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극지 탐사 항해

31.얼음을 찾아서

오선닥 2021. 1. 7. 16:02

 

 

북극탐사항해의 두 가지 과제는
북극항로 개척과 북극 개발
그래서 임무는 중요하고요

 



31. 얼음을 찾아서

 

배는 북위 76도를 따라 정서(正西)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멀리 해빙(海氷)이 보이나 그리 단단하지는 않아 보였다.
약한 얼음을 밀고 지나갈 때 해면에서 사각사각 얼음 갈아내는 소리가 들렸다.
당직을 마치고 아침을 먹을 때 양외란은 러시아 유빙항해사와 마주했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 차이는 어떻습니까?”
양 극지를 다 경험한 그녀로서는 두 지역의 얼음의 차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전문가의 견해를 듣고 싶었다.
“남극의 얼음이 빨리 녹습니다.”
유빙항해사는 간단한 결론을 내리고 설명에 들어갔다.
남극의 해빙에는 해조(海藻), 크릴 등이 섞여 있어 빨리 녹는다. 해조는 해빙의 바닥이나 가운데에 들어있다.
북극의 얼음에는 눈이 10~20센티 정도만 쌓이지만, 남극은 대륙이라 눈이 50센티 이상 쌓인다.
북극의 겨울이 끝나는 5월 초순이면 일 년 된 얼음은 1.2~2미터 정도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두꺼워져 2년생은 2~3미터 정도 된다. 2년 된 얼음은 염분이 모세관현상으로 빠져나가 민물 얼음이 되므로 녹여서 마실 수 있다.
얼음의 연구는 발전을 거듭했다.
쇄빙선이 없을 때는 얼음 위 기지에서 얼음 연구를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한 에피소드도 있다.
70년대 초 러시아 과학자들은 북극점 해빙덩어리 위 ‘떠다니는 기지’에서 연구했다.
처음 한 개였던 얼음덩어리가 두 개로 나누어져 서쪽으로 떠내려가다가 한 개는 북극에서 사라지고, 다른 한 개는 놀랍게도 4천 킬로 이상 떨어진 그린란드 동안까지 떠내려가 녹았다고 한다.
한 소년이 러시아 기지의 주소가 적힌 편지봉투를 주워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북극얼음이 갈라지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오전 과업이 시작할 무렵 갑자기 화재경보가 울렸다.
당직항해사 양외란이 확인한 결과 세탁실의 스팀이 과하게 발생하여 경보기에 포착된 것이다.
계단에서 각 복도로 들어가는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평소에는 자석으로 문을 열어놓지만 불이 났을 때는 복도로 불이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동으로 폐쇄된다.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됐다는 뜻이다. 실제 화재가 발생하지 않아 안심이었다.
곧 선내방송을 통해 경위를 설명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다가 화재로 감지할 정도로 센서는 예민하다.
“불감증이 아닌 것을 고맙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
경보기의 민감한 작동에 불만을 표시하려는 사람이 있자 전자장이 변호에 나섰다.
뱃머리가 얼음판에 부딪칠 때마다 쿵쿵 소리와 함께 선체가 심하게 요동했다.
일반 상선이라면 외판 손상 염려에 깜짝 놀랄 수도 있다.
본선은 쇄빙연구선으로 선급규칙 PL-10 및 IMO의 극지빙해역 선박운항 기준의 선체 강도를 갖추고 있어 안심이다.
선수 측에는 얼음칼(Ice knife)이 설치돼 있어 얼음을 쪼개고 또 선박이 얼음판 위로 높게 올라가는 것을 방지한다.
추진기는 얼음 충돌에 견디도록 스테인리스로 제작돼 있다. 빙해선급규정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일만 킬로와트 추진기 출력은 두꺼운 얼음판을 쩡~ 쩡~ 조각낼 정도로 힘차다. 선수 측 외판두께 40밀리 고급강재는 영하 40도를 견뎌낼 정도로 강하다.
이런 특수 시설들이 탑승자를 안심시키기에 충분하다.

