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더 세월

더 세월(제 24회)

오선닥 2015. 5. 24. 19:59

대한민국의 정치와 문화는

광화문광장에서 검증

갈등은 표출되면서 치유돼는 법

그래서 희망의 끈은 단단하다

 

 

 

 

더 세월

(The Sewol)

 

제 24회

 

 

침묵시위

 

세월호 앞에 세월은 겸손치 못했다. 예의도 없이 참사 1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1년 동안 세월호 선내는 침묵으로 흘렀지만 바깥은 어지럽게 소용돌이쳤다.

 

평소 연락하고 지내던 제주도 출신 화물차 기사 양원석한테서 전화가 왔다.

 

“서 사장님, 가족협의회는 광화문에서 머리 깎고 의지를 보이는데 우린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겁니까? 벚꽃은 피고 …… 진도는 아니더라도 광화문에라도 가봐야 되는 거 아녀요?”

 

양원석은 심리치료차 안산에 와 있다. 서정민은 일반인 피해자 협의회의 대표는 아니지만 전문가로서 정신적 지주 대접을 받고 있다. 대표로 추대받기도 했으나 사업이 바쁘다는 이유로 사양했었다.

 

“그러고 보니 다소 무관심했네요. 그럼, 일 좀 정리해 놓고 오후 4시 청계광장에서 만나죠. 소라 조형물 앞에서.”

 

세월호 1주기를 보름 앞두고 전국은 들떠있고 광화문거리에는 침묵시위가 시작됐다. 침묵은 자체로 발광하는 형광처럼 그림자가 누운 시간에 강렬한 빛을 발했다.

 

살이 다소 빠진 양원석의 모습은 속이 빈약한 소라의 모습 같아 측은해 보였다. 세월호로 인해 자동적으로 다이어트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서정민도 예외는 아니다.

 

양원석이 소라 조형물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서 사장님이 자주 언급하시던 소라 어린이 생각이 나던 차에…….”

 

혹시, 소라 조형물의 크기에 감탄했다는 뜻인가?


소라 조형물을 이순애 딸 홍소라의 모습쯤으로 상상한다면 아주 자유로운 착각이다. 소라인지 고동인지, 아니면 아이스크림인지, 비슷한 모양의 조형물이 청계광장 입구에 높이 서 있다. 데이트 장소로 한다면 멀리서 알아보는 데 이만한 랜드마크는 없을 것이다.

 

조형물 앞에서 만난 서정민과 양원석은 광화문광장으로 건너갔다.

 

광화문광장은 어수선하다. 비용절감을 이유로 세월호를 끌어올리지 않느냐고 플래카드는 성토한다. 가족협의회는 시행령 폐지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며 삭발을 했다. 깎은 머리가 또한 빛을 발한다. 머리 위로 사발통문 같은 4월의 오후 하늘이 영문도 모르고 내려다보고 있다. 모여 다니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애기똥풀꽃 같은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무사귀환의 희망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으려는 것처럼.

 

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동료 의원 60여명이 광화문광장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인간띠 시위'를 벌였다.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진행한다. 별도의 집회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1인 시위 형태로, 각자 3미터 간격으로 떨어져 광화문 광장을 에워쌌다. 원내대표도 별도 모두발언을 하지 않았다.

 

“3미터 간격도 집시법 위반이므로 20미터로 벌려주세요.”

 

경찰이 와서 요구했으나 법을 살리고 죽이는 국회의원한테 무슨 법 타령이냐는 듯 그냥 웃고 지내자고 한다.

 

“옥외집회와 시위는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하셔야 합니다.”

 

경찰이 다시 법을 거론하자 당 간부는,

 

“누가 모르나. 창피하게 그런 얘기는 왜 해요. 국민들이 알아서 판단할 텐데.”

 

또 싱긋이 웃고 만다.

 

한쪽에서는 통진당원들이 단식시위를 한다. 텐트 바로 앞에서 극우 일베 회원들이 피자를 꺽꺽 씹으며 조롱했한. 당연히 당원들 쪽에서 폭언이 나왔다. 음식 먹는 것은 위반이 아니나 폭언은 현행법 위반이니, 결국 참을성 없는 쪽이 지게 마련이다.

 

지나가던 한 시민이 텐트를 보고 멈췄다.

