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더 세월

더 세월(제 6회)

오선닥 2014. 8. 26. 14:44

 

위험 현장에

진입해야 하나?

정답은 없다

현장 지휘자와 구조대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더 세월

(The Sewol)

 

제 6회

 

 

건져 올리기

 

사고 발생 30여분 후 오전 9시 30분경 두 대의 헬기가 구조작업에 임했다. 목포해경 511호가 연방 승객을 실어 올렸다. 7명 정원을 초과해서 최대한으로 승객을 실은 511호가 뒤로 빠지자 그 자리를 대신해 513호가 들어갔다.

 

헬기 513호는 호버링(hovering: 공중 정지 제자리 비행)을 하며 바구니를 기울어진 배 후미(後尾)로 내려보냈다.

 

“바다에 사람이 보인다!”

 

선미 쪽 해상에 표류 중인 사람을 발견하고 헬기는 고도를 낮춰 접근했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사람이 아니고 각종 부유물이 떠다니는 중이었다. 세월호의 탑승객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선회 수색만 할 뿐이다.

 

이때 기울어진 선미의 3층 갑판 쪽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구명조끼를 입은 몇 명이 웅크리고 있었다. 배에 내린 구조대원들은 그곳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헬기 두 대에 해경소속 구조대원은 세 명뿐이었는데 이들은 최대한 미끄러지지 않도록 애를 썼다. 미끄러졌다가는 30여 미터 아래 바닷속으로 처박히게 된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아주머니와 노인들이었다. 평상시엔 옥외 복도였던 곳으로 사람이 머물 곳이 아니었는데 승객들은 겁에 질린 채 아무 말도 없었다.

 

구조대원 한 사람은 난간 위를 맡고 다른 사람은 난간 뒤편으로 넘어가 헬기로부터 복도까지 바구니를 내리게 했다.

 

“왜 사람이 이리 많아?”

 

구조대원 P경위는 그때까지도 사람들이 배 안에 그렇게 많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섯 명 째를 바구니로 올려 보내고 마지막 일곱 번째 사람을 구조했다.

 

구조대원 Y경장이 지쳐 늘어져 있는 서정민을 억지로 구조선에 태우려 했다.

그러나 서정민은 배 안에 있는 사람을 놔두고 내릴 수 없다고 역정을 부렸다.

 

“선실이건 복도건 아이들이 무더기 있어요. 마주치는 그들의 눈빛을 보세요. 그들을 어떻게 저 안에 그냥 둡니까?”

 

선실 안은 혼란 자체였다. 물이 들어오고 배가 급속도로 기울었다. 승객들은 미끄러지는 정도가 아니라 날아다니고 있었다. 머리와 허리를 다친 사람들이 많았다.

 

물이 들어와 3층 베란다로는 이제 나갈 수 없고, 학생들은 4층 베란다로 올라가고 있었다. 4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편의점 문을 고정해줘야 했다. 문을 잡아준 사람은 여승무원 박지영 씨였다.

 

그녀는 분주히 돌아다니며 구명조끼를 승객들에게 전해주고, 다친 사람들에게 휴지를 건네줬다. 이후 그녀는 옆으로 굴러 떨어져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나무로 된 캐비닛에 올라 타 둥둥 떠다니다 출구 쪽으로 나온 학생도 있었다.

 

한 남자는 힘이 빠져 4층 베란다로 겨우 올라갔지만 ‘여기서 이제 죽는구나’ 생각하는 찰나 소방호스가 내려왔다. 그 줄을 잡고 올라갔다. 함께 줄을 잡은 젊은 여성이 있었는데 줄을 놓치고 말았다. 그 여성은 이순애였다. 서정민이 찾고 있는 사람이라고 들었을 때 그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3층에 물이 빠르게 들어오면서 출입문을 줄줄이 삼키고 있었다. 화물기사 G씨는 탈출을 외치며 학생 10여 명을 잠수하라고 밀었다. 4층에 있던 승객 30여 명도 출입문으로 잠수해 탈출했다. 필사의 잠수탈출로 승객 70여 명이 목숨을 건졌다.

