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니들이 게맛을알어

니들이 게맛을 알어(제 7회)

오선닥 2015. 11. 8. 18:24

오호츠크해 도착

게잡이선과 상봉

활게를 받아 싣는데

여3항사의 첫 직장 경험은?

 

 

 

제 7회

 

 

오호츠크해

 

오호츠크해는 11월 초인데도 겨울을 방불케 하는 바다 상태를 보인다. 때 이른 저기압이 막 통과한 다음이라 파도는 아직도 인디안 춤을 추는 여인의 엉덩이처럼 흔들거린다.

 

칭따오호의 선교에서 3항사 쉬라이(24)는 초조한 마음으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게잡이선이 보일 만한데 아직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섬이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공해상인가 보다. 그녀는 바다와 뭔가 중얼거린다.

 

파도여 조용하라. 졸업하고 처음 바다에 나왔는데 이렇게 겁주는 건 예의가 아니다. 나 이래봬도 학교에서 얼짱 마도로스였단다. 나와 포크댄스 추지 않을래? 옳거니, 파도가 자세를 낮추기 시작하네. 고맙다!

 

중국말과 조선말이 섞인 독백이었는데 파도가 알아들었을까. 조선말은 많이 서툴러 잘 알아듣지 못했을 거야. 러시아말로 통역해줬는지 파도는 점잖아졌다. 아, 러시아는 나를 무시하지 못할 거야. 외할아버지가 러시아에서 항일투쟁을 한 조선인이었으니까. 엄마는 나에게 조선말을 조금씩 가르쳐 왔었지.

 

조선인의 피가 흐른다.

 

처음 탄 배가 한국 회사에 용선된 것도 일종의 운명? 쉬라이는 생각한다. 게 운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선장이 알아서 하겠지만, 용선주가 보낸 감독 아저씨와 협력해서 잘하겠지. 내 능력이 감당하는 데까지 열심히 하면 된다. 그녀는 각오를 세우고 있다.

 

“3항사, 뭘 그렇게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어?”

 

선장이 언제 선교에 올라왔나.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게잡이선에서 지정해준 위치까지는 10해리 더 가야 한다고 선장이 말하기에 그녀는 해도에다 위치를 찍어 봤다. 육지와는 아직 먼 공해상이다. 오전 11시경이면 목적 지점에 도착한다.

 

“밤 당직 때는 어두워서 겁나지 않았어?”

 

“아니, 괜찮았습니다.”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고 파도가 갑판을 덮어씌울 땐 놀라기도 했다. 외할아버지가 집에 계실 때 누가 대문이라도 두드리면 식구들이 깜짝깜짝 놀랐다고 엄마가 말씀하신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순사가 두드릴지 모른다는 노이로제에 대한 피가 흐르고 있나 봐.

 

살짝 허리를 젖힌 초승달을 보고 감상에 젖어 있을 때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랄 뻔했었다. 어깨 위로 은하수가 내려와 흐르는 기분을 삽시에 헝클어 놓은 것. 보지 않았어야 하는 걸 보았는데, 이제부터 배에서 자주 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니 걱정이 아른거리기도.

 

한 선원이 굵직하고 거무틱틱한 그것을 잡고 바다를 향해 호스질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을 거라는 어둠에서 온 힘을 다해 뽑고 있었다. 다 빠져나갔는지 기분 좋게 털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이 배의 유일한 여성동지 조리사와 나눈 대화에서 쉬라이는 배라는 것이 보통 사람이 살기에는 거북하고 어색한 곳임을 깨달은 적이 있다.

 

넌 딜도가 뭔지 모르지?

전 몰라요.

내 나이 되면 알게 돼.

 

조리사의 나이 34살이니 10년 후면 그걸 알겠구나, 쉬라이는 혼자 웃었다. 거울을 봤으면 아마도 자신의 얼굴이 홍조를 띠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리사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그걸 사용한다고 말했었다.

 

항해중 응접실에서 1항사와 이수동 감독이 마오타이주를 한잔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많이 취했었다. 사람 체온과 비슷한 술을 마셔줘야 건강에 좋다면서 그들은 38도짜리 술을 신나게 마셨다. 옆을 지나가는 3항사에게 1항사가 한 잔을 권했다. 그녀는 당직 때문에 술은 안 된다고 하면서도 반잔만 받아 마셨다. 상사의 명령이니까. 당직시간까지 3시간이 남아 있었던 것은 다행이다. 1989년 알래스카에서 엑손발데즈호 기름유출사고 후 선원들의 음주 당직이 철저히 금지돼 있다. 입항시 검역관이 혈중알코올을 측정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에 속한다.

 

마오타이주를 열심히 빨던 1항사가 갑자기 울컥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이미 맛이 간 얼굴이었다. 언젠가 조리사에게 재혼을 프로포즈했는데 그녀가 독신으로 살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녀가 딜도를 사용하더라도 독신으로 남겠다는 말에서 그는 울화를 참지 못했다. 마누라가 제 발로 도망갔으니 자신에게는 죄가 없으므로 재혼할 자격이 있다는 주장도 해봤으나 그녀는 끝내 결혼 같은 데는 마음에 없다고 선언했다.

