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더 세월

더 세월(제 4회)

오선닥 2014. 7. 30. 16:49

‘나 죽을지 몰라

엄마 아빠 사랑해!'

 죽음의 절박한 순간에도

가족을 생각하고

선생님과 친구를 생각하는

착한 아이들!

 

 

 

 

 

더 세월

(The Sewol)

 

제 4회

 

 

긴박한 순간들(II)

 

#3층 객실

오전 9시 5분

 

갑자기 배가 요동치면서 왼쪽으로 급격히 기울자 승객들은 몸을 가누지 못했다. 단체 회갑여행을 가는 어른들도 휘청, 단체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도 휘청했다.

 

객실 밖으로 나가는 문은 꿈쩍도 안 했다. 배가 기울면서 여닫이문에 중력이 가해져 문을 잡아당겨서 열기가 쉽지 않았다. 몇 차례 시도 끝에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틈이 생겼다. 어른 두 명이 몸을 그 틈으로 밀어넣고 3층 로비 쪽으로 기어나가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은 3층 베란다 쪽으로 빠져나가 바다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있어라’는 방송을 들으며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선내에는 아직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배가 침몰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승객 L은 언제든지 바다로 뛰어내릴 수 있는 공간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앞서 베란다로 나가던 한 승객이 편의점 쪽으로 미끄러지면서 문에 부딪혔다. 피를 흘리는 게 보였다.

 

“가만히 있으세요. 움직이면 위험합니다.”

 

스피커에서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학생들은 대부분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객실에 머물렀다. 물이 들어오는데도 어떻게 대피하라는 안내를 받지 못했다. 구명조끼를 나눠주는 승무원이 있었다.

 

학생과 선생님들 사이에는 카톡을 통한 메시지가 오갔다. 교감은 카톡을 통해 ‘자리 지키고 있어라. 선생님들은 카톡 통해 학생들에게 확인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38명의 제자가 있는 D담임샘은 단체 카톡에 얼른 말을 걸었다.

 

“얘들아 움직이지 말고 있어. 다들 괜찮니?”

 

제자들은 이름을 각자 말하면서 괜찮다고 신호했다.

학생들은 되레 선생님을 걱정했다.

“선생님 괜찮으신가요? 구명조끼 입으셨나요?”

 

단체 카톡은 9시 45분 이후로는 아무 얘기도 전해지지 않았다.

 

- 살아서 보자.

- 이따 만나자.

- 부디.

- 제발

 

서로에게 보낸 간절한 문자만이 이들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었다.

 

한 여학생은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 무서워 빨리 와.”

 

‘구명동의를 착용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구명동의, 구명복, 라이프자켓, 구명조끼는 다 같은 뜻인데도 사람들은 자기 입에 편리한 대로 말한다.

 

객실의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나눠 입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걱정했다.

 

- 구명조끼 입어 얘들아.

- 지퍼가 안 잠겨.

- 나도 지퍼가 고장났어.

- 밖에 애들 구명조끼 안 입었어.

……

 

 

#선교

9시 10분

 

청해진해운 본사의 해무부장이 선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승객들의 탈출을 지시하지 않고 승무원들에게 탈출을 묵인하는 뉘앙스를 남겼다.

 

해무부장은 오히려 선박 서류에 신경을 썼다.

선원은 25명(실제 29명), 출항 전 안전점검 이상 무, 여객선안전관리지침, 화물적재 상태, 안전장비 상태 양호, 잘 기재돼 있느냐를 물었다. 선장의 건강 상태 양호도 필수기재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서류상 기재에는 무, 문제가 없습니다.”

 

선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서,

 

“너무 기울어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들부들 떨면서 상황을 전했다.

 

기관장은 근무복을 벗고 파란색 반팔 티 위에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한 항해사는 트레이닝복과 속옷 차림에 다시 겉옷을 걸쳤다. 선장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입고 있던 근무복을 벗었다. 그의 몸에는 트렁크팬츠에 남색 스웨터가 걸쳐져 있다.

