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극지 탐사 항해

9.쇄빙선 아라빙호

오선닥 2020. 1. 10. 16:30

▲쇄빙선 아라온호


소설 속의 아라빙호는
한국 최초 쇄빙선 아라온호를 표본 삼은 것
주인공 양외란은 아라빙호를 타고
극지 탐사 항해를 합니다

 


제 2장 남극 탐사 항해



9. 쇄빙선 아라빙호
  

  고득종은 인터뷰를 이어나갈수록 양외란의 내공이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게 느껴졌다.
  여자의 가족 뿌리가 궁금해서 설마하면서도 물어봤다.
  “혹시 이항사님의 고향이 제주도 아니세요?”
  “어떻게 아셨어요?”
  돌아오는 반응이 의외로 빨라 그는 기자의 본능으로 놀라움을 보였다.
  “제 고향이 제주돈데, 고-양-부 성에 속한 것 같아서요.”
  “그럼 제주도 고씨와 양씨가 만난 셈이네요.”
  양외란은 반가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고득종은 그녀의 손이 어딘지 모르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인터뷰가 부드러워지는구나.
  “이제 고향 친구로서 편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무례했었나요?”


  양외란의 멋쩍은 웃음에 고득종은 넉넉한 용기를 얻었다.
  “제가 편안함을 느낀다는 뜻이지요.”
  그는 자세를 고치고,
  “그럼 본격적으로 아라빙호의 남극 탐사 항해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시지요.”
  양외란의 자세에는 변함이 없는데 고득종은 그 특유의 제스처인 어깨 돌리기로 몸을 풀었다. 근육 움직이는 소리가 4번 타자가 타석에서 엉덩이 빼는 소리를 닮았다.
  “극지탐험 연구선이라 연구장비가 꽤 비쌀 것 같은데……?”
  “그러네요. 바다 위의 연구소니까 연구장비만 110억 원가량?”
  아라빙호 선가가 1,100억 원에 이른다는 얘기는 선장의 브리핑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 선가의 10퍼센트를 차지하는 셈.
  이런 배의 선박제원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리빙호
  다목적 쇄빙연구선, 2009년 6월 진수
  길이 111m, 폭 19m, 배수톤수 7480톤
  최고 시속 15노트, 항속능력 2만 해리(70일), 연간 300일 운항 가능
  탑승정원 85명(승조원 25명+연구원 60명)


  쇄빙선은 3천톤급에서 2만톤급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아라빙호는 크다고 할 수 없지만 해양연구, 음파탐지, 지구물리탐지, 관측 모니터링 장비 등 60여 종의 첨단 연구 장비를 탑재해 세계 최고수준의 연구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시속 3노트로 1m 두께의 얼음을 연속하여 깨면서 나아갈 수 있다.
  “다른 쇄빙선에서 볼 수 없는 유일한 시스템이 있다던데요?”
  “DP 시스템이라는 건데, 선교에서 조작하는 것으로 본선의 자랑거립니다.”
  DP(Dynamic Position)는 배를 50㎝ 오차 내에서 지정 위치에 있게 하는 장치를 말한다. 연구를 위해 정확한 위치 설정이 자주 요구되기 때문이다.
  “항진 중에 얼음이 깨지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자기 몸이 배라도 되는 듯 고득종은 얼굴을 앞으로 내미는 시늉을 했다.
  하마터면 머리가 여성의 가슴에 닿을 뻔했다.
  양외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답변에 충실했다.
  “선체 앞머리를 최대 5m 높이로 들어올려 얼음을 짓눌러 깰 수도 있고, 선체를 좌우로 흔들어 양옆의 얼음을 깰 수도 있지요.”
  여성 항해사지만 얼음을 짓누른다는 표현을 쓸 때는 그녀의 체격이 스포츠 강사로 연상되어 현실감으로 다가왔다.
  선체 앞머리 부분은 군함의 2배에 해당하는 두께 4㎝의 고강도 특수강으로 제작돼 영하 30℃에서 영상 50℃까지 견딜 수 있다. 그러므로 극지와 적도를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연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선수(船首)는 돌머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갈비뼈 같은 프레임이 촘촘히 설치되어 강한 구조를 형성한다.
  “배가 두꺼운 얼음에 갇히면 어떻게 빠져 나옵니까?”
  “배에는 100여 톤의 물이 담긴 탱크 두 개가 배 좌우에 설치돼 있어서 배를 좌우 3.5도까지 흔들어 3분 내에 두께 1m의 얼음도 탈출할 수 있지요.”
  선미의 주 추진장치 2기와 선수의 보조 추진장치 2기를 작동해 선체를 360도 회전시키는 것도 가능해 탈출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선수 아래에 있는 10m 길이의 아이스나이프(ice knife)로 부딪쳐 쇄빙하며, 깨진 얼음덩어리가 다시 얼어붙지 않도록 후미의 프로펠러를 이용해 배 옆으로 밀어낸다.
  “아라빙호는 고가에다 운항비가 많이 들 텐데 선주가 누굽니까?”
  “한국해양연구원 소속 극지연구소예요. 예산 배정을 많이 받아야겠지요.”
  “국민의 세금이 남극까지 미치는군요. 선원들도 세금을 많이 내시겠군요.”
  “외항선원은 을종근로소득에 해당되니까 세금이 좀 적지요.”
  그런 차이도 있구나.


