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니들이 게맛을알어

니들이 게맛을 알어(제 8회)

오선닥 2015. 11. 17. 09:56

오호츠크해를 출항

한국 동해항으로 향함

선내에서 노래방?

그것도 재밌겠는데

 

 

 

 

제 8회

 

 

노래방

 

중식 후 쉬라이(24) 3항사는 1항사와 함께 수족관을 순찰했다. 산보 삼아 각 수족관을 둘러보자는 1항사의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호츠크해를 출항한 지 이틀이 지났으므로 게의 상태가 궁금하기도 하다.

 

“날씨가 좋아 게가 안정을 찾을 것 같습니다.”

 

잔잔한 바다가 기분 좋아 3항사가 말했다. 불시에 바다에서 건져 올리어져 흔들리는 배 안으로 들어왔으니 미물인들 불안하지 않겠는가. 게라는 놈도, 졸업 후 첫 해상생활을 시작한 그녀의 불안한 상태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려서 데려가야지. 우리가 할 일은 무조건 살리는 것. 게가 살면 용선주가 살고, 결국 선주가 사는 길이니까.”

 

1항사의 ‘살리는’ 논리였다.

 

사할린 남동쪽을 돌아 항해할 때는 마주치는 어선들이 많았다. 꽁치나 명태를 잡는 배들이었다. 게를 운반하기 전에는 본선이 여기 북양에서 잡히는 어획물을 중국이나 한국에 실어 나르는 데 종사했다고 1항사는 설명했다.

 

수족관에 손을 넣어 보니 손등이 차갑게 느껴졌다. 수온은 섭씨 0~10도에서 유지되는데 안전을 위해서 센서는 3~5도에 맞춰져 있다. 수온이 올라가면 게가 쇼크를 먹는다. 이제 3항사는 손등의 감각으로도 수온을 짐작할 만큼 익숙해졌다.

 

상태가 좋지 않은 게는 선원 식탁에 올리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그 수를 최소화시켜야 한다고 이수동(37) 감독은 말했었지. 그럼 비실이 게의 선별을 어떻게 하느냐는 3항사의 궁금증이다.

 

“색이 거무튀튀하면 안 좋은 것으로, 일단 움직이면 살아 있는 거니까.”

 

1항사는 게의 건강상태에 대해 감독으로부터 충분히 들었고, 러시아가 제공한 매뉴얼을 보관하고 있어서 운송 중 킹크랩 관리에 큰 어려움은 없다.

 

죽은 것은 빨리 건져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악간만 비실해도 옆의 녀석까지 전염되기 때문이다.

 

“저것 좀 보세요. 두 마리가 붙어 있어요. 혹시 죽은 거 아닐까요?”

 

한 수조에서 이상한 광경이 3항사의 눈에 띄었다. 1항사가 가까이 가서 보았다.

 

“그러네……. 혹시 사랑하고 있는 건가? 애무가 심하면 일시적으로 까무러칠 수도 있지.”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는데도 1항사는 쳐다보지는 않았다. 이런 표현쯤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는 표정일 뿐이다.

 

수조는 대체적으로 맑으나 흐려 보이는 곳이 몇 군데 있다. 게거품이 많이 떠 있는 곳은 죽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원인은 다양하다. 한 수조에 너무 많은 숫자가 있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70퍼센트 정도 넣는다.

 

“해수가 깨끗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3항사가 물었다.

 

“그래서 해수 정화장치와 자외선 살균기를 설치하는 거지.”

 

설명하는 도중 1항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3항사의 어깨를 치며 바로 앞의 게를 가리켰다.

 

“게도 열 받으면 거품 내는 거 알지?”

 

주위에 정말 흰 거품이 많다. 게는 환경이 맞지 않거나 위험을 느끼면 괴로워하거나 흥분하여 입에서 거품을 낸다. 일종의 스트레스 자각 증세다. 물을 주지 않고 오랫동안 밖에 내둔다거나 싸움을 시킨다거나 하면 영락없이 거품을 토해낸다.

