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니들이 게맛을알어

니들이 게맛을 알어(제 4회)

오선닥 2015. 10. 18. 19:10

킹크랩 수입을 위해

부산에 내려온 임동박 사장

러시아 마피아와

사업 상담을 하는데…

 

 

 

 

제 4회

 

 

마피아와 상담

 

“오빠, 부산으로 내려오세요.”

 

임동박(52)이 받은 전화는 오영애(36)가 아니라 크리스티나(28)였다. 모스크바에 갔던 사촌오빠가 부산에 왔으니 빨리 내려오라는 것이다. 딸 같은 여자가 오빠라고 부르니 처음엔 얼떨떨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전화 속의 크리스티나는 민망했던지 “사장님은 아빠 스타일은 아녀요. 오빠라고 불러야겠어요.” 변명하듯 말했다.

 

부산에 내려가는 데 지체할 필요는 없다. 이튿날 비행기 트랩에 올랐고, 부산 로얄호텔에 도착했을 때 오후 3시반. 크리스티나의 사촌오빠 이반 파블로프(46)가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한테 대충 들었습니다. 킹크랩을 수입하시겠다고요?”

 

오빠의 질문을 크리스티나가 통역했다. 마피아 부두목 이반은 다부진 체격이다. 집권 2년째를 맞이하는 50세의 푸틴 대통령처럼 키는 170센티 정도로 크지 않고 어깨가 벌어져 건장해 보였다. 가을 햇살이 실내까지 들어온다면 건장한 모습은 더 돋보일 것이다.

 

러시아 마피아는 석유, 가스, 목재, 수산물 등 자원에 많이 관여한다. 해외 폭력 조직과 손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국 삼합회와 원목, 한약재, 매춘 거래를 하는가하면, 일본 야쿠자와 킹크랩, 매춘을 거래하며, 한국 칠성파와 킹크랩, 명태 등을 거래하고 있다.

 

러시아 내 300여 개나 되는 마피아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극동지역 수산 마피아로 그의 영향력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더구나 부산지역에서 활동하는 20여 개 마피아 중에서 제일 큰 조직이다. 관리하는 어선만 해도 39척에 달한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렇습니다. 게 수입이 처음이라 보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적당한 호칭이 생각나지 않아 임동박은 그냥 보스라고 말해버렸다. 뱉은 호칭은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래도 상대는 기분 나쁘지 않았는지 일자로 다문 입에서 미소를 흘러내면서 말했다.

 

“물량은 어느 정도 계획하십니까?”

 

목소리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어째서일까. 얼마 전 러시아 마피아 두목 한 명이 영도의 한 대형 아파트에서 권총 저격을 받아 피살당한 기억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경쟁 마피아 조직원에 의한 국제 범죄로 밝혀졌지만 부산이 사건 지역이라는 데 악몽은 쉽게 잊어지지 않는다.

 

임동박은 목소리를 조절하기 위해 침으로 목을 적셨다.

 

“200톤 정도면 좋겠습니다만…….”

 

“물량이 꽤 많은데 판매처 확보는 돼 있나요?”

 

“품질만 보증되면 판매는 어려움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수입하는 킹크랩이 연간 3000톤가량이라는데 200톤은 많지 않은가요?”

 

“…….”

 

통계를 들고 나오니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임동박은 무응답 자세를 취했다. 사업은 강해지기 위한 과정이다. 얼고 녹는 과정에서 견디는 것. 임동박은 파도의 생리를 안다. 파도는 마루와 골이 있다. 파도가 진동하면서 진행하듯 사업도 시장의 파도를 타고 진행한다. 묵비권 행사도 아닌데 그는 가만히 있었다. 대신 통역만 하던 크리스티나가 답답한 분위기에 웃음을 뿌리며 나섰다.

 

“오빠, 임 사장님은 게 요릿집도 경영하시는데 수요가 많은가 봐요. 더구나 지역이 서울이잖아요.”

 

통역의 신분을 망각하고 누이가 끼어들어도 이반은 그다지 귀찮아하는 기색은 아니다.

