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더 세월

더 세월(제27회)

오선닥 2017. 11. 26. 13:49

침몰 일주년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팽목항 등대



더 세월
(The Sewol)


제 27회



그날 이후 일 년


팽목항 방파제 끝에는 빨간 기둥의 등대가 희망의 비손처럼 우뚝 서 있다. 등대 기둥에 붙어 있는 커다란 노란리본은 실종자의 무사 귀환을 애타게 호소하듯 방파제를 길게 내려다보고 있다.


방파제 난간에 걸어 놓은 수많은 작은 리본은 소원 한 대목씩 품었는데.


‘희망을 잃지 마세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
‘수사권 기소권 보장하는 특별법’
‘세월호를 인양하라 진실을 인양하라’
‘온전한 인양’ ……


지난 해 봄부터 각 국면마다 중심에 떠오른 구호들이 노란 리본에 적혀 방파제에 나부꼈다. 리본은 좌절한 구호처럼 바닷바람에 삭아가는 것도 있다.


‘하늘로 간 수학여행’


이순정이 현수막의 자막을 보았을 때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손을 잡고 있던 조카 홍소라는 큰 소리로 동화책을 읽듯 발음했다. 아직 죽음을 실감할 나이가 아닌지 아이의 눈망울은 맑고 초롱초롱하기만 하다.


홍소라는 이모 따라 진도와 팽목항을 몇 번 왔다 간 적이 있다. 진도체육관에서 팽목항까지는 차로 40분 걸리지만 오고가는 길에 좋은 말동무가 돼 주었다. 팽목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국립남도국악원 구경을 갔을 때는 국악인은 전통음악과 무용을 잘한다고 말하니, 이 초딩 아이는 엉뚱하게 머리를 뒤로 잘 묶을 줄 안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모든 국악 여성들이 머리를 묶었다.


실종자 9명은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바다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수색종료를 선언했기 때문에 선체 인양은 사실상 유일한 희망이다. 실종자 가족 중에는 팽목항 가주택 방을 지키며 떠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인양 계획이 발표되고 바지크레인이 작업에 착수하는 것만 봐도 집에 가겠어요.”


유족의 소박한 소망이다.


사고 해역을 마주한 분향소에는 희생자 295명의 영정이 있다. 9명의 실종자 가족은 분향소에 영정을 넣고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종자의 이름과 사진이 담긴 노란색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낄 뿐이다.


안산 합동분향소엔 추모객이 뚝 끊겼다.


일 년간 50만 명이 찾았지만 이제는 참배객이 평일 100여명, 주말 300여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봉하마을 연간평균 방문객 100만 명에 비교하면 초라하다. 텅 빈 분향소 안에서 나지막이 흐르는 추모 노래와 영상만이 그날의 아픔을 대신할 뿐이다.


일 년 전 매일같이 추모집회가 열리던 중앙역 앞 중앙광장은 참사에 대한 흐릿해진 기억만큼이나 노란색 추모 현수막의 빛깔도 바래 있었다. 현수막 내용은 더 이상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지금 단원고 2학년 교실은 어떨까?


아이들의 교실은 명예 3학년 교실로 바뀌어 있다.
이순정은 열 반의 교실 모두를 돌아보았다. 예슬이도 동혁이도 유민이도 다윤이도 건우도…… 하늘에 별이 돼 있다. 교실 문마다 복도마다 아이들이 교차해 보인다. 화창한 봄날이라 슬픔이 더욱 커진다. 봄날 꽃 같은 아이들.


유족 다섯 가구가 안산을 떠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인천 연안터미널 여객이 20%나 감소한 것은 사고 후 배를 기피하는 심리의 영향이 크다. 허술한 승선 절차와 안전 불감증은 여전하다.


유가족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 세월호 1주년을 맞는 4월 16일까지 '416시간 연속 농성'에 돌입했다. 빨리 배를 끄집어 올리라는 압박이기도 하다.


광화문 농성 천막 앞에 전시된 기록 사진은 지난 1년의 아픈 기억을 들춰내기에 충분하다. 한 유족의 부르튼 입술과 거칠어진 피부에서 고통의 시간이 읽혀진다.


시 낭송 대회가 열렸다.


세월호의 진실을 건져야 한다.
참사를 만든 이들을 처벌하고, 필요하다면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산 자가 삶 속에서 살아가고 죽은 자가 죽음을 누릴 수 있게 하라.
당연한 것을 말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당연함은 피와 눈물 속에서 선취된다.


시가 아니라 일종의 구호 같기도 했다.
진실은 너무 무거워 8천톤급 삼성 해상크레인으로도 건져내지 못하나?


