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니들이 게맛을알어

니들이 게맛을 알어(제 2회)

오선닥 2015. 9. 29. 19:57

게 수입이 시급하다

러시아 게를 수입하는 동해항

임동박은 현장으로 가서

운반선에서 내리는 게와

수족관의 현황 파악에

들어가는데…

 

 

 

 

제 2회

 

 

킹크랩

 

가을이 익어가는 9월 중순 임동박(52) 사장은 이수동(37) 이사를 동해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러시아 게 운반선이 자주 입항하는 동해항에서 킹크랩 수입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다. 이수동은 임동박이 경영하는 S물류의 부산소장으로 근무한다. 그는 임동박 사장의 지시에 따라 일주일 전부터 동해항에 머물면서 러시아 게 수입 현황을 조사하고 있다.

 

냉동어 운반에서 활게 운반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로 결정한 후 임동박은 동해항을 가끔 방문한다. 오늘도 동해항으로 차를 몰고 있다. 그는 운전대 옆에 걸려 있는 무전기를 열고 목소리를 모았다.

 

“이 소장, 운반선 ETA가 언제여?”

 

동해항 도착예정시각(Estimated Time of Arrival)을 물은 것이다.

 

“오늘 오후 2십니다. 하역 장면 보시려면 3시경 부두 정문에서 만나시죠.”

 

러시아 킹크랩 운반선이 동해항에 도착하여 하역이 시작되는 시점에 맞춰 임동박은 서울을 출발한 것이다. 이수동의 대답은 짧았고, 궁금한 것들은 도착해서 의논하자는 목소리다.

 

가는 도중 차창 주위로 펼쳐지는 산의 절경들을 즐기고 싶었다. 조금씩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산을 보노라면 운전이 지루하지 않다. 창을 내리고 바깥 경치에 시선을 준다. 가을은 마음의 줌렌즈를 활성화시키는 계절인가. 멀리서 보면 아름다움이 확대된다. 산등성을 타는 시원한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머리카락처럼 기분이 흔들린다. 세상은 혼자일 때도 이렇게 기분이 좋다.

 

어제는 삼성동 코엑스몰에서 오영애를 데리고 거대한 수족관을 둘러보았다. 수입하는 활게는 요리하기 전까지 수족관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했더니 2년 전 개장한 코엑스 아쿠아리움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게요릿집 사장으로서 견문을 넓히는 것은 좋지만 거대한 아쿠아리움까지 견학할 필요가 있을까 반문하면서도 기꺼이 동행해 줬다. “기둥서방으로 오해받지 않게 제가 잘 처신할게요.” 하고 말하는 그녀는 장난기가 물씬했다.

 

커피숍에서 그녀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잠실주경기장의 열다섯 배에 달하는 코엑스몰 지하공간이 넓어서가 아니라 커피숍에 앉아 있는 마릴린 먼로의 웨이브 머리를 한 그녀를 알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왜 그랬냐는 말에 뭔가 바꿔보고 싶어서 그랬단다. 가을이 되니 괜히 변화를 주며 떠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럼 영동을 넘어 동해로 가는 길에 동행하겠냐고 물었을 때 저녁 장사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하는 부분에서 즉각 현실로 돌아오는 그녀가 돋보였다.

 

“이럴 땐 사장답다니까.” 임동박이 말했다.

 

“시집가기 전에 영일관의 회장되려고요.”

 

거대한 수족관을 돌면서 나눈 대화가 이런 식이었다. 그녀와는 대화의 진전이 오래가지 못한다. 대화보다 마주 보는 시선이 더 오래 간다. 어느 한쪽이 웃으면 시선은 고무줄처럼 제자리로 돌아온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체플린의 말에 전적으로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오영애의 삶은 가까이서 보면 재미있어 보이지만 줌을 밀어 멀리서 보면 더 넓고 고민으로 여겼던 부분에 집착이 옅어지며 여유가 드러난다.

