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더 세월

더 세월(제43회)

오선닥 2018. 8. 10. 09:50

침몰 원인 조사
과학적 증거력 부족
선조위는 투표로 결론?


▲세월호의 잠수함 충돌설?




더 세월
(The Sewol)


제 43회



침몰 원인 논쟁


선체가 직립한 2018년 5월 10일 이후 45일간 선내 진입을 위한 준비 작업을 했다.


드디어 6월 25일 오전, 진입로가 확보되자 5명의 미수습자를 찾는 수색 작업이 시작됐다. 무너진 천장을 밀어내 공간을 확보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흔적이라도 봤으면 좋겠다며 다시 목포신항을 찾았다.


기관실 내부가 가족들에게 최초로 공개됐다.
그동안 접근이 어려웠던 기관 구역.
처참하게 찢어진 철판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


구석구석에 낀 진흙을 퍼내 옮겨 담으며 수색이 본격화됐다. 수색은 선체 내부 진흙을 대형 자루에 담아서 꺼내 세척하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천장의 끝 부위가 내려앉아서 절단한 후 정밀 수색한다. 바닥과 맞닿아 있었던 선체 왼쪽 객실 구역에 아직 수색할 곳이 남아 있다. 이곳은 선체 3층 객실부로, 침몰하면서 선체 왼쪽 부분이 약 2미터가량 찌그러졌는데 이번에 집중적으로 수색할 부분이다.


선체 좌현 부분은 참으로 처참하다. 비교적 온전한 우현과 비교하면 침몰 과정에서 짓눌려 형체를 도무지 알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짓눌린 협착 부위는 선체 2층에서 3층, 그리고 4층으로 올라갈수록 심하다.


4층 객실과 기관실에서 유류품이 쏟아져 나왔다. 휴대전화와 교복 등 130점이 발견됐다. 직립 후 총 수습 유류품은 239점으로 늘어났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는 단원고 남현철, 박영인 학생, 양승진 교사, 권재근 씨, 권혁규 군 등 5명.


4년 하고도 두 달이 흘렀지만 가족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복숭아씨처럼 단단하고 굳은 결과를 예감하고 있는 듯하다.


장마와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수색 작업은 이어진다. 인양 초기 각종 유류품과 펄로 가득 찼던 선체 내부는 어느덧 텅 빈 상태로 변했다. 4년 동안의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갈라지고 찢겨지고, 녹슬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공간들이다.


“애들이 마지막으로 뛰놀았을 객실이 이렇게 앙상한 철골로 남았다니…….”


한 학부모의 무거운 한숨이 침울하여 천장이 내려앉는 느낌이다.


희생자 304명 가운데 아직도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5명을 찾는 작업이 진행 중인데, 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마지막 수색'을 위해 해수부와 해양경찰청, 국방부, 보건복지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전남도, 목포시 등이 합동으로 현장수습본부를 설치했다.


세월이 갈수록 침몰원인의 의혹이 커지고 있다.
침몰원인은 열어 놓고 봐야 한다.


일직선으로 갈 배가 지그재그로 간 것은 조타기 고장, 앵커나 외력의 영향 중 어떤 것일까? 여론에 밀려 선체조사위는 잠수함 충돌설을 합리적 의심에 포함시켰다. 네덜란드 모형시험에서도 합리적 의심으로 받아들여 실험에 들어갔다. 그러나 합리적 결론을 얻지 못한 것은 현대 과학의 한계랄까.


세월호는 들어 올렸지만 진실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진실은 거품을 물고 자신을 감추려 하는 건가.


진실은 무시무시하여, 천안함이나 세월호의 진실이 드러나면 보수정권은 향후 50년간 집권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바다는 이 세상에서 위장이 가장 큰 놈이라 걸리는 건 다 삼켜버리지.”


50년 집권 운운이 듣기 싫었던지 옆의 친구는 좀 삐딱하게 한마디 했다.


미수습자에 대한 반가운 소식은 없이 선조위 내에서 침몰 원인 논쟁이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그런 중, 서정민의 선배는 책 한 권을 펴내고 나름 침몰 원인을 밝혔다.
선박검사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이 농축된 흔적이 엿보인다.


평형수 과다배출 + 화물과적 + 미고박 승용차 40대 → 선체 10도 경사, 미고박 승용차 이탈 → 고박 화물 강타 도미노 붕괴(1분12초) → 좌현선체 강타 추가 경사(30도) → 발전기 윤활유 저압 안전장치 작동 → 전력공급 중단, 배터리 전원공급(3분36초) → 비상발전기 구동(AC전원) → 항적도 재등장 → 우현 주기관 프로펠러 수면 위 노출(횡경사 10~20도) 과속방지 작동 → 우현주기 최저속력, 좌현주기 전속운전 → 편심(4.9미터)에 의한 선체 우회두력 → 윤활유저압안전장치 작동 최저속운전 → 항적도 항행


결과적으로 GM(중심과 부심 간 거리)이 마이너스 1.13미터였으니 전복력이 복원력을 상회하여 전복 침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7월 19일 국민들은 색다른 재판의 결과를 접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4년여 만에 법원은 국가의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부는 정부와 청해진해운의 과실로 참사가 발생했다며, 희생자 1인당 2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위자료는 모두 723억원에 달한다.


