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항 도착한 게
수율 90% 대박
아들 임해준과 동행한 임동박
운반선을 방문했는데?
제 9회
대박
동해항에 도착한 게는 팔팔하게 살았다. 죽은 게 10퍼센트는 나머지 건강한 게를 위해 희생했을 따름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세상에서 건강한 양화를 오염시키는 비실한 악화를 희생시키지 않을 수 없다. 비실한 게를 따로 떼어 놓는 이유다
대박
수율 90퍼센트는 대성공이다. 임동박 사장은 자신의 이름을 지어준 할아버지에게 감사했다. 이름에 ‘박’ 자를 넣은 것은 ‘대박’의 박‘으로 지금의 때를 예상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만추의 정염을 뿌리는 설악산 단풍처럼 게의 운반은 화려한 성공을 거뒀다. 죽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준 덕분이다. 잘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은 게에게도 적용되는구나. 임동박은 동해항까지 동행해준 아들 해준에게 이 불후의 명작 같은 사업을 자랑하고 싶었다.
“아들아, 오늘 아버지 기분 좋다.”
아들 임해준(26)은 중국 칭따오대학교의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 중에 있다가 이번에 일시 귀국하여 아버지와 동행했다. 수산물 무역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는 아들에게 실제 운반선을 보여줌으로써 논문 작성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충 설명을 들은 아들은 들떠 있는 아버지와는 달리 기분 좋게 호응하지는 않는다.
“어려운 사업이라는 인상이 드네요.”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 물음 대신 아버지는 조금 수긍하는 자세를 보였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아. 그렇지만 해볼 만한 사업이란다.”
“살아있는 것은 죽을 수도 있잖아요.”
“물론 리스크가 많지. 살리는 기술을 익혀야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는 자연의 변화나 경기의 흐름도 있잖습니까.”
“어려울수록 그만큼 보상이 크니, 그런 게 사업이란다.”
“아버지, 어쨌든 신중하셔야 합니다.”
누가 아버지고 아들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대화 내용이다. 이놈이 중국에 가서 대충 공부하는 줄 알았더니 제법 생각이 깊네. 암동박은 한편으로 흐뭇했다.
정박해 있는 배 주위를 돌아보면서 부자(父子)는 더 대화를 나눴다. 수산에 대해서 아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한 건 사실이다.
“앞으로 게 양식업의 가능성은 어떨까?”
까다로운 운반 대신 양식으로 한목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다같은 갑각류라도 새우 양식은 하지만 게 양식은 아직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럼 새우 양식은 어디서 하는데?”
아들은 새우 양식에 대해서 아는 대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태국 같은 나라에서 새우 양식을 한다. 좁은 논에 바닷물을 끌어올려 몰아 키우는데 자연산보다 200배 정도 많이 생산된다. 양식에서 새우는 제 몸무게의 두 배나 되는 어분 사료를 매일 먹는다. 활동지가 좁아 서로 상처를 입는다. 결국 항생제를 퍼부어 넣는데 식용에 좋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농지 오염과 항생제 과용의 환경 문제를 야기하므로 양식에는 검토가 필요한 거죠.”
아들은 양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넌 수산물 무역만 공부하는 줄 알았는데 양식 공부도 했구나.”
“논문을 쓰려면 주변 공부도 해야 하니까요. 양식은 환경과 식량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생산만 많이 하면 좋은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군.”
아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더 설명했다. 전 세계 인구의 반이 쌀을 주식으로 삼는 현실에서 논을 새우 양식에 사용하면 그만큼 식량 생산이 줄어들고, 양식을 위한 불법이민자를 값싸게 부리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곡식을 심으면 소작을 할 수 있지만 새우 먹기 위해 굶어 죽는 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
“아버지 쇠고기 많이 드시지 않으시죠?”
“그건 왜 물어?”
“쇠고기 1킬로그램을 위해 소가 곡물 10킬로그램을 소비하는데, 한 명이 고기를 먹으면 아홉 명이 굶주리게 된다는 사실 아시나요?”
“그럼 자연산 킹크랩은 먹어도 되겠네.”
아버지와 아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배에 올라갔다. 선장이 한눈에 판박이 아들이라고 말했을 때 임동박은 여니 아버지처럼 기분이 좋았다. 유전자를 지속시키기 위해 알에 정자를 뿌리는 수컷 게의 기분을 포함해서 모든 동물의 평범한 가치관인 부성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수족관을 관람하고 싶다고 아들이 말했을 때 안내는 쉬라이(24) 3항사가 맡았다. 두 남녀는 한국말과 중국말이 다 통해 대화가 순조로웠다.
반쯤 죽은 킹크랩 한 마리가 힘없이 수조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이자 3항사는 건져서 다른 수조로 옮겼다.
“우열반과 열등반이 섞여 있으면 안 됩니다. 같이 열등반이 돼 버리니까요.”
3항사가 비실이 게를 비실이 수조로 옮기기를 마쳤을 때 임해준은 포탄 장전을 마치고 포신을 돌리듯 그녀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입을 열었다.
“게의 세계도 부익부 빈익빈 사회로군요.”
“논문에 넣으실 건가요?”
쉬라이 3항사는 임해준이 수산물 무역관련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덧붙였다.