 

강릉을 내려다보며 운전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사장님, 예정대로 오후 3시에 도착하시죠?”

 

이수동의 확인전화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가을 경치에 흡입되어 가는 중에 이런 전화는 오지 않아도 되는데……. 하늘의 푸른 색깔이 주는 투명함과 시야를 감싸는 자연스러움에 감격하는 분위기를 흩으러 버렸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 그대로다. 인생의 굴곡을 재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의 이완은 삶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활성화 시킨다고 하던데.

 

동해항 부두 정문에 이르렀을 때 이수동은 미리 와 있었다.

지금 시각 오후 3시 10분.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임동박은 부두에 접안해 있는 운반선 쪽으로 다가갔다.

러시아 킹크랩을 싣고 들어온 운반선은 아직 하역을 시작하지 않았다. 배는 2시경 도착했지만 검역 수속이 늦어져 하역은 3시 반부터 시작된다는 것.

 

“그럼 20분 여유 있으니 선체 주위나 둘러볼까.”

 

부두에는 게를 수송하기 위한 수조차가 착착 들어서고 있다. 게를 싣고 서울로 바로 가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동해시에 있는 대형 수족관으로 간다. 거기서 구매자를 기다린다.

 

하역이 개시되자 운반선 수조에서 건져낸 킹크랩은 바구니에 담겨 수조차로 옮겨 실린다.

 

임동박은 궁금한 것이 많아 하나씩하나씩 이수동에게 물어 나간다.

 

“저렇게 바구니로 내리면 게 다리가 온전할까?”

 

“하역 중에는 상처가 많지 않은데 보통은 운반 중에 다치죠.”

 

“비행기로 들여오면 안 될까?”

 

“러시아산이나 일본산은 거리가 가까워 대량으로 들어오므로 주로 활어 운반선으로 수입합니다만 노르웨이산이나 미국산은 비행기로 들여오곤 하죠.

 

“킹크랩 다리가 중요하다고 하던데?”

 

“그렇습니다. 다리 하나 절단되면 판매가격이 30퍼센트 떨어지죠. 두 개 절단되면 반값으로 되고요. 그래서 수시로 수족관을 둘러보며 다리를 점검합니다. 오죽하면 게 다리를 보험에 들어야 할 판이겠어요.”

 

“마라도나 다리만큼 잘 챙겨야겠군.”

 

“그럼요. 금쪽같은 다린데요.”

 

“금년 한일월드컵 선수들의 다리 급수가 다르듯 게다리에도 급수가 있겠군.”

 

“당연히 그렇지요. 10킬로그램짜리 킹크랩 생각해보십시오.”

 

하역한 킹크랩은 물탱크에 실려 수족관으로 이동된다. 게 수조차를 따라 임 사장과 이 이사는 수족관이 있는 회사로 갔다. 넓은 막사에 다섯 평쯤 크기의 수족관이 수십 개 늘어서 있다. 게의 크기별로 수족관이 구분된다. 보통은 일주일 내 소비처로 수송되지만 늦어도 한 달 전에는 배달하는 게 좋다.

 

“킹크랩은 집게발이 강하다고 하던데?”

 

“집게발이 워낙 강해서 저들끼리 싸우다 잘리는 경우가 많아요.”

 

게는 스트레스를 잘 받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스로 다리를 잘라버리기도 한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하는 것과 비슷하다. 게 전용 봉합수술 병원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부분에서 두 사람은 웃었다.

 

“지금 내리는 킹크랩의 크기는 어느 정도 되지?”

 

“보통은 마리당 1~4킬로그램 되지만 오늘 가져온 것은 평균 2킬로 정도 되겠네요. 간혹 10킬로 이상 되는 초대형도 잡히지요. 수컷의 수명은 30년, 암컷은 25년 정도 된답니다.”

 

“더럽게 오래 살기도 하네.”

