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인양 중 잠정 중단했던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서정민과 이순정
티격태격함에도…
더 세월
(The Sewol)
제 26회
침몰 시각 논쟁
“그 따위 날짜와 시간이 뭐 그리 중요해. 살아 있는 자의 호기심일 뿐이지.”
사람들의 침몰시각 논쟁에 서정민은 자신도 모르게 신경질을 부렸다.
신문을 보고 일러주는 이순정이 무슨 죄가 있으랴.
사무실에는 둘밖에 없는데 그들이 충분히 다정해도 모자랄 판에 요즘 세월호 이야기만 나오면 그는 신경을 곤두세운다.
공식적인 세월호 침몰 시각과 승객의 사망 날짜에 관한 논쟁 기사는 잠자던 그의 불안 심리를 더욱 자극했다. 침몰 일 년이 지났는데도 이런 논쟁으로 살아남은 자를 괴롭히는가. 그는 분노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세월호 침몰에 관해서만큼은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잠수함 충돌, 암초 접촉 등 음모설까지 나도는 판국이다. AIS(자동식별장치) 항적 화면에 의문의 물체가 표시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의심 받을 만하네요. 정체불명의 물체도 있었고……. ”
이순정이 내용도 모르고 말했을 뿐이다.
“해상에 쏟아진 컨테이너박스일 수도 있지. 더 알아봐야겠지만.”
서정민이 예상해 보는 팩트 설명이었다.
이러다 보니 세월호 참사 발생 시각이 정확히 언제인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청해진해운의 자체 메모에 사고보고가 오전 8시에 있었다는 걸 두고 언론은 떠들어댔다. 그러나 회사는 이것이 어디까지나 자체 메모일 뿐이지 공식적인 기록이 아니라고 말했다. 해수부에서도 8시 30분 기록이 있었으나 실무자의 착오로 돌렸다.
그렇더라도 공식적 참사 발생 시각은 있어야 한다.
조타실 키가 듣지 않은 시점이 언제일까?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일단 이 시점을 사고 시각으로 하는데 대체적으로 동의했다.
그럼 탑승자들이 사망한 날짜는?
2014년 4월 18일로 통일했다.
왜? 이틀 동안 살아 있음의 배려인가?
이 부분에서 서정민은 또 분노했다.
서류상으로 이틀 동안 더 살려둔다고 이미 죽은 영혼이 깨춤을 추겠는가.
“배에서는 좀 버틸 수 있는 곳이 있다면서요.”
이순정이 어디서 들은 바를 이야기하는 것 같으나 서정민은 헛웃음을 보였다.
“뭐, 에어포켓을 말하는 것 같은데, 물론 있을 수 있지. 몇 시간 더 버틴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근데 선체 안에 일 미터도 못 들어간 대한민국 해경을 믿고 목숨을 연장한다? 희생자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지…… 아, 나 원 미쳐.”
말해 놓고 그는 부르르 치를 떨었다.
어제 밤에 서정민은 엉뚱한 꿈을 꾸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 여자가 나타나 하체를 다 보여주려는 듯 음흉하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혹시 기억이 왜곡된 것이거나 기억의 어느 부분이 오려진 것은 아닐까. 이순애의 얼굴이 아니라고 우기려 하면서도 여자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여자는 사라졌다.
잠에서 깬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등을 대고 있는 벽의 서늘함을 느끼다가 화장실로 들어갔고, 오래오래 오줌을 누었다. 그리고 일부로 성기를 크게 흔들어 보았다. 누구에게나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소모품처럼 느끼면서.
“참, 아까 전화로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생각에 잠긴 서정민을 향해 이순정이 묻자 그는 움칫했다.
“아, 그것 있지. 아~”
그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최근 들어 기억이 깜빡할 때가 많아졌다. 시답잖은 농담에도 곧잘 웃어주곤 하는 이순정이 없다면 자살을 시도한 세월호 생존 동료처럼 그의 행동도 위험 수위까지 갔을는지 모른다. 그에게 이순정은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주는 풀무와도 같다.