 

“그래도 첫 물량치고는 너무 많아서…….”

 

이반은 얼굴에 근엄함을 올렸다. 마치 표정도 권력이고 힘이라도 되는 듯 얼굴에 위엄을 세우는 것 같았다. 러시아 게 사업의 생리에 대한 그의 설명은 단순했다. 쿼터 물량이 부족하므로 추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연방 수산청 관리는 물론 극동지방 수산청 관리와의 접촉이 있어야 하고, 현장 어획물 검사관과의 교류도 있어야 한다는 것. 첫 물량은 오호츠크해에서 실을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중개인 김택구가 참석하지 않은 것은 면담 때 최소한의 수를 선호하는 이반의 취향 때문이다. 마피아 부하들도 대동하지 않고 직접 고객과 만나는 경우가 많다.

 

“일본과 한국이 게 불법어획을 많이 하는데 해안경비정이 단속하면 다 걸려요. 다소 묵인해주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라우. 각국이 불법을 자제해야 하는데…….”

 

은근히 자신의 역할을 강조했다. 임동박도 이반의 영향력에는 동의한다.

 

“게 사업에 대해서는 더 많이 배워야 하겠습니다.”

 

“부산에서는 명태와 게를 수입하는 우리 고객이 많아요. 게맛살 제조에 명태가 다량으로 필요하니 말입니다.”

 

게맛살 이야기가 나오자 크리스티나가 “우리 사이도 게맛살 관계가 아닌가요?” 거들었는데, 무슨 뜻인가 했더니 게맛살 제조에 명태와 게가 필요하듯 우리도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이라는 것. 여자의 상상력은 북어 두름처럼 엮어야 직성이 풀리는가 보다. 이반은 명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국인이 명태를 참 좋아하는가 봐요. 내가 듣기로는 연간 40만 톤 소비한다던가? 90퍼센트가 러시아산이라죠. 이중 20만 톤은 정부·민간쿼터를 통해 러시아에서 직접 잡아간다더군요. 말하자면 한국 정부쿼터 2만5000톤, 합작조업 3만5000톤, 그리고 14만 톤은 민간쿼터라지요. 나머지 20만 톤은 수입하고…… 맞죠?”

 

이반이 묻자 임동박은 얼떨떨했다. 한국의 총 수산물 생산량은 240만 톤 정도, 이중 절반에 해당하는 120만 톤가량을 수입하는 것 외는 아는 바가 없는 그로서는 자괴심으로 숨을 만한 작은 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크리스티나도 통역에 애를 먹는 것 같다. 임동박은 답변이 어정쩡할 수밖에 없다.

 

“그런가요. 러시아가 이웃에 없었더라면 한국은 생선 빈곤국이 될 뻔했지요.”

 

답변이 궁하다 보니 상대방 체면을 지켜주는 일에만 신경 썼다.

 

크리스티나도 오빠의 통계 기억에 감탄했고, 그런 오빠에게 대들 수 있는 무기는 명태 이름에 대한 다양한 한국어였다. 평소 손님들에게 여담으로 자주 써먹던 것을 열거했다.

 

“오빠, 한국 사람이 명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이름에서 알 수 있어요. 명태, 생태, 동태, 황태, 북어……알겠어요? 이뿐이 아니에요.”

 

뜸을 들이고 말을 잇는다.

 

“술안주에 자주 쓰이는 코다리와 노가리도 있어요.”

 

그녀는 한국말로 했다. 러시아말로는 다음 기회에 가르쳐주겠다고 으시댔다. 이반은 한국 사람의 명태 사랑에 정말 감탄하는 표정이다.

 

만난 후 어획물에 대해서만 대화하다 시간을 보내버렸다. 그나마 계약의 근간인 게로 돌아온 것은 다행이다. 게처럼 옆으로 기어서 그런지 한 시간 이상 걸렸다.

 

“최근 한국에서 킹크랩 값이 폭락한 사실 들어보셨나요?”