 

“말씀 마이쇼. 사람은 백년이나 살겠다고 온갖 건강식품 찾잖아요.”

 

이수동은 갑자기 사투리를 섞었다.

 

“이것들은 어디서 살지?”

 

“킹크랩은 바다의 진흙 또는 모래바닥에 몸을 묻고 산답니다. 한류에 서식하고 높은 수온에 저항력이 약해 수온은 섭씨 0∼10도라네요. 그러니 서식지의 깊이는 북쪽일수록 얕아 북극해에서는 약 30미터, 일본 홋카이도에서는 약 200미터, 동해 남부에서는 300미터쯤 되죠.”

 

그는 전문가라도 되는 듯 설명을 이어간다.

 

“암컷과 수컷, 어린 게와 큰 게의 서식처가 다르죠. 어린 대게와 성숙한 암컷은 주로 수심 200∼300m에 서식하고 수컷은 300m 이상에서 서식하고요.”

 

그의 설명은 더 깊이 들어간다.

 

“작은 물고기를 비롯해 달팽이, 성게, 조개, 작은게 등 다양한 해양생물체를 잡아먹고 살죠. 일반적으로는 수컷이 암컷보다 체형이 큽니다. 죽은 물고기도 먹고요. 먹이가 없으면 동족끼리 잡아먹는데, 그마저 없으면 자기 다리를 잘라서 먹기도 한답니다. 야행성으로 이동반경은 십리나 된다니 대단하죠.”

 

“자네 진짜 공부 많이 했군.”

 

“알 낳는 시기는 안 물어 보세요?”

 

“그래 언젠데?”

 

“산란기는 4, 5월인데, 암컷이 먼저 깊이 20∼30미터의 해조가 무성하게 자라는 얕은 곳을 찾고 수컷이 그 뒤를 따른답니다.”

 

“게를 잡는 시기는?”

 

“스노크랩 대게는 11월에서 5월까지지만 킹크랩은 1년 내내 잡죠.”

 

이수동의 설명에 따르면, 대게는 몸통에서 뻗어나간 다리가 대나무처럼 생겼고, 껍질이 얇고 살이 많으며 맛이 담백하지만, 킹크랩은 갑각 및 다리가 자줏빛을 띤 붉은색이고 배는 노란색을 띠나 삶으면 붉은색을 띤다. 킹크랩 집게다리는 오른쪽 것이 크고 모든 다리에 가시가 나 있다. 배는 수컷이 이등변삼각형에 가깝고 암컷은 원형에 가깝다.

 

“다리 수가 대게는 10개인데 킹크랩은 8개라고 하던데?”

 

“아닙니다. 대게든 꽃게든 왕게든 모두 10개죠. 다만 킹크랩 왕게는 얼핏 보아 8개로 보이는데 새끼다리가 퇴화해서 껍데기 안쪽에 있어 잘 안 보이기 때문이죠.”

 

“킹크랩의 집게 다리 크기가 왜 다르지?”

 

“오른손잡인가 봐요. 오른쪽이 왼쪽보다 훨씬 크다니까요.”

 

“생존력이 대단한 놈이군.”

 

킹크랩은 대게에 비해 생명력이 월등히 좋아서 유통하기 용이한 편이라 전국에서도 킹크랩 전문점이 많이 생길 수 있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역한 게를 실은 수조차가 수조막사로 향하자 임동박과 이수동은 수조차를 따라 갔다. 수족관 회사의 강선엽(55) 사장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사 수조에는 커다란 게들이 집게발을 들고 위용을 뽐내고 있다. 가끔 다리가 한두 개 잘린 상이용사도 보인다. 게는 잡아먹힐 위기에 처하면 다리를 떼고 도망치는 습성이 있다. 떨어진 다리는 몇 개월 내에 새로 나기도 하지만 상품 가치는 떨어진다. 이런 게의 습성 때문에 수송 중에는 다리를 노끈으로 묶어 놓기도 한다.

