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는
활게 운반선으로 개조돼
오호츠크해를 향해 출항
팔팔한 활게를
가져와야 할 텐데…
제 6회
게 운반선
똑딱 똑딱 ~~
동해항 부두에 접안해 있는 배 안에서 들리는 못질 소리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도 이렇게 경쾌한 소리가 났을까 생각해봄직하다. 살아 있는 게를 보관하기 위한 공사는 못질 소리도 맑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두 개의 선창에서 각각 10개의 수족관이 만들어진다.
칭따오(青島)호는 어제 공선(空船)으로 동해항에 입항했다. 적재중량톤 2200톤 크기의 중국 운반선이다. 수족관 설치 작업을 완료하면 매 항차 200톤가량의 활게를 운반할 예정이다.
부산에서 게 수입 계약을 체결하고 돌아온 임동박 사장(52)이 지금 우선적으로 할 일은 활게 적재를 위한 수족관을 빨리 완료하는 일이다. 일반 냉동운반선으로 사용되던 배를 활게 운반선으로 개조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소요된다.
임 사장은 이 배를 6개월 간 용선(임차)했다. 6개월 추가사용 옵션으로 용선하긴 했지만 게 수입이 원만하게 될 때 연장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활게를 실어본 경험이 없는 배이기 때문에 수족관 설치는 전문가의 설계가 요구된다. 잘못하면 살아있는 게가 아니라 죽은 게를 실어올 수 있다. 수십 억 원에 달하는 상품이 한방에 날아가는 위험이 따른다.
“이 소장, 자신 있겠지?”
임동박 사장이 이수동(37) 소장에게 묻지 않으면 기업가가 아니다. 질문의 뜻은 수족관 설치와 선원 감독, 선박 운항 모두를 포함하여 자신이 있느냐는 것이다. 배만 빌리는 나용선(裸傭船)과는 달리 선원과 함께 일정 기간 배를 빌리는 정기용선(定期傭船)이기 때문에 중국선원을 그대로 데려와서 쓴다.
“활게 운반을 위해 머리 싸매고 공부했습니다. 일단 지켜봐주십시오.”
실패하면 동해 바다에 빠져 죽겠다는 각오를 선포했더라면 믿었을지 모르지만 그런 대답으로는 조그만 위안을 줬을 뿐이다.
이수동은 부산사무소 일을 제치고 동해항에 와서 개조작업을 감독하고 있다. 작업은 10월 15일 시작했는데 10월 말 오호츠크해에 도착하기 위해선 열흘 안에 작업을 끝내야 한다.
임동박은 현황 파악을 위해 작업 현장에 왔다. 이틀째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감독하고 있는 이수동에게 다짐해둘 일이 많다.
“작업은 예산 내에서 끝내도록 하게.”
사장은 어디를 가나 돈을 먼저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선사업가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이수동은 S물류의 직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듯 대답은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생각보다 재료비가 비싸 비용이 조금 더 들 것 같습니다.”
초반부터 비용이 날개를 달면 안 되는데……. 개조 작업의 예산은 5천만원이다. 비용이 7천만원까지 늘어날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는 사업이 초반부터 장애물을 만난 기분이다. 나무로 수족관 박스를 만들고, 방수처리를 하며, 방수포를 씌우는 것을 비롯해, 각 수족관에 해수를 넣고 빼는 설비와, 수조마다 수온감지 센서와 냉온수 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하더라도.
비용에 관한 질문이 많으면 대답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이수동은 사장의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고 싶은 것.
“사장님, 배 첫인상이 어떠세요? 작지만 재밌는 뱁니다.”
재미있다는 표현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30만톤짜리 선박의 선장 경험이 있는 임동박 사장이 이 배를 거목에 매미쯤으로 얕잡아본다면 곤란할 것 같아 말해 둔 것이다. 작은 배는 작은 배 나름대로 역할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는 뜻이 숨어 있다. 그리고 사장의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려 한다.
“이 배 선장 덩치가 굉장히 큽니다. 인사 한번 하실래요?”
작은 배에 덩치 큰 선장이라? 쬐끔 호기심이 간다. 좁은 계단을 딛고 선장실로 올라갔다. 선장은 정말 몸집이 커서 작은 선장실을 꽉 채우는 느낌이다. 선장은 활게 운반선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대해 호기심보다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다.
“냉동운반선을 활게 운반선으로 바꾸는 것은 처음 보는데, 임 사장님의 발상이 특별하십니다.”
특별하다는 말 뒤에는 뭔가 염려된다는 뉘앙스가 묻어났다.
“우리 소장의 발상이랍니다. 처음 러시아 게 운반선을 용선하려 했는데 여의치 않았지요.”
“감사합니다. 저희 배를 이용해 주셔서.”
중국 보이차를 대접한 후 선장은 임 사장더러 선박 내부를 둘러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용선주로서 당연히 그러고 싶을 거라고 단정이라도 하듯 금방 그는 인터폰으로 항해사를 불렀다.
“선장님 부르셨습니까?”
칭따오호 선장 앞에 나타난 사람은 놀랍게도 제복을 입은 여성이다. 임동박의 승선 시절에는 여성 선원은 서양 선박밖엔 없었는데 이런 광경은 격세지감. 선장이 여성 사관을 임 사장 앞에 대령시키고 소개했다,
“저희 배 3등 항해사입니다.”
