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항공기를 압류하라

항공기를 압류하라(제 9회)

오선닥 2015. 8. 22. 20:57

여름휴가를 이용해

연인 박태훈과 연가람의

DMZ자전거캠핑 참여

통일을 위한 활동?

 

 

 

 

항공기를 압류하라

 

제 9회

 

 

DMZ자전거캠핑

 

박태훈(27) 과장과 연가람(24)이 사장실로 찾아가 여름휴가를 함께 쓰겠다고 말했을 때 황지명(48) 사장은 약간 당황했다. 직원 열 명도 안 되는 회사에 두 사람이 한꺼번에 쉬면 ‘소는 누가 키우느냐’고 할 만한데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다.

 

“특별한 계획이 있어선가?”

 

“6개월 전부터 DMZ자전거캠핑 계획을 세웠습니다.” 박 과장이 대답했다.

 

“캠핑이라면 숙박한다는 뜻 아닌가. 둘이서?”

 

“아닙니다. 150명 정도의 단체 캠핑으로 남성과 여성별로 나뉘어서 합니다. 사장님께서 걱정하시는 부분과는 좀 다릅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가람 씨가 다른 남성팀에 섞일까 봐 그래.”

 

사장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심금을 웃기고 있었다. 태훈은 사장의 생각을 고맙게 받아들이면서도 과분한 염려에 미소가 새나왔다.

 

“이번 휴일은 저희들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휴가이고, 다른 하나는 자원봉사입니다.”

 

“자원봉사라니?”

 

“저희 두 사람은 ‘통일을위한청년모임’ 단체의 회원입니다. 매월 회비도 내고요.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단체로 자전거캠핑을 실시합니다.”

 

사장이 선뜻 허락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가려 하자, 태훈은 두 사람의 휴일을 합쳐도 6일밖에 안 되니 한 사람으로 간주해서 허락해 달라는 말까지 했다.

 

“통일의 기초를 닦겠다는 너희들을 말릴 수 있겠냐. 그럼 오케이.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매출을 많이 올렸으니 휴가비로 자전거 한 대씩 선물하리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보너스.

기분은 이런 때 째지는 법.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지금까지 성과가 좋았어. 특히 박 과장이 수고 많이 했어.”

 

“사장님, 칭찬하시는 김에 연가람 씨도 칭찬해주세요.”

 

그런 말은 왜 하느냐는 듯, 가람이 태훈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황 사장은 웃었다.

 

“너희들 일심동체 아냐? 휴가도 같이 쓰면서. 그럼, 가람 씨도 수고했어. 다들 안전하게 다녀와요.”

 

조연이 살아야 주연이 사는데 연가람의 오늘 조연 역할은 약간 함량미달이다. 그래도 휴가 허락을 받고 자전거 선물까지 받았으니 결과적으로는 괜찮다.

 

사장실을 나온 두 사람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들고 가까운 벤치에 앉았다. 사장이 칭찬하지 않았더라도 가람이 태훈을 감탄해마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박태훈은 맡은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한다. 노보로 향하는 여객 158명을 이미 확보했다. 노보 손님 138명과 모스크바 환승 손님 20명. 노보 손님은 바이칼 관광 단체 손님을 많이 확보했다. 학술 세미나, 스포츠, 예술관련 행사 손님이 다수 포함돼 있다. 기획여행상품을 개발하여 대학과 체육단체, 회사 등을 두루 접촉하면서 여행객을 확보하기도 했다.

 

“오빠는 손님 모으는 재주가 탁월해. 비결이 뭐에요?”

 

“한마디로 노력. 사람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노력이지. 호기심이란 상황에 따라 바뀌므로 포인트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구.”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했는데?”

 

“단체의 경우 개별 요원들의 취향을 살펴 공통점을 취합한 후 리더에게 접근하지. 리더들이 깜짝 놀라.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느냐고. 사전에 조사하고 연구한 노력을 그들이 알 리가 없지. 난 목표를 세우면 집중하는 사람이야. ”

 

“그런 방법으로 절 꼬드겼군요.”

 

“넌 원래 내 밥이었어. 새우깡에 고래밥이랄까. 한 사람 정도는 간단해. 웃는 모습에 찜해버렸지.”

 

“다른 건 없고?”

 

“예쁘다고 말하는 건 널 모욕하는 표현이야. 당연한 걸 말하는 것은 사족 같지 않아?”