희생자의 언니가 낭독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니가 20살도 못돼서 떠날 줄 알았으면
매일매일 안아볼 걸
언니 언니 부르던 우리 지연
꿈을 빼앗기기 싫어하던 너
니가 떠난 후 하루에도 몇 번 죽고 싶어, 살고 싶어


어머니가 기억하는 이야기도 낭독됐다.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씨 이야기)


아들은 자기 존재에 대해서 자주 물었다.
“엄마는 날 어떻게 생각해? 내가 없었으면 어땠을 거 같아?”
“우리 아들은 공기야. 엄마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기. 아들 없으면 나는 못 살 거 같아.”
애 아빠가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어머니가 말했다.
“네 아빠랑 안 만났어야 했어.”
아들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태어나?”
“넌 그래도 내 아들로 태어났을 거야.”
엄마는 이어서 말했다.
“네가 아프면 엄마도 감기 기운이 있단다.”
“엄마하고 나하고는 연결되어 있잖아. 그래서 아픈 거야.”


광장에 모인 사람 모두가 울컥했다.

사회자는 “고통이 글로 변하지 않아 화가 날 정도죠?” 라며 관중의 호응을 유도했다.


시인들이 쓴 언어 이야기도 있었다.


그날 바람이 불었다.
눈알이 뽑힌 바람이었다고 말했다.
그 바람처럼 마음의 한 부위를 예리하게 도려낸 자들이 있었다.
그렇게 가벼워진 자들은 달렸다.
아직 살아 반짝이는 백의 머리와 눈동자를 차례로 밟으며 달렸다.
그런데 끝내 하나는 오지 않았다.
누구든 불러낼 수 있는 단 하나였는데도.
곳곳에서 비어져 나오는 물 밖의 목소리들만 허공에 붙박여 있었다.
물 안에서 어지러이 떠돌던 백의 목소리는 물 밖의 목소리와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주기로 했다.
이르지 못할 수면을 향해 슬픔의 기포를 쏘아 올리지는 않겠다.
조끼를 입었거나 입지 않았거나 그림자들은 쪼개지지 않는 하나의 덩어리다.
덩어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제를 유랑한다.
물 밖에선 내일이 이곳으로 밀어닥친다. 
그런데도 이곳은 그곳처럼 깜깜하다.
목소리만 무성한 채로 이곳은 이렇게 깜깜하다.
어둠 속에서 그러나 우리는 두드리고 있다.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열어젖히려고 두드린다.
밀어닥치는 내일이 아니라 건져 올릴 내일을 생각하며 두드린다.


이순신 동상 옆에서 시낭송을 듣고 있던 이순정은 한 대목에서 가슴이 메었다.


<물 안에서 떠돌던 백의 목소리가 물 밖의 목소리와 만나지 못했다>


그곳 물속이나 이곳 현실이 깜깜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박근혜 정부가 몹시 실망스러웠다. 배를 인양한다고 발표를 해놓고 끌어올리는 시늉조차 하고 있지 않으니. 유가족은 경찰과 대치하고 싶지 않다고 그녀는 속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노래가 나오자 관중들은 모두 일어났다.

마치 자석이 지나가자 철가루가 일제히 일어나는 모습이었다. 좌우로 조용히 손을 흔들며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미 공식 추모곡으로 헌정된 것이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는 음원수익금 6천만원 전액을 기부했다.


“곡이 슬프고도 아름답지 않아?”


옆의 친구가 말했을 때 이순정은 동의한다는 뜻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곡이 있구나, 오늘 비로소 깨달은 그녀였다.


사실 친구는 두 가지 면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나치게 새누리당 편향적이고, 오늘 같은 엄숙한 날에 찢어진 청바지와 요란한 후드 티 같은 것을 입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함께 자리를 같이해줄 만큼, 여자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의리가 있는 친구이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질 무렵 그들은 광장을 나와 무교동으로 빠졌다.
침몰한 배를 기억이라도 하듯 건물들은 영혼이 빠져나간 몸뚱어리처럼 서 있었다. 은연중 사람들의 마음속 여기저기서 활활 타는 적개심 때문에 건물들이 깡말라 보이기도 했다.


을지로에서 천 원짜리 노가리를 몇 개 시켜 놓고 맥주를 마시며 이순정이,


“고맙다.” 라고 말했다.


“그건 내가 해야 할 말 아닌가. 이렇게 맥주도 사주니…… 호호.”


청바지 친구는 추모일답지 않게 크게 웃었다.
친구는 앞에 놓인 생맥주를 들이키고는 이순정을 쳐다보았다.


“내가 예언 좀 할 줄 아는데, 넌 언젠가 가까운 사람과 결혼할거야.”


“그건 중병 걸린 사람에게 죽음을 예언하는 거와 같다구, 야.”


그러곤 이순정은 “가까운 사람과 결혼하는 건 당연하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여튼 지켜보라구. 나에게도 강력한 촉이 있으니까.”


이순정은 서정민 사장의 귀가 간지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 1주년(2015.4.16.) 희생자 가족과 시민들이 경찰과 충돌


<계속>


'소설 > 더 세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 세월(제30회)  (0) 2017.12.26
더 세월(제29회)  (0) 2017.12.17
더 세월(제26회)  (0) 2017.11.19
더 세월(제 25회)  (0) 2015.06.03
더 세월(제 24회)  (0) 201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