“어떤 때는 자고 있는지 죽었는지 구분이 잘 안 될 때도 있어요.”
“그때는 흔들어 보나요?”
“등의 색깔을 살펴보거나 살짝 건드려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죠.”
여러 수조를 둘러보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녔다. 천정에 낮게 설치된 철 구조물이 많아서 구부려야만 다닐 수 있는 곳이 많았다.
“머리 위 조심하세요. 모두가 쇳덩어리에요.”
3항사의 경고가 나오기 무섭게 턱 소리가 나더니 임해준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아니나 다를까 구조물에 받힌 것이다. 안전모를 쓰지 않았던 것이 불안했었는데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임해준을 선내 의무실로 데리고 가서 응급치료를 했다. 선내 의사 일은 3항사의 몫이기도 하다. 정성껏 치료한 결과 꿰매지 않고도 어느 정도 치료가 됐다. 한숨을 돌리자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해준씨 미안해요. 안전모를 드렸어야 하는데…….”
“이 정도는 다행입니다. 제가 워낙 천방지축이라서…….”
정성껏 치료하는 3항사의 치료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상선학교에서 간단한 봉합과 응급처치는 배운다고 하지만 수준이 보통이 아니다. 게의 수율이 높아 대박이라고 좋아했던 아버지는 아들의 이마에서 피를 보자 “호사다마가 따로 없구나” 하면서 많이 놀랐다.
게 하역작업은 이수동 소장에게 일임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중 임동박은 아들에게 치료 상태를 물었다.
“3항사가 치료를 잘하더냐?”
“손놀림이 능숙해서 의사 같더라구요. 한국말도 잘하고요.”
“외할아버지가 독립군이었단다. 한국말은 엄마한테서 배웠다더군.”
아들은 수긍하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여자 항해사는 첨 봤어요. 남자도 쉽지 않은 직업이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여자 항해사가 있긴 하지만.”
중국 여자들은 모택동 시대에도 남자처럼 사회 진출했고, 심지어 부두 크레인 운전기사도 여자가 많았다고 아버지는 설명했지만 임해준은 3항사의 대담성에 대한 경외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탁구선수 안재형은 중국 탁구선수와 결혼했다고 하던데요.”
서울88올림픽의 동메달리스트 안재형과 은메달리스트 자오즈민은 서울올림픽 다음해 결혼했다. 결혼 2년 만에 아들 안병훈을 낳았다. 갑자기 국제결혼 이야기가 왜 나오지? 아버지는 혹시나 생각이 들었다.
“해준아 너, 여3항해사가 마음에 드는가 보구나.”
“아주 똑똑해 보이더라고요.”
아들의 반응이 빠른 것은 특별한 눈으로 봤다는 뜻이다.
“아주 예뻐 보인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그렇기도 해요.”
아버지 눈에도 예뻐 보였으니까.
“그럼 넌 좋아하는 눈으로 봤다는 거야?”
“사랑엔 국경이 없다고 하잖아요?”
갈수록 태산이네. 이마에 피 터지더니 눈을 가려버렸나. 그래도 말은 점잖게 하는 아버지.
“러브 보트 이야기처럼 친구로 지내는 정도가 좋겠지?”
“지금 국제화시대 아녀요? 나라가 문제가 되나요. 저도 중국에서 공부하잖아요.”
공부와 사랑이 같냐는 질문 대신 부드럽게.
“그래도 사랑은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인즉, 좀…… 신중해야 하니까.”
“아부지, 이 정도로 하시죠. 운전에 신경 쓰셔야 하니까요.”
아버지나 아빠 대신 ‘아부지’라 부르니 갑자기 영덕 사투리가 생각나는 아버지 임동박. 모처럼 부자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니 두 사람은 기분이 좋았다. 분위기가 고비를 만난 것은 한계령을 막 넘어설 무렵이다. 아들이 갑자기 목소리 톤을 낮추었다.
“아부지, 하나만 딱 물어볼게요. 아부지 와이샤츠에서 게 냄새가 많이 난다고 엄마가 말씀하시던데요?”
뜸 들이고 말한 것이 겨우 이 질문이었어? 웃으며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아버지.
“야 아들아, 게 장사의 옷에 게 냄새가 나야지, 보신탕 냄새가 나야 하냐? 당연한 걸 가지고.”
“근데 문제는 영일관에 다녀오시면 냄새가 진하다는 겁니다. 아들이니까 이런 말씀 드리는데요, 혹시 집히는 게 있으세요?”
참 희한한 아들놈이네. 아니면 마누라가 눈치를 챘나. 전혀 아는 체를 하지 않던데. 아주 고단수로군. 마누라가 갑자기 두려워졌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은 첩보 수준이다. 부산 마리나호텔에서 일어난 오영애와의 그날 저녁이 가장 무겁게 머리에 떠올랐다.
“사업을 하다 보면 오해를 받을 수가 있지.”
“좌우지간 사업만 하세요. 무해통항의 국경선을 넘는 건 좋지만 지뢰 철조망은 조심하세요.”
“넌 별소릴 다하네.”
“아부지를 위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임해준은 덧붙였다.
“이 차 비싼 것 같은데 운전 조심하세요.”
임동박은 대답이 궁하던 차에 아들이 이쯤에서 대화를 멈춰줘 고마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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