  한국은 1988년 남극 진출 20년 만에 쇄빙선을 갖게 됐다. 이전엔 다른 나라의 쇄빙선을 빌려 사용했다. 남극에 상설기지를 운용하고 있는 국가는 모두 20개 국으로 이 중 쇄빙선 보유국은 한국과 폴란드를 제외한 18개국이었다.
  북극 탐험의 역사와 함께 탄생한 쇄빙선은 현재 미국과 러시아와 노르웨이 등에서 40여 척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북극 항로 개척과 북극해 자원개발, 해양환경 연구용 쇄빙선이며 10척 정도만 남극용 쇄빙선으로 쓰이고 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벽에 걸려 있는 배의 설계도면으로 향했다.
  배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기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21억원짜리 음파측심기를 비롯한 최첨단 연구시설이 빼곡한 선상 1층 내부는 떠다니는 연구소다. 배 뒤쪽은 물과 관련된 습식연구실이고, 배 앞쪽은 건식연구실로 꾸며졌다. 앉은 자리에서 해저 지질, 해양, 생물, 대기, 지구물리 등 초정밀 연구가 가능하다.
  “아라빙호는 항해 계획을 어떻게 세웁니까?”
  기자는 궁금한 것도 많았지만 여항해사와 인터뷰하는 것이 싫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대답 내용이 훨씬 풍성해서 기사로 내보내면 독자의 관심을 모을 것 같았다.
  “남극과 북극의 여름을 이용하니까 매년 10월에서 4월까지는 남극세종과학기지에 물자보급 및 연구항해를, 5월에서 6월까지는 인천 모항으로 들어와 정비를 하고, 다시 7월에서 8월까지는 북극 연구를 위해 출항했다가 9월에 다시 인천 모항으로 복귀하는 스케줄이 되지요.”
  남극과 북극은 계절이 정 반대여서 계절 따라 배가 움직이면 일 년 내내 배를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한국의 남극 진출은 어떠한가?


  1986년 세계에서 33번째로 남극조약 가입
  1988년 남극세종과학기지 건설
  2010년 아라빙호 최초 남극 탐사 항해
  2014년 남극장보고과학기지 건설
 
