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체는 세워졌고
안전한 선내 수색을 위해
준비 작업 시작
▲4층 좌현선수 객실(단원고) 녹슨 내부
더 세월
(The Sewol)
제 41회
선내 수색 준비
부러지고, 주저앉고, 녹슬고…
이 처참한 속살이 세월호 내부 모습이다.
배가 직립된 후 보름 만인 5월 25일 선체 내부가 처음 공개됐다.
내부 철제 구조물은 진한 갈색으로 녹슬고 뒤틀리거나 찌그러져 있다.
벽은 종잇장처럼 구겨진 곳이 있고, 벽면엔 페인트칠이 대부분 벗겨진 가운데 곳곳에 조개껍데기가 붙어 있다. 바닷속에 오래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구겨진 철판 틈에 부서진 여행가방이 끼어 있고, 객실 구역엔 교복 등 유류품이 보인다.
왼쪽으로 급격하게 쏠린 화물이 선체를 짓눌러서 좌현 쪽의 손상과 변형이 더 심하다.
맨 꼭대기에 조타실이 있는 N(5층)데크가 있고, 그 아래 객실층인 A(4층)·B(3층)데크, 화물칸인 C(2층)·D(1층)데크, 기관실인 E(지하)데크가 차례로 있다.
기관실은 펄이 가득 차 있어 수색을 못했는데, 앞으로 집중적으로 미수습자 수색을 할 곳이다.
D데크 선미 쪽에 배의 방향타를 조절하는 타기실은 선체의 움직임 등과 관련해 정밀 조사가 필요한 공간이다. 선조위는 조타 장치 관련 기기를 분해해 분석 및 조사할 것이다.
선조위는 침몰 원인을 밝히기 위한 33가지 조사용역을 발주했다. 대여섯 가지를 제외하고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토대로 8가지 분야에 대한 조사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고, 최종 종합보고서 작성은 7월 중순 예정이다.
5명의 미수습자 수색과 관련해서는 6월 중 3주간 준비를 거쳐 수색 진입로 시공이나 조명 설치 등의 준비 작업을 거쳐 7월 초 본격적으로 4층 객실 좌현 협착 부위와 기관실 구역 수색이 이뤄진다. 선조위 활동 기한은 8월 6일까지다.
침몰 지역의 해저 수색 여부는 많은 문제점을 야기한다.
3km x 1.5km 어마어마한 넓이의 수색에 1조원의 비용이 소요되고 소요 일수는 20년이나 된다. 컨테이너는 무거워 바로 해저에 떨어지지만 유체는 가벼워 조류에 떠내려간다.
준설 대신 소나로 긁거나 잠수사가 훑으면 비용은 절약되겠지만, 선조위가 건의하더라도 해수부의 현장수습본부가 비용 수용능력을 점검할 것이다.
사무실에 있기가 지루한 날 이순정은 커피 한 통을 사 들고 광화문광장으로 나갔다. 틈이 날 때마다 세월호 천막을 찾곤 한다.
이순정은 단원고 남동생을 잃은 누나와 친해 왔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취업했으나 회사를 그만두고 천막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아리따운 아가씨다.
“한창 회사에서 스펙을 쌓을 나이에 그만두다니?”
인물이 아까워 이순정이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딴판이다.
“언니 기준으로 제 꿈을 끌어내리지 말아요. 전 삶의 가치가 뭔지 알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인간적으로 사람이 그렇게 예쁘면 반칙이야. 거기다가 봉사까지 열심이고…….”
농담을 해도 괜찮을 깜직한 아가씨다.
“언니가 절 놀리는 건 아니겠지요. 커피 한잔 끓여 드릴게요.”
커피를 마시며 자매같이 두 사람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가족을 잃었다는 것만으로 서로의 대화에는 부담이 없다.
“안분지족이라는 단어 아시죠? 있는 줄을 족한 줄 아는 것 말예요. 남동생만 살아온다면 불평하지 않고 살 것 같아요. 언니도 죽은 언니가 살아온다면 그렇게 하겠지요?”