 

얼어 죽을 듯한 기온인데도 1항사의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솟았다. 미묘하게 벌렁이는 코 안은 왠지 초조함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이수동이 1항사 경력까지 있다고 말했을 때 두 사람은 나이도 비슷하고 해서 단번에 죽이 맞았다.

 

1항사가 망가지면 안 되는데…….

 

이수동이 그렇게 생각했고 3항사도 그렇게 생각했다. 선박 하역 책임자가 망가지면 안 되지. 선장은 고주망태기가 된 1항사의 상황을 아직 잘 모르니 맡은 직분쯤은 충분히 감당하리라 믿고 있다.

 

선장은 새로 승선한 3항사가 귀여워 죽을 지경이다. 지나간 한세월이 나른하게 떠오르는데 불알 찬 선원만 있다가 이 배에서 처음으로 여성 선원 두 사람을 만난 것이다. 좋은 세월을 만난 건지 아니면 오래 산 덕인지 좀 생각해볼 참이라고 흐뭇해하기도 한다.

 

선장은 3항사가 말 걸어오는 걸 좋아한다.

 

“선장님 내년 7월경 하선하지죠?”

 

“3항사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알아요, 저는.”

 

“참 신기하다. 내 머릿속 해킹했냐?”

 

“아드님 졸업식이 내년이라면서요.”

 

그건 그렇지만. 그걸 언제 들었나. 한마디도 예사로 듣지 않고 남의 생각을 콕 집어내다니. 이러니 3항사가 더 귀여운 거야. 선장은 자꾸 칭찬해주고 싶은 것이다. 킹크랩의 집게다리가 아마도 이런 능력이 아닐까. 집게다리의 역할은 또 있다. 수컷이 일주일가량 암컷의 집게다리를 잡은 채 기다렸다가 암컷이 알을 낳으면 그 위에 정자를 뿌리는 것. 종족보존에 큰 역할을 하는 집게다리.

 

“3항사의 조상이 공자의 외가쯤?”

 

선장의 놀라움은 3항사의 조상까지 추적하고 싶었다. 조선인이냐고 물었더라면 네! 라고 대답했을지도. 절반 조선인이냐고 묻는다면 완벽! 이라고 대답했을 테고. 대답이 필요 없는 선장의 농담이었기에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배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게잡이선이 도착한 것은 30분 후였다. 다른 운반선에 일부를 옮겨주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먼저 50톤을 싣고 휴식을 취했다. 잠시 후  50톤가량을 더 옮기면 배는 떠나고 다른 배 두 척이 와서 나머지 물량을 채워줄 것이다. 책임자가 운반선 쪽으로 건너왔다.

 

“이반 파블로프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감독이 누구시죠?”

 

얼룩무늬 군복 복장을 한 중년 러시아인은 선장실에 모여 있는 사람 앞에서 목소리 크게 물었다.

 

“본인입니다.” 이수동이 나섰다.

 

“전해주실 물건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때 선장이 철제 금고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 동안 선장이 보관해 왔다. 이수동은 가만히 있었다. 군복은 그러면 됐다는 듯.

 

“알겠습니다. 인계인수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우선 게 수족관 한번 보실까요. 형님께서 죽은 게 보내면 안 된다고 해서요.”

 

1항사가 앞서고 러시아인이 뒤따르며 이수동이 따라갔다. 3항사는 메모지를 들고 한 걸음 뒤 따라갔다. 수족관에 관해서 조예가 많은지 수조 크기며 펌프며 센서 등을 짚어 보는 군복.

 

“실린 킹크랩은 싱싱합니다. 이제부터 품질은 본선에서 책임지셔야 해요.”

 

킹크랩은 마리당 평균 3~4킬로그램 된다. 다리 부러진 것이 군데군데 보이곤 하나 대체적으로 건강한 상태다. 휴식 후 다른 게잡이선이 도착해 계약 물량을 다 실었다. 화물 대금은 선장 사인이 된 화물인수증을 팩스로 보내면 한국에 있는 이반의 계좌로 전액 송금될 것이다. 군복은 보너스로 20톤을 더 실어줬다. 모두 220톤이 실린 셈이다.

 

그들이 선장실로 돌아왔을 때 이수동은 현금 1만 달러가 든 007가방을 금고에서 꺼내 군복에게 넘겼다. 가방을 열어본 군복은 현금 다발의 수만 확인하고는 맨 위 다발을 풀어 백불짜리 지폐 하나를 옆에 있는 사람에게 쥐어주면서 말했다.

 

“이건 신뢰의 표시입니다.”

 

지폐를 받은 사람은 3항사다. 그녀는 놀란 듯 주위를 둘러봤다. 받아도 되느냐는 듯. “예쁜 여자에겐 밥을 잘 사는데 여기서 밥을 살 수 없으니 이렇게 대접할 수밖에……” 하면서 군복은 의식적으로 호탕함을 보였다.

 

선장이 머리를 끄덕이지 않았다면 받지 않았을 것이지만, 어떻든 그녀의 첫 직장생활이 머리를 혼돈스럽게 한 것은 틀림없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