 

‘게의 상태를 보고하라’

 

순찰 상황을 마치 CCTV로 지켜보고 있는 듯 서울 임동박 사장한테서 텔렉스가 들어왔다. 게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다. 사람의 생사보다 게의 생사가 더 중요하다는 느낌이 풍기는 전문이다. 리스크가 높은 생물 사업을 시작한 것은 임동박의 생애 중 가장 위험한 결정에 속한다. 성공하면 대박이요 실패하면 쪽박이다.

 

배로 운송되는 산(live) 화물은 많다. 동물과 식물을 다 포함한다. 소나 양 등 가축(livestock)의 운반선은 먹이가 적합하지 않거나 전염병이 나돌면 치명적이다. 아프리카 노예를 운반했던 노예무역선도 있었으니 당시 노예는 단지 화물에 불과했다.

 

항해 일수가 길어지자 게거품이 많아지는 수조가 생겨났다. 싸웠는지 다리가 뜯긴 것도 있다. 현재 수율은 95퍼센트 되는 것 같은데 도착항까지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최종 수요자까지 배달하는 순간에는 수율이 절반이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고 하지만.

 

토요일이다.

오후 시간

 

살 의욕을 상실한 킹크랩을 살아있는 상태로 생을 마감시키기 위해 네 사람이 회식으로 모였다. 육지에서 쉬는 날은 배에서도 쉬는 날이다. 물론 당직자는 제외된다.

 

그들은 이수동 감독 방에서 만났다. 화물 관리에 힘쓰는 1항사와 3항사를 격려하고, 탑승자의 건강을 담당하는 조리사를 위로하기 위해 감독이 마련한 자리이다. 다행인지 의도적인지 모르지만 선장과 기관장이 회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사이의 쓰가루해협을 통과하는 중이라 선장의 직접 지휘 의무로 참석하지 않은 이유가 될 수 있다.

 

킹크랩이 주 메뉴로 등장했다. 그렇다고 회식의 핑계로 싱싱한 게를 처분해서는 안 된다. 도난 방지를 위해 당직자들이 수시로 수족관 순찰을 실시하는 것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장난질을 염려해서이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수박서리나 닭서리에 익숙한 국민들이라서.

 

그저께 순찰을 돌면서 1항사는 팔팔한 킹크랩 한 마리를 건져내 조리사에게 선물로 주려다가 오히려 그녀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정직하지 못하게 뭐 하시는 거예요? 감시하라 했더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군요.”

 

이런 창피를 당하면서도 1항사가 조리사에게 계속 선의를 베푸는 것은, 그가 근본적으로 선하다든가, 아니면 치매나 건망증의 초기 단계로 봐야 하는 것으로 주장이 나뉘곤 한다. 3항사가 볼 때는 여자에 관대한 사람으로 믿고 싶은데도.

 

회식을 위해 킹크랩 두 마리를 희생시켰다. 드디어 나온 킹크랩은 녹인 버터와 레몬을 동반했고, 후라이 라이스가 뒤이었다. 네 사람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그런데 조리사가 마지막 남은 집게다리 하나를 발가서 1항사에게 주었다.

감동의 미소가 입술에 감도는 1항사.

 

“우리 이대로 좋아지면 안 돼요?”

 

감탄할 만한 말에 감사의 대답을 기다리는 순간인데 조리사의 입에서는 직사포가 작동했다.

 

“게딱지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지난번 우리 관계 설정은 완료됐잖아요. 착각은 자유라더니.”

 

게딱지는 게의 껍질에 붙어 있어 게를 보호한다. 일종의 공생관계다. 이런 의미라면 좋은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한데 분위기가 받쳐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1항사가 알고 있는 게의 상식만큼 조리사에게는 미치지 못했는지 공감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최근 1항사가 여3항사에게 너무 친절하게 대하는 것으로 조리사에게 비쳤다. 사실 1항사는 일부로 조리사에게 “3항사가 어리고 예쁘지 않니? 우리 배의 잔 다르크라니까.” 대놓고 칭찬하곤 했다. 조리사에게 보라는 듯 일종의 시위이기도 하다. 이럴 때 질투가 발동하지 않으면 여자라 할 수 없겠지. 조리사는 결국 한마디 나섰다.

 

“나, 바른말 좀 할 줄 아는데…… 3항사, 오해하지 마라. 듣고만 있어.”

