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더 세월

더 세월(제 5회)

오선닥 2014. 8. 16. 20:59

바다에 뛰어내리는 사람만

건져 올리는 해경이 참 답답

  정말 선내로 들어가려는 시도를

할 수 없는지 연구과제

 

 

 

 

더 세월

(The Sewol)

 

제 5회

 

 

탈출

 

선실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들이 소방호스에 매달렸다. 호스 끝에 이순애 실장도 매달렸다.

 

“조금만 더 힘내요.”

 

서정민 사장은 외쳤다.

 

아이들이 한 가닥만 잡고 힘들어하기에 서정민은 주변에 있는 호스 하나를 더 찾았다. 찾은 소방호스 한쪽을 배 난간에 묶고 다른 한쪽을 4층 홀 쪽으로 던졌다. 아이들은 호스를 겨드랑이에 끼고 가까스로 벽을 타고 올라왔다.

 

이순애도 호스를 잡았다. 그러나 힘이 부쳐 선실 바닥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오전 9시 35분경 목포해경 소속 경비정 123정(110톤)이 도착했다. 어선단속정에는 구조전문인력이 타고 있지 않았다. 민간어선이 속속 도착했다.

 

세월호는 좌현 쪽으로 45도 기울었다. 3층과 4층 객실은 아직 물에 잠기지 않았다. 123정은 세월호의 좌현에 접근해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복도에 줄을 서서 구조를 기다렸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해경이 있었으나 그들은 배에 오르지 않았다.

 

승객 K씨는 선체가 점점 기울어지자 3층 안내데스크로 기어갔다. 안내데스크에 있던 승무원 박지영 씨는 승객들이 탈출해도 되는지 거듭 무전기에 대고 물었다. 그녀는 그 후에도 무전기를 들고 10여 차례 탈출 여부를 물었지만 끝내 선장과 항해사 누구도 그녀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계약직 직원인 그녀는 대학에 다니던 중,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자 어머니와 여동생의 생계를 위해 휴학하고 세월호에서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선실 안에 물이 들어와 학생들이 서로 부추겨가며 복도로 나갔다.

 

“구명조끼를 입어.”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학생이 보이자 박지영은 자기 것을 벗어주었다.

 

“언니는?”

 

“괜찮아. 선원은 맨 마지막이야.”

 

배의 경사로 박지영은 미끄러져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러면서 크게 소리 질렀다.

 

“모두 탈출하세요.”

 

이 소리는 4층에서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던 이순애의 귀에도 희미하게 들렸다. 눈을 들어 올려다보니 갑판 쪽에 서정민이 보였다. 그는 호스를 잡고 올라오는 아이들을 끌어올리기에 바빴다. 이순애를 구조하러 4층으로 내려가려했다. 그러나 호스에 매달린 아이들 때문에 더 갈 수 없었다.

 

이때 이순애의 소리가 들렸다.

 

“정민 씨, 아이들부터 구하세요. 아이들이 떨어지려 해요.”

 

배가 휘청 더 기울었다. 기울어진 갑판이 해면에 닿자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호스를 잡고 올라오던 아이들이 물을 뒤집어썼다. 서정민은 그들에게 호스를 놓치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몇 명은 물에 휩쓸려 도로 선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깨진 창문으로 바닷물이 급격히 차오르자 학생들끼리 도와 탈출하기 시작했다. 서로 받쳐 주고 끌어올려 주며 선실에서 빠져나왔다. 1반 학생 30여명은 비상구 방향으로 가 대기했다. 자기부터 살겠다고 먼저 나가려는 친구는 없었다. 비상구 바깥으로 학생들은 줄을 서서 빠져 나갔다.

 

학생들이 해경 구명보트로 옮겨 탄 뒤 큰 파도가 쳤다. 그 물결에 배에 남아 있던 10여 명의 학생이 배 안으로 휩쓸려 들어갔고 다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해경 구명보트 2대가 학생들이 배에서 내려오기만을 기다렸다. 구조된 학생들이 “배에 친구들이 많이 있다”고 알렸지만 해경은 배 안으로 들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앞서 9시30분에 도착한 헬기는 목포해경 항공구조단 소속 팬더 511호였다. 사고신고 접수 후 30여 분만인데, 세월호 상공을 떠돌며 갑판 위에 있거나 바다에 떠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서정민은 세월호 머리 위 헬기를 바라봤다. 헬기에서 사람은 안 나오고 카메라가 나오더니 몇십 초 동안 사진을 찍었다.

 

“왜 온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구조원이 헬기에서 바구니를 타고 내려왔다. 승객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헬기 소리가 너무 커서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헬기 구조원이 손가락 다섯 개를 폈다. 아이들 5명을 헬기로 올려 보냈다. 구조원이 다시 손가락으로 여섯 명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옆에 있던 남성분들과 함께 협력해서 여섯 명을 헬기로 올려 보냈다. 승객들을 업고 이동하는 구조대원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보였다.

 

또 한 대의 헬기가 도착했다. 제주해경 항공구조단 소속 513호였다. 이 7인승 헬기는 제주 북방 3마일 해상에서 불법외국어선 단속 임무를 띠고 비행 중이었는데 급히 세월호로 온 것이다. 5명(조종사, 부조종사, 정비사, 전탐사 및 구조사)이 탑승하고 있었다. 헬기는 죄현 약 60도로 기운 여객선을 발견하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구니를 타고 내려온 구조원은 배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서정민은 화가 치밀어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선실 안에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 소화호스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보세요. 저들은 어떡하란 말입니까?”

 

“바깥에 있는 사람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산 사람이라도 구해야 합니다.”