3항사는 임동박에게 힘차게 거수경례를 했다. 임동박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벌떡 일어나 거수경례로 화답했다. 몸속 깊이 배어 있던 옛 상선사관 습성이 불쑥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누가 봐도 웃을만한 장면이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리고 손을 잡아줬는데 딸 같이 느껴져 대견스러웠다. 씩씩해도 미모를 겸비했다는 점에 그는 또 한 번 놀랐다. 이런 예쁜 딸을 바다로 보낸 엄마는 걱정을 어디다가 붙들어 맬까 궁금하기만 하다. 거수경례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중국 선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녀에게 지시한다.
“3항사, 우리 배 용선주이신데 선박 내부 안내 좀 해드려요
용선주가 선내 구석구석을 봐두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선박의 상태를 알면 선원들과의 소통이 쉽다. 그는 3항사의 안내에 따라 두 개의 선창과 기관실, 선교, 갑판 등 두루두루 살폈다. 궁금증을 물어본 것은 선교에 있는 여성 사관 모자를 보았을 때다.
“어떻게 여성의 몸으로 선원 직업을 결심했나요?”
물론 영어로 물었다. 영어로 대답하는 실력이 만만치 않다. 중국 젊은이의 변화라고 봐야 하나. 한국의 상선학교에서는 1993년 여성 신입생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2002년 무렵 여성 해기사의 활약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지만 중국 여성의 해상 진출 또한 놀라운 일이다. 국제경쟁에 전적으로 노출된 해운에서는 국제 추세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해운은 국경이 없어 피 말리는 경쟁을 피할 길이 없다.
“외국인과 당당히 경쟁하고 싶습니다. 또 지금은 남녀 구분이 없는 세계잖아요.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대답도 당차다. 용선주는 선원에게 능동적이고 책임감 있는 근무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수족관이 만들어지고 있는 선창을 순회할 때는 임동박이 “저 안에 활게가 실릴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팔팔한 상태로 한국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관리해줄 것을 당부했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3항사는 임동박의 눈을 바로 쳐다보며 부동자세로 대답했다. 그녀의 동작처럼 게가 운반 도중 활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가 좋으면 응분의 보너스가 따를 것임을 은근히 비췄다.
쉬라이(徐萊, 24)는 금년 칭따오 상선대학을 졸업한 후 본선에 처음 승선했다. 임동박은 과거 일본 선박에 취업했던 점을 상기하면서 그녀에게 비전을 주고 싶었다.
“요즘은 한국 선박에도 외국인 해기사가 많아요. 나중에 한국 선박에 취업하는 것도 고려해 봐요.”
일종의 동기부여가 되는 말이다. 현재 하급 사관(2항기사, 3항기사)은 외국인이라도 한국적선에 승선할 수 있다. 그러나 상급 사관(선기장, 1항기사)은 허용되지 않는다. 주요 간부직만큼은 국적선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 때문이다.
수족관 20개 모두가 완료된 것은 개조 공사를 시작한 지 11일 만이다. 기관실의 해수펌프로 모든 수족관에 해수를 채우고 방수수밀 체크를 했다. 한 개를 제외하고는 이상이 없다. 한 곳은 파이프 연결 부위에서 물이 샜는데 접속 나사를 조여서 수밀을 확보했다. 각 수조의 냉온수 장치와 온도센서는 작동이 원활하다.
“작업완료확인서에 서명해 주십시오.”
개조공사 책임자가 작업내역이 적힌 확인서를 선장 앞에 내놓았다. 1항사와 기관장의 서명란이 있고 맨 나중에 선장의 서명란이 있다. 세 명의 상급 선원이 서명한 확인서는 공사대금 청구서와 함께 용선주 임동박에게 제출됐다. 이로써 개조공사는 완료된 셈이다.
오호츠크해까지는 5일이 소요된다. 안전한 항해를 위해 상급 사관인 선장, 기관장, 1항사 및 1기사 4명을 중국집으로 초대했다. 용선주로서 선원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옛날 일본 선주로부터 일본 게이샤 요정에 초청받은 기억을 되살리며 선원들에게 사기를 북돋아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장 어선과 잘 협조 바랍니다. 특히 어선 감독과…·.”
식사가 끝나갈 무렵 임동박이 선장에게 당부했다. 어선 감독은 중국의 삼합회 비슷한 러시아 조직과 어떤 끈이 있음도 비쳤다. 눈치 빠른 선장은 마피아의 일종임을 추측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선장 개인의 몫이다. 작업에 도움이 된다면 그런 추측이 결코 장애가 될 일은 아니다.
출항일에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수동의 주장에 대해, 활게는 죽은 돼지 머리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이유를 들어 그냥 배를 출항시켰다.
이수동은 현금 일만 달러가 든 007가방을 조심스레 들고 승선했다. 그는 용선주가 파견한 감독으로서 인명과 선박, 사업과 돈의 안전을 위해서 돼지머리가 어느 정도 위안이 되리라고 믿는 사람이었으나 사장의 거절로 고사는 무산되었으니 이제 달러라도 믿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현금은 비정규로 유통되는 게를 구매하는 데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출항하는 배의 꽁무니에서 솟구쳐 나오는 흰 물결을 바라보며 임동박은 마치 선주라도 된 기분에 들떠 있다. 물류회사 사장이 선주가 됐다는 것. 준비된 대통령이 있듯 준비된 선주가 있음을 보여줄는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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