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니들이 게맛을알어

니들이 게맛을 알어(제 5회)

오선닥 2015. 10. 24. 20:54

한국 여자든 러시아 여자든

여자는 밤에 익숙하다

얼마나?

 

 

 

 

제 5회

 

 

여자와 밤

 

마피아 부두목 사촌오빠가 조직원과 함께 나가자 크리스티나와 임동박은 자리를 옮겼다. 중개인 김택구의 동석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임동박의 말에 크리스티나는 “우리끼리 의논해도 충분하다”고 했다.

 

로얄호텔 커피숍을 나와 골목을 두 번 꺾어 길을 건넌 뒤 경사가 완만한 언덕에 세워진 한식집으로 갔다. 지붕이 기와로 돼 있다고 하여 ‘기와지붕’이라 부르는 요정이다. 요정 안은 양식과 한식 스타일을 섞은 세련된 식당이다.

 

마호가니 상을 마주하고 둘이 앉았을 때 임동박이 궁금한 부분을 물었다.

 

“계약서를 작성해야 할 텐데?”

 

당연한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크리스티나의 반응.

 

“지금부터 이 문제를 의논하려 해요.”

 

“대화중에 계약관계 언급이 없어서.”

 

“그게 오케이라는 뜻입니다, 사장님.”

 

서로 만나겠다고 약속한 것만으로 50퍼센트 승낙한 것이고, 만나서 이야기한 것만으로 70퍼센트 승낙했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의논하라고 말한 자체로 백퍼센트 승낙이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궁금해 하는 중 그녀가 핸드백에서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렇지 않아도 계약서를 가져왔습니다.”

 

완벽한 계약서였다. 표준양식으로 숫자가 들어갈 자리 외에는 다 인쇄가 돼 있었다.

 

오빠가 대화중에 나간 이유는 정 사장의 어선이 명태를 쿼터량 이상으로 어획하여 경비정 검사관에게 발각됐다는 것이다. 다른 루트로 손을 썼지만 여의치 않아 이반에게 부탁하게 된 것이다. 오빠의 영향력을 은근히 과시했다.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네요.”

 

“오빠 말입니까, 저 말입니까?”

 

복수 개념이 애매한 한국말에 문제가 있다.

 

“둘 다.”

 

“아녀요. 아주 틀렸어요. 임 사장님의 첫인상에 반한 저 때문에요.”

 

“아, 그럼 너무 감사.”

 

여자는 복분자를 주문했다. 복 자가 좋은 글자라는 것은 한국에서 일 년만 살아도 안다. 술이 들어오기 전 계약서를 검토했다. 영어로 된 매매계약서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양식이라 생경한 내용은 없다. 단지 마피아와 계약하는 게 현실적으로 유효한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어차피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계약이므로 형식에 매일 필요는 없다. 계약서에 숫자를 집어넣고 기간은 11월부터 1년간으로 해서 서명했다. 상대방은 이반 파블로프의 직인을 찍었다. 서명 후 한 부씩 챙겼다.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다. 계약을 했으니 홀가분한 기분으로 마셨다. 남녀는 옷차림도 자유로웠다. 마음이 홀가분하면 겉옷은 벗어진다. 남자는 넥타이가 풀린 와이셔츠, 여자는 젖무덤이 보이는 블랙 원피스 차림이다.

 

“계약 끝났으니 좀 취해도 되겠지요?”

 

상에는 요리를 더 놓을 공간이 없다. 산해진미.

여자는 두 개의 잔에 술을 같은 양과 같은 수량으로 따랐다.

 

임동박이 서울에서 내려올 때 오영애가 부산에 내려갈지 모른다는 말이 기억난 것은 음식을 반쯤 먹었을 때다. 핑계로 화장실에 가겠다고 방을 나와서 무전기를 들었다.

 

“오 사장의 출장이 궁금해서 전화했어.”

 

“지금 부산예요. 그렇지 않아도 오빠한테 전화하려 했어요.”

 

내일쯤 하부할지 모른다고 했던 오영애가 엉뚱하게 지금 부산에 내려와 있단다. 부산의 게 수입업자가 수족관이 넘쳐 게를 빨리 가져가라고 해서 부랴부랴 내려왔다는 것이다. 내일 아침에 게를 보고 비행기로 택배할 예정이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럼 오늘은 부산에 있어야겠네?”

 

“그래서 호텔방을 예약했어요. 마리나호텔 303호. 물론 오빠도 이리로 오셔야 해요.”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공교롭게 된 일이지만 오영애의 작전에 말린 것 같기도 해서 기분이 묘하다. 거 참.

 

“알았어. 계속 상담중이라 지금은 나오기가 곤란하고…….”

 

무전기를 든 채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무슨 아이디어라도 떠오른 듯 말을 이었다.

 

“음~ 30분쯤 후에 이곳으로 전화해줘.”

 

요정의 전화번호를 불러주며, 전화할 때는 '서울에서 내려온 가족'이라고 말하라고 일러주었다.

 

요정 방으로 돌아왔을 때 크리스티나는 손거울을 보고 눈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임동박을 보자 여기서 식사를 마치면 러시아거리에 있는 자신의 가게로 가서 2차를 하자고 한다. 양다리를 걱정해야 하는 임동박. 이런 딱한 사정을 알 리 없는 여자는 말한다.