 

선실 안에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는 뜻인가.

구조원은 냉정했다. 훈련된 냉정함에 찬바람이 불었다.

 

서정민은 선실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순애는 보이지 않았다. 학생 몇 명이 벽을 기대며 호스를 잡고 올라올 뿐이다. 학생들이 올라오는 것을 다 도와주자 파도가 또 한 차례 배를 덮쳤다. 물이 차오른 4층 선실은 이순애를 영영 감춰버렸다.

 

서정민은 힘이 쏙 빠져버려 갑판에 누워버리고 말았다.

누군가 그를 세차게 흔들었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이러심 어떡합니까? 빨리 배를 탈출하세요.”

 

한 남자 승객이 구명조끼 하나를 가져다 입혀줬다.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서정민에게 강요하는 것 같아 그자가 너무 미웠다.

 

123호 해경은 세월호를 향해 방송을 내보냈다.

 

“승객 여러분 총원 바다로 뛰어내리십시오.”

 

방송은 헬기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헬기 소리를 듣고 아이들은 희망을 가졌는지 휴대전화로 서로 대화하곤 했다.

 

한 아이는 엄마와 통화했다.

“배가 되게 많이 기울었어. 헬리콥터가 와.”

“그래 다행이다. 헬리콥터가 온다니.”

“엄마 보고 싶어.”

“살 건데 무슨 소리야?”

“살아서 보자. 엄마!”

 

통화는 끊겼다. 배가 기울자 그 아이는 미끄러져 선실 바닥에 떨어졌다.

 

 

약속의 끈

 

사고 당일 학생들은 아침식사를 하고 객실로 돌아와 잠을 자거나 쉬고 있었다. 갑자기 배가 기울어 캐비닛에 넣어 둔 짐가방이 몽땅 쏟아졌다. 너무 기울어 침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꺼내 입었다.

 

선실에 물이 차자 겁이 난 학생들은 캐비닛 아래 침구류를 놓는 공간에 몸을 둥글게 말아 숨었다. 물이 더 차오르면서 캐비닛은 뒤집혔고 학생들은 그 안에 갇혔다. 뒤집힌 캐비닛 안 공간에 남은 공기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캐비닛이 에어포켓(air pocket) 역할을 한 것이다. 몇몇은 탈출할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천세준과 지월희 학생은 캐비닛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한 캐비닛에 갇힌 둘은 같은 연극반 학생으로 5월에 있을 연극활동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둘은 남학생과 여학생으로서 특별히 서로 이성 같은 걸 느껴본 적이 없다. 연극에서 주어지는 역할이라면 남녀 구분 없이 열심히 해내곤 했던 두 학생이다.

 

“우리 이렇게 있어도 돼?” 천세준이 물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했잖아. 누군가 구조하러 올 거야.” 지월희가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우린 구명조끼 입었잖아.”

 

“내 것은 박지영 언니가 준 거야.”

 

“그 누나 정말 착하지? 자기 구명조끼까지 벗어 주고.”

 

침묵이 흘렀다. 캐비닛은 넘어져 바닥에 누웠으나 배가 기운 상태이므로 캐비닛은 반쯤 서 있는 셈이다. 선실에 물이 차올라 캐비닛 주위가 철벅거렸다.

 

“세준아, 무섭지 않아? 너무 어두워.”

 

“가까이 와. 캐비닛 안에 공기가 있어 다행이야.”

 

“물 출렁거리는 소리 들리지? 난 무서워!”

 

“용기를 내! 월희야. 너 연극에서 도깨비 쫓는 역할도 했잖아.”

 

“그건 연극이었잖아. 엉뚱하긴.”

 

“연극하듯 살자. 연극에선 주인공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잖아.”

 

천세준은 지월희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두워서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공포에 싸여 눈은 감은 것으로 느껴졌다.

 

지월희는 다른 아이들이 궁금했다.

 

“걔들, 탈출했을까? 물이 이렇게 많이 찼는데…….”

 

“잘 됐을 거야. 우린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야 해.”

 

“살아도 같이 사는 거야. 세준아?”

 

그러면서 지월희는 자기 구명조끼의 끈을 천세준의 손에 쥐어주었다.

 

“네 구명조끼의 끈에 묶어. 우린 같이 가야 해. 같은 운명.”

 

천세준은 구명조끼의 끈을 묶었다. 둘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다.

 

“월희야. ‘운명’이라는 말 좀 이상해.”

 

“나 맘이 자꾸 약해져. 엄마 아빠 보고 싶어. 동생 생각도 나구…….”

 

“월희야, 너 울고 있는 거 아냐? 울면 안 돼!”

 

“아냐. 세준아 힘 내자. 사랑해.”

 

“사랑해. 월희야.”

 

이때 캐비닛이 옆으로 굴렀다. 공기주머니는 물로 채워졌다. 둘은 운명 속으로 함께 들어갔다.

 

운명 속으로 함께 들어간 살신성인의 커플이 있음을 기억한다. 세월호에서 일하면서 사랑을 키워오다 가을에 결혼하기로 약속했던 스물여덟 동갑네기 김기웅과 정현선은 배가 침몰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탈출하지 않고 승객 구조를 위해 배안으로 들어갔다가 운명을 같이했다.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웃음소리, 여학생들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남학생들의 날렵한 몸짓 그리고 함께 부르는 노랫소리, 귀여운 얼굴, 건강한 미소…… 이런 것들이 차갑고 어두운 물속으로 사라지는 환영들을 어떻게 지워내나.

 

승무원이 나서서 ‘탈출’ 한마디만 했어도 수치스런 비극은 없었을 텐데…… 모두 부질없는 생각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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