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더 세월

더 세월(제 23회)

오선닥 2015. 5. 10. 16:35

정신과 치료

개인적 치유

사회적 치유

트라우마로부터 탈출은?

 

 

 

 

더 세월

(The Sewol)

 

제 23회

 

정신과 치료

 

정신과 병원을 들어서는 순간 서정민은 미소를 띠었다. 방문할 때는 크고 작은 선물 하나쯤 들고 들어간다. 이번엔 비타500 한 박스를 내려놓았다.

 

“혹시 현금…… 들어있는 거 아니죠?”

 

음료 상자를 받아든 여의사가 말했다.

 

“성완종 정도의 부자는 아닙니다.”

 

말해놓고 서정민은 웃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광화문 교보빌딩 근처에 있는 정신과의원을 찾는다. 여의사가 주치의다. 진료 차례를 기다리는 중 그는 신문을 집어 들었다. 큰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한 박스의 활력, 총리도 반한 맛’이라는 타이틀을 보았다. 비타500의 광고 패러디가 벌써 나오다니.

 

“트라우마는 근원적 요소인 외부 요인에 대한 명백한 정리가 먼저 필요합니다. 회사나 공동체의 책임성이라 할까.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지요.”

 

진료실 의자에 앉았을 때 의사는 진료를 시작하는 자세를 취했다. 서정민은 이 시점부터 의료비 계산이 스타트되는지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정신과에는 수백 가지의 질환이 있지만, 내인성이 아닌 외인성 질환은 딱 하나 있는바 그게 바로 트라우마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트라우마는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되는 게 아녀요. 상처를 다른 형태나 다른 가치로 승화시켜 새로운 일상을 구축하며 견뎌 나가야 합니다. 좋은 이웃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고요.”

 

최근 상태가 어떠냐는 질문에 서정민은 이순애의 환영이 자꾸 보인다고 말했다.

 

“그 환영이 밤 혹은 낮?”

 

“밤낮이 없어요. 길을 가다가 뒤돌아볼 때 여자가 보이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 그녀가 클로즈업되기도 합니다. 꿈에도 나타나는데 손을 흔들며 웃고 있을 때는 현실 같기도.”

 

“지금 혼자 계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개인에서 가정으로 또 사회로 생활범위를 확장시켜나가야 합니다. 이런 걸 ‘사회적 치유’라 하는데…….”

 

“……”

 

“죽은 아이의 생일에 시를 보내는 시인, 잠자는 유족의 품에 핫팩을 넣어주는 이웃, 함께 차를 마셔주는 이성…… 좋은 치유자가 될 수 있지요. 참, 이혼하셨다고 했나요. 혹시 사귀시는 분은?”

 

“사귄다기보다 그저 대화를 나누며 덤덤하게 지내는 동업자 여성이 있습니다. 친구라고 표현하면?”

 

“사회적 치유에 도움 되는 일이므로 일부러 피하진 마세요.”

 

그러면서 사회적 치유가 왜 필요한지 세월호 트라우마의 사례 몇 가지를 예로 들며 설명했다. 모두 세월호 관련 세미나에서 발표된 것들이라고 한다.

 

언니를 잃은 한 중학생은 어느 날 학교에서 갑자기 언니가 보여 선생님 등 뒤에 숨기도 했다. 한 어머니는 딸의 친구가 딸 꿈을 꿨다고 SNS에 올리자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걔가 어떻게 지내는 것 같니? 춥지는 않은 것 같애?’ 물어보기도. 어떤 어머니는 ‘아들,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갈게’ 글을 써놓고 목숨을 끊으려다 출동한 경찰에 의해 구조되기도 했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아직 죽지 않았다며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다.

 

“자살하려는 분은 급성스트레스장애라고 말할 수 있지요.”

 

서정민은 자신이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난 사람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혹시 이러다간 자신도 죽음의 충동에 빠지지 않을까 슬그머니 불안이 스며들기도 했다. 이상하다. 독심술이라도 가지고 있는 듯 주치의는 섬세하게 상담을 이어나간다.

 

“생각의 범위를 넓혀나가면 옆집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너무 여론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물론 쉽지는 않지만 분노의 반은 국민들한테 맡기고요.”

 

광장에서 진상규명을 외치는 사람들을 의식해서인가.

 

정신과 치료는 여러 사람을 한 가지 틀에 맞춰 치료할 수 없는 특성이 있어 개인의 요구에 맞는 선별된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는 맞춤형 지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트라우마는 피해자의 상태를 장기적으로 분석하고 연구ㆍ학습해야 한다는 것.

 

참사의 시퀀스가 과거에서 비롯돼 현재에서 터졌으며 미래를 암시하는 총체적 사건으로 규정한다면 피해자의 치료 또한 시스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견해이다.

 

“마음의 문을 닫으면 바늘 하나 들어갈 자리도 없다는 사실 아시나요? 이제 마음을 여시고 옛날의 평상심으로 돌아가도록 애쓰셔야 합니다. 본인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애견을 잃고 자살한 사람도 있는데, 제 경우엔 옆에 있었던 사람이 죽었으니……이 엄청난 일을?”

