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더 세월

63.가족이라는 울타리

오선닥 2022. 2. 11. 11:14

2022416일이면 세월호 사고 8주년이 됩니다.

세월호 사고의 기록 소설 더세월이 사고 5주년을 맞이하여 20194월에 발간된 바 있습니다.

발간된 책은 주간 해운잡지사 코리아시핑가제트에서 1년 반 동안 연재되기도 했습니다.

소설은 모두 62절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금년 4168주년을 기하여 3절을 추가해서 개정판을 발간하고자 합니다.

역사 기록 소설인 만큼 주인공의 가족 이야기와 세월호 후속선의 출현,

가족의 여객선 승선 경험을 담은 뒷이야기까지 전합니다.

우선 추가된 절부터 연재 시작하겠습니다.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세월호가 인양되어 부두에 직립한 후 사고의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서정민과 이순정 부부의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결혼 전부터 함께 근무하면서 세월호 피해자인 두 사람이 서로를 위로한다는 도덕적이고 아량 깊은 격려와 이해 속에서 자연스런 신체접촉의 결과로 혼전 임신을 하고 말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임신 5개월. 아직 임산부의 배가 눈에 띄게 불러오기 전 그들은 간단한 결혼식을 올렸다. 보통의 경우라면 혼전 임신을 부끄러워할 만하나 이팔봉 할아버지와 윤수조 할머니는 입을 맞춘 듯 이만한 혼숫감은 없다며 임신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공개적으로 공표할 일은 아니지만 아기가 고추를 달고 있다는 사실에 두 노인은 눈을 마주하며 미묘한 회심의 미소를 띠기도 했다.

식구가 많은데도 가정부를 두지 않으려는 윤수조 할머니를 두 가지 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임산부의 안락한 휴식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함이요, 다음은 이팔봉 할아버지와 오붓한 다과 시간을 갖고자 함이었다. 다만 두 노인의 평화로운 휴식에 불편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파출부를 부르는 것은 허용하기로 했다. 품격 있는 다과 준비를 위해 윤 할머니는 남몰래 사찰에 가서 차 따르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2019년 봄, 벚꽃이 활짝 필 무렵 아기가 태어나자 식구는 여덟 명이 되었다. 가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하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식구 하나가 불어났는데 기쁨은 여덟 배로 늘어난 느낌이라며 이순정은 행복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서정민의 장남 준호는 대학 2학년이 되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학교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지방 유수대학의 원자력공학과를 택하였고, 소형원자력발전으로 안전하고 편리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게 꿈이었다. 2학년을 마치면 군대에 가서 국방의무를 차질 없이 완수하겠다고 미리 선포하기도 했다. 가능하면 해군에 가서 함교에서 키를 잡고 한때 선장이었던 아버지 서정민이 취했을 법한 엄숙한 지휘관 폼을 잡고 싶다고 말했을 때, 서정민은 그것이 버킷 리스트는 아니더라도 작은 꿈은 될 수 있겠다라며 호응해줬다.

차남 준서는 고3이 되어 눈코 뜰 새 없으나 고1 홍소라가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노래를 가지고 와서 함께 듣자고 하면 짬을 내주는 아량을 보이기도 했다. 준서가 성적에 맞는 인문대학을 지망하여 연예기획을 해보겠다고 자신의 뜻을 소라에게 말했을 때 소라는 방시혁 아저씨처럼 예능에 소질이 있어야 하는데하면서 미리 초를 치는 말을 해도 그냥 웃으며 들어주었다. 어디선가 귀여운 모습으로 굴러 들어온 여동생이 무슨 말을 해도 언제나 예뻐 보였다.

 

장남 준호가 군 입대를 앞두고 회식 모임을 가졌는데 여섯 명이라는 방역수칙 인원 제한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기를 뺀 다섯 식구가 모였다.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한 시기에 한 명을 채우지 않으면 아까울 것 같다면서 소라가 자기 친구 한 명을 데려와 여섯 명이 되었다.

오빠가 군대 갔을 때 SNS할 친구가 될 것 같아서 데려왔어.”

초대한 친구를 앞에 두고 소라는 마치 큰오빠의 호기심을 당기려는 듯 말했다.

그렇게 해주면 딱딱한 군대생활에서 엄청 위로가 되겠네.”

준호가 환영했다.

테이블에 양식 요리가 깔리고 맛나는 음식 향기가 코를 자극할 때 모두들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같은 식구라도 모처럼 속살을 보는 느낌이었다.

차남 준서는 자기 옆에 앉아 있는 소라의 친구를 보았다.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 위로 눈을 집중하는 버릇이 있었으나, 마스크를 벗은 소녀의 모습에서 갑자기 빛을 보는 것 같았다.