청해진해운은 과적과 고박불량 상태로 세월호를 출항시킨 점, 국가는 승객 퇴선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과실을 지적했다. 다만 국가 재난컨트롤타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이 참사의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정민한테 재판 사실을 들은 이순정은 궁금한 점이 있다.


“우리는 소송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죠?”


“그건 어쩔 수 없지. 소송에 참여한 사람만 해당되니까. 세월호 특별법이 정한 금액과의 형평성을 고려한 것이므로 큰 차이는 없을 거야.”


지난 2015년 9월 350여명의 유족들은 세월호 특별법에 따른 배상을 거부하고 국가와 청해진 해운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우리도 배상을 거부하는 건데……” 이순정은 순간 억울함을 표시하기도 했으나 그날의 트라우마에서 빨리 탈출하려는 가족의 염원 때문이었다고 자위했다.


“앞으로 항소심과 상고심이 있으므로 더 지켜봐야겠지.”


서정민이 위로했다.


재판부는, 다른 사고보다 더 긴 시간이 걸렸음에도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희생자들이 장시간 공포감에 시달리다 극심한 고통 끝에 사망했을 것이라는 점을 참작했다.


유가족 원고들 역시 이로 인해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지속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한 것이다.


원고들은 “향후 2심에서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잘못했는지 밝히겠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 2018년 7월 서정민의 선배가 펴낸 책



지난 1년여 간 세월호 침몰 원인을 조사해온 선체조사위원회가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담은 최종 보고서 내용을 확정하여 8월 6일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로써 선조위 활동은 종료된 셈이다.


종합보고서에는 선체결함과 외력 가능성 두 가지 의견을 담았다.
참사 원인을 1년 넘게 35억 원을 들여 조사했는데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은 선체조사위원 간 의견이 팽팽히 맞섰기 때문이다.


위원장(김창준)과 부위원장(김영모) 그리고 위원 한 명 등 3명은 선체 자체 결함, 제1소위원장(권영빈)과 두 위원 등 3명은 외부 충격 가능성을 열어두는 의견을 냈다. 선조위는 침몰원인을 하나로 모으지 못해 절반의 성과를 내는 데 그쳤다.


결국 침몰원인 조사는 제2기 특조위로 넘어가게 됐다.


모형시험에서 외부 힘을 가해도 사고 항적이 나오지 않았고, 급변침은 외부 충격이 아니더라도 설명할 수 있다고 결론지은 선체결함파의 의견은 반쪽 의견이 되고 말았다.


외력충격파는 지지 않았다.
배의 속도 같은 실험 조건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외력을 가하면 선회하는 정도가 늘어나는 것 역시 확인됐다며 여전히 외부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네덜란드 마린 보고서가 마치 정답처럼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게 아니라 발주처로서는 용역 데이터를 분석해서 자신의 입장을 가미하여 결론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선체결함파는 열이 올랐다.


“그럼 소위원회가 GM나 횡경사 모멘트를 계산해 본적이 있나요? 구체적인 데이터가 뒷받침되어야죠. 외력이 의심되는 곳에 다른 페인트도 발견되지 않았잖아요. 그동안 시간도 있었는데 결론 없이 일거리만 남겨 놓고 우리 활동은 종료하는 거로군요. 에익.”


지난해 선체 구조를 다 조사했는데 이제 와서 MBC 기자를 데려다가 처음 발견한 것처럼 말하는 근거가 뭐냐고 따졌다. 마린 보고서에도 외력이 일어날 수 없다고 기술했는데 딴소리 하느냐면서. 처음엔 핀 안정기(fin stabilizer)의 손상을 문제 삼더니 이제 선체를 괴물체가 받았다고 생각하느냐? 언성을 높였다.


이에 외력충격파는 선체 좌현의 충격 흔적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이면서 외력 가능성을 조사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철재 빔에 가려 안 보였던 부분이 드러나면서 손상부분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에 왜 알렸느냐 티격태격 하면 비난을 감수하겠습니다.”


외력충격파는 격한 말을 이었다.


“잠수함이 어떻게 부딪혔냐고 증거를 내놓으라는데, 이건 단순한 의혹이 아니라 찢어진 것은 확실하잖아요. 지금 결론을 못 내려도 추후 조사를 부탁하는 것이 우리 역할 아닌가요.”


이런 논쟁은 유가족으로선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외력설을 조사해달라고 부탁했으나 무시당했다며 그나마 소위원장이 지금 외력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는 것이다.


선체결함과 외부충격으로 엇갈린 의견은 결국 두 종류의 보고서를 작성하게 만들었다.


