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니들이 게맛을알어

니들이 게맛을 알어(제 11회)

오선닥 2015. 12. 13. 19:36

도우미의 역할은?

손님을 기쁘게 하는 것

손님이 도우미를

기쁘게 한 일도 있네요

 

 

▲방석의자

 

 

 

제 11회 

 

 

손님

 

러시아 마피아 일행 4명이 상경했다. 수장 이반은 홍보부장 한 명과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왔다. 경호원 중 한 명은 한국인이다. 영일관에 들어서더니 이반은 블라디보스토크의 모란봉과 비슷하다며 첫 인상을 피력했다.

 

“김일성 사진이 없는 게 다른 점이라고 할까요.”

 

임동박이 안내를 하면서 말했다. 몇 년 전 블라디보스토크의 북한식당 모란봉에 들렀을 때 현관 입구에 걸려 있던 백두산과 김일성의 대형 사진을 기억하면서 말한 것이다. 일부러 일행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쪽으로 안내했다. 앞서가던 오영애가 테라스 문을 열었을 때 한강을 내려다본 이반은 입이 벌어진 채 감탄.

 

“서울은 과연 다르네.”

 

“다른 점은 더 있습니다. 저희 종업원의 친절함이 일품이죠.”

 

오영애가 공손히 말했다.

 

“기대해 보겠습니다. 오 마담.”

 

오 사장이라고 소개했음에도 이반은 만국 공통어인 마담으로 지칭했다. 그리고 임 사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 저녁 비용은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수행 부하들에게 말한다.

 

“너희들, 임 사장님께 인사드려!”

 

그리고 한국인 경호원에게는,

 

“아 동생, 자네는 전에 임 사장님을 부산에서 만나뵀었지?”

 

한국인 경호원은 “예 그렇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허리를 급히 숙였다. 임 사장과 인사를 나눈 부하들은 이번에는 오 사장에게 머리를 숙였고 그녀는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일행은 곧 아늑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넓은 방은 입구 외는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고 방 가운데 방석자리가 마련돼 있다. 다섯 개의 방석의자는 안쪽에 두 개, 입구 쪽에 3개가 배치돼 있다. 오영애의 안내에 따라 안쪽에는 이반과 임동박, 문 쪽에는 홍보부장과 두 경호원이 앉았다.

 

자리 잡기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간 오영애가 다시 들어오는데, 이때 다섯 명의 아가씨가 따라 들어왔다. 도와줄 일이 뭔지 모르지만 도우미의 임무를 충실히 담당할 것이라고 그녀가 설명했다. 도우미들은 방석의자 사이사이에 앉았다. 그들 중에는 러시아 여성 한 명이 있다. 오 사장의 설명에 의하면 쉐라톤워크힐 아이스쇼에 출연했던 여성으로 2년 전부터 공부를 위해 한국에서 거주해 왔다는 것이다. 귀하신 분들을 위해 통역도 맡을 것이라고 한다.

 

신문지에 광고지를 끼워 넣듯 그들은 순서대로 사이에 들어가 앉고는 인사말도 자동응답기처럼 각자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다. 이반의 옆에는 러시아 아가씨가 앉았다. 오 사장의 준비된 짝짓기에 속한다.

 

“루나라고 합니다.”

 

루나의 앉은키가 방석의자에 앉은 이반보다 더 커 보인다. 이반은 일부러 어깨를 맞대어 보며 여자의 키가 큼을 인정한다.

 

“이름이 좋구려. 달이라…… 유리 가가린이 삼촌이라도 되나?”

 

루나는 달이라는 뜻으로 이반은 그녀의 얼굴이 달같이 둥글기도 하여 그렇게 말한 것이다. 가가린은 소련의 최초 우주인이지만 달나라에 최초로 발을 디딘 사람은 미국 우주인 암스트롱임을 누구나 안다.

 

“전 덩치가 커서 우주인은 못 돼요.”

 

몸이 작고 다부진 가가린과는 달리 그녀 자신은 아이쇼 댄서로서 체격이 커다는 뜻이다. 루나는 대화 내용을 선별해서 통역하지만 오 사장의 말은 빠뜨리지 않고 통역한다.

 

“킹크랩은 손님의 손이 묻지 않게 도우미들이 잘 발가 드려야 해.”