 

 

#선교

오전 9시 15분

 

세월호와 진도VTS 간에 통화가 다시 연결됐다.

 

세월호: 저희가 기울어서 금방 뭐… 넘어갈 것 같습니다.

진도VTS: 네, 귀선 승선원은 어떻습니까?

세월호: 너무 기울어져 있어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도VTS: 지금 승선원들은 구명정에 타고 있습니까?

세월호: 아니, 아직 못 타고 있습니다. 지금 배가 기울어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진도VTS: 네, 현재 인근 선박 둘라에이스호가 가고 있습니다.

 

한편 진도VTS는 주변 어선들까지 다 연락을 취했다. 둘라에이스호가 도착했을 때는 세월호는 죄현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안전거리 확보 없이는 접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진도VTS: 세월호, 현재 승객들의 탈출이 가능합니까?

세월호: 지금 배가 많이 기울어서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진도VTS: 최대한 경비정 및 어선들에 연락을 취해서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세월호 주변에는 다른 배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도VTS: 세월호, 현재 침수 상태가 어떻습니까?

세월호: 지금 50도 이상 좌현으로 기울어져 사람이 좌우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며, 선원도 구명조끼 입고 대기하라고 했는데… 사실 입었는지 확인도 불가능한 상태고. 선원들도 선교에 모여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입니다. 빨리 와주시기 바랍니다.

진도VTS: 현재 물이 얼마나 차 있습니까?

세월호: 그것도 확인이 안 되고 있습니다. 지금 데크에 컨테이너 몇 개가 빠져나간 거는 선수에서 확인이 되는데, 이동이 안 돼 브리지(선교)에서 좌우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벽을 잡고 겨우 버티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때 둘라에이스호는 접선이 불가능하므로 조난자들이 바다로 탈출해야 하고, 구조선은 최대한 주의해서 접근 선회하면서 구조지원 하겠다고 진도VTS에 알렸다.

 

 

 

 

 

#갑판

오전 9시 17분

 

“승객들은 모두 바깥으로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탈출하세요!”

 

선내 방송에서 대피 지시를 내린 것은 사고 후 30분이 지난 후이다.

 

배가 너무 기울어 객실에 있던 학생과 승객은 뒤늦게 빠져나오려 해도 나올 수 없다. 전기가 나가 깜깜한 데다 가파른 통로를 간신히 기어오른다 해도 바깥쪽으로 밀어야 하는 철문을 열기 힘들다. 배의 구조를 잘 아는 승무원들이 문을 열고 안내해야만 탈출할 수 있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자기들부터 살겠다고 배를 빠져나가기에 바빴다.

구조하는 해경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선장은 자신을 ‘일반 승객’이라고 밝혔다.

 

1912년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타이태닉호 사고 때는 총탑승원 2,224명 가운데 710명이 구조됐다. 여장을 하고 구명보트에 타려던 남성이 다른 승객들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죽은 이야기를 선장은 알고 있었을까.

 

타이태닉의 선장은 배 침몰 직전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는 생존자들을 구명정으로 인도한 후 자기는 배로 돌아갔고, 1항사는 풀리지 않는 구명정을 풀어 승객들을 구하고 마지막에 자기 구명조끼마저 남에게 벗어주었으며, 기관장과 기관사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전기를 작동시켜 승객들의 탈출을 도와준 후, 선장을 비롯한 이들 모두는 배와 최후를 함께했다.

 

세월호 선원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기나 할까.

 

 

#갑판

오전 9시 20분

 

트레일러를 점검하기 위해 갑판에 나가 있던 화물기사 Y는 이 시간에 형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형, 지금 여기 배가 기울고 있어. 보여?

 

“야 임마, 네가 지금 그럴 때냐. 배가 기울면 빨리 빠져나갈 생각을 해야지.”

 

Y는 급하게 선실로 돌아가 일행을 찾았다. 이들은 신발과 휴대전화를 가지고 갑판으로 나가기로 했다.

