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제2 과학기지
후보지 비교 검토
테라노바베이로 결정?
16. 후보기지 정밀조사
남극의 눈폭풍이 무서운 것은 건물을 온통 덮어씌우기 때문이다.
러시아 전문가는 설명을 위해 러시아 기지를 예로 들었다.
케이프벅스 인근에 있는 러시아의 폐(廢)기지 루스카야 기지에는 바닥에서 일정한 높이의 기둥을 세워 그 위에 건물을 올려놓았다. 눈폭풍으로 건물이 순간적으로 눈에 뒤덮이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한 특수공법이다.
눈폭풍이 불어닥치면 외부 일정이 모두 정지되는 것은 물론,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어 바로 옆 건물의 입구조차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극에는 또 하나의 무서운 위험이 있다.
“크레바스는 죽음의 함정과 같습니다.”
러시아 전문가는 이 대목을 강조했다. 눈이 얇게 덮여 있다고 하여 ‘하얀 죽음의 함정’이라고 불린다. 지나가는 차까지도 한입에 삼켜버릴 만큼 공포의 존재다.
크레바스는 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이다. 처음에는 1센티미터 정도의 폭이라 할지라도 점점 넓어지고 커지게 되면 깊이는 2, 30센티미터로 한계를 이루지만 물로 채워지면 더 깊어질 수 있다.
남극 세종기지 인근 외국기지에서는 지난해 3명이나 크레바스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남극대륙을 덮고 있는 얼음은 전 세계 얼음의 90%를 차지한다.
극지의 얼음이 모두 녹아내려 바다로 흘러간다면 지구 해수면이 60미터 정도 상승하여 재앙이 닥친다고 과학자들은 분석한다.
남극에는 비가 얼마나 올까?
연간 강수량이 300~500밀리미터에 불과해 매우 건조하다. 그래서 남극을 '하얀 사막'이라 부르기도 한다.
극지에서는 외출할 때 몇 가지 철칙이 있다.
그중 시력 보호 차원에서 고글 착용과 자외선 차단을 위한 선크림 사용이 중요하다.
양외란의 오전당직 시간에 장세빈이 선교갑판으로 올라왔다.
“외란아, 니는 완전 남극체질이야. 까무잡잡한 피부는 선크림이 필요 없을 거야.”
선배라는 사람이 후배의 피부를 가지고 놀 때는 짜증이 날 만하나 양외란은 선배의 농담을 잘 받아준다.
“저도 선크림 발라야 해요. 이 피부도 예민하다구요. 자외선 노 댕큐랍니다.”
“그럼 선블럭 발라. 자외선 차단제 말여.”
“언니두. 선크림이나 선블럭이나 같은 거라구. 하긴 미인들은 이런 거 안 바르는가 봐.”
용어의 차이뿐이지만 구태여 구분하자면 선크림은 자외선 차단 미용크림 로션이고, 선블럭은 물리적 자외선 차단성분으로 자외선을 반사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닐 놀리면 총각 소개는 손 놓을 거야.”
“삐치긴. 좌우지간 세빈 언니만 믿어요.”
하루 한 번 이상 농담을 해야 소화가 되는 선후배간이다.
대륙기지 후보지를 어디로 할 건가?
케이프벅스(Cape Burks)와 테라노바베이(Terra Nova Bay)를 대상으로 정밀조사를 한 다음 최종 후보지를 택일해야 한다. 둘 다 장단점을 갖고 있다.
두 지역의 위치는 이렇다.
케이프벅스: 74°45'S, 136°48'W
테라노바베이: '74°33S, 164°12E
남극 제2기지 후보지 확정을 앞두고 정밀조사단은 건설, 환경, 극지연구 세 부문 전문가로 나뉘었다.
러시아 쇄빙선 페도로프호는 케이프벅스에 이틀 머물고 러시아 남극기지 루스카야로 먼저 출발하고, 러시아 얼음전문가 5명은 아라빙호에 그대로 남았다.
러시아 쇄빙선이 떠났으니 아라빙호는 이제 케이프벅스를 빠져나와 테라노바베이로 이동하는 동안 자력으로 얼음을 깨며 항해해야 한다.
케이프벅스에 도착한 지 4일 만에 정밀조사를 마쳤고, 2010년 1월 30일 케이프벅스를 출항한 후 쇄빙작업 및 얼음연구를 하면서 2월 7일 테라노바베이에 입항했다.
테라노바베이에서 3일가량 정밀조사를 벌였다.
