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더 세월

64.여객선 믿음호 취항

오선닥 2022. 2. 23. 15:34

▲여객선 취항

 

길을 내는 사람은 외롭다.

복고와 향수는 진정성 추구의 방편일 수 있다. 조준되지 않은 사격이 의미가 없듯 진정성 없는 세월호 수습은 의미가 퇴색된다.

세월호 8주년을 맞이하여 사고 당시를 돌아보는 것은 진정성 추구의 작업이기도 하다. 각오를 단단히 하면 지나간 슬픔에 지금의 눈물을 낭비해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따른다. 살아남은 자로서는 환경을 바꿀 수 없으니 자신을 바꾸어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된다. 인생 무대의 주인공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삶이 스스로 플롯을 지닌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은 것은 인간 본성이다. 컴컴한 선실에 갇혀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희망의 유무가 문제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모르겠으나 공원을 거니는 서정민의 걸음걸이가 균형을 잃었다. 세월호 계절이 다가오면 무의식적으로 몸이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순정이 이런 남편과 함께 걷는 것은 마치 달팽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기분이다.

봄은 발아래에서 그리고 눈앞에서 느껴졌다. 얼음장 아래 물고기가 헤엄치고 눈서리 아래 매화가 꽃망울을 맺는 시기에 그들은 애써 이 계절을 무난히 넘기고 싶었다.

불에 덴 사람은 솥뚜껑보고 놀라는데 세월호에 덴 국민은 여객선만 봐도 두려울 지경이 되었는가. 인천-제주 여객항로가 수년간 닫혀 있어도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감히 여객선을 투입코자 시도하는 회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웬만한 조건이 아니면 정부에서 허가할 의사도 없었다.

구름은 바람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고, 사람은 사랑이 없으면 인연을 만들 수 없고, 뱃길은 용기가 없으면 열어갈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이라 하더라도 불편은 불편일 따름이다.

세월호 사고 5년이 지나서야 인천-제주 뱃길을 재고할 필요가 있음을 절실히 느끼고 정부는 취항선사 선정 입찰에 들어갔다.

큰 아픔을 간직한 뱃길이 어렵게 다시 열리는 만큼 거는 기대도 컸다. 세월호 참사는 한진해운 파산과 더불어 대한민국 해운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세월호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시민들에게 배 여행의 즐거움과 재미를 제공하려면 무엇보다 안전 문제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서정민에게 인천-제주 뱃길은 치를 떨 만한 이미지로 기억되기도 하겠으나, 그토록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트라우마를 어떤 도전을 통하여 극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치유하고 싶었다.

뱃길 재개 소식을 들은 서정민이 입찰 희망 회사 중 한 곳을 찾은 것은 이 무렵이었다. 간단한 자기소개 후 단도직입적으로 주주에 참여할 수 없느냐고 타진했다. 한 푼의 자금이라도 더 필요한 선사는 환영한다는 말과 함께 자본금 100억원의 3퍼센트인 3억원 참여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동의했다. 서정민은 머린컨설팅을 경영하면서 3억원의 여유자금을 확보하고 있었다.

트라우마가 가져다준 뒤죽박죽 인생을 거꾸로 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구나무를 서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을 것 같았다. 세월호 후속선이 이 항로를 이어나가길 희망하기에 이르러 그의 도전정신은 현실에 뛰어들었다.

 

인천-제주 뱃길은 7년 동안 막혀 있다가 드디어 20211210일 재개됐다.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된 회사가 소송을 제기하여 운항이 지연되긴 했지만 대법원 판결에서 원고가 패소하여 피고인 선정사의 선박 운항이 개시된 것이다. 원고는 선박의 크기와 접안능력이 입찰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배는 크루즈형 여객선으로 세월호보다 크고 고급스러우며, 96개의 객실과 레스토랑, 라운지, 수유실, 편의점, 베이커리 등 각종 편의 시설은 물론, 키즈존과 펫룸까지 마련돼 있어 기존의 연안여객선 개념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단체 고객의 안전교육 등을 위한 다목적 대형 강당을 갖춘 것은 세월호 사건이 준 교훈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는 구조를 과감히 채택한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총톤수 27000t급 카페리선 믿음호의 건조가격은 710억원으로 책정됐다. 길이 170미터, 너비 26미터, 높이 28미터 제원의 선박은 최대 승객 810(승선정원 854), 승용차 487, 10피트 컨테이너 65개 등을 동시에 싣고 최고 23노트의 속도로 운항할 수 있다. 세월호 정원 921명에 비해 적은 것은 그만큼 쾌적한 항해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세월호 희생자로서 투자 참여를 결심하기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까?”

취항하기 전 기자들이 여객선을 시승하고 있을 때, 선박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한 기자의 질문에 서정민은 대답했다.

이 배의 이름이 믿음호입니다. 안전을 담보한다는 믿음이 깔려있는 거지요. 이제 두려움이 없습니다. 304명의 영혼을 달래는 항해를 하고 싶습니다.”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로서, 또 선박 전문가로서 배를 어떻게 만들면 좋겠다는 개념 같은 것이 있으셨나요?”

끈질기게 따라 다니는 세월호 단어에서 헤어나고 싶었지만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야 하는 게 투자자의 의무이다.

