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극지 탐사 항해

17.기지 선정 완료

오선닥 2020. 5. 2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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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눈이 쌓인 아리빙호 갑판


남극의 악조건에서
탐사와 건설을 해야 하는
한국인의 투지가 자랑스러워요



17. 기지 선정 완료

  두 후보지에 대한 정밀조사 결과는 3월 5일 정밀조사 활동보고와 전문가 공청회에 이어 3월 10일 '남극 제2기지 건설 민관협의회'에서 종합적으로 비교 평가할 예정이다.
  “민관협의회에서 건설지가 확정됐다고 해서 마음대로 건설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양외란의 궁금증은 대부분 장세빈에게 타진하여 풀곤 했다.
  “남극은 우리나라가 아니잖아. 그래서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ATCM)에 의향서를 제출해야지.”
  “동의를 얻으면 우리 맘대로 지어도 되나요?”
  양외란이 물었다.
  “집하나 짓는 데도 건축법이라는 게 있잖아. 공법이나 환경영향평가 등의 조건을 충족시켜야지.”
  “통과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초안 작성해서 수정 보완하다보면 2년 정도 걸리겠지.”
  “그럼 2012년 착공되겠네요.”
  “그럴 수도 있지.”
  그렇지 않아도 극지연구소 대륙기지건설추진위원장은 빨라도 2014년에나 완공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밀조사보고서 초안이 작성되자 선내는 여유가 생겼다.
  대화 관심은 남극 차지하기로 모아졌다.

 

  무주공산 남극을 차지하자.
  사람들이 욕심을 가질 만하지만 조약의 규정 때문에 누구도 땅 한 평조차 차지하지 못한다.
  남극은 국가 소유가 없다. 개발을 할 수 없고 오로지 과학의 목적으로만 이용된다.
  남극에 자국의 영토를 공식 선언한 나라는 아르헨티나, 영국, 호주, 칠레, 프랑스, 뉴질랜드, 노르웨이 등 7개국이 있지만, 남극조약(48개국 가입)은 어느 나라의 주장도 용인하지 않고 있다. 영유권은 일체 유보다.
  남극 주변에 영토가 없는 노르웨이는 왜 영토주권국으로 참여했을까?
  그건 아마도 남극을 탐험한 아문센이 남극 꼭지에 노르웨이 국기를 꽂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테라노바베이는 뉴질랜드가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남극은 1998년 남극환경보호의정서 채택을 계기로 오는 2048년까지 50년간 지하자원 개발이 금지되는 대신 과학적 연구 등 제한적 활동은 허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각국이 남극 선점 경쟁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뭘까?
  각국의 복잡한 셈법이 깔려 있다.
-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 등 지하자원 확보
-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생물자원 전쟁
- 극지생물에서 결빙방지 물질 추출
- 저온효소 등 신소재 개발
  선내의사는 극지 미생물에서 추출하는 인공혈액이나 인공장기, 인체 부동액 등이 산업계의 혁명을 가져올 거라고 주장한다.
  “외란씨, 저온생물은행 얘기 들어봤어요?”
  선내의사가 물었다.
  삼항사로 부르면 안 되느냐고 몇 번 항의했지만 의사는 항상 이름을 부른다. 이름이 독특하고 귀여워서 꼭 불러주는 게 예의란다.
  “세종과학기지에 극지생물을 보관하고 있다던데요.”
  세종과학기지는 한국의 제1 남극기지로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준공되었다.
  “그래요. 100여종이 넘는 극지식물 플랑크톤을 보관용기에 키우고 있지. 바로 그런 게 저온생물은행이 아닐까. 마치 줄기세포 보관하듯 말야.”
  “극지생물의 혜택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좋은 시대에 태어났군.”
  남극대륙에는 대규모 석탄자원이 매장돼 있다. 남극 해저에는 인류가 100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원유와 천연가스 자원이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질 연구원은 강조했다.

 

  “남극은 지구 얼음의 90%와 담수 자원의 70%를 갖고 있지요. 철, 구리, 니켈, 금, 은 등 각종 지하자원도 풍부하고요.”

  남극 연구는 국가 경제 능력에 비례하는 것 같다.
  일례로 중국은 남극 최고점인 해발 4,093m에 제3기지인 쿤룬기지를 완공해 하계기지로 운영하는가하면, 이탈리아는 최근 몇 년간 예산 삭감으로 남극기지 운영이 사실상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남극 선점 경쟁은 역시 돈과 직결되는가 봐요.”
  양외란은 설명을 듣고 반응했다.
  건설추진위원장의 설명에 양외란은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뭉클했다.
  상주 기지를 운영 중인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미국, 러시아, 칠레, 일본, 중국 등 20개국이다. 40개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여름철에만 운영하는 하계기지도 무려 35개에 달한다.
  최근 쇄빙선을 건조하거나 증설하는 것도 남극대륙 진출을 가속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신이 버린 땅이 지금 위력을 발휘하네요.”
  “이 세상엔 버릴 땅이란 존재하지 않군요.”
  모인 직원들은 한마디씩 했다.