 

바닷물이 밀려드는 상황에서도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받고 학생들은 이를 따랐지만 몇몇 학생은 지시를 따르는 대신 선체를 기어 올라와 탈출해 생존할 수 있었다. 어른들은 방송을 믿지 않고 아이들만 대부분 믿을 뿐이다.

 

배는 이제 90도로 넘어갔다. 물이 너무 빨리 차 들어왔다. 30~40명이 물을 따라 위쪽으로 떠올랐다. 물을 따라 떠올랐던 몇몇은 한순간에 물에 휩쓸려 보이지 않았다.

 

“선실 유리창 안에 사람들이 있다!”

 

선수 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배 주위를 돌고 있던 해경123정이 발견했다. B경장은 급히 망치와 손도끼를 들고 세월호로 옮겨 탔다. 동료 두 사람의 도움을 받고 구조된 승객과 함께 유리창 깨는 작업을 했다. 망치로 가격해도 깨지지 않아 건네받은 쇠파이프를 들고 때렸다. 순간 ‘퍽’ 하고 유리창은 깨져 나갔다.

 

두 사람을 꺼낸 후 배는 점점 더 기울어졌다. 사람들의 손이 더 닿지 않아 123정에서 건네준 밧줄을 내렸다. 사람들이 줄을 잡고 올라왔다. 이렇게 해서 6명이 구조됐다. 끌어올리는 중 오른손등이 유리 파편에 베여 피가 흘렀다.

 

구명조끼를 입고 아직 객실에 갇혀있는 아이들은, 창문 너머로 친구들이 구조되어가는 모습을 쳐다보고 희망을 가졌을 것이나 그것이 끝이었다.

 

123정에 탄 조난자 28명은 옆의 낚싯배에 옮겨져 팽목항으로 수송됐다.

 

9시 40분경 세월호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배에 있는 승객은 헬기로 올려지고, 바다에 뛰어든 승객은 구명보트에 건져졌다. 구명조끼 입은 승객들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 무렵 진도VTS와 세월호 간의 교신이 두절됐는데 선장과 승무원들은 배를 버리고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당연하다.

 

세월호는 오전 9시 40분 마지막 교신에서 “침수 상태 확인 불가하고, 해경정이나 일반 선박은 50미터 접근해 있으며, 승객들은 좌현으로 탈출시도하고 있으나 이동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서 “배가 완전 좌현으로 기운 상태이고 지금 항공기까지 다 떴다”는 교신도 남겼다.

 

세월호가 가라앉자 구명조끼 입은 승객들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선장과 승무원들이 구조됐고, 이들과 함께 필리핀 출신 선상 가수 부부도 구조됐다.

 

본선에는 25인승 고무보트 46개가 장착돼 있었으나 하나밖에 풀리지 않았다. 나머지 고무보트 모두 페인트가 굳어 고착돼 있었는데 얼마나 단단했는지 마치 못질해 놓은 것 같았다. 일정 수면하에서 자동으로 펴지게 돼 있는데 꿈적도 하지 않았다.

 

한 학생이 108도로 기운 배 안에서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배가 기울고 또 기울고 있어. 엄마 아빠 보고 싶어.”

 

세월호에서 밖으로 보낸 마지막 메시지로서 10시 17분을 가리켰다.

 

얼마 후 10시 30분경 세월호는 선수 일부만 남기고 사실상 완전 침몰했다.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한 후 40여 분 만에 172명을 구조했다.

 

배는 탑승객 476명 중 304명을 끌어안고 물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그중 학생 246명이 배 안에 갇힌 채 물속 어둠으로 사라져 버렸다. 생존율 선박직원 100%, 일반승객 66% 단원고학생 23%, 이건 불균형의 극치다.

 

 

 

순진한 학생

 

이런 와중에 참으로 태연하고 순진한 학생이 있다.

 

9시 40분 무렵 연극부 부장 시연 학생은 세월호가 전복해 침몰하는데도 위급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배가 기울고 있어.”

 

“걱정말고 가만히 있어. 엄마가 가서 구해줄게.’

 

“엄마,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잖아.”

