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극지 탐사 항해

10.남극 처녀항해

오선닥 2020. 1. 27. 18:50


▲인천항 출항



쇄빙선 아라빙호는
남극을 향해 처녀출항
가슴이 두근거릴 만하다

 
 


10. 남극 처녀항해


  한국 쇄빙선 아라온호의 이름은 순우리말로 바다라는 뜻의 ‘아라’와 모두라는 뜻의 ‘온’을 붙인 이름으로 모든 바다라는 뜻이다. 그럼 소설 속 아라빙호의 아라빙은 얼음 바다로 생각해도 좋겠다. 
  쇄빙선은 매년 남‧북극을 한 번씩 왕복 항해하도록 건조되었다.
  이제 처녀출항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긴장할 필요가 없다. 얼음을 깨면서 항해할 정도로 단단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2009년 12월 18일 아라빙호는 남극을 향해 인천항을 출항했다.
  인천에서 탑승한 인원은 30명이다. 승조원 25명과 견습선원 2명, 그리고 극지연구소 해무담당 요원 3명이다. 20일 후 뉴질랜드에 배가 도착하면 한국에서 항공편으로 온 연구요원 44명이 합류할 것이다.


  출항한 지 사흘째 한 선실에서 두 여성이 오미자차의 다섯 가지 맛을 즐기면서 저녁 담소를 나누고 있다. 두 여성은 장세빈과 양외란이다. 이들은 오미자차의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을 느끼려는 노력과 함께 앞으로 전개될 극지탐사 항해에서 삶의 맛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느껴보리라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쓴맛을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
  “외란아, 너 정말 해낼 수 있겠어?”
  장세빈이 물었다.
  “언니는 제 스타일 잘 아시잖아요. 염려 접으세요. 분명 해낼 수 있다니까요.”
  양외란은 S사에서 근무하는 중에 아라빙호의 삼항사로 선발됐다.
  양외란과 장세빈은 함께 2인실을 사용한다. 이들은 국제해양대학교 선후배 관계다.
  장세반은 첫 여성 입학생으로서 3년의 승선 의무기간을 끝낸 후 연구원의 길을 택했다. 현재 한국해양연구원 부속 극지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쇄빙선에는 연구소의 해무 책임자 자격으로 승선했다.
  양외란은 남성 항해사 못지않은 담대함이 있는데 이는 어릴 적부터 길러진 기질이다. 그렇다고 팔씨름해서 쇄빙선 항해사로 뽑힌 것은 아니다. 남성으로 태어났더라면 칭기스칸이 되는 데 손색이 없었을는지도.
  S사의 김선봉 선장이 아라빙호의 첫 선장으로 공채 선발되자 그의 추천이 선발 평점에 도움이 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다.
  장세빈이 새까만 후배 양외란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담대함이 구릿빛 색깔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래, 너도 남성 세계에 끼어들어 고생깨나 할 것 같구나. 우리 힘내자.”
  파이팅, 하며 두 여성은 동시에 소리를 높이 질렀다.
  선실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었다면 깜짝 놀랐을지도 모른다. 배에서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정말 놀랄 일이 생길지 모르니 간 떨어지는 행동은 금물이다.