 

  세종기지가 위치한 남극반도에 웨델해(Weddell Sea)는 험하기로 유명하다.
  지금껏 탐사에 성공한 나라는 미국 영국 독일 세 나라 밖에 없는데 한국이 네 번째로 탐사에 도전했다.
  남극해는 거대한 얼음이 가로막고 있어 접근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 해역이 많다. 특히 웨델해는 여름에도 두껍고 밀집된 얼음이 계속 밀려와 쇄빙선도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2013년 4월 초 칠레 푼타에서 미국 연구팀 18명과 국내 연구진 18명을 태우고 출발한 아라빙호가 남극 반도 북단을 향해 출발하였다. 이 탐사의 연구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남극반도의 빙붕 연안과 얼음 위에 빙붕 관측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극반도 빙붕 해역에서 일어나는 해양순환, 생지화확, 생‧미생물 연구와 과거 빙붕활동을 추적하는 고해양 연구이다.
  지난 10년간 이 지역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대두된 이유는 지난 반세기 동안 남극반도의 지역온난화가 지속되면서 일어난 빙권의 변화이다. 빙붕은 육상 빙상에서 바다 위로 확장하여 떠있는 두께 약 200∼500m의 얼음인데, 특히 빙붕이 지역온난화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
  2002년 서울시 면적의 4배 크기인 라슨 빙붕이 한 달 만에 붕괴된 적이 있어 과학적인 관심이 높아졌는데, 어떤 탐사선도 접근할 수 없었던 해역이 이제 미지의 새로운 세상으로 드러났다.

  우선 2010년 극지연구소 연구원 2명, 2012년 4명이 미국 쇄빙연구선 파머호(R/V Palmer)에 승선하여 공동 연구를 수행하였다. 2010년에 두 달은 라슨 빙붕에 진입에 실패했지만 2012년 겨우 라슨 빙붕 A만 진입할 수 있었다.
2013년 아라빙호가 참여하여 새로운 기회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웨델해 반대편 로스해에서 장보고과학기지를 세우기 위해 남극 하계 연구 기간을 늘리기 위해 겨울 초입에 쇄빙선을 투입하여 부근 항해에 성공할 수 있었다.
  “모험가가 있어야 개척가가 나오고 투자자도 생기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법예요.”
  수석연구원은 양외란 같은 젊은이에게 희망을 걸었다.
  하얀 물살을 내며 달리는 배의 뒤꽁무니를 보고 요트를 타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남극을 알려면 얼음을 깨고 빙붕에 들어가야죠.”
  양외란은 갑자기 모험심이 발동했다.
  얼음을 아작아작 깨물고 싶었다.

  2010년 2월 10일, 정밀조사 임무를 완수한 아라빙호는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테라노바베이 출항하여 뉴지 크라이스트처치로 향했다.
  올 때와는 달리 돌아가는 길은 순조로운 항해였다. 러시아선을 동반할 필요 없으니 자유로운 항해가 가능했다.
아라빙호가 테라노바베이를 떠나 2월 18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를 거쳐, 임무를 마치고 3월 15일 인천항으로 돌아옴으로써 제1차 항해가 끝났다.
  양외란은 엄마가 어떤 말로 딸을 맞이할까 궁금했는데, 엄마의 첫 마디는 기대 밖이었다.
  “널 남자처럼 키우길 정말 잘했어.”
  “엄마, 옆에 사람들 들어요. 작은 소리로!”
  엄마는 막무가내였다.
  “아무나 남극에 갔다 오냐? 그것도 최초 여성 항해사로 말이다.”
  엄마는 최초 여성 비행사 김경오 씨가 그렇게 부럽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최초라는 단어에 중독된 사람같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제2 남극기지는 테라노바베이로 최종 선정됐다.
  인천에 입항한 지 이틀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남극 여정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힘든 항해였기에 남극 대륙에서 보낸 시간은 더 없이 값진 경험이었다.
  “우리의 힘으로 갈 수 없는 대륙은 없습니다.”
  언론기자와 인터뷰했을 때 양외란은 당당하게 말했다.
  이로부터 3개월 후 남극 제2기지의 명칭은 ‘장보고과학기지’로 선정됐다.
  응모한 명칭이 무려 2,400여개였다니 국민의 관심을 짐작할 수 있다.
  장보고 제독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웨델해 탐사 위한기간 동안 아라빙호의 항해궤적(노랑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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