 

2010년 8월 초하루의 아침은 서늘하다.
기온은 영하 1.5도
상갑판에는 모처럼 살얼음이 깔렸다.
살얼음은 자주 보는 광경이 아니다. 안개나 비, 눈이 와야 볼 수 있지만 간밤에 얇은 얼음이 필름처럼 입혀졌다. 발밑의 갑판 바닥이 미끄러웠다.
정오 무렵 기온이 영(零) 도 가까이 올라갔지만 바지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은 속살을 차갑게 쓸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여름의 바람 치고는 상당히 냉랭했다.
갑판 난간에 매달린 작은 고드름이 눈에 띄었으나 녹기 직전이다. 고드름은 간밤에 내린 가랑비의 빗물이 흐르면서 젓가락처럼 길게 얼어붙었다.
오후 2시 상갑판
난간을 기대며 성(姓)이 같은 두 여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언니 약간 추우시죠? 지금 아이스크림 생각 안 나셔?”
양외란이 해양생태 연구원 양지원에게 제안했다.
제주도 양씨에 나이가 세 살 많은 양지원을 양외란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언니로 불렀다.
“이런 날씨에 웬 아이스크림이야?”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데, 아이스크림이 곧 품절된대요.”
어렸을 때 울보였던 양외란은 아이스크림에는 무조건 울음을 뚝 했다. 호랑이보다 곶감에 더 빨리 울음을 그친 옛날 아이처럼.
“아이스크림은 추울 때 먹는 것이 제맛이라우.”
둘은 만 원짜리 한 통을 한자리에서 쓱싹했다.
품절되기 전에 급히 먹어야 되는 것처럼.
“이젠 과일 칵테일 생각이 나네.”
양지원은 다른 것이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은 체리, 바나나, 파인애플이 섞인 칵테일을 주문했다.
처녀들의 별스런 간식 시간은 북극해의 오후를 잠시나마 즐겁게 했다.
하늘은 흐렸지만 해는 숨바꼭질하다가 ‘무궁화꽃이 필’ 무렵 구름을 비집고 나왔다. 바다의 얼음은 40퍼센트 정도밖에 덮이지 않아서인지 배는 얌전하게 북으로 달리고 있었다.
북위 76도 바다 한가운데서 새를 봤다면 기적이 아닐까.
새 두 마리가 사이좋게 물 위에 떠 있었다.
날개 위쪽은 하얗고, 머리와 부리는 검은색이었다.
물 아니면 얼음 위일 텐데 겨울 추위에 어떻게 이겨내나? 어쩌면 겨울에는 남쪽으로 내려갈지도.
“저 물새는 두 마리인데 울 엄마는 혼자서 살아야 하나?”
양외란은 엄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에는 독신이 한둘이 아니다.
나이 많은 미혼 여성이 있고, 북극곰감시인 같은 할아버지 총각도 있다.
필리핀 여학생이 따뜻한 커피를 들고 헬리콥터 갑판에 혼자 있는 북극곰감시인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 커피 한잔 드세요.”
그녀의 커피 대접은 이번만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미안한 나머지 ‘북극곰이라도 한 번 보여줘야 하는데’ 라고 웃으면서 잔을 받았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본 양외란은 두 사람에게 다가가서 사진을 찍었다.
얼굴도 예쁘고 미소가 입가에 붙어 다니는 필리핀 아가씨를 예쁘게 담고 싶었다.
고운 마음씨도 사진에 담을 수 있나?
헬리콥터 조종사 하워드 씨는 사람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알라스카에 정착한 지 30년 동안 대자연에 익숙해져 사람 속에 사는 게 아직 미숙하다.
그러나 노래방에서 나오는 소리는 점점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선원들이 뭔가 터뜨리고 싶은 심정인가 보다.
집 떠난 지 한 달이 지났고, 또 7개월 예정의 남극 항해를 해야 한다니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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