처음엔 케이프벅스가 대세론으로 자리 잡았으나, 정밀조사단 내에서 회의론이 제기됐다.
극지연구소는 2008년 5월 예비후보지 자체평가 결과 케이프벅스를 유력 건설후보지로 선정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결과는 인공위성 자료 등에 기초한 도상조사에 주로 의존했고, 테라노바베이는 비교대상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도상조사가 실제와 많이 다르네요.”
실제 현장을 본 책임연구원은 결론을 미루자고 했다.
<남극 제2기지 건설 민관협의회>에서 종합적으로 비교 평가하게 될 것이다.
같은 남위 74도 상에 걸쳐 있지만 케이프벅스는 서남극에, 테라노바베이는 동남극에 각각 자리하고 있다. 케이프벅스는 러시아가, 테라노바베이는 뉴질랜드가 추천한 곳이다.
케이프벅스와 테라노바베이는 주변에 다른 나라의 상주기지가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전자에는 러시아의 폐 기지가 있을 뿐이고, 후자에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하계캠프만 있을 정도다.
“제일 중요한 게 기상 조건이군요.”
책임연구원이 수석연구원의 의견을 기다렸다.
“연평균 풍속이 케이프가 테라보다 세 배 가까이 되니 항만의 개방이나 건설작업 가능기간에 문제가 많을 것 같네요.”
수석연구원의 의견에 옆에 있던 건설팀장이 덧붙였다.
“기상상태를 볼 때 건설작업 가능 기간이 케이프는 40일인데 비해, 테라는 90일 정도 되는 것으로 계산됩니다.”
건설팀장으로서는 작업현장의 여건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케이프벅스는 풍속이 연평균 초속 13m로 거센데 비해 테라노바베이는 5m로 약한 편이다. 실제로 케이프는 겨울철 최대 풍속이 초속 22m에 달하는 등 바람이 거센데다 쇄빙선이 접근해서 자재 보급·하역이 가능한 기간도 연간 50일 안팎에 불과하다. 그나마 여름철 결빙된 바다가 열리는 ‘폴리냐’(Open Sea)가 수년에 한 번꼴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특히 케이프는 여름철에도 쇄빙선에서 헬기를 띄워야 접근이 가능하다.
이번에는 환경 교수의 지적이 나왔다.
“케이프는 천여 마리의 펭귄 번식지가 확인됐습니다. 환경보호구역으로 묶일 경우 연구활동에도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군요. 그러나 테라는 주변에 멜버른산이 있어 미적 가치면에서도 탁월합니다.”
이어서 그는 테라노바베이의 환경문제를 지적했다.
“테라가 유리하다곤 하지만 주변이 빙하로 둘러싸여서 생태계 연구에 제약을 받는 점은 예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극지연구소는 미래 발전가능성을 거론했다.
테라는 건설부지만도 6만㎡에 달한다. 케이프의 10배가 넘는 광활한 부지를 확보하고 있다. 지면 경사는 완만하다. 테라 일원인 로스해 해저분지는 석유 등 부존자원 확보 측면에서도 국제적 관심이 높다.
“케이프가 기지로 확정되면 건설작업 가능 기간이 연중 50일 미만으로, 3년 안에 기지를 완성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국민의 혈세 낭비가 걱정됩니다.”
건설팀장의 심중엔 아예 테라만이 고려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또 강조했다.
“테라는 작은 만(灣)을 끼고 있어 바지선이 접안하기에도 좋습니다.”
이에 책임연구원이 조사단 전체의 반응을 보기 위해 케이프의 장점을 일부러 거론했다.
“그런데 케이프가 식수원, 활주로 등의 지리적 장점도 있지 않습니까?”
이에 장세빈도 테라 지지자로서 한 마디 거들었다.
“테라 주변에 충분한 크기의 담수호가 있어 식수에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건설공학 교수는 테라는 노출암반이 많아 지반이 안정돼 있는데다 주변에 미국·프랑스·이태리·호주·뉴질랜드 등 외국기지가 많아 헬리콥터 등을 이용한 이동이 용이하고,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주변국과의 국제공동연구 프로젝트가 활성화돼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꼽았다.
“현재까지 절대 비교평가에서 테라가 케이프보다 입지 여건이 단연 앞서는 걸로 나왔군요. 이로서 우리 정밀조사단은 테라를 건설지로 추천하겠습니다. 이의 없으시죠?”
책임연구원의 최종 정리였다.
이로써 2006년 시작된 남극대륙기지 사업이 5년여 만에 결실을 앞두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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