 

얼마 전 부산에서 30대 여인이 강아지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착화탄을 피워 자살한 사건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를 알고 계시는군요. 그런 것을 ‘펫로스(Pet Loss) 증후군’이라 합니다. 그런 사람도 상담이 필요하지요.”

 

그녀는 서정민의 시선을 마주하고 말을 이었다.

 

“스트레스가 몸에 왜 해로운지 아십니까?”

 

알면 왜 치료 받으러 오는가, 말하려는 것을 참고 그는 묵묵히 자세만 고정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설명해 나갔다.

 

에너지는 포도당에서 추출된다. 인슐린은 포도당을 세포로 보내는 호르몬이다. 스트레스호르몬(코티졸)은 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보내기 위해 인슐린을 저지한다. 위협이나 불안이 사라지면 스트레스호르몬은 신체에 에너지를 저장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신체는 안정을 되찾게 된다. 지방은 에너지의 예금통장이다.

 

“스트레스와 불안은 사촌 간 아닌가요?” 그는 대화의 간주용으로 끼어들었다.

 

“적절한 표현이네요.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아드레날린과 코티졸을 분비하여 심장과 뇌에서 10배에 가까운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계속되면 우리 몸의 각 공장에게 돌아갈 에너지원이 고갈되겠지요. 만성적 스트레스는 그래서 나쁜 겁니다.”

 

“자고 일어나면 팔다리와 어깨가 뻐근한데…….”

 

“그럴 수 있지요. 몸 전체 면역이 떨어질 수 있고 한 부분에 집중해서 안 좋을 수도 있고요.”

 

“평소 생활습관이 중요하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열심히 사시는 것도 좋지만, 열심의 속도 때문에 방향을 잃으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도 아시죠. 생활 자세와 가치관이 중요합니다.”

 

서정민은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았다.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각오로 인생을 진하게 살아왔는데 이제 그런 자세가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애도란 살아남은 자가 수행하는 죽은 자에 대한 상징적 복권이라고 하는데 이순애를 어떻게 애도해야 하나.

 

그는 눈썹에 힘을 한번 줬다. 밤인데도 어두워지지 않는 밤을 사는 괴로움에서 빨리 해방되고자 하는 사람처럼.

 

환자가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것 같아 의사는 질문을 마다하지 않았다.

 

“걱정 때문에 뒤척이다 잠을 못 이루시는 경우가 있으시죠?”

 

“'자야 하는데, 자야 하는데…' 하다가 새벽이 밝아오는 걸 보고 퀭한 눈으로 출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통계는 오늘날 수면장애가 옛날보다 두 배로 늘었음을 보여준다.

 

“잠 못 자면 어쩌지' 같은 걱정을 하지 말고 잠자리에 누워서 좋았던 일들이나 행복한 일을 상상하면서 천천히 복식호흡을 해보세요. 훨씬 나아질 것입니다.”

 

의사는 잠깐 여담의 시간을 갖겠다고 운을 띄웠다. 그것도 치료과정인가.

 

“선장의 지휘부재가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기도 한데, 개인적 자세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기주의 반영이라고 생각해보셨나요?”

 

“부끄럽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여기까지……”

 

“선장 경험자로서 공공성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회생활 실현을 위한 핵심단어가 공공성인데 세월호에서 완전 실종했다고 봐야죠. 이것도 부끄럽고요.”

 

“그렇습니까. 제가 표현해 보자면…….”

 

의사는 설명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무조건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사회에서 공공성이 피어날 수는 없다. 배를 가장 잘 아는 선장이 제일 먼저 탈출하는 것은 남을 배려하지 않은 결과다. 공공성 이탈이다.

 

“이런 사회문제 얘기도 심리치료 내용에 들어갑니까?”

 

“환자가 어떤 심리 상태에 있는지 알아보는 과정이기 때문에 포함되죠. 진료비는 40분을 30분으로 처리해드릴까요?”

 

“선생님도 농담을……. 수고하신 대로 빌링하십시오.”

 

시선을 주고받음으로써 농담을 확인하는 의사와 환자.

 

“약은 제 시간에 드셨나요?”

 

“약만 주실 건가요?”

 

“다음에는 심리치료와 약물치료에 추가하여 통찰치료로서 정신분석도 병행할까 합니다. 통합적 치료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정신분석 치료는 증상을 제거하는 것보다는 증상을 유발한 무의식적 갈등을 의식화하여 자아의 통제 아래 해결하는 기법이라고 한다. 자유 연상, 꿈 분석, 전이 분석, 저항 분석, 해석이나 훈습 등의 기법으로 내담자의 성격 구조를 정상적이고 건강하게 변화시킨다는 원리이다. 일반인은 이해하기가 어렵네.

 

“이번에는 항우울제로 심발타를 조금 드릴게요. 프로작과는 약간 다릅니다만.”

 

“매주 선생님의 진료를 받으면 기분이 좋고 불안이 사라지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진료날짜가 기다려지는 지도 모릅니다. 일주일 동안 잘 견뎌야 할 텐데.”

