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더 세월

더 세월(제 2회)

오선닥 2014. 7. 12. 20:26

운명의 그림자가 드리우지만

설마 이렇게 큰 배가 넘어지랴

 

 

 

 

더 세월

(The Sewol)

 

제 2회

 

 

불길한 징조

 

새벽까지 마신 술로 인해 몽롱한 채로 잠을 자던 서정민은 갑자기 배가 ‘휘청’ 하는 걸 느꼈다. 배의 옆구리가 큰 파도에 얻어맞은 느낌. 배는 15도 정도 휙 넘어갔다가 바로섰다. 이삼 분 후 배는 균형이 잡혔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빈병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고, 바닥에 놓인 쓰레기통은 넘어져 내용물을 내뱉어 놓았다.

 

“조류가 심하면 배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혹시 옆에 큰 배가 지나가지 않나 해서 스커틀 창으로 바다를 확인해 보았다. 바다는 고요했다. 벌레 먹은 보름달은 서쪽 하늘에서 해면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핸드폰 GPS는 군산 앞바다 부근을 나타냈다.

 

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침묵하며 설정한 항로를 계속 달렸다. 일시적 흔들림으로 생각하고 미심쩍음을 달래며 그는 도로 침대 위로 올라가 부족한 잠을 청했다.

 

새벽 4시경

선교에서는 항해당직 교대가 이뤄지고 있었다. 0~4시 야간당직을 섰던 2항사가 4~8시 새벽당직을 서게 될 1항사에게 당직업무를 인계하는 중이다.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당직 내 발생한 특이사항을 전한다.

 

“한 시간 전에 선체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습니다. 바다는 잔잔했는데 이유가 궁금하네요.” 2항사가 말했다.

 

“종종 그런 일이 있어. 이 배가 좀 불안해.” 1항사가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 화물적재가 잘못된 게 아닐까요?” 2항사가 물었다.

 

“평소대로 실었지. 회사가 이렇게 과적을 강행하면 안 되는데…….”

 

“그럼 강력하게 항의하세요.”

 

“항의? 우리가 무슨 통뼈여?”

 

“그렇다고 계속 이럴 순 없잖아요.”

 

“2항사 당신도 알잖아. ‘그만 실어라 배 가라앉는다’ 해도 회사에서 구격구격 실었던 것.”

 

“물류팀 걔들더러 배 타라고 합시다!”

 

“전임 선장도 과적 문제를 지적했는데 매번 무시당했잖아.”

 

회사에 대해 불평해봤자 계속 맴도는 이야기뿐이다.

 

세월호는 3,610톤 화물을 실었다. 적정량 990톤의 4배 가까운 수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과적은 아니다. 다만 평형수를 빼고 화물을 실었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선박의 복원력을 상실시키기는 하겠지만.

 

만사를 포기한 사람같이 말하는 1항사가 측은하게 보였으나 2항사도 이런 회사에서 밥 먹고 있으니 측은하기는 마찬가지다.

 

2항사는 선박의 복원력이 궁금했다.

 

“GM 크기가 어떤지 알아보셨습니까?”

 

“재어 보진 않았지.” 1항사는 남의 일같이 말했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야간당직 조타수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GM 차는 싣지 않았습니다. 제가 적재상황을 지켜봤거든요.”

 

2항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 GM이 아니고…….”

 

조타수 김 씨 말을 가로막았다.

 

두 사람 대화에 1항사는 싱긋이 웃었다.

 

“사실 GM을 계산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 여객수도 세어본 적이 없는 마당에. 계산했더라면 아마 50센티도 안 됐을 걸. 아니 오히려 마이너스……?”

 

화물관리 책임자인 1항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너무 어색하다. 세월호는 여객선 아닌가. 여객정원이 900명 이상 되는 배에서 선박안전에 가장 중요한 복원력을 계산하지 않았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GM은 배의 무게 중심(重心: Gravity)과 부력 궤적의 중심인 경심(傾心: Metacenter) 간의 거리이다. 거리가 크면 클수록 선박의 복원력이 커진다. 시소에서 멀리 앉아 있으면 힘이 커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경심(傾心)은 물에 잠긴 배의 부력을 추(錘)라고 가정하고 끈에 매달아 흔들 때 끈의 손잡이 위치가 된다.