“7년 만의 항로 재개인데 안전이 최우선이죠. 화물적재관리시스템으로 실시간 중량을 계산해 균형적인 화물 선적을 가능케 하여 복원력 상실을 예방하는 게 고무적이죠.”

이 시스템은 여객선사와 해운조합이 국내 최초로 개발한 실시간 화물적재관리시스템으로, 컴퓨터와 작업자의 휴대용정보단말기(PDA: Personal Digital Assistance)를 연동해 실시간으로 화물 중량을 계산함으로써 조타실에서 곧바로 선적 위치를 지시하고 작업자가 이를 이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동차가 부두에 도착한 순서대로 무작위로 선적되는 연안여객선은 감항성과 복원력 확보가 가장 큰 과제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경험으로 안전설비에 신경을 많이 쓰셨다는 뜻인가요?”

안전은 양보할 수 없는, 회사 존립의 문제입니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 침수나 화재 등 긴급 상황에 대비한 화재자동경보기, 스프링클러와 함께 인원 850여명이 30분 내 비상 탈출할 수 있는 해상탈출설비 등 다양한 안전 설비가 갖춰져 있다. 선박의 안전 운항을 위한 위성항법장치와 더불어 대기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황산화물(SOx), 질소산화물(NOx) 저감 장치도 탑재돼 있다.

 

인천-제주항로는 국내에서 가장 긴 뱃길이다.

길이만 420킬로미터에 달하며, 배에서 머무는 시간은 14시간쯤 된다. 이용객들이 긴 시간 동안 무료하지 않도록 각종 오락시간을 마련하는 것도 좋지만 안전에 경각심을 가질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요구된다.

안전운항을 위해서는 해양수산부와 해양교통안전공단, 한국선급, 해운조합, 해경 등 관련 기관의 아낌없는 지원과 철저한 감독이 수반돼야 한다.

안전을 강조하는 서정민에게 기자들은 추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전이 우선이지만 기업은 이익이 있어야 경영이 지속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소는 누가 키우느냐 문제에 들어가면 당연한 질문이다.

안정적인 영업성과는 필수입니다. 그렇더라도 청해진해운이 실적 내기에 급급해 검사기관의 지침을 무시하고 무분별하게 화물을 실어 사고를 낸 사실을 교훈 삼아야 합니다.”

그럼 어떤 전략이라도?”

항공을 이용하는 제주도 관광객을 선박으로 끌어오고 육상물류와 연계한 경쟁력 있는 운임으로 화물을 유치해 신항로 활성화에 나서겠습니다. 저희는 화물차와 선박 운송을 따로 하지 않고 육상물류도 같이 하고 있어 육운과 해운의 시너지를 활용한 정당한 원가 경쟁으로 화주와 직접 계약하는 영업 전략을 구상 중입니다.”

다양한 운용 전략을 시도한다고 일전에 말씀하셨는데요?”

단순한 수송이 아니라 휴식과 레저를 접목하는 방향을 설정하고 싶습니다. 승선도 여행의 일부로 생각하도록 하겠다는 거죠.”

선박을 달리 활용하는 유용한 방법도 생각해 보셨나요?”

선박이 휴항 중일 때 학생들을 초청해서 선박에 비치된 비상 탈출 시설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여 선박은 안전한 곳으로서 생활하기 쾌적한 장소라는 것을 증명하고 앞으로 해상도시 건설의 꿈을 키워주고 싶어요.”

크루즈선 투자 동기가 거기까지 미치는군요. 봉황의 깊은 뜻을 알아낸 것 같아 놀랐습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원대한 꿈도 꿀 수 있겠구나, 기자는 은근히 감탄했다.

 

선박 운항 환경에 문제가 있음을 들은 바 있는 기자는 질문을 이어갔다.

부두 시설은 문제가 없나요?”

제주항이 포화상태란 점이 문제인데, 신항 이용이 가능할 때까지 비어있는 크루즈 선석을 임시 사용할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아두긴 했지요.”

코로나 사태로 여객선 시장이 크게 위축됐는데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이라도 있으신가요?”

지금은 분명 어려운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극복하면 호황을 맞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믿음호의 이름처럼 우린 확실히 믿습니다. 미래에 투자한다는 각오로 시작했으니까요.”

마스크를 못 벗는 불편함을 당분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위드코로나 시대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코로나 사태로 해외에 나가지 못하다 보니 차박같은 각종 동호회나 국내 거주 중인 외국인을 유치하려고 합니다.”

항공여행과의 차별화가 필요하겠습니다만?”

크루즈여행은 선박 야외갑판에서 다양한 이벤트 등의 볼거리를 제공하지요.”

불꽃놀이나 인디밴드, 전자댄스음악 파티를 기획해서 여객들이 지루하지 않게 즐기면서 배를 탈 수 있다고 서정민은 덧붙여 설명했다.

업계나 당국에 부탁할 말씀이라도 있으시다면?

저희는 부당한 출혈경쟁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객 수요는 충분하다고 보며, 다만 항공으로 몰려 여객선에 친숙하지 않은 게 문제지죠. 공동체의식으로 함께 연안여객선 시장을 개척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그의 설명에서 크루즈형 여객선의 취항으로 인천-제주 항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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