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니들이 게맛을알어

니들이 게맛을 알어(제 10회)

오선닥 2015. 12. 7. 16:41

영일관에서

가족 킹크랩 파티

분위기 좋았다고

아들은 말한다

 

 

 

 

제 10회

 

 

가족

 

한일월드컵 4강을 달성한 한국은 만추의 아름다운 단풍으로 나라의 관광 이미지를 잔뜩 고양시켜 놓았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이 증가하는 중에 킹크랩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음이 확연히 느껴진다.

 

“수입해서 판매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먹어야지?”

 

임동박(52)은 가족들을 위해서 회식을 하기로 했다. 아들 해준(26)이 학업을 위해 중국으로 가기 전 함께 식사를 하고 싶은 것이다. 수입한 킹크랩을 가족들에게 먹인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영일관 오영애(36) 사장이 임 사장으로부터 가족 모임의 통보를 받고 많이 바빠졌다. 임동박 가족의 영일관 식사는 처음이라 정성을 다해야겠다는 부담감이 생겼다. 사모님이 자신과 남편 간의 러브 스토리를 알고 있는지 적잖은 압박이 되기도 한다. “왜 우리 집으로 모시려 하나?” 의도마저 궁금하기도.

 

임동박은 아들더러 어머니를 모시고 저녁 6시에 맞춰 오라고 해놓고는 자신은 동해항에서 보낸 게가 잘 도착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먼저 영일관으로 갔다. 오영애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게가 크고 싱싱해서 좋아요. 오빠가 직접 수입하시니까 그런가 봐요.”

 

영일관은 오늘 킹크랩 400킬로그램을 받아뒀다. 대형 수족관 6곳에 나눠 보관한다. 하역한 대부분의 게는 동해항 전문 수족관에 보관했다가 주문에 따라 공급되지만 영일관처럼 도착한 즉시 인수해 가는 곳도 있다.

 

“앞으로 요리하는 일만 남았으니 실력을 발휘해 봐요.”

 

임동박도 흐뭇함을 표시했다.

 

“오빠, 요즘 우리 집에 게딱지들이 많아요. 지방에서 올라온 애들이 많다니까.”

 

“게딱지는 좋은 거야. 게의 등딱지에 붙은 기생딱지는 서로 좋은 공생관계야. 잘해줘. 영일관의 보배들이 될 수 있으니까.”

 

“특히 게 철에 우르르 몰려드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나요?”

 

“게딱지 기생물이 많을수록 게는 크고 질이 좋은 거야. 영일관이 번성하려나 보다.”

 

“왕기생충들이니까 하는 얘기죠. 내 원.”

 

“오 사장 인심 좋은 줄 소문났나 봐.”

 

“어쨌든 애들이 불쌍하기도 해요. 시골에서 올라온 애들이 많고요.”

 

“모레 부산에서 한 무더기 손님 올라온다니까 훈련 잘 시켜둬요.”

 

한 무더기는 러시아 마피아를 말한다. 모레 네 명이 서울로 올라온다. 처음 수입하는 킹크랩의 상태가 어떤지 알아보겠다는 것이 이유지만 상경해서 폼을 잡아 보겠다는 뜻도 있다. 첫 거래치고는 거래대금을 깔끔하게 처리한 임 사장에게 감사 표시를 하겠다나. 서울에 올라오면 모든 경비는 자기들이 댈 테니 좋은 요리집이나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 그들이다.

 

 

임동박이 게가 들어있는 수족관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아들 해준이 엄마를 앞세워 영일관에 들어섰다. 오영애 사장은 능수능란하게 손님을 맞이한다.

 

“사모님, 어서 오십시오.”

 

따님은 왜 데리고 오지 않았냐고 묻고 싶었으나 오영애는 임 사장 가족에 대해 아는 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사모님은 귀부인 풍이 그대로 품겨 나왔다. 겉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한 것으로 그녀에게 느껴졌다. 아들 또한 아버지를 닮아 늠름한 기상이었다.

 

사모님 이혜숙(51)은 영일관에 일종의 호기심을 가지고 들어섰다. 남편이 어떤 여자와 썸싱의 관계에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임동박은 아내가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떼는 모습이 여성의 프로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아내에게 동업 현장인 영일관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이해를 구하고 싶었다.

 

딸 해연(23)이 친구들과 지방 역사 유적지 조사에 갔다가 늦게 오므로 가족 모임은 세 사람이 전망 좋은 방에서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해준은 아버지가 용선한 배로 가지고 온 킹크랩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아부지, 게맛이 좋은데요. 엄마한테 다리 하나 발가 드리세요.”

 

임동박은 아들이 말하는 대로 게를 발가서 아내에게 줬다. 그녀는 한 점 입에 넣고는 더 이상 먹지 않은 채 영일관 내부를 자꾸 두리번거려 보기만 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위치인데도 한강을 조망하는 대신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빛을 좇기라도 하듯 시선을 건물 구석구석으로 주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있는 아들은 예감했다.

 

“오늘 저녁 게맛은 엉망이 되겠구나.”

 

어머니는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사장이 어떤 여자인지 낱낱이 뜯어보려는 시선이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어머니를 이렇게 만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부부 사랑에는 아무런 틈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려는 아버지의 엉뚱하고도 과감한 마음인가.

 

오영애 사장은 가족의 식사 자리에 자주 나타나지 않았으나 예의상 한 번씩 들렀다.

 

“사모님, 게맛이 어떠세요? 사장님이 직접 수입하신 거라 맛있을 거예요.”

 

“요리를 잘하셔서 맛이 좋네요.”