GM이 크면 배는 오뚝이처럼 바로 선다. GM이 거꾸로 되면 배는 뒤집어져 하늘을 향하여 발을 흔들어대는 거북이와 같은 모양이 된다.

 

서해 바다의 새벽은 고요하고 달은 서쪽 수평선으로 내려앉고 있다.

배는 한 번씩 엉덩이를 기우뚱거리며 20노트로 빠르게 달리고 있다.

 

간밤에 담임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갑판으로 올라갔던 3반 학생들 중에는 새벽잠을 설친 친구도 있다. 배의 뒤꽁무니에서 만들어지는 하얀 물살의 황홀함에 취해 미래의 마도로스 꿈을 가져보는 친구도.

 

아침 7시

 

‘배에서 자고 방금 일어났어.’

한 학생은 엄마에게 아침인사 메시지를 보냈다.

 

7시 30분이 되자 학생들은 3층 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1반부터 9반까지 차례로 식당으로 갔다. 식사를 마친 몇몇은 갑판으로 나가 바다를 보며 사진을 찍었다.

 

서정민 사장은 아침을 거른 채 계속 잠을 잤다. 전날 밤 이순애 실장과 마신 술이 아직도 세포 구석구석을 헝클어 놓아 정신을 가다듬지 못했다. 배의 흔들림으로 새벽잠을 설친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아침 8시 가까이 되자 5층은 분주했다. 5층에 거주하는 선원들이 당직교대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직교대를 마치고 선교를 떠나려는 1항사는 여성 3항사에게 다짐을 주었다.

 

“3항사, 맹골수도는 조류가 세니까 조심해서 배 몰아요. 웬만하면 선장님 부르고.”

 

작년에 대학을 졸업한 3항사는 입사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가녀린 여성 항해사다. 더구나 맹골수도 항로는 처음이다. 1항사에겐 그녀의 선박 지휘가 걱정될 만하다.

 

맹골수도는 서해에서 남해로 가는 여객선이나 대형선의 항로이지만 조류가 거세기로 유명하다. 명량대첩 해역인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세다. 그래서 세월호는 평소 맹골수도 바깥 항로를 취했으나 오늘은 출항 지연을 벌충하기 위해 지름길인 맹골수도를 지나는 항로를 취한 것이다.

 

긴장감으로 3항사의 작은 가슴이 벌름거렸다.

선교에서 내려다보는 맹골수도의 조류가 소용돌이치며 흐른다.

  

 

                                     

운명의 시간

 

 

8시 30분 맹골수도에 진입했다.

제주도 도착시각이 예정보다 1시간 30분 지연된 낮 12시로 예상된다고 선내방송을 마친 3항사는 해도에서 변침점을 체크했다.

 

8시 45분

오른쪽에 병풍도를 보았다.

 

“스타보드 5도!”

 

3항사는 선수를 5도 우현(Starboard)으로 돌릴 것을 조타수에게 명령했다. 원래 침로(針路)에서 10도 우현으로 변침하면 충분했기에 작은 각도 변침을 지시한 것이다.

 

“스타보드 5도, 숴!”

 

조타수는 복창했다.

키를 잡고 있던 조타수의 손이 순간 떨렸다.

 

“어, 억! 선수가 자꾸 돌아가네!!”

 

배는 갑자기 오른쪽으로 급하게 돌아가고 선체는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당황한 조타수는 반대방향으로 키를 돌렸다. 키는 듣지 않았다.

 

배는 의도한 변침 10도를 넘어 오른쪽으로 45도나 변침하여 선수는 남서방향으로 향했다. 급변침 후 속도는 떨어져 17노트, 10노트, 5노트로 내려갔다.

 

이윽고 엔진이 멈췄다.