 

“아니, 이건 서울시 로고 아녀? 서울시에서 준 건가?”

 

시민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경찰은 유가족에게 텐트를 제공한 서울시 부시장을 이미 고발했었다. “유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경찰이 왜 개입하느냐?” 서울시의 이의 제기는 아주 상식적인 대처에 속한다. 대한민국의 판사는 이런 걸 어떻게 판단할까. 그들도 이런 데서 스트레스 받겠지.

 

가족협의회가 시위하는 쪽으로 걸어가면서 양원석이 서정민을 쳐다봤다.

 

“먹을 거라도 들고 왔어야 하는 거 아녀요. 빈손으로?”

 

양원석이 말했을 때 , 서정민은 손을 저었다.

 

“삭발한 마당에 먹을 정신들 있겠어요. 최진수 대표나 만나서 위로하고 갑시다.”

 

최진수는 화물차피해 대표자다.

 

시위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위로의 한마디는 해줘야 한다는 게 서정민의 생각이다.

 

두 방문자를 만난 최진수는 삭발한 머리를 앞으로 내밀며,

 

“보기가 어때요? 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의지를 보여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 내 생전 중머리는 처음이라우.”

 

덧붙였다.

 

그가 웃음을 머금은 모습은 결의에 차 있는 다른 삭발 참여자와 비교돼 다소 어색해 보이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52명이 삭발했다. 일반희생자 가족 2명과 일반피해자 1명 외는 모두가 학생희생자 부모들이다. 빗속에 몸을 떨었고, 삭발 머리를 감싼 밤도 함께 떨었다.

 

삭발한 유가족은 단호하다. 정부가 배를 인양한다고 하지만 시행령을 철회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특별조사위원회에 다수의 민간직원을 채용하여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는데 직원의 수를 줄여 업무역량을 축소하고 주요 직책을 파견공무원이 맡도록 하는 시행령은 수용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위원회 활동기간 1년 6개월은 1월 1일 시작했으니 거의 반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셈이다.

 

가족협의회는 궐기에 들어갔다.

― 정부가 희생자와 피해가족을 돈으로 능욕했다!

― 배·보상 절차 전면 중단하라!

― 정부 시행령안을 폐기하고 세월호 선체 인양하라!

 

위로를 마치고 광장을 나오는데 관중 속 노인들의 목소리가 커서 돌아봤다.

 

노인A “세월호 인양은 대통령이 발표했잖아. 배·보상은 나중에 받으면 되잖아.”

노인B “국회의원과 유가족이 대리기사를 폭행한 마당에.”

노인C “미국 9.11테러사태 때는 미국민이 모두 단합했는데 이 나라 여야는 무슨 꼴이야.”

 

그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렇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끝이 없다. 정부 하는 일이 하루 이틀 미숙한 것도 아닌데 정부 탓에 매달려 있는 것이 외국동포들이 볼 때 안타깝기만 하다. 과거에 함몰해 있으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꼬여만 간다. 과거는 곱씹을수록 불행해진다. 이제 문제 해결에 집중하자.

 

관중 속 젊은이들을 지나가는데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청년A “돈 때문에, 특례입학, 의사자 대우 주장으로 진정성을 호도하고 있잖아.”

청년B “특별조사위원회를 정부 입맛대로 끌고 가겠다는 건 코미디야.”

청년C “원인규명과 재발방지의 목적이 불투명해.”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세월호 인양은 배를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이 얼마가 들든 인양은 필요하다. 희생자들을 위로하기는커녕, 공감 능력의 결여로 오히려 상처를 키우기만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공동체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불행에 대한 연대’가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참담하다는 것이다.

 

서정민은 어느 책에선가 본 것을 기억한다.

 

“국가는 있는 사람은 놔두고 없는 사람만 돌보면 된다. 국가의 멸망은 GDP 부족이 아니라 공평성 부족 때문이다. 달리기에서 출발점이 다르면 되느냐.”

 

그저께 기부왕 가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들에게

“세월호는 그냥 놔두라. 노조든 뭐든 도와주는 건 좋지만 제발 희석시키지 말라. 좀 빠져 달라. '정권 타도', '박근혜 아웃' 이런 걸로 희석시켜서 유가족을 애먹이지 말라.”