  아라빙호에는 최종적으로 네 명의 여성이 탑승할 예정이다. 총 74명의 탑승자 중에 4명이라는 숫자는 주목거리가 아닐지 모르나 목적지가 남극이라면 의미가 달라진다. 남자에게도 떨리고 두려운 지역이기 때문이다.
  양외란과 장세빈은 함께 2인실을 사용한다. 국제해양대학교 선후배로 이런 곳에서 한방을 쓰는 것은 우연이 만들어준 필연 같기만 하다.
  배에는 1인실이 3개가 있다. 선장, 책임연구원 및 수석연구원 용이다. 나머지는 2인실과 4인실이다.
  “외란이 너 몇 살이지?”
  “새삼스럽게 그걸 왜 물으세요, 언니?”
  “니 나이를 알면 내 나이는 저절로 계산되니까.”
  “스물다섯… 언니 서른여섯. 이젠 됐어요?”
  “계산 하나 빠르구나. 열흘 후면 2010년이 되니까 한 살씩 더 보태야지.”
  “언니와 저는 운명적인 관곈가 봐요. 그렇죠?”
  “그렇군. 오선덕 선장님이 고리가 돼서 이렇게 운명적으로….”
  오 선장은 장세빈의 외삼촌이다. 오 선장은 또 양외란의 어머니 전계린 박사와 선주협회연구소에서 함께 연구활동을 한 인연이 있다.
  “언니께서 해기사를 계속하셨더라면 제1호 여성 선장이 되었을 뻔했는데.”
  “그거야 승선근무를 계속했을 경우지. 연구원이 돼 너와 함께 남극에 가니 난 행복해.”
  둘은 서로 포옹했다.
  한국의 첫 여성 선장은 2019년 말경 탄생했는데 생각보다 여성 선장은 늦게 나왔다. 선주로서는 1억 달러 값이 나가는 배를 여성에게 맡긴다는 게 불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으로 가슴이 뜨거운 여성들.
  그들은 극지탐사 항해에서 만족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수단과 목적이 다르면 노동이 되고 같으면 놀이가 된다고 했으니 놀이로 여기고 생활하는 지혜를 찾으면 좋겠다.


  아라빙호의 항해계획은 다음과 같다.
  인천 →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 러시아 쇄빙선 합류(남위 63도 부근 ) → 남극 케이프벅스 → 남극 테라노바베이 →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 인천
  총 왕복항정 1만8,000해리로 거의 지구 한 바퀴이다.
  일반적으로 남극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뉴질랜드를 통하는 것과 남미 루트를 통하는 그것이다.
  남극 세종기지로 들어가는 항해처럼 특수한 목적의 경우는 뉴지를 통하고, 남극 크루즈여행의 경우라면 남미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남미남단과 남극 사이는 불과 330해리밖에 되지 않으나 난폭한 바다 드레이크해협(Drake Passage)이 있어서 항해가 험난하다.
  남극은 1961년 남극조약에 따라 남위 60도 이남은 누구나 남극대륙 안에서 과학적 조사 등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국제적인 비군사지역이다. 그래서 여행에는 문제가 없다.
  아라빙호는 뉴지를 거쳐서 간다. 역사적인 첫 임무수행은 쇄빙능력 시험 및 남극 제2기지 후보지 탐사다.
  인천 출항 후 비교적 평탄한 바다를 항해했다. 단지 뉴지 도착 이틀 전 5미터가 넘는 파도와 큰 너울을 만났던 것이 유일한 악천후였다. 다행히 뒤에서 북서풍을 받아 경유지인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2010년 1월 8일.
  인천항을 출항한 지 3주 만에 뉴지의 리틀턴(Lyttleton)항에 입항했다.
  “언니 모처럼 긴 항해에 배멀미 괜찮으셨어요?”
  배가 부두에 붙은 후 식당에서 양외란이 장세빈의 얼굴빛이 옅어져 물어봤다.
  “10년 전 바다에서 단련해둔 위장 덕분에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그것보다 애들이 보고 싶어서….”
  졸업 후 3년 동안 승선한 경력이 파도타기에 도움이 됐다고 장세빈은 말했다. 그보다 아침저녁으로 가슴에 안기는 아들과 딸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견디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형부는 보고 싶지 않았고요?”
  “그건 오브코스라 말하지 않아도 니가 알잖아.”
  장세빈의 솔직함에 야외란이 오히려 어색해졌다.
  “부러워요. 갑자기 결혼하고 싶네요.”
  “야 너, 고득종 기자 생각이 난다는 뜻 같다야.”
  “어디 남자가 고 기자뿐인가요. 괜히.”
  “저녁마다 우리 둘의 이야기에 그 사람이 양념으로 끼어들었잖아.”
  “그건 그냥 이야기죠.”
  이래서 웃는다.
  장세빈은 양외란이 현문당직 시간이 되어 그녀를 놓아 주었다. 배가 부두에 붙은 후에는 사관 한 명이 현문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크라이스트처치의 리틀턴항은 서울의 인천항에 해당한다.


▲처녀출항지 리틀턴항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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