8시 50분

 

선수를 남서쪽으로 향한 채 조류에 의해 북쪽으로 떠내려간 배는 진도군 병풍도 북쪽 3km 해상에서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면서 침몰하기 시작했다.

 

배는 15도, 20도…… 점점 더 좌현으로 기울었다.

곧 30도를 넘었다.

 

우당탕, 쾅!

 

배 안의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바닥에 떨어지고 벽에 부딪쳐 아수라장이다.

 

5층 객실의 서정민은 굉음 소리에 놀라 잠이 깨었다. 정신이 희미한 상태에서 예감이 이상했다.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는 잠시 추이를 기다렸다. 곧 방송이 있겠지. 그러나 벽의 스피커는 벙어리처럼 조용했다.

 

“이상하네.”

 

배가 급선회할 때 몸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그는 넘어졌다. 탁자 모서리에 부딪힌 정강이가 아팠다.

 

문을 박차고 통로로 나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핸드레일을 잡고 몸을 가누며 선교로 들어갔다. 승객의 선교 출입이 금지돼 있음에도 개의치 않았다. 상황파악의 최적지는 선교임을 그의 선장 경력은 알고 있다.

 

선교 나침판 아래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3항사였다.

서정민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당직사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녀요. 비상상황이요. 선장님께 보고하세요.”

 

공포에 떨며 울기만 하는 3항사에게 한 마디를 더했다.

 

“퇴선을 준비해야 돼요!”

 

서정민은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한 곳으로 달려갈 준비를 했다.

이순애?

 

막 선교 출입문을 나설 때 기관장을 비롯한 선박직원들이 허겁지겁 선교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선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4층 객실로 달리고 있는 서정민.

머릿속에는 “이순애, 깨어 있어야 해!” 수없이 부르짖고 있었다.

 

배가 갑자기 크게 우회전하더니 선 자리가 위로 올라가는 듯했다. 좌현이 기우니 우현이 올라간 거였다. 이때 방송이 들렸다.

 

“움직이면 위험하니 제자리를 지키세요!”

 

서정민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제기랄! 저 양반들 제 정신들이야? 아직도 배가 안전하다고 생각해?”

 

탈출이 급한데 제자리에 있으라니? 이건 말도 안 돼. 선장은 뭐 하는 거야. 그는 분통을 터뜨리며 4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고 있었다. 배가 기울고 있어 계단을 미끄러지듯 밟으며 난간을 잡고 가야만 했다.

 

드디어 이순애 실장의 방에 도달했을 때 그녀는 막 일어나 떨고 있었다.

서정민은 그녀를 한 번 꼭 껴안아주고 서둘러 일으켰다.

 

“배가 기울고 있어요. 빨리 탈출해야 해요.”

 

속옷차림으로 있는 그녀에게 의자에 널려 있는 겉옷을 집어 걸쳐주고는 구명조끼를 입혔다. 하얀 목덜미에 키스해줄 겨를이 없었다.

 

손을 잡고 통로를 나오는데 여기 저기 아우성이다. 아직 객실에는 물이 차 올라오지 않았다. 실내등이 꺼지고 비상등만 켜진 선내는 온통 불안을 덮어쓰고 있다.

9시 27분은 암흑의 시작이다.

 

한 학생이 어린 아이를 안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있다. 넘어지려 한다.

이를 보자 이순애는 큰소리로 말했다.

 

“저 아이부터 구해줘요. 끝나면 저 데리러 오세요.”

 

서정민은 아이부터 구하라는 그녀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알았어요. 조심해서 올라와요. 옮겨놓고 바로 올게요.”

 

서정민은 아이를 받아 안았다.

아이를 갑판 위에 올려놓았을 때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배는 더 기울었다.

 

배 안은 더 이상 오르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내려줄 밧줄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통로의 소화호스를 꺼내 선내로 내리기 시작했다. 몇몇 학생들이 호스를 잡고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이순애 실장은 맨 아래에서 호스를 잡는 데 성공했다.

 

“순애 씨 호스 놓치면 안 돼요!”

 

서정민은 힘껏 소리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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