 

대통령에게

“유가족의 아픈 마음을 보듬으며 비리 척결을 과감하게 실천하라.”

 

새겨들을 만하다.

현 상황을 잘 꼬집었다고 서정민은 생각했다.

 

 

 

동업자 사랑

 

광화문광장이 내려다보이는 2층 커피숍은 분주하다.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혹은 광장의 노란 물결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오늘 따라 사람이 많다. 20분 전 이순정이 합류하여 화제의 폭이 넓어졌다.

 

“진실이 규명돼야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까요?”

 

이순정의 말에 대화는 더욱 진지해졌다.

양원석은 현실적이지 못한 답은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총체적 부실인데, 파고든다고 별수 있나요. 노환인데 수백만 원을 들여 종합검진하는 거와 다를 바 없지요.”

 

“배상은 정의를 성취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하는데, 진실이 규명돼야 그 바탕에서 배상액을 결정할 수 있는 거라니까요.”

 

“순정 씨, 배상액은 벌써 결정됐습니다.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걸요.”

 

화물차 가는데 승용차는 알아서 피하라는 식의 양원석 주장이다.

이순정은 에펠탑에서 시위하듯 더 당당하게 나온다.

 

“진실을 알 권리는 피해 당사자만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 전체의 권리라구요.

 

“아니. 특별조사위원회는 가동도 못하고 있는데…… 난 트라우마 치료받기 전에 돌아버릴 것 같아요.”

 

대화하는 두 사람이 너무 진지해 서정민은 일부러 커피잔을 그들 쪽으로 살짝 밀어 보았다. 상관없이 논쟁은 계속됐다. 이순정이 또 시작이다.

 

“배상금 문제는 우리 사회의 품격 문제죠. 돈과 바꿀 수 없는 인간 존중의 가치문제고요.”

 

프랑스에서 인간 심리 디자인을 공부했나. 이순정은 속이 찬 목소리를 내었다.

 

서정민이 한마디 하고 싶어 나섰다.

 

“아까 노란 띠에 적힌 것 봤지요. 우리의 공통 감정은 ‘잊지 말자’입니다. 피해자의 고통과 슬픔을 공통의 것으로 현재화해서 함께 추모하자는 게 바로 기억이지요. 망각에 맞서 올바로 기억할 때만 우리는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이순정은 서정민의 눈을 쳐다보았다. 지성이 살아있었구나. 그가 트라우마라는 어둠에서 빛으로 걸어 나오는 사람같이 보였다. 좋은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저녁 먹고 영화 봐요. 서 사장님. 그리고 양 선생님도 같이요.”

 

끝없는 대화를 재치 있게 멈춘 이순정은 역시 명석하다. 양원석이 저녁은 몰라도 영화관까지 같이 갈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가 내일 심리치료 예약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인 구실은 되지 못한다.

 

저녁식사가 늦게 끝났다.

이순정이 영화를 포기할 만했지만,

 

“심야영화도 있잖아요.”

 

끈질기게 제안했다.

 

영화 ‘뷰티플라이’는 삶의 포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면서 은근히 호기심을 자극했다. 수단 내전으로 인해 5남매가 조국을 탈출해 험난한 미국 이민생활을 하면서 혈육을 만나는 장면은 상처받은 세월호 피해자에게도 용기를 줄 거라면서 각본 읽듯이 그녀는 말했다.

 

티켓을 구입한 그녀는 커다란 팝콘 통을 겨드랑에 끼고 왔다.

서정민은 놀랐다.

 

“이렇게 큰 통을?”

 

“서 사장님, 완전 맹탕이시네. 저기 젊은 사람들 보세요. 보통 이런 거예요.”

 

글쎄, 그러네. 다들 머리통보다 큰 통을 들고 있었다. ‘우리가 젊은 사람이야?’ 말하려다가 그녀의 기분을 맞추려고 서정민은 순순히 고개를 끄떡여 보였다.

 

영화가 시작되고, 팝콘 통에 손이 들어갔을 때 서정민은 멈칫했다. 팝콘 대신 이순정의 손이 잡혔던 것. 어둠을 통과하는 그녀의 눈빛을 느꼈다. 순간의 어색함은 오래 지속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래서 통이 컸구나. 서정민은 혼자 미소를 머금었다.