그녀의 발꿈치가 매끈하고 분홍빛이 늘 보기에 좋았다. 얼굴은 평범하지만 종아리에서 발꿈치까지의 라인은 표준 스타일이 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여름에 짧은 치마를 입고 나타나면 남자들의 시선이 쏠리는 건 이상하지 않다.
조금 전에 화낸 행동이 미안했는데 이순정이 말을 걸어와서 안심이었다.
“기억이 잘 안 나면 이따가 말해줘요.”
그녀는 환자를 대하는 방법을 완벽하게 아는 것처럼 그를 대하는 데 능숙했다.
기억을 되살렸을 때 서정민은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너무 기억력 세포를 괴롭혔다고 생각했다.
“오늘, 우리 특별한 일 없지요?” 그가 물었다.
“건자재는 내일 선적이라 오늘은 특별한 거 없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뭔가 불안했다. “근데 왜요?”
“…….”
대답을 하지 않고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창가로 갔다. 창밖을 한참동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본 것은 광화문광장이었으나 시선이 머문 곳은 세월호 가족이 있는 텐트 쪽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이곳을 ‘세월호광장’이라고도 부르기 시작했다. 노란리본이 햇살에 반짝이는 곳.
그가 고개를 들고 이순정 쪽으로 시선을 주었을 때 그녀의 시선과 허공에서 얽혔다. 심각한 이야기는 서로 피하려는 노력을 해왔던 그들이다. 부자연스런 웃음이 입가에서 흘러나오면서 그는 천천히 입을 뗐다.
“지금, 요, 용인으로 갑시다. 언니가 나한테 할 이야기가 있는가 봐.”
어제저녁 꿈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꿈속의 여자 형상이 불만에 찬 걸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상대방이 이미 동의한 것처럼 슬리퍼를 벗고 구두로 바꿨다.
이순정은 당황했다. 남자의 건강 상태가 걱정되기까지.
“갑자기 이러면?”
그녀는 말리려고 했다. 몽유병 환자를 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유령과 대화하는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용인에는 이팔봉이 일찌감치 조성해 놓은 가족묘지가 있다. 아버지가 조성해 놓은 묘지에 언니 이순애는 묻힌 것이다.
황당하기도 하여 그녀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그가 말했다.
“꿈에서 언니를 만났어요. 위로를 원하는 것 같아.”
서정민이 꿈 내용은 이야기하지 않았고, 이순정이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환자가 나설 채비를 하니 그녀는 따라 나가지 않을 수 없다.
2015년 5월 11일,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된 날 그들은 용인으로 달렸다.
두 사람이 차를 탈 때는 운전은 늘 이순정의 몫이다. 서정민은 목련꽃을 무릎 위에 놓고 정성스레 챙겼다.
이날은 하늘 높고 날씨도 맑아 특조위가 활동하기 좋은 날이다. 그러나 지난 1월 1일 설립된 후 다섯 달을 허송세월했다. 시행령이 제대로 협의되지 못한 탓이다. 그 후 특조위 활동은 1년여 만인 2016년 6월 30일에 종료됐다. 만족한 결과가 나올 리가 없다.
특조위가 발견한 가장 한심스런 사실은 살아남은 172명 모두는 제 발로 탈출한 사람이지 세월호가 가라앉은 후 꺼집어 낸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4년 11월 11일 잠수 수색 종료를 선언했었다.
7개월 동안 해온 선내 수색은 9 명의 미수습자를 남긴 채 잠수작업을 일단 멈췄다. 계속되는 수색에서도 유체가 발견되지 않은데다가 겨울 추위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시신 유실과 선체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인양을 추진하기로 했다. 선체 자체가 증거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들은 결과이다.
선체 인양은 세금 낭비이고 특조위 활동은 세금 도둑이라는 일부의 주장이 있더라도 국가예산을 투입할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묘지에 도착한 두 사람은 이순애의 묘 앞에 목련다발을 놓았다.
-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
서정민이 박목월 시인의 시를 읊었을 때 두 사람은 약속한 듯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서로 닦아주는 것이라면서 그들은 그렇게 했다.
▲가족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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