무 인계인수는 하룻밤 사이 해치워버렸다. 회사는 빨리 상경하라고 미리 항공권을 준비해 놓은 상태다.

  트렁크 두 개를 든 채 바로 서울 본사에 들어서는 오 선장.
  오후 7시인데도 송호걸 사장은 퇴근하지 않고 선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한국선주협회의 회장직도 겸하고 있다.
  사장은 단김에 용무를 말한다.
  “좀 궁금했지요? 내년 1월 1일부로 선원선박연구소에 파견근무하게 됐소. 급히 하선을 주선한 것도 이 때문이오. 너무 오해하지 말아요. 태스크포스 팀 신청서류에 본인 서명이 급히 필요해 부득이했소.”
  이렇게 해서 하선의 이유는 명확해졌고 오선덕의 육상근무가 시작된다.
 
  연구 활동 기간은 일 년이란다.
  선주협회는 신년 핵심 사업으로 ‘선원선박 근대화 연구’를 설정하여 일사천리로 밀고 나간다. 송호걸 회장은 아이디어가 번뜩이면 즉각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승선했는데 가족여행도 못하게 돼 미안하구려. 연구 마치면 휴가 실컷 줄 테니 그때 쉬어요.”
  송호걸의 인간적인 면이 보이는 부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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