  남극은 대륙과 빙붕을 합해 넓이가 1,360만 km²다. 지구 육지면적의 약 9.2%로 유럽이나 호주대륙보다 넓다. 한반도 면적의 약 60배 규모다. 평균 2,400m 두께의 빙상으로 덮여 있는 만년빙하 지역.
  “얼음의 무게가 엄청날 텐데 남극대륙이 압사하는 것 아닌가요?” 
  고득종은 질문을 해놓고 웃었다. 땅은 사람이 아닌데.
  “농담도 잘하시네요. 실은 농담이 아닐 수 있어요.”
  양외란의 말에 고득종은 궁금증이 커졌다.
  “아니, 왜?” 
  “남극대륙이 매년 4cm씩 솟아오르고 있어요. 얼음이 녹아 가벼워진 대륙이 위로 치솟는 거죠. 북극 쪽보다 2배 빠른 속도랍니다.”
  “지구온난화의 재앙이라 봐도 됩니까?”
  “그렇게 볼 수 있겠죠.”
  충격적인 현상이나 고득종은 메모지의 다음 질문 내용을 이어나갔다.
  “현재 남극은 추위가 어느 정도일까요?”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남극 최저기온은 1983년 7월 21일 영하 89.6도를 기록했다. 겨울 평균기온 영하 60도 이하로 내려가면 자연 섬유 즉, 솜이나 양털, 가죽 같은 것만 빼고는 작은 충격에도 부스러진다.
  설명이 끝나자 그는 몸을 움츠리는 시늉을 했다.
  “추위가 느껴지는데 따뜻한 커피 한 잔 부탁해도 되나요?”
  능청이 고수가 된 그는 양외란을 쳐다보았다.
  “이런 추위에 심부름시키는 거 실례 아닌가요.”


  그러면서 그녀의 몸은 이미 주방 쪽으로 향했다. 커피 두 잔을 만들었다.
  커피를 받아든 고득종은 온기를 되찾았다는 듯 농담을 하고 싶었다.
  “양외란 씨?”
  “갑자기 이름을 부르고 그러시네.”
  “이런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뭔데요, 고득종 씨?”
  어느새 이름이 물물교환으로 호칭되기 시작했다.
  그는 엉뚱했다.
  “제주 삼성 간의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양외란은 제주 삼성(三姓)에 대한 유래를 들은 적이 있다.
  “본관이 같은 제주도니까 당연히 안 되죠.”
  “고지식하시군. 동성동본 8촌 이내만 금혼입니다. 양씨와 고씨는 동성이 아니잖아요.”
  “하필 양씨와 고씨를 예로 드시는 거예요?”
  “이 자리에 둘밖에 더 있어요? 여긴 8촌은 고사하고 사돈의 8촌도 없습니다.”
  양외란이 고득종의 어깨를 쳤다. 아파도 자업자득이라고 때렸다.
  “무슨 여자의 주먹이 이래?”
  맞은 자는 좀 아팠다. 일격이 컸던가 보다.
  이제 진지한 인터뷰를 하자는 데 둘은 동의했다.


  “지금부터 실제 남극 탐사 항해 과정을 얘기해 주시지요. 아라빙호의 처녀항해 때는 삼항사로서 경험을 하셨다고 했는데 남극 탐사 대장정 이야기가 흥미진진할 것 같네요.”
  “한 자리에선 지루하니까 장소를 옮기죠. 선교와 기관실, 갑판을 천천히 돌면서 인터뷰하는 것은 어떠세요?”
  “외란 씨의 아이디어가 좋네요.”
  직책은 귀양 보냈는지 기자는 이름만 호칭했다.
  두 사람은 선박 구석구석, 밝고 어두운 곳을 불문하고 두루 돌아다니면서 선박 견학 겸 인터뷰를 진행해나갔다. 좁은 곳이 너무 많은 선박은 두 사람이 지나가기는 불편하고, 또 어둔 곳은 남녀가 함께 가기엔 부적절하다. 헬멧을 쓰긴 했으나 천정 골조에 머리가 부딪힐 때는 눈에 번갯불이 지나가곤 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인연이 위험한 외줄을 탈 때가 있다.
  고득종이 그녀의 가장 예쁜 사진을 골라서 기사에 싣겠다고 하면서 사진 한 장을 달라고 부탁했다.
  “기사 올린 다음 사진은 제가 보관해도 되지요?”
  그의 갑작스런 제의에 그녀는 멈칫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왜 이러지?


▲아라온호 제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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