 

그러곤 통화가 끊겼다.

 

다시 통화가 연결됐을 때는 10시경이었다. 딸은 배가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혼란 중에 발에 화상을 입어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 구명조끼 입고 구명보트 기다리고 있어. 나가면 전화할게.”

 

엄마는 한참을 기다렸으나 전화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10시 7분경.

 

“지금 방 안에 살아 있어요. 저희 학교 학생 말고 다른 승객들이 구조 중인가 봐요. 90도 이상 기울었는데.”

 

이어 그녀는 구명조끼를 입고 구명보트에 타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나가면 다시 전화할게, 그게 마지막 통화였고 구명보트도 타지 않았다.

 

전날 엄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딸이 좋아하는 고기집에서 식사까지 했었다. 이번 수학여행 장기자랑에서 댄스 공연까지 준비했었는데, 엄마는 눈물을 훔쳤다.

 

시연 양은 학교에서 튀는 학생이었다. 렌즈가 두꺼운 큰 안경을 썼고, 빨간색 스쿠터를 탔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와 기타연주를 시작했지만 이후 디지털음악 작곡으로 옮겨갔다. 얼마 전에는 연극 감독으로 활약하는 모습도 보였다.

 

버스가 출발할 무렵 뒤에 다른 차가 기다리고 있어 매일 아침마다 해줬던 대로 딸을 안아주지 못했다. 엄마는 “오늘은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문자를 보냈다.

 

최근 몇 달 사이 시연 양의 옷차림이 달라지기도 했었다. 머리를 기르고 예전보다 치마도 자주 입었다. 첫사랑을 만난 것이다.

 

 

  

구조의 원칙

 

세월호가 전복된 후 해경이 도착했지만 물에 떠 있는 사람만 구하고 전복된 배 안으로 진입하여 갇혀 있는 승객들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가라않는 세월호에서 막 구조되어 해경보트에 오른 서정민은 해경의 이런 구조 태도가 못마땅했다. 9.11사태 때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간 미 소방대원이 있지 않았던가.

 

승객 구조에 힘이 다 빠져버린 서정민이었지만 해경의 행동을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없었다. 숨을 헐떡이며 따졌다.

 

“떠 있는 사람만 건질 게 아니라 배 안으로 들어갔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희들은 구조대원이지 잠수대원은 아닙니다.”

 

해경의 사무적 답변에 서정민은 목소리에 흥분을 넣지 않을 수 없었다.

 

“위급한 상황에 물불을 가릴 때냐고요?”

 

“저희들에겐 매뉴얼이 있고, 또 규칙대로 행동했다고 봅니다.”

 

옆에 있는 해경 간부가 대화를 나누는 부하 해경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이 승객은 깐깐한 사람 같으니 가만히 있어라’는 눈치였다.

 

이번에는 간부가 직접 나섰다.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저희들의 불합리성도 있지만 매뉴얼에 없는 행동은 문책의 사유가 됩니다. 고무줄처럼 조절할 수 없는 게 저희들 위칩니다.”

 

이런 개불알 같은 말이 어디 있어.

서정민의 심정은 흥분과 분노가 비빔밥이 돼버렸다.

 

따지는 승객의 카멜리온 같은 얼굴빛을 보았는지 간부 해경은 서정민을 조용히 옆으로 불러 설명해 나갔다. 다른 승객이 듣지 않도록. 물론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승객들이 대화에 관심을 둘 리도 없지만.

 

미국해안경비대(USCG)도 현장에 투입하는 모든 선박마다 다이버가 배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이버가 없는 경우 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게 간부의 설명이다.

 

서정민은 현장의 위급성을 감안해야 되는 거 아니냐, 따지고 싶었다.

 

“항공기와 선박의 도착이 늦은 건 사실이 아닌가요?”

 

해경 헬기는 사고 30분 후 현장에 도착했고, 경비정은 그로부터 5분 후 도착했다. 빠르다고 할 수 없으니 비판은 받을 만하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정작 필요한 해경 122구조대는 전용헬기가 없어 두 시간 뒤 현장에 도착한 걸로 기록됐다.