 

생물 장사는 시간이 생명이다. 다리가 잘린 게는 싸게 팔고, 혹시 운송 중에 압사라도 하면 단골들에게 연락해 반액 세일을 한다.

 

“저기 다이빙하는 녀석 봐. 왜 저러지?”

 

“게는 죽기 전 마지막 발광을 하죠. 힘이 세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점프를 하고요.”

 

수족관에서 활어들이 난리를 친다면 상태가 안 좋은 활어들이 많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수족관이 잠잠하면 싱싱한 생선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편안히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게는 운송 중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동박이 수입절차가 궁금해서 강 사장에게 묻는다.

 

“러시아에서 수입한다면 검역과 통관은 어떻게 하나요?”

 

“러시아 수출자가 발급받은 검역증 원본을 수입자가 수령해서 한국에서 수산물검역 및 식품검사 시 제출하고 신고해야 합니다. 수십 개 유해성분 식품정밀검사를 받은 후 세관에 수입신고 하여 면허받아 세금 등을 납부하고 통관합니다.”

 

식품정밀검사 기간은 활어일 때는 2일 정도 신선, 냉동, 훈제일 때는 약 10일 소요된다.

 

“포장에 한글표시도 하고요.”

 

“상기 조건에 부적합할 경우는 반송 및 폐기 처분해야 되겠군요.”

 

수족관을 둘러본 후 강 사장이 임동박과 이수동을 속초항 해변 횟집으로 안내했다. 수족관에서 갓 꺼내온 킹크랩의 요리를 식당 주인에게 부탁했다. 복분자의 안주로는 이 이상은 없을 것이다.

 

“강 사장님께선 얼마 가격으로 사주실 수 있습니까?”

 

임동박이 러시아 게를 수입하여 공급해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강 사장은 흥미를 보였다. 조건만 맞으면 거래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하면서,

 

“킬로당 만원에 공급해주십시오. 그러면 계속 구매하겠습니다.”

 

수족관에서 보관하는 중 폐사하는 위험성을 감안하면 이 가격이 적정하다고 주장하는 강 사장. 그는 수족관에서 보관한 게를 영일관에 만오천 원으로 공급하면 서로가 만족하는 공급 연결고리를 이어갈 수 있다고 부언했다.

 

킹크랩은 대부분은 라이브 상태로 러시아와 일본으로부터 수입한다. 러시아산은 대부분 동해항이나 묵호항을 통해 들어온다. 일본산은 홋카이도에서 부산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킹크랩을 삶는 노하우가 있습니까?” 임 사장은 물었다.

 

“킹크랩을 아이스팩을 위에 올리고 찬물에 20분 정도 둔 후 입 부분을 칼로 쿡 찔러 아래로 향하게 하고 짠물을 뱉어내게 합니다. 칫솔로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습니다. 살아있을 수 있으므로 장갑을 끼고 손질해야 하고요. 킹크랩은 살아 있는 걸 바로 쪄먹을 수 있지만, 대게는 바로 쪄먹으면 안 됩니다. 다리 떨어지고 내장이 쏟아지기 때문이죠.”

 

그는 추가 설명을 잊지 않는다. 킹크랩은 배딱지가 배에 바짝 붙어 있을수록 좋다. 냄새 나지 않고 배가 단단하고 살이 꽉 차며 들어봐서 무거운 것이 좋다. 암컷에 비해 수컷이 더 가치가 높은 것은 암컷은 알 무게 때문에 수컷에 비해 같은 무게라도 살이 적기 때문이다.

 

“킹크랩 3마리 잘 삶아서 포장해주세요. 서울의 게요릿집에 보여줄까 합니다.”

 

임동박은 강 사장에게 부탁했다. 게 수입 운반 사업을 결심한 임동박은 싱싱한 킹크랩 맛을 오영애게게 보여주고 싶었다. 속살을 워낙 좋아하는 여자라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