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더 세월

더 세월(제44회)

오선닥 2018. 8. 23. 20:31

일 년 이상 60명을 투입하고도
침몰원인과 거치장소는 오리무중
학교에서는 이상한 글짓기 파동


▲회의 전 묵념하는 선조위




더 세월

(The Sewol)



제 44회



이상한 숙제


세월을 야금야금 축내면서도 세월호의 침몰 원인과 거치 장소에 대한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선체조사위원회는 2018년 8월 6일 해산했다. 그냥 해산하기가 아쉬웠던지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서로 언성을 높이며 책임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매 회의 때마다 묵념으로 시작하여 묵념으로 마쳤는데도 묵념에 걸맞은 결론은 도출하지 못했다.


‘침몰 원인은 영원한 미궁에 머물라!’


침몰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면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활동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위원들은 엇갈린 의견을 그대로 드러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견해는 기록을 위해서라도 실명을 남겨 두는 것이 좋겠다. 김창준 위원장과 김영모·김철승 위원은 '내인설', 반면 권영빈·이동권·장범선 위원은 '열린안' 의견을 냈다.


내인설에 따르면 복원성이 나쁜 세월호가 화물을 과도하게 실은 채 출항했고 유압을 이용해 방향타를 움직이게 하는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되면서 유압이 멈추지 않아 방향타가 오른쪽으로 급격하게 돌아갔다. 밸브 고착으로 배는 급선회했고 그로 인해 제대로 고박되지 않았던 화물이 좌현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배는 45도 이상 기울었다. 그때 열려있던 수밀문과 맨홀로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배는 침수·침몰하게 됐다는 것이다.


반면 열린안은 화물 고박이 약했지만 세월호의 복원성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선체 자체의 문제만으로는 침몰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내인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양쪽이 치열하게 설전을 벌이는 걸 보면 세월호는 마치 싸움을 양산해 내는 요술방망이처럼 보인다.


선체 정밀조사가 끝난 후 세월호는 파손된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다만 거치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다. 인천, 안산, 목포, 진도, 제주 등 5개 도시를 두고 중점적으로 검토했으나 위원들이 합의를 보지 못했다. 통치 차원에서 결정될지도 모르겠다.


별도의 국립 복합관인 '세월호생명기억관(가칭)'을 조성해, 추모·치유·기억·기록 등을 이어가면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안전불감증을 쇄신시키는 교육시설로 만들고자 하는 것 같다.


무더위는 종종 가족을 한자리로 모이게 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열대야를 피하기 위해 서정민 식구들이 거실로 모였다. 거실 에어컨이 싱싱 돌아간다.


“금년 같은 더위는 첨인 것 같아요.”


바깥에서 술한잔 하고 들어왔을 때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 노모에게 건넨 서정민의 인사말이다.


더운 탓에 아이들도 거실에 있다. 큰아들 준호는 컴퓨터를 하고 있다가, 작은아들 준서는 뭔가 종이에 쓰고 있다가, 아버지를 보고 일어섰다. 큰 덩치들이 일어서니 집 천장이 오늘따라 더 낮아 보인다.


“준서는 뭘 열심히 쓰고 있었니?”


아들의 자세가 평소 같지 않아 서정민이 물었다.


“숙제하고 있었어요.”


“무슨 숙제?”


내용이 궁금해서 들여다보려는데 준서가 머뭇거리는 것 같다.


“세월호에 대한 글짓기예요.”


“니네 학교는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를 하고 있니?”


말하면서 탐탁지 않은 마음으로 노트를 들여다보니 <세월호에 타고 있었더라면 나도 죽었을 것이다>라는 제목이 쓰여 있다.
제목을 보자 그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이런 걸 어떻게 제목으로 하니? 다른 것으로 고치도록 해라.”


“아빠, 이건 선생님이 정해준 제목이라 바꿀 수 없어요.”


준서는 단호했다.


세월호와 죽음이라는 단어는 서정민이 가장 싫어하는 말들이다.
이런 제목으로 학생들이 글을 쓴다는 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갑자기 머리 뚜껑이 열리려는 듯 머리가 아파 온다. 


“이런 숙제를 누가 냈어? 국어 선생?”


아버지가 따졌을 때 준서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윤리 선생님.”


팽팽 돌아가는 에어컨이 갑자기 멈춘 듯 열대야 더운 바람이 그의 얼굴을 확 덮는 기분이다. 윤리 선생이 제 정신인가?


이튿날 학교로 달려갔다. 서정민은 윤리 선생을 낚아채듯 만났다. 여자 선생은 방문한 학부모가 세월호 탑승자였음을 알고 톤을 낮추며 말하려 했으나, 이미 상대방의 표정이 불안해 보여 목소리 크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해했다.