 

해경 간부는 이를 의식하고,

 

“USCG는 정책적으로 선박은 2시간 이내 현장에 도착하도록 하고, 항공기는 30분 내 이륙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해경도 규정상으로는 위반한 것이 없는 셈이지요.”

 

“규정이라는 게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만든 거 아닙니까. 어떻게 책임회피용으로 말할 수 있나요?”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들 입장이 곤란합니다. 혹시 선생님의 직업이?”

 

“그건 왜? 해운물류회사 사장이요. 선장을 해본 사람이어서 답답해서 그럽니다.”

 

“그렇다면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책임이 선장에게 있다는 사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니 제가 흥분하는 거 아닙니까. 그 양반은 선장도 아닙니다. 선장의 ABC도 모르는 사람이 책임을 맡았으니 이런 결과가 된 거 아녀요? 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모두 수장시킨 겁니다. 아~ 못 참아!”

 

“선생님 진정하십시오. 선생님은 조난자십니다. 안정하셔야 합니다.”

 

서정민이 뒷골을 만지면서 넘어지려하자 해경이 그를 부축했다.

 

경비정은 불법어선단속, 해상치안유지, 해양오염방지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해경이 수사에 너무 치중한다는 비난을 받지만 전체 인력의 5%에 불과하다. 해경의 활동 중에 인명구조가 있지만, 세월호의 경우에는 특수훈련 및 장비를 갖춘 자들이 진입할 필요가 있다. 육상에서 관광버스가 절벽에 떨어지면 경찰관은 초기 현장에서 부상자 수습을 하고, 이후 기중기나 로프 등을 동원한 전문 구조대가 절벽 밑으로 내려가 수습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런 진입상황을 예측하고 평소 훈련과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경비정에서 조난선에 밧줄을 던져 선내 진입을 했더라면 적어도 실종자의 반 이상은 살렸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늦지 않았으니까.

 

생각하면 서정민은 받히는 열을 발산할 수가 없다.

 

“잠수부가 아니라서 못 들어간다? 구조대원은 무조건 잠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게 특수대원이지요. 어떤 경우도 생명보다 법이 더 중요할 순 없습니다.”

 

부축임을 받으면서 서정민은 할 말을 하고 있었다.

 

“법이 중요하다는 소크라테스도 있었잖습니까.”

 

“해경 양반, 아고라 토론방에서 농담하자는 건가?”

 

서정민은 자신이 너무 흥분하는 것 같아서,

 

“신속히 구조하는 것과 규정을 지키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요.” 톤을 낮췄다.

 

“구조요원이 선내 진입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간부 해경은 강조하면서 말을 이었다.

 

“배의 내부구조를 알 수 없고 언제 뒤집힐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미국 9.11사태 때도 무모한 진입 지시로 소방대원 30명 전원이 사망했잖습니까.”

 

간부는 끝말에서 힘을 주었다. 그는 토론에서 자신이 이긴 것처럼 가슴을 젖히기도 했다.

 

그러나 서정민이 고스란히 수긍할 사람이 아니다.

 

“세월호의 경우는 화염에 싸인 빌딩이 아니잖습니까. 밧줄을 타고 배 안으로 들어가면 배가 침몰해도 빠져 나오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훈련하지 않은 사람은 겁쟁일 뿐입니다.”

 

해경이 선내로 진입해서 갇혀있는 아이들을 구하는 수중구조작업은 첫 날 없었고 둘째날 저녁에서야 실종자 수색의 준비작업이 시작됐다.

 

구조에서 지휘자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것은 2009년 미국 비행기의 허드슨강 비상착륙의 예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기장의 요구대로 번호를 외치며 나온 승객들은 비행기 양 날개로 균형을 맞춰 탈출했다. 사고 접수 후 단 3분 만에 도착하는 구조선과 헬기, 한 시간 만에 155명 전원 구조에 성공했다.

 

지휘자의 사고 대처능력은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배짱과 자신감인 ‘이성적 사고’와 반드시 해낼 수 있다는 불굴의 의지인 ‘이상적 자질’이라고 서정민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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