 

이혜숙의 덤덤한 대답이었다.

 

“한 마리 더 갖다 드릴게요. 남으면 가져가셔도 되니까요.”

 

여사장은 역시 젊은 여자로구나. 그리고 건강하고. 이혜숙은 한눈에 느꼈다. 남편이 반할 만하구나. 아내의 시선이 오영애의 몸 아래위로 스캐닝하자 임동박은 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그 예리한 판단력으로 한마디 해줬으면 좋은데. 예를 들어 “뽕도 따고 임도 보고” 로 시작해서 “재미있게 사업하고 있네” 하고 말하면 마음이 편할 수 있으니까.

 

오 사장은 3킬로짜리 킹크랩 한 마리를 추가로 가져 왔다. 임동박이 살을 뽑아 아내에게 줬다. 그녀는 먹으려는 것을 멈추고 아들에게 건넸다.

 

“아들아 실컷 먹어라. 중국에 가서 공부하는데 얼마나 힘들겠어.”

 

게를 받아든 해준은 엄마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만한 대화를 찾았다.

 

“엄마 한강 좀 보세요. 유람선에서 촬영이 있는가 봐요.”

 

요즘 인기 프로 ‘선상 데이트’를 촬영하고 있는 모양이다. 학창 시절에 짜릿한 연애를 했다는 부모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기 때문에 옛날을 회상하면서 좋은 것만 떠올려 보시라는 뜻에서 말한 것이다.

 

임동박은 사랑의 작업을 거는 데 화끈했었다. 아내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낚아채 가다시피 결혼했다. 여자의 부모는 딸이 졸업해서 사회생활을 한 번은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해도 그런 건 결혼 후에도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웨딩을 감행했다. 물론 결혼 전의 말은 없던 것이 되고 말았는데, 모름지기 여자는 안방을 지키는 것만큼 아름다운 게 없다고 하면서.

 

저녁식사 모임을 영일관으로 택한 아버지의 전략이 탁월했다고 해준은 결론을 내렸다. 어려운 동업을 위해 남편이 불가피하게 여사장을 만나게 되는구나, 어머니가 이해하기에 이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어떤 일에도 분란을 피하는 재주가 있다. 침묵이 가장 유효한 무기임을 가족들에게 교훈해 오기도 했다. 침묵만으로 어려우면 시선의 움직임으로 신호를 주는데 이게 먹혀들어간다는 사실이다. 눈치 빠른 가족들이라 실패 확률이 적다. 수준이 맞으면 이런 것도 통하구나, 해준은 어느새 가족의 특이한 눈치 DNA를 발견했다. 아버지는 덩치에 비해 머리 회전이 팽이와 같다. 자신도 아버지를 닮아 머리가 좋았으면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해준은 잠시 바깥으로 나왔다. 나오기 전 부모님을 위해 포도주 한 잔씩 따라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두 분이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세요. 전화 한 통화 하고 올게요.”

 

동해항에 정박 중인 칭따오호에 전화했다. 배의 전화는 현문에 설치돼 있다. 현문에서 인터폰으로 각 선실로 전달이 가능하다. 용선주 회사라고 말하고 3항사를 부탁했다.

 

“잠시 기다리세요.”

 

간단한 영어로 말하고는 어디론가 급히 가는 당직선원의 숨소리가 느껴진다.

 

배에서는 선주나 용선주 전화는 우선적으로 받는다. 늦가을 7시 반은 어두운 시간이지만 당직 선원은 용선주 전화에는 친절하다. 그러나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수화기의 음성이 들린 것은 2분 후쯤이다.

 

“쉬라이 3항사입니다.”

 

전화한 사람이 임해준이라는 걸 알고는 늦게 전화 받아서 죄송하다고 했다. 선교에서 지방항만청과 무선 통화중이었다고 한다. 저기압 접근중이라 선내 안전에 만전을 기하라는 기상통보였다는 것이다.

 

본선은 내일 하루 동안 선용품 보급을 받은 후 모래 출항한다.

천천히 숨을 고르는 해준.

 

"지난번 방선했을 때 친절한 안내 감사합니다. 싣고 온 킹크랩을 먹었는데 맛이 좋았어요. 다음에 입항하면 함께 먹도록 해요. 그럼 안전항해 하세요.“

 

해준은 아버지가 할 말을 한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본선 운항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감독을 통해서 선장님께 전달될 것입니다.” 말까지 한 것은 더욱 오버했다. 회사 직원으로 착각할 것 같기도. 사랑의 감정은 이렇게 과감한 실수를 저지르는구나. 붉어지려는 얼굴을 문지르고 있는데 상대방의 목소리는 너무 잔잔하다.

 

“해준씨 고맙습니다. 논문 준비 잘하세요.”

고마웠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굿 나잇!”

 

중국어와 영어가 섞일 때 이때만큼 아름답게 느껴진 적이 없다.

 

해준이 전화하고 돌아왔을 때 방의 분위기는 훨씬 밝아졌다. 조명은 같은데 밝게 느껴지는 것은 부모님들의 뺨에 옅은 홍조가 깔렸기 때문이다. 해준의 자리에 여인이 앉아 있는데? 오영애 사장. 그녀는 두 부부에게 열심히 포도주를 따르고 있었다. 가끔씩 웃는 소리. 세 사람이 함께 웃을 때는 오케스트라 같았다. 지휘자는 틀림없이 아버지 임동박이나 단장은 어머니 이혜숙임이 분명하다.

 

“전화 한 통화만 더 하고 올게요.”

 

분위기를 깨기 싫어 해준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전화할 데가 없음에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