 

뜸을 들이고 조리사는 1항사 쪽으로 검지를 세우고 말을 뱉었다.

 

“남자가 줏대가 있어야지, 어린 3항사한테 추파를 던져?”

 

갑작스런 큰소리에 돌아가던 시계가 멈춘 기분이다. 3항사가 놀랐고 1항사가 놀랐다. 그리고 이수동도 놀랐다. 더 놀란 것은 조리사 자신이었다. 내가 너무 나갔나? 이런 분위기 만들려는 건 아니었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엎질러져 버렸다. 암컷이 수컷의 구애를 받아주지 않는 게의 세상은 어떨까. 분위기가 게거품 되나?

 

조리사는 쏜살처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는다. 부드럽고 큐트한 3항사는 여전히 당황한 채 이 자리를 마련해준 용선주 감독을 쳐다보며 “좀 정리해주세요.” 애원하듯 기다리고 있다.

 

“나, 싸움 부치려고 이 자리 마련한 건 아니어요. 게판이 개판으로 바뀌었네요. 나, 웃을랍니다.”

 

이수동이 말하고 일부로 큰 소리로 웃었다. 3항사가 통역을 잘해줘서 다른 사람들이 따라 웃은 것은 다행이다.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하는 1항사와 조리사의 관계는 신참인 3항사가 풀 수 있는 방정식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만나 자연스럽게 싸우고 자연스럽게 웃는 관계로 진화하고 있었다. 개미 채 바퀴 도는 선내 환경에서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같이 보였다.

 

“나 이제 1항사님과 원수할 일 없어요. 우리 이대로 친구해요.”

 

한 템포 시간이 흐른 후 조리사는 덧붙여 말했다. 전봇대만 보면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는 개와 같은 습관적 행동은 안 할 것이라고 말했을 때 예화가 진해서 3항사의 얼굴이 적잖이 붉어졌다. 킹크랩은 스무 번 허물을 벗는다던데 1항사가 어떤 변신을 해도 조리사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 그들은 서로 다른 계절에 사는 철새 같아서 절대 통할 수 없는 사이일까.

 

“상대방 기분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자기가 쓸 리 없는 생리대를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듣고만 있던 이수동이 한마디 했다.

이해가 됐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기분을 전환하자는 뜻에서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에는 노래방 기기들이 설치돼 있다. 낮이라도 스커틀 창의 커튼을 내리고 불을 끄면 실내는 적절한 어둠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딱딱한 분위기는 부드럽게 반죽돼 가고 흥이 살아나기 마련이다.

 

이수동은 1항사와 조리사 두 사람을 나란히 세웠다.

 

“두 분 함께 사진을 찍겠습니다.”

 

그런데 조리사가 몸을 피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녀요, 난 불륜관계예요.”

 

모두들 의미를 몰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그녀는 3항사한테 살짝 말했다. “나, 기구를 쓰잖아.” 귀를 빌려준 3항사가 웃자 모두들 뜻도 모른 채 웃었고, 곧 노래 부르기에 들어갔다. 이때 조리사는 잠시 자리를 떠서 자기 방으로 갔는데, 애지중지하던 북한 술을 가져왔다. 룡성맥주와 평양소주로 옅은 폭탄주를 만들었다.

 

힘차게 노래 부르자, 분위기를 띄웠다.

 

3항사는 ‘처녀 뱃사공’을 불렀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몇 곡의 한국가요 중 하나에 속한다.

 

이수동은 평소 좋아하는 밥 딜런의 ‘블로윙 인 더 윈드'를 불렀다.

 

얼마나 먼 길을 헤매야 아이들은 어른이 되나

얼마나 먼 바다를 건너야 하얀 새는 쉴 수 있나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사람들은 자유를 얻나

오 친구여 묻지 마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저항시인이나 되는 것처럼 그는 감정을 넣었다. ‘아침이슬’도 그가 즐겨 부르는 곡에 속하니 그의 취향을 알 수 있다. 밥 딜런의 노래가 바다와 어울린다고 모두들 동의하자 네 사람은 잔을 마주 들었다. 킹크랩의 팔팔함을 위하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