 

“계약 후 마무리가 중요해요. 게를 삶은 후 뜸 들이는 것 있죠. 그런 시간이 필요해요.”

 

요정에는 외국손님이 제법 보이고 러시아 사람도 눈에 띈다. 푸틴이 정권을 잡은 후 극동러시아의 경제가 활성화돼가는 것은 확실하다. 대신 마피아의 불법 활동이 제약을 받을 거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건 러시아 일이고 여기는 한국이니 너무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할 때는 그녀가 마치 한국사람 같다. 잔을 부딪치고 있는 중에 종업원이 방문을 노크했다.

 

“혹시 임동박 사장님 계십니까? 서울에서 내려온 가족 전화입니다.”

 

임동박이 전화를 방으로 돌려달라고 했다. 태연하게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오영애다.

 

“부산에 내려왔다고? 알았어. 일 마치는 대로 바로 갈게.”

 

크리스티나가 들을 정도로 큰 소리로 말했다. 아내에게 말하는 투로 짤막짤막하게 말했다. 수화기를 놓고 크리스티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급한 일로 갑자기 내려왔다는군.”

 

일부러 퉁명하게 말했다.

 

“사모님이 걱정해주셔서 고맙지 않으세요?”

 

금발 아가씨는 그렇게 말했으나 뭔가 아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임동박은 아내로 오인하도록 방치한 게 죄스럽기도 했다.

 

“술이 받으려 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게 돼 미안해요.”

 

임동박은 계약서를 들고 요정을 나왔다. 뜸 들일 시간은 없었다. 크리스티나가 약간 취기를 보인 것은 다행스럽다. 기분 좋은 상태에서 헤어지는 게 사업을 위해서 좋다.

 

“임 사장님, 다음엔 조용한 시간 마련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크리스티나의 입술에 미련이 묻어있는 것 같다. 임동박의 첫인상에 호감을 느꼈다는 그녀를 <루시키 바>에 바래다주고 마리나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9시반.

 

오영애는 잠옷 가운을 입은 채 옅은 화장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능청스럽게, 방을 추가로 예약하려 했는데 빈방이 없었다고 했다. 마침 트윈베드라 두 사람이 자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부언할 때 그가 대꾸할 단어의 수는 많지 않았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기도 하네. 부산갈매기가 된 기분.”

 

임동박은 윗옷을 벗고 소파에 그녀와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임동박을 한참 동안 찬찬히 쳐다보았다.

 

“오빠, 여자 만났다가 왔지요?”

 

“어떻게 알았어?”

 

“진한 향수…… 외국 여자…… 이쁜 여자……”

 

“더 나열할 것 없어?”

 

“키 크고 매력 있는…….”

 

“이렇게 딴 동네에서 만나니 헛소리를 해도 감동이다.”

 

“오빠는 부드러운 말을 해도 도끼, 잘 찍으니까.”

 

“자꾸 잽 날리지 말고 한방만 주라.”

 

“오빠 말은 착한 것 같은데 좀 거칠어요.”

 

“넌 말을 넣었다 뺐다 하지마라. 감칠맛 난다니까.”

 

“게의 껍데기는 거칠고 딱딱하지만 살은 보들보들하잖아요.”

 

여자의 가슴 쪽으로 자꾸 눈길이 가는데, 이는 부드러운 것에 약한 남자라서. 그는 화제를 딴 데로 돌린다.

 

“내일 게는 잘 될 것 같아? 살 빠진 건 안 돼. 무조건 통통해야 돼.”

 

“남자 보는 눈과 게 보는 눈은 저도 있어요.”

 

오영애의 허리를 팔로 휘감은 임동박은 힘을 줬다 풀었다 했다. 그녀는 한 번씩 움칠하면서 웃음을 머금고 그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환절기지만 얼렸다 녹였다 하지 마세요.”

 

“게 찌는 시간 25분, 뜸 들이는 시간 5분이 젤 좋다는데…… 30분은 기다려야지.”

 

“이제 절 게 취급하겠다는 거예요?”

 

“아니 내가 게 취급 받겠다는 거지.”

 

“감동의 쓰나미네요.”

 

그들의 깊고 규칙적인 숨소리가 방안에 퍼졌다. 곧 거친 숨소리가 침대 다리를 삐걱거리게 했다.

 

이튿날 아침 그들이 기상했을 때 햇빛은 블라인드 틈을 비집고 방안으로 들이쳤다.

탁자 위에는 호두와 캐슈너트, 아몬드가 이리저리 늘려 있고 빈 맥주캔이 무질서하게 누워 있다. 트윈베드의 베드 하나는 깨끗하게 비어 있으나 다른 하나는 시트가 마구 구겨져 있다. 이불을 반쯤 덮은 여자의 몸은 반쯤 핑크빛을 드러낸 채 곤한 잠에 빠져 있다.

 

“오 사장, 게 사러 가야지!”

 

남자는 화장실로 들어가면서 여자를 흔들었다. 만질 곳이 없어 이불을 흔들었을 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