이런 어정쩡한 결론은 외부 충돌설을 주장하는 시중의 소문을 감안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 모른다. 진영 논리를 반영해야 하는 한국 정치 환경이 작용했다면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2018년 여름은 40도를 넘어 111년 만의 더위라고 한다.
열사가 심한 바다보다는 계곡을 찾는 사람이 많고, 비교적 한가한 사람은 백화점이나 공항을 찾기도 한다.


서정민은 8월 초순의 더위를 피하여 태종대 유람선에 올랐다. 서울을 피해 부산에 왔지만 더위가 수그러든 것은 아니다. 단지 바닷바람을 쐬고 싶어서다.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맞긴 맞는 겁니까?”


유람선에 동승한 해기연수원 선배 교수에게 세월호 조타기 고장 관계에 대해 서정민이 물었다. 전공 분야라면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이다.


“배를 만든 일본 조선소는 고착이 아니라고 하는데 한국 조사관들이 그렇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선배는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는 듯 대답했다.


사실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과 침몰 원인의 상관관계는 규명되지 않았다. 입출항 시 사용되는 두 대의 타기 펌프가 병풍도 항해 시에도 사용되었는지 명확치 않다. 타는 초기 좌현 10도와 침몰시 30도, 최대 35도를 가리킨 점에 대해서도 설명이 부족하다.


“무리한 증개축과 과적으로 복원성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에서 조타장치 이상으로 화물이 급격히 쓰러지면서 침몰했다는데 왜 선조위 간의 결론은 일치하지 않나요?”


독립 전문가의 의견은 어떠한지 서정민이 물었던 것이다.


“시중에서 외력 충돌설을 자꾸 주장하니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입장이겠지. 가능성은 때때로 임무를 연장하고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좋은 탈출구가 되기도 하니까.”


태종대 등대와 이야기하듯 선배는 시선을 멀리 둔 채 말했다.
조사 결과에 못마땅한 기분이 역력히 엿보인다.


“선조위 3인은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과 같은 내부 결함뿐만 아니라 외력 가능성도 배제하지 말고 추후 특별조사위원회 등이 정밀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침몰원인을 보고서에 담았다지요?”


“그 주장은 아마도 선미 프로펠러와 선체 외형 손상을 분석한 결과 외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이겠지.”


유람선이 급선회를 할 때 약간 휘청거렸으나 배는 곧바로 돌아섰고, 선장의 고의 퍼포먼스는 승객을 위한 서비스로 멋지게 느껴지기도 했다.


네덜란드 마린 보고서 유출 공방이 벌어졌다.
선조위 사무처장이 외부에 비밀유지를 전제로 보고서를 공유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선체결함파는 비밀로 돼 있는 것이 언론에 그냥 나갔다는 것은 무슨 의도가 있지 않느냐고 외력충격파를 비판한다.


보고서 공개로 연구결과를 왜곡시킨 점에 검찰 고발 필요성이 대두됐으나, 위원장은 “마린이 발주자의 의견을 수용해서 최종 보고서를 낸 것은 어떠한 문제도 없다”며 사태를 원만히 수습했다.


선조위의 의견이 내부원인과 외부원인 3:3으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외부 충격 가능성의 토론을 제2기 특조위로 넘겨 선조위가 예산만 낭비한 채 어정쩡하게 끝난 게 아닌지 비난을 사기도 했다.


맹골 수로는 전체적으로 해저 굴곡이 심하고 수심 40m 미만의 해역이라 잠수함의 안전을 고려해 잠항 항해를 할 수 없고, 또 일반선과 어선의 이동이 빈번하고 조류가 빨라 기동성이 떨어지는 잠수함의 항로로 이용할 수 없는 해역이라고 해군은 강조했다.
 
침몰 원인 조사는 끝났다.
그럼 세월호 거치장소는?


목포, 안산 대부도, 진도 서망항 등 3곳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거치장소의 선정 요소는 일곱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상징성, 거치기술, 무게 감당, 주위 활용, 지역연계, 지자체 관심, 거치비용 등이다.


선조위는 선체를 보존하고 전시하는 것이 교육·기억·기록 등의 의미가 있고, 추모·치유 기능과 교육관으로서 종합 재난 예방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가칭 '세월호 생명기억관'으로 ‘416재단’에 위탁해 관리하자는 방안 등도 검토됐다. 세월호의 보존 방식과 장소에 대해서도 유족의 희망과 비용 문제 등이 맞물려 역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하다.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은 2018년 2월 실물 크기의 25분의 1로 세월호
선체모형을 만들어 수조 안에서 모형시험 진행


<계속>

'소설 > 더 세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 세월(제45회)  (0) 2018.09.17
더 세월(제44회)  (0) 2018.08.23
더 세월(제42회)  (0) 2018.06.28
더 세월(제41회)  (0) 2018.06.07
더 세월(제40회)  (0) 2018.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