 

“우울증이란 마음의 근육이 약하다는 뜻입니다. 남들은 별 문제 삼지 않을 이야기에도 상처를 받게 됩니다. 공황장애 증상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요.”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화를 잘 내고 욱하는 성질을 나타내서 사고를 저지르기도 하는 게 공황장애라고 한다. 다혈질일수록 더 심한데,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자신을 지키려고 화를 내고 싸우게 되고 사고를 치게 된다는 것.

 

“심장에 통증을 느끼십니까?”

 

“약간 답답한 정돕니다.”

 

“초기 증상인 것 같네요. 충분히 치료가 가능합니다.”

 

느닷없이 심한 공황발작이 시작돼 심장을 쥐어짜는 아픔과 답답함이 몰려오기도 하고 두통, 목, 허리 등 다양한 부위에 통증이 오기도 한다. 아픔들이 계속 되다보면 공황발작을 일으키게 되는 장소에는 찾아가지 않으려 하고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고 자신을 고립시키게 된다.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스트레스가 심하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비교당하는 순간이 오면 더 심해지지요. 연예인의 경우 더욱 그렇고요.” 그리고 “노력 여하에 따라 회복 속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라고 의사는 말했다.  

 

외국의 역사적 인물로는 다윈, 괴테, 카프카, 프로이트……

국내의 유명인으로는 김장훈, 이경규, 김구라……

그분들도 다 훌륭하게 극복했다고 한다.

 

약은 한 번에 많이 먹는 걸 방지하기 위해 보통은 일주일 단위로 끊어주는 경우가 많다. 약을 받으러 와서 상담도 하고 진전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상담은 자유형으로 변해가는 느낌이다.

심리상담은 은연중 뇌세포 문제에까지 이르렀다.

 

“마음의 병이 악화되면 뇌세포가 파괴되어 치매, 뇌졸중에 이르기도 하지요.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살인을 하게 되기까지.”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을까 두려워 진료를 회피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도 일반인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치매, 뇌졸중, 자살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아니면 찜찜한 정신과 진료 기록을 없애는 게 중요할까요?”

 

“두 가지 다 피하고 싶은데…….”

 

“정신과에서 보험혜택을 받지 않는 비보험으로 약물치료를 받으시면 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또 약물치료 없이 일반상담만 받으면 기록에 남지 않고요.”

 

병력(病歷)도 일종의 족보라서 그런가.

 

“요즘 괜히 사람 많은 곳에 가고 싶지 않은데요?” 서정민이 말했다.

 

“우울증, 불안장애, 대인기피증, 분노조절장애가 있으신 경우에 우울, 불안, 대인기피, 분노는 결과이고, 원인은 과거에 상처받은 트라우마나 콤플렉스 등 감정에 있는 겁니다.”

 

정신과 치료방법에 약물치료와 심리치료 외 예술치료, 충격요법, 정신분석법, 주술적 치료, 종교적인 치료 등 많이 있다고 하는 것은 처음 듣는 일이었다.

 

의사는 자세를 고쳐 잡고 모처럼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도약을 위해 준비하는 자세 같기도.

 

“혹시 가족협의회 같은 데 관여해 계신가요? 본인의 치료를 위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피해자 군에서 좀 떨어져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회원일 뿐 특별히 직분이 있는 건 아니고요. 그런데?”

 

“다만 환경을 좀 바꾸면 어떨까 하고요. 천안함 유가족 중에서 이민가신 분이 있는데 트라우마에서 빨리 치유된 사례도 있고 해서요.”

 

한국 문화에서 집단을 이탈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왕따’라는 단어가 따라다닌다. 이런 이야기는 정부와 언론, 학자도 섣불리 언급하지 못한다.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민은 가지 않더라도 가급적 사업에만 열중하려 합니다.”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 멀어진다, 속담 있잖습니까. 심리치료에도 응용되는 부분이지요. 의사는 환자를 최대한 조속히 완치시킬 의무가 있으니까요.”

 

환자가 묵묵히 앉아 있자 의사는 오늘 심리치료를 마무리하려는 것처럼 더 진지한 자세로 들어갔다.

 

“지금은 안산이라는 지역이 환자들에겐 굉장히 극복하기 힘든 세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서울에 계시는 것은 다행이고요. 재난지역에는 여진이 있게 마련입니다. 오늘도 유가족 한 분이 자살했잖습니까.”

 

자녀를 먼저 보낸 부모가 치료는 무슨 치료냐며 치료를 거부해온 유가족도 있다. 사고 1년이 가까워지자 트라우마센터를 찾는 유가족이 늘어났으나 최근 특별법 시행령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불거지면서 치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역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트라우마 지역에서 빨리 탈출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재난은 사회가 감당하는 능력을 넘은 상황인데, 인간이 사는 동안 절반은 트라우마에 겪을 수 있다고 전문의는 말했다.

 

다음 주에 뵙겠다고 인사하고 서정민은 병원 문을 나섰다.

물론 약봉지는 꼭 손에 들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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