 

“예쁘다, 사랑한다, 그런 말은 사족이 아니잖아요.”

 

“내게는 그렇다는 거야. 뱀의 다리 보기 싫지? 그런 거라니까.”

 

“아무데나 갖다 붙이지 말아요.”

 

그녀의 말 속에는 언중유골의 불만이 들어 있다.

그 뼈를 가려내는 재주가 태훈에게 있다.

 

“그럼 내 손으로 꽃을 드려? 어메이징한 나의 피앙세여! 하고?”

 

“과장하지 말아요. 느끼해.”

 

“돌고래도 구애를 할 때는 해초를 입에 물고 암컷한테 바친다니까.”

 

“태훈 씬 모르는 게 없어.”

 

엉뚱하지만 젊었으니까 이런 농담이 통한다.

 

여행업은 박태준에겐 인생의 승부수다. 비전과 열정을 가진 사장을 만난 것도 하나의 복이다. 배상금으로 받은 총액 20억원을 전적으로 여행업에 투자하겠다고 황지명 사장이 말했을 때, ‘나의 꿈을 키울 데는 여기로구나’ 박태훈은 주저 없이 결심했다. 시베르항공과 10년 계약을 해둔 상태이므로 이 기간 내 자립할 수 있으면 된다. 이런 부분은 대체로 사장과 아귀가 맞는 생각이다.

 

 

이튿날 자전거를 인수했다. 수입브랜드가 아니라 국산으로 비교적 성능이 좋은 것이다.

 

“가람 씨 우리 회사 합류 잘했어. 백만 원짜리 자전거도 선물 받고.”

 

집으로 가지고 가기 전 여의도광장에서 시운전할 때 태훈이 말했다.

광장은 한창 공원화작업 중이었지만 빈 공간을 돌아다니며 자전거 데이트를 즐겼다.

 

“다 오빠 덕분이야. 9단짜리 MTB잖아요.”

 

산악바이크(Mountain Bike) 용으로 충격흡수장치가 있어 오르막길과 험한 길을 달리기에 편리한 자전거다. 웬만한 도로에서 시속 40킬로미터는 기본이다. 내구성과 힘전달력이 뛰어나 가성비가 좋은 편이다.

 

“알루휠보다 카본휠이 가벼워 좋긴 하나 카본은 잘 휘어지는 것이 단점이니 몸무게에 맞춰 골라야겠어.”

 

“우리 자전거는 알루휠이니 다이어트 하지 않아도 되겠지?”

 

“자전거투어를 위해서는 몸무게 관리를 꾸준히 해야죠.”

 

건강관리에 자전거만한 게 없다고 두 사람은 동의했다.

 

요즘 자전거는 경량화하는 경향이 있다. 안장, 프레임, 포크, 핸들 등의 재질에서 그렇다. 다양한 재질, 색상, 형태의 것들이 있어 취향대로 장착한다. 그립은 일반적으로 고무 재질로 되어 있다.

 

타이어를 제외한 바퀴 전체의 형태를 지탱해주는 뼈대 부분을 휠이라고 한다. 자전거의 묘미는 두 바퀴로 달린다는 데 있으므로 휠은 중요하다.

 

“그래서 앞뒤 두 개의 휠을 휠셋이라고 하는군요.” 가람이 이해했는가 보다.

 

“우리 둘이 시코여행사의 세트가 아닐까? 말하자면 시코셋?”

 

“그렇게 갖다 붙여도 말이 되네요.”

 

태훈이 이런 농담 후 늘 따르는 습성이 발동한다. 가람의 허리를 안고 볼에 키스를 했다. 그녀가 잡고 있던 자전거가 넘어질 뻔했다.

 

변속레버는 기어의 체인 위치를 바꾸어 힘을 조절하고, 스프라켓은 자전거 체인과 맞물리는 뒷바퀴에 있는 톱니바퀴로 페달의 힘을 체인을 통해 전달받아 뒷바퀴를 회전시킨다.

 

부품 설명만 하면 되는데 사랑에도 스프라켓처럼 이빨이 잘 맞물려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태훈이 담임선생 같다고 가람은 말했다. 그는 경험자로서 계속 선생이다.

 

“세게 달리다가 앞 브레이크 잡으면 앞으로 넘어가는 거 알지? 앞뒤바퀴를 혼돈하면 안 돼.”