 

같은 시각 선원들은 이미 탈출준비를 완료했다.

 

 

#선교

오전 9시 25분

 

조난선 주위를 선회하고 있던 둘라에이스호는 진도VTS에게 ‘세월호 선수 쪽에 부유물이 있어 접근이 불가능하다면서 세월호는 지금 침몰 직전에 있다’고 보고했다.

 

세월호와 진도VTS 간에는 긴박한 통화가 계속된다.

 

진도VTS: 경비정 도착 15분 전입니다. 방송하셔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착용토록 하세요.

세월호: 현재 방송도 불가능한 상탭니다.

진도VTS: 방송이 안 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셔서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두껍게 옷을 입도록 하세요.

세월호: 승객들을 탈출시키면 구조가 바로 되겠습니까?

진도VTS: 구명튜브라도 착용시키고 띄우십시오. 빨리! 그리고 인명 탈출은… 선장님이 직접 판단하셔서 탈출시키세요. 저희가 그쪽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선장님께서 최종 판단을 하셔서 탈출여부를 빨리 결정하십시오.

세월호: 그게 아니고, 지금,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진도VTS: 경비정이 10분 이내 도착할 겁니다.

세월호: 10분 후에 도착한다고요?

진도VTS: 네, 10분 정도 소요됩니다. 10분!

 

이미 어선 수척이 조난선 주위에 도착해 있는데도 세월호는 뛰어내려도 되느냐만 묻는다. 답답한 통화다. 정확한 상황판단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선장과 선원의 모습이 딱하기만 하다.


세월호의 교신은 오전 9시 38분을 마지막으로 끊겼다. 선장 등 승무원들이 모두 빠져나갔으니 통화가 될 리 없다. 마지막 교신 후 20여분 만인 오전 10시 무렵 그들은 섬 급수선에 실려 있는 것이다.

 

 

 

 

#선내

9시 27분

 

비상등마저 꺼졌다.

 

엄마와의 카톡

학생 Y군은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엄마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말 못할까 봐 미리 보내놓는다. 사랑해.”

이에 엄마는 영문도 모른 채 “나도 아들 사랑한다.” 며 해맑게 답장을 했다.

왜 카톡을 안 보나 했더니, 이로부터 20분이 지나서야 어머니는 아들이 타고 있는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속보를 접했다.

 

아빠와의 전화

“아빠, 배가 가라앉으려 해. 구명조끼 입고 침대에 누워 있어. 살아서 만나요.”

학생 K군의 울먹이는 음성과 함께 전화는 끊겼다.

 

누나와의 카톡

“누나, 배가 이상해. 쿵 소리 났어…… 누나 사랑해. 그 동안 못해줘서 미안해. 엄마한테도 전해줘. 사랑해.”

H군의 누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급히 전화를 걸었지만 동생은 받지 않았다.

“3G도 잘 안 터져. 나 아빠한테 간다.” 라는 메시지를 끝으로 동생은 누나 곁에 돌아오지 않았다.

 

형과의 대화

“배가 뭔가에 부딪쳐 안 움직여. 실내에 있어서 크게 박살났는지는 모르겠는데, 데이터도 잘 안 터져. 근데 지금 막 해경이 왔대.”

G군은 형에게 카톡으로 침몰사고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형은

“그래. 괜히 당황할 필요 없고, 정신 차려서 하라는 대로만 해. 데이터 터지면 다시 연락해. 마음 강하게 먹고 있어.”

동생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형의 카톡에는 노란색의 미확인 ‘1’자가 선명히 남아 있다.

 

연극부 친구들에게 보낸 메시지

- 연극부 사랑해.

- 다들 사랑해 ㅠㅠ.

- 나도 정말 사랑해.

- 우리 진짜 죽을 것 같아. 예들아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다 용서해줘. 사랑한다.

연극부원 30명의 단체 카톡 대화방에선 선배들이 잇달아 속마음을 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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