상담실에 학생은 없다. 짧은 치마와 등이 트인 블라우스를 입은 여선생은 중년을 극복하고 좀 더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으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나이를 이길 방법은 찾지 못한 것 같다.


윤리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에 서정민은 무슨 질문을 할까 망설였으나 둘러가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학생들에게 무슨 의도로 이런 숙제를 내셨습니까?”


교육감이 묻는 질문처럼 무례할 법도 하나 여선생은 주눅 들지 않고 탁자 위에 있는 차를 권하며 오히려 여유마저 보였다.
 
“세월호만큼은 학생들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이 평소 저의 소신입니다. 안전불감증에 경각심을 주는 의미도 있고요.”


그녀는 세월호의 역사적 의미를 학생들에게 강조해야 하는 소명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정민은 가라앉아 있는 트라우마가 물속에서 거품을 내고 치솟는 기분을 느꼈다.


“<세월호에 타고 있었더라도 나는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라는 제목으로 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부정적인 용어로 학생들의 정서를 불안하게 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서정민의 불만은 계속 이어졌다.
여선생은 그와 눈을 한번 맞추고 말소리를 가다듬었다.


“세월호 참사를 우리 학생들은 철저히 기억해야 합니다. 나라를 바로세우는 계기입니다.”


그녀는 당당했고, 서정민은 설교를 들어야 하는 참담함마저 느끼기 시작했다.


“20만톤 크루즈선은 1만 명이 승선해도 안전합니다. 학생들에게 세월호의 비극을 강조하는 것은 희생자로선 견디기 힘듭니다.”


희생자를 앞에 둔 터라 그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숙제 문제는 재고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민감한 사안인 줄 미처 모르고…….”
 
결국 그녀는 숙제는 없던 걸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준서는 세월호에 갇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장면을 상상하지 않아도 된 셈이다. 삶은 길면 길수록 좋고, 죽음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이건 사건이 가르쳐준 진리다.


▲세월호 글짓기



서정민의 학교 방문은 발품만큼 의미가 있었으나 그의 정신은 몹시 피로에 지쳤다.
격앙된 감정 표출이 있은 날에는 그는 자주 혼미에 빠지곤 한다.


광화문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이순정은 없었다.
뭔가 위로를 받고 싶은데 그녀는 제주도 출장 중이다.


제세실업의 물류창고가 있는 부두 근처에 세월호 거치가 적합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제주에 간 것이다. 제주도는 고려중인 다섯 거치 장소 중 한 곳이다. 선정될 확률은 그리 많지 않지만, 거기에 세월호가 거치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직원들이 퇴근한 광화문 사무실은 조용하다.
서정민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간이침대가 있는 휴게실로 들어갔다.
작은아들의 숙제 문제로 학교 방문을 마친 후 그의 마음은 흐물흐물 상심해 있었다.


간이침대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며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가 ‘삶은 계란이다’ 농담에 이르렀고, 곧 여자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가 ‘남녀는 젓가락이다’ 여자의 존재가 동반자로 소중하다는 제법 진지한 결론에 이르기도 했다.


이순정의 위로가 간절한 순간, 불편한 속옷은 왜 입어, 겨드랑이 털은 왜 깎아? 마음이 엉뚱한 시비를 걸어 왔다. 갑자기 그녀와 사랑을 하고픈 욕망이 솟구쳤다. 참 이상하게도 순정을 생각하려 했으나 결국 포르노 아가씨를 생각하며 자위를 하고 말았다. 끈적한 손을 세면 코크에 헹구었다.
피곤할 때는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을 지켜만 봐야 하는구나.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전 모레 상경해요. 내려온 김에 일 좀 정리해 놓고 갈게요.”


끊을 것 같다가 이순정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어디세요?”


뭐 하고 있느냐고 그녀는 묻지 않았다. 만약 묻는다면 손 좀 씻고 있었다, 라고 말할 수 있었으나 성실한 답변일 수는 없었다. 그 옛날 대서양의 허리케인이 만든 삼각파도에도 담대했던 기백이 세월호의 한방에 여지없이 무너진 상황이 그를 우울하게 했다.


“나는 사무실에서 사슴 목이 되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줄 자신도 몰랐다. 결혼 허락을 받은 후 솔직 담대해진 것은 확실하다. 이런 표현을 여자가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언어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달링, 참을 수 있죠?”


상대편에서 감미로운 문장이 흘러나왔다.
뭘 지켜보고 있었나? 아니면 뭘 봤나?
왠지 죄 지은 사람처럼 부끄럽기도 했다.
대화의 목적어가 뭔지 수능시험에 출제해도 좋은 질문 같았다.


전화를 마치고 서정민은 한 번 더 손을 씻었다.
이순정에게 ‘순정’을 바치겠다고 각오하면서.


▲간이침대 휴식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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