 

오 사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킹크랩 요리가 들어오고, 도우미들은 한결같이 집게다리부터 잘라 살을 뽑아내고는 각자 손님의 입에 넣어준다. 맨손으로 게살을 발가서 입에 넣어주는 도우미들에게 임동박은 농 한마디를 던진다.

 

“너희들 거기 다녀온 후 손은 씻은 거지?”

 

음식 앞이라 화장실을 순화된 대체어로 표현한 것이다.

 

“어쩌지요. 저는 깜빡?”

 

임동박 도우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녀가 도우미 중 제일 나이가 많으나 프로답게 세련돼 보인다. 오영애는 요리 준비를 해야 한다며 방을 나가면서, “부족한 것 있으면 벨을 눌러주세요” 말하고, 도우미들에게는 될 수 있는 대로 손님 옆을 떠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게맛이 좋아서인지 짝끼리 오붓한 시간을 가져서인지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다. 술잔을 든 이반이 지긋이 루나를 보았다.

 

“자, 네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떤 이야기를요?”

 

“아이스쇼 이야기도 좋고 한국 생활 이야기도 좋고.”

 

“그럼 한국 생활 이야기를 할게요.”

 

이야기 분위기를 도와주기 위해 루나의 빈 잔에 술을 채워준 이반이 방석의자에 등을 붙였다.

 

“저 아직 학생이어요. 아이스쇼는 일종의 아르바이트이고요.”

 

이반이 시선을 주자 루나의 말이 이어졌다.

 

“6개월 전 아이쇼 그만두고 한국대 한국어과 복학했어요. 지금 세 학기 째이고요.”

 

“…….”

 

“언니들 이야기 들으니까 2차도 있다고 해요. 그렇지만 아직 학생 신분이라 망설였어요.”

 

“그러면 왜 여기 왔어? 우린 부산에서 올라왔는데?”

 

이반은 시선을 바로 주며 물었다.

 

이야기가 옆 짝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각자 자기들 이야기에 몰두해 있고 또 다른 짝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늘만큼은 달라요. 러시아 손님이라고 해서 이미 각오가 돼 있어요.”

 

“그런 것도 애국심인가?”

 

“오기 전에 각오를 했습니다.”

 

감정이 뒤섞이는 걸 느낀 이반은 술을 연거푸 마셨다. 그리고 기분 전환을 위해 시선을 좌중에 주고 건배를 제의한다.

 

“킹크랩의 성공적 운송을 축하하며, 건배!”

 

건배는 한국말이다. 운송을 뜻하는 러시아어는 영어와 비슷해 이것 역시 알아듣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건배 후 각자 술 마시기에 들어갔고 이야기도 짝끼리 나눴다.

 

“지금 목표는?”

 

“등록금이나 모으는 거죠. 졸업할 때까지 필요한 정도.”

 

고개를 끄덕인 이반이 술잔을 들어 한 모금에 삼키고 나서 묻는다.

 

“등록금이 많겠는데?”

 

“매학기 2000달러 정도. 외국인에게 등록금 반은 장학금으로 지급되니까요.”

 

“졸업하고 어떤 직장?”

 

“통역사 또는 무역회사나 여행사 직원도 괜찮고요.”

 

“그렇군.”

 

“어렵겠지만 한국에 왔으므로 끝까지 마치려 해요.”

 

아가씨가 아닌 학생을 쳐다보고 있는 이반.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스쇼는 아르바이트로 계속 안 되나?”

 

“급료가 적을 뿐 아니라 연습시간이 많아 공부와 병행하기는 무리이에요.”

 

“이런 아르바이트에 회의 같은 건 없고?”

 

“공부 욕심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겸연쩍게 얼굴을 펴고 웃는 루나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부끄럽기도 하거든요. 제 이야기 듣기 거북스럽지 않으세요?”

 

“다소 그렇기도 하네.”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게 이반이 손을 뻗어 루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오늘은 이 정도로 됐다.”

 

루나의 어깨를 놓아주며 이반은 말을 이었다.

 

“오 마담한테 이야기해 놓을 테니 임 사장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졸업 후 정식 근무하도록 해. 너 같은 여직원이 필요할 거야.”

 

이날 이반은 동포여성을 위해 우선 5000달러를 맡겨 놓았다. 등록금 납부 후 영수증 사본을 주면 된다고 했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니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절반은 임 사장에게 감사해야 한다면서 열심히 공부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러시아 아가씨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