 

여자의 머리카락 향내가 그의 어깨를 타고 코끝을 건드렸을 때 그는 그동안 여자를 잊고 지내왔음을 깨닫고 스스로 놀랐다. 심야라는 시간적 암전 상황과 자신을 어떻게 타협시켜야 하는지 적잖이 난감해지기도 했다. 그의 왼쪽 어깨에 약간의 땀이 배여 있는 것은 그녀의 머리 중심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는 뜻이다. 영화가 시작된 지 한 시간쯤 되자 그녀의 평형수가 작동하지 않았던 건가.

 

“세월호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혼자의 생각에 그는 웃었다. 이제 ‘기울다’는 단어만으로도 불안이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느낌이다. ‘전문가적 노이로제’. 그렇게 명명하고 의식적으로 몸을 바로 세웠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두 사람은 감상문을 교환했다.

 

“고통스런 삶에서도 희망을 봤잖아요.”

 

이순정이 자신의 감상에 동의하라는 듯 서정민의 팔을 잡았다.

그렇다.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새벽에 영화관을 나온 그들은 집으로 가는 대신 광화문 사무실로 갔다. 남은 밤을 와인으로 붉게 보낼까 하다가 딱, 그래 딱, 한 잔씩만 하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사무실엔 야전침대와 3인용소파가 있어 밤을 보내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 야전침대는 두 사람을 수용할 만큼 충분한 공간과 상당한 무게를 견뎌낼 만큼 충분한 탄력이 있었지만, 그들은 여니 때와 다름없이 성문법이 아닌 불문법에 의거, 각자 따로 침대와 소파를 쓰기로 했다. 서정민의 역할은 그녀를 안아서 야전침대에 눕히는 것까지가 전부였다. 그들 사이에 화학적인 불꽃이 파닥파닥 튀길 기대했으나 이날은 아니었다. 이팔봉 회장이 ‘5월 21일’을 기념해도 좋다고 허락할 때까지는 어쩔 수 없다. 두 사람은 눈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 1주년 4월 16일 서울 도심이 애도와 분노가 가득 찬 분향소로 변했다. 저녁 7시 서울광장에서는 유가족 200여명을 비롯해 3만 명이 모인 가운데 ‘4.16 약속의 밤’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서정민과 이순정은 가족협의회 소속으로 분향에 참여했다.

 

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가 대통령을 ‘철면피 괴물, 얼음덩어리 야수’에 비유하곤 했지만, 서정민은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800여 개 시민단체 모임의 장으로서 존재감 표출로 봐줘야 한다는 것. 양쪽이 이해하지 못하면 한쪽이라도 이해해줘야 하니까.

 

‘천개의 바람이 되어’ 노래와 함께 세월호 모형을 들어 올리는 인양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이 광경은 가족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문화제가 밤 9시쯤 마무리된 뒤 참가자들은 각자 들고 온 국화 한 송이를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 헌화하기 위해 행진을 시작했다. 이후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육조대로, 아니 세종대로 차벽에 막혀 청계천로로 우회한 행진 대열은 다시 막아선 경찰로부터 최루액인 캡사이신을 덮어썼다.

 

밤 10시가 넘어 종로거리에서 몸싸움은 계속됐다. 일부는 경찰버스 위로도 올라가 “세월호를 인양하라. 정부시행령을 폐기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광화문광장으로 다시 모인 유가족들은 밤샘 농성을 벌였다

 

농성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 중의 대화가 광화문의 현재를 말하는 것 같았다.

 

“광화문에 있던 좋은 나무들 뽑아내고 광장을 만들어 놓았더니 천막 쳐 시위만 한다.”

“이제 좀 철거하면 안 되나.”

“아이고, 데모는 대통령도 못 막는다.”

 

그러나 광화문은 시위만 하는 곳이 아니다. 한국 정치와 문화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합동유세나 연예공연으로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종교행사로 광장이 순화된 모습으로 보일 때는, 아, 그래서 광장이구나!

 

2014년 8월 16일 카톨릭 시복미사

2015년 5월 16일 불교 무차대회.

 

서정민과 이순정은 광화문에 그들의 사무실을 둔 것에 자부심을 부여할 이유를 더 찾은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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