 

페달을 접어 부피를 줄일 수 있어서 좋다. 서스펜션은 스프링이 들어 있어 진동이나 충격을 흡수해 승차감을 좋게 한다.

 

 

광복절을 기념하는 자전거캠핑은 2박3일 예정으로 이뤄진다. 8월 13일 목요일 오전 출발하여 15일 토요일 오후 돌아온다. 2015년에 이 글을 읽는다면 광복절이 17년 전과 같은 토요일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행사 3일 전 저녁 태훈은 동갑내기 캠핑 3조장 윤식을 만나러 뚝섬한강공원으로 갔다. 장비와 복장을 갖춰 입고 나갔는데 자전거 장비와 행사 관련 사항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인터넷 용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목욜 정라는 오후 2시 문산역 앞?”

 

태훈이 정라(정식 라이딩) 출발이 2시냐고 물었다.

윤식은 태훈의 헬멧과 윗옷과 바지를 보고 감탄했다.

 

“뚜껑 색깔 좋고, 저찌 볼록하고 쫄바지가 타이트해, 참 멋져. 이것 사라고 누가 뽐뿌질 했어?”

 

“이걸 다 공구했잖아.”

 

누가 구매를 부채질한 것이 아니라 공동구매 했다고 말했다.

 

“우리 조의 번짱이 누가 될지 모르지만 먹벙에 필요한 머니 가져와야 할 텐데……·.”

 

먹거리 번개모임을 위해 번개대장이 돈을 제대로 준비할까 걱정하는가 보다.

태훈이 한마디 한다.

 

“그렇다고 배 빵꾸 나게 먹으면 안 될 텐데…….”

 

“배가 부르더라도 라이딩 속도를 샤방샤방 20킬로 넘지 않게 달리면 괜찮아.”

 

“부드럽게 달리는 건 내 스타일 아냐. 난 업힐 짱이잖아.”

 

태훈은 실로 오르막길엔 자신이 있다. 윤식이는 그걸 잘 안다.

 

“태훈 넌 역시 최고의 엔진을 자랑하는 훈남이야. 가람 씨가 좋아하는 이율 이제 알겠어.”

 

“혹시 비오면 어떡하지? 훈훈한 먹벙으로 진행할 건가?”

 

“그래야 되겠지. 먹기 번개모임도 재밌으니까.”

 

“창호는 왜 참여 안 한다고 하지?”

 

“어제 살짝 자빠링했대. 청파동에서 점프해서 집까지 끌바했다더군. 이번 정라는 패스라나.”

 

넘어져 자전거를 끌고 갔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번 정식 라이딩은 불참한다는 소식.

 

“근데 많이 다쳤어? 자전거는 미케닉한테 봐달라고 하면 될 테고. 집에서 로라나 타야겠군.”

 

기사한테 수리 받아 집에서 로라(바퀴 아래 설치한 기구) 위에 얹어 놓고 자전거 타며 운동하는 것도 마니아들에겐 흔한 운동 습성이다.

 

 

8월 13일 오후 2시

문산역 앞

 

‘자연을 품다, 인간을 담다’

거창한 슬로건으로 DMZ자전거타기 행사가 시작됐다.

 

특별열차의 객차 내에 참가자의 자전거를 적재해 DMZ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전거투어는 자연친화적 교통수단인 자전거를 이용해 최고의 청정지역이며 민간인 통제구역인 DMZ의 자연 경관을 만끽하면서 최상의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코스별로 안전요원이 배치된다.

 

“가람 씨는 특히 안전규칙에 귀 기울여야 해.”

 

DMZ 위험지역이기 때문에 태훈이 가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진지하게 귀 기울였다.

 

“벌써 긴장되네요. 초짜들은 다 이런가 봐요.”

 

문산역에 도착하여 150명은 화석정과 반구정을 지나는 자전거코스 ‘파주 평화누리길’ 32킬로미터와 임진각을 출발해 군순찰로를 따라 초평도를 돌아오는 ‘DMZ 자전거투어코스’ 17킬로미터를 진행한다.

 

출발 전 문산역 앞에서 캠핑대장은 회원들에게 주지사항을 전달했다.

 

“자전거투어 루트는 민간인 통제 구역입니다. 스텝들의 안내를 받고, 환경훼손을 최소화하고, 사진 찍는 구역이 따로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자전거는 주로 마을안길, 논길, 제방길, 해안철책, 강하류, 역사유적이 있는 길 등 비포장이거나 기존 도로를 이용했다.