 

얘기인즉슨 어떤 사업자가 200톤을 다량 매점매석하려다가 갑자기 킹크랩이 죽기 시작하면서 급하게 시장에 내놓아 가격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말을 이었다.

 

“너무 욕심 부리면 활어 사업은 한방에 갈 수 있답니다.”

 

킹크랩 사업을 접으라는 말같이 들렸다. 계약도 하기 전 겁부터 주는 이유가 뭐람. 크리스티나의 등살에 마지못해 만나주는 건 아닌가. 순간적으로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위험한 사업이지만 일단 칼을 뽑은지라…….”

 

임동박은 또렷하게 말했다. 어떻게 통역하든 크리스티나에게 맡겼다.

 

“결심하신 것은 알겠어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지요.”

 

솔직하게 충고해주는 것은 고마웠다. 무턱 대놓고 감언이설로 말하는 것보다 신뢰가 갔다.

 

“리스크가 많은 사업일수록 신중하려 합니다.”

 

임동박이 이반과 만나게 된 주된 이유는 최근 러시아 게 암시장이 합법적인 거래규모보다 3배 이상 크다는 점이다. 그의 도움이 없으면 게 수입 사업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다. 이반은 임동박의 이런 마음을 꿰뚫기라도 하듯 질문한다.

 

“우리 회사의 역할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나요?”

 

아주 기본적이지만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상대방이 수산 마피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불법의 두려움이 증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정식으로 킹크랩 조업을 허가받지 않은 배들, 속칭 마피아들에 의해 운영되던 킹크랩 선단이 자유롭게 부산으로 들어와 물건을 통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한다. 그렇다고 서류상 미비점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의 수자원 보호를 위해 무허가 선단의 수산물 통관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지만 관행을 일시에 중단시키는 것은 벌집을 쑤시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킹크랩 선단의 규모가 크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만…….”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임동박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선이 잡은 킹크랩을 공해상에서 운반선에 바로 싣는 것 알고 계시죠?”

 

“알고 있습니다. 그런 배가 부산으로 바로 오는 것도 알고 있고요.”

 

운반선에 실린 채 수출입 통관 절차 없이 바로 부산항으로 들여오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위조한 러시아 당국의 통관증을 제출해 한국 세관을 무사히 통과하는 방법도 아는 체하지 않았다. 세관의 단속은 허탕치기 일쑤인데 공해상에서 입항할 배 이름을 바꿔 달고 버젓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런 수법으로 들여오는 수산물은 연간 1500억원대에 이른다.

 

“대체로 알고 계시리라 믿고…….”

 

이반이 더 이야기하려는데 검정 양복 차림의 어떤 건장한 러시아 젊은이가 다가왔다.

 

“보스, 방금 연락이 왔습니다. 정 사장이 감천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젊은이는 시계를 보고 지금 5시 10분이라며 이반을 재촉했다. 이때 또 한 명의 검정양복 차림 젊은이가 가까이 왔다. 후자는 한국인의 얼굴이다.

 

만나려는 정 사장은 이반과 지분 50대 50으로 합작한 회사의 사장이다. 그는 부산의 대표적인 조직폭력 세력인 칠성파 조직원의 친형이다. 오늘 나타난 큰 먹잇감을 이 합작회사가 처리하기 위해 협력차 출동하는 것이다.

 

“그래? 기어코 손아귀에 들어왔군.”

 

옆에서 누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 그는 큰소리로 부하에게 말했다. 그리고 임동박에게 향했다.

 

“아, 죄송합니다. 지금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 게 사업의 구체적인 것은 크리스티나와 상의하세요.”

 

이반은 일어났다. 커피 잔에는 커피가 반이나 남아 있다. 아마 커피를 좋아하지 않든가 아니면 진득하게 대화할 타입이 아니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검정 양복들을 양쪽에 대동하고 그는 걸어 나갔다. 걸음걸이가 동영상에서 본 푸틴의 뒷모습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러시아 사업을 하려면 이 친구를 극복해야겠구나 다짐했다. 임동박은 크리스티나와 다시 마주 앉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