부탄가스를 흡입하듯 옆모습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네.”

칭찬인지 농담인지 준서가 엉뚱한 말로 소라의 친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소라가 가만있지 않았다.

고무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라도 좋으니 오빠 나한테도 칭찬 한번 해줘.”

이 대목에서 모두가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다행히 식당 내의 테이블은 한 칸씩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어 다른 사람에게 그다지 방해되지 않았다.

정현의 아빠는 세월호 잠수 수색 관련 특종 보도를 한 기자라구. 오늘 준서 오빠 멘트도 특종감이야.”

소라가 친구의 반응을 살피자 친구는 식탁에 깔려 있는 어색함을 덮으려는 듯 그냥 미소만 짓고 있었다.

 

2020년부터 몰아친 코로나로 인해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게 되자 세월호 트라우마 환자들은 증상이 악화되었다. 서정민에게 온갖 거무튀튀한 감정들이 똘똘 뭉쳤다. 뭉친 덩어리의 내부 압력을 상승시킨 것은 가족 모임의 제한이었다. 대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려면 인원수 초과가 문제였다.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고통스럽지만 닥친 재앙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보고서를 보면 유가족 한 분은 객실 안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아이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250명 단원고 학생은 20192월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교육당국은 2016년 명예졸업을 추진했으나 유족 측 요청으로 미수습 학생들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미뤄왔던 것이다.

열여덟의 기억에 있던 세월호 학생은 2021년 스물다섯의 약속을 말할 나이가 되었다.

별이 된 친구들의 앨범에서 기억을 마주했다.

매년 봄이면 많은 추모객이 목포신항을 찾았다. 항구 울타리에 매달린 빛바랜 리본들을 어루만지거나 미수습자 5명의 얼굴 사진을 바라보며 아픔을 삼켰다.

세월호 마지막 생존자 김성묵은 사건의 트라우마로 자신이 왜 살아남았는지 후회된다고 했다. 제주 출장 중이었던 그는 살아남은 것이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라고 했다.

세월호가 인양되고 탈출했던 장소를 보니 못 살겠더라구.”

그는 누워있는 장면을 꿈꾸다 약도 술도 소용없었다고 했다.

정신과의사가 당신의 절망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관찰하여 치료하고 싶다라고 말했을 때는 고맙기만 했다.

죽어가는 학생이 오히려 엄마 아빠 미안해.

구명조끼 벗어주지 못한 게 미안해.

이런 미안해가 세월호 가족에게는 평소에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그렇지만 살려준 것과 살아낸 것의 차이가 뭔지는 모르겠단다. 살아난 현실이 후회스러우니까.

 

시민들은 현장성을 살려 선체를 영구히 보존하자는 안에 기꺼이 동의했다.

2020년 세월호 선체 보존계획의 윤곽이 나왔다. 2028년까지 1,523억원을 들여 목포신항에서 1.3킬로미터 떨어진 고하도 배후단지에 선체를 거치하고, ‘세월호생명기억관을 건립해 기억·추모·교육 등에 활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세월호 10주기인 2024년부터 이동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해수부는 자금 마련을 위해 구상권을 소송 중인 청해진해운한테 대물변제 방식으로 소유권을 확보하고, 고하도 배후단지 갯벌의 매립과 보강, 모듈트랜스포터를 활용한 육상 이동 등의 작업도 준비 중이다.

선체 원형 보존의 장소와 방향 등 중요 사항은 결정되었기에 세세한 부분은 유가족과 목포시의 의견을 들어 진행하겠다고 해수부는 방침을 밝혔다.

선체는 침몰인양절단직립 등을 거쳤지만 구조적 안정성에는 문제없다. 2019년 변형된 선박의 구조, 두께, 하중 등을 해양수산부가 검사한 결과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3년마다 안정성을 평가해 왔다.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에서 기초한 선체 처리계획의 실행안은 이미 국회에 보고됐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던가.

8년 전 인천항을 떠난 여객선 세월호는 아직도 목적항인 제주항에 닿지 못했다. 대신 3년간 진도 맹골수도 40미터 바닷속에 머물렀다가 인양된 뒤 5년간 목포신항 차량부두에서 죽은 듯 잠들어 있다.

4·16참사가족협의회는 세월호를 목포 거치에 동의하고 있다. 다만 유가족은 진상규명이 우선이고, 선체 보존은 다음 문제라는 원칙을 내비쳤다. 2기 사회적참사위원회 활동이 끝나는 20229월 비로소 선체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전했다.

어제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내일이 오늘이 되었지만 희망했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은 말이 더 있을 수 있지만 코로나 봉쇄령으로 집 안에 갇혀 있는 사람처럼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이쯤에서 끝내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나를 키운 8할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인정한다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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