그렇다. 두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서로를 이해한다. 이런 것이 그들을 자주 만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가 사고를 얼버무리고 넘어 가려는데 우리가 힘을 모아 나서니까 달라졌잖아요. 세월호 천막을 걷어가려 했었지요. 진실로 알아듣는 논리는 오직 힘뿐이더라구요.“
“일절만 해서 알아듣지 못하면 이절, 삼절도 해야지.”
이런 맞장구가 그녀를 기쁘게 해주었는지 모르지만 아가씨는 웃음을 보였다.
며칠 동안 기승을 부리는 미세먼지가 햇빛에 희뿌옇게 드러났다.
먼지를 둘러쓰고도 그녀는 천막을 떠나지 않는다. 배가 부두에 똑바로 섰는데도 광화문광장에는 세월호 천막이 그대로 있다.
“철수할 생각이 없다는 건가?” 이순정이 물었다.
“미수습자가 아직 다섯이나 남아 있잖아요.”
“다 수습되면 철수한다는 뜻?”
“그럴 수도 있지요.”
“한 명의 미수습자라도 있는 경우에는?”
“최후의 일인까지 여길 지켜야죠.”
“…….”
대한민국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자리를 지킨다는 것.
인간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스펙보다 자존감이라는 것.
싸가지 없고 건방져 보여도 자만이나 꼴값이 아니라는 것.
앞질러 기다리는 자잘한 불행 같은 것은 무시하고 싶다고 그녀는 말한다.
이순정은 궁금증이 발동했다.
“데이트 신청하는 청년이 많을 텐데…… 예쁘니까.”
“내세는 비혼이라던데요?”
그러면서 아가씨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광화문 세월호 추모 천막
최근에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가짜뉴스이다.
풍계리 핵실험장폐기 현장에 참관하는 기자에게 북한이 1만 달러씩 요구했다는 보도는 가짜뉴스의 표본으로 청와대를 격노케 했다.
세월호 고의침몰 문제로 들어가면 가짜뉴스의 위력은 커질 뿐만 아니라 검증에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고의 침몰이 아니라면 사고 원인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타기와 기관의 정상작동 여부.
제일 중요한 수색 장소는 조타실, 타기실, 기관실 및 화물창이 될 것이다.
정밀 수색 대상은 선체 좌현의 협착된 부분과 보조기관실, 축계실, 선미 횡방향 추진기실, 좌우 선체 균형장치실 등 기존 미수색 구역이다.
기관구역은 통상 승객들이 출입하지 않는다.
하지만 객실인 3층 에스컬레이터부터 2층 화물칸, 아래층인 기관구역까지 공간이 뚫려 있고 기관실에서 인골이 발견된 점, 닫혀있어야 할 기관구역의 수밀 격문이 모두 열려 있었던 점을 고려해 이 구역에 대한 수색이 필요하다.
조타기나 프로펠러 고장, 혹은 복원력 상실이 침몰 원인이라는 것이 보수적 견해이다. 복원력은 군함이 여객선보다 좋다. 여객선은 배가 천천히 돌아오게 돼 있다. 멀미 때문이다.
고의 침몰설로 인터넷에서는 대체로 다음 세 가지를 거론한다.
AIS항적 조작설, 앵커 침몰설, 잠수함 충돌설.
토론을 좋아하는 서정민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바닷바람이 시원한 저녁 현장수습본부 휴게실에서 세 사람이 모여 맥주 캔을 따며 토론에 들어갔다. 세 사람이라 함은 선조위의 선배와 현장수습본부의 해수부 직원, 그리고 서정민 자신이다. 서로 아는 사이라 분위기는 자연스럽다.
세월호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런 시간은 서정민에게 삶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느끼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고의침몰 문제는 선조위가 풀어야할 과제 아닌가요?”
서정민이 맥주를 들이키며 선배에게 던진 질문이다.
선배는 설명을 주저하지 않는다.