 

환경전문가의 비무장지대 생태계 설명이 있었다.

 

DMZ는 폭 4킬로미터, 길이 248킬로미터에 이른다. DMZ평화누리길은 서해안 인천 강화도에서 동해안 강원도 고성까지 철조망을 따라 이어지는 보행·자전거길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2017년 완공될 예정으로 명품트레킹코스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비무장지대에는 샤향노루, 산양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 106종을 포함해 총 5100종가량이 서식하고 있다. 생물종다양성 보존을 위해 중요한 곳이다. 특히 강화 갯벌지역은 지구상에 700마리밖에 없는 저어새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멧돼지 나올까 겁나지?”

 

태훈이 가람의 기분을 떠봤다.

 

“남겨두고 혼자 도망가려고?”

 

“그대 하는 거 봐가면서.”

 

이번 자전거캠핑은 (사)통일을위한청년모임이 주최했다. 본 단체는 5년 전 통일부에 등록된 비영리단체이다. 특히 통일에 관심이 많은 젊은 청년들이 가입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태훈은 단체가 결성될 당시 대학 재학 중 가입했고, 가람은 그의 권유에 의하여 작년에 가입했다.

 

DMZ자전거캠핑은 금년이 세 번째이지만 가람은 처음이다. 그녀는 자전거 투어보다 캠핑에 더 관심이 많았다.

 

자전거에 패니어(pannier)라는 짐가방을 부착하고 훌쩍 떠나는 라이더의 기분은 바이크족만이 느끼는 색다름이다.

 

저전거 캠퍼는 집을 자전거에 이고 다니는 셈이다. 텐트와 침낭, 옷과 식량 등 의식주를 자전거에 모두 담는다. 안전장구와 야영장비로 텐트, 침낭, 종이컵, 수영복, 물놀이장비가 필요하다.

 

자전거를 타는 것과 인생을 사는 것은 닮은 점이 있다. 둘은 롤러코스터와 같다. 성공의 정상이 있는가 하면 실패의 바닥도 있다. 넘어지고 일어서는 것도 같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는 것도 같고요.” 가람이 말했다.

 

“자전거 동호회원 자격이 있군.” 태훈이 말했다.

 

 

초평도 부근 야영장에서 짐을 풀었다.

땀을 훔치기 전에 회원들은 냉커피부터 찾았다.

5명씩 30개 조로 나눴다.

 

“와, 대형 가마솥이네. 저기다 밥을?”

 

“이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주위에서 감탄을 연발했다.

가마솥 옆에는 대형 국통이 준비돼 있었다.

 

주행사 내용은 텐트 설치 대회, 장기자랑, 캠핑 요리대회, 모닥불토크, 서바이벌게임, 열기구체험, 행글라이더, 모래사장 씨름대회 등 다양했다. 경품행사도 포함됐다.

 

밤에는 모닥불에 둘러앉았다. 이야기는 끝이 없고 불 피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늦은 밤 낭만은 짙어만 간다.

 

개별 휴식 시간에 태훈과 가람, 친구 윤식 세 사람이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간을 가졌다.

 

태훈이 시골 농촌을 생각하며 시 한 구절.

 

“황소 한 마리 누워 어둠 씹어 먹고 편히 쉬는 밤.”

 

윤식도 질세라 한 구절.

 

“접동새 밤 지새기 외로워 처량한 울음 내는 고향 여름밤.”

 

가람은 하늘을 보고 한 구절.

 

“호박잎에 저 반달 싸먹고 싶구려.”

 

호박잎 대신 들깨잎으로 싸면 더 맛있지 않으냐고 태훈이 말했을 때, 가람은 초승달이라면 그러는 게 좋겠다고 응수하자 셋은 동시에 크게 웃었다.

 

아침에는 전날 밤 모닥불에 굽고 남은 소시지와 햄을 몽땅 넣은 김치찌개와 밥을 먹었다.

 

통일이 되어 남북 청년들이 비무장지대에 조성할 ‘세계평화공원’에서 함께 캠핑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해볼까. 미래는 기대할 만한 시간이라고 했는데.

 

2박3일의 자전거캠핑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열차 안의 청년들 모습은 내일의 희망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시민운동가였잖아.”

 

태훈이 말했을 때 가람은 대통령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여기 한 명 더 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