“AIS 조작설은 아닌 것 같네. 네덜란드 마린의 모형실험에서 세월호 행적과 유사한 결과가 나왔으니까. 앵커 침몰설과 잠수함 충돌설도 외관 확인 후 사실과 다름이 밝혀졌지. 그래도 국민의 관심사이므로 조사는 더 해봐야겠다.”
그의 설명은 이어졌다.
자로의 잠수함 충돌설과 영화 ‘그때 바다’의 앵커 침몰설은 강력한 여론의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확신을 주장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AIS 조작설은 공모가 필요한 것으로 33차례의 선원재판에서 모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선체 외력충돌 흔적이 나왔다면서요?”
현장수습본부 직원이 질문했다.
선조위 선배의 구체적 설명은 계속된다.
선수 좌현에 2,800톤이 작용해 46cm나 움푹 파인 변형이 확인됐다고 주장하는 조선학 교수가 있다. 이런 힘이 아니고선 배의 급격한 선회와 횡경사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선수 좌현에 있는 심한 스크래치 자국이 이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선원재판에서 검찰은 참사 원인으로 과적, 복원성 불량, 고박 불량, 조타 실수 등 4가지를 주장한바 있지만, 급변침과 변침 초기에 일어난 50도 이상의 급격한 횡경사는 선체 자체의 문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외력에 의해 침몰했다면 외부의 충격이 있는 곳은 선체 좌측에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선조위의 1차 중간 보고회에 따르면, 선수 좌측면에 외력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큰 힘이 작용한 것이 발견됐다. 용역보고서는 3년가량 바닷속에서 부식이 진행됐고 인양 과정에서 선체에 변형이 온 것일 가능성이 컸다.
서정민이 선배에게 묻는다.
“문제는 움푹 파인 곳이 검토영역이지 외부 충돌 영역은 아니잖아요?”
“해저 충돌이나 인양 중에 건드린 부위는 아니지.”
“생존자 다수는 침몰 직전 ‘쿵’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했고, 블랙박스 영상에도 고스란히 잡혔다는데요.”
“배가 기울기 전에 둔탁한 충격음이 있었고, 처음 소각도 변침 시 조타수는 ‘타(舵)가 이상하다’는 말과 함께 스테빌라이저(배 양 옆의 날개)에 뭔가 걸린 것 같다고 법원에서 진술했다지.”
“다른 검증 방법은 없나요?”
“스크래치 부분을 정밀 분석하면 원래 페인팅 재료 외에 다른 물질이 나오는지 확인할 수 있지. 그것도 조사하려 해.”
지금까지 용역을 한 결과 다른 페인트는 나오지 않았다.
좀 더 전후 관계를 파악하면 명확하게 결론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고 직전 학생들이 남긴 영상과 선내 CCTV, 차량 블랙박스 등을 근거로 사고일 8시 50분 전까지 아무런 이상 조짐이 없었다.
관심은 선수 갑판의 앵커 투묘 장치에 집중됐다. 확인 결과 좌우 투묘 장치의 밧줄과 쇠줄은 모두 감겨 있었다. 애초에 앵커의 쇠줄이 감긴 상태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뜻이다. 앵커체인출입구에 찌그러진 흔적 없이 구멍에 녹슨 자국만 보인 것도 해저면에 걸려 배가 급격하게 기울어 침몰했다는 앵커 침몰설을 정면 반박하고 있다.
증거인멸을 위해 좌현 앵커를 고의로 절단하고, 앵커도 다른 배의 것이라는 의혹은 일단락됐다. 괴담은 허위로 드러난 것이다. 선체 수색과 인양 작업 과정에서 왼쪽 앵커를 절단하여 보관한 것이 이해된 셈이다.
이 사건을 추적해온 주체들의 이목이 선조위가 발표할 보고서에 쏠려 있다.
유가족은 가설이 아닌 진짜 원인이 충분한 근거와 함께 제시되길 바라고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하고 있는 중이지.”
선조위 선배는 말했다.
▲자로의 잠수함 충돌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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