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더 세월

더 세월(제29회)

오선닥 2017. 12. 17. 13:49

수중에 있는
세월호의 모습은?
얌전하게 누워 있을까?
잠수하여 살펴봅니다





더 세월
(The Sewol)


제 29회



물속 진실


세월호 선체인양은 기약이 없다.


기술적 검토 후 공론화 과정을 거쳐 합리적으로 결정하겠다, 판에 박은 말뿐이다. 민관조사단이 기술적 어려움이 없다고 내부 결론을 내렸고, 여론조사에서 국민 60%가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온 지가 여러 달이다.


세월호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라진 7시간 행적이 도마에 오른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세월호 관련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그럴 터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어도 불편해 하는 이들이 있다.
그만하면 되지 않았느냐는 정서다.
사건의 직접적인 책임자들을 가려 재판에 넘겼으니 끝났다고 여긴다.


그러나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들은 “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오직 선한 자들의 무관심이다”라며 슬그머니 끝내려는 태도를 정의감 결핍으로 매도한다.


그들은 강력히 주장한다.


현행법의 틀 속에서 재단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에는 그 동안 우리사회에 쌓여온 부조리한 관행과 부패, 비리, 권력의 무능, 국가의 책임방기 등 구조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런 것들을 다 들춰내 바로잡지 않고서는 우리사회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사람들은 일 년 반 가까이 물속에 잠긴 세월호에 대해 궁금해 한다.


“물속에서 꿈틀거리는 건 아닐까요?”


서정민이 심해잠수 회사의 사장과 대화할 때 사장의 장난기 섞인 말이었다.

물속에 잠긴 세월호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잠수 작업을 하기로 했다.


보고서 작성은 여성 다이버이며 여행작가인 김수진의 몫이다.
자금지원은 이팔봉 회장이 한다.


회장의 뜻은 간단하다.


“진실을 아는 일에는 공짜가 없지. 돈을 들여서라도 가라앉은 배를 끄집어 올려야 하는데 수중탐사라도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냐?”


이 회장은 역사의 사례를 들었다.
나라를 지키는 일에도 공짜가 없다. 조선 통신사 김성일의 말이 먹힌 것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기 싫어하는 조선인들의 공짜심보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가족의 주장을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일에 회장은 분개했다.
대학특례입학, 의사자 지정, 추모공원 건립, 생활안정 평생보장, 정신적 치료 평생보장 등은 요구한 적도 없는데 의도적으로 전파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수중탐사는 2015년 8월 여름철을 택했다.


세 명이 잠수하기로 했다. 그들은 전문잠수사, 김수진 및 해경이었다.


김수진은 서정민의 후배로 여성항해사였는데, 배멀미가 심해 아예 여행작가로 직업을 바꾸었다. 해양 레저스포츠는 그녀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그녀는 해경을 설득해 잠수 취재 허락을 받았다. 유실방지망 점검으로 해경과 함께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세 사람의 역할은, 전문잠수사가 선발, 김수진이 뒤따르고, 해경은 뒤에서 안전을 담당한다.


세 사람 모두 해저 다이빙 최고 등급인 마스터다이버 자격증을 갖고 있다. 최소 100회 이상 바다입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작가 양반, 자격증만 따고 장롱에 묵혀 놓은 거 아녀?”


나이 많은 해경이 젊은 여성 작가를 잠시 가지고 놀았다. 이래봬도 60미터 이상 깊이를 물질한 경험이 있다고 그녀는 주장했으나 누가 봤냐.


별 하나 안 보이는 흐린 밤바다.


세 다이버는 한 줄로 다이빙 발판에 섰다. 
마스크를 얼굴에 내리고 호흡기를 물었다.


바지선에서 입수하는 방식은 공중을 걸어가듯 발을 벌린 채 물속으로 들어가는 ‘워킹 다이빙’이다. 흔히 수면과 발판과의 높이가 50센티미터 이상 되는 배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전문잠수사가 먼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얀 포말이 조명에 빛났다. 다음은 그녀가 하강줄을 잡고 입수하자, 해경도 익숙한 자세로 입수해서 하강줄 한쪽을 밀어준다.


야간 다이빙에서는 머리를 아래쪽으로 향한 채 잠수하는 ‘헤드 퍼스트’ 방식을 주로 쓴다. 손에 랜턴을 들고 수중의 장애물이나 도착지점을 살피며 내려가는 것이다. 통상 잠수는 입수할 때 빨리 내려가고 상승할 때 천천히 올라온다.


야간 다이빙 풍경은 검은 우주공간과 흡사하다. 열대바다라면 랜턴에 감광된 동물성 플랑크톤들이 발광을 하며 지나가는 것 외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가 목표지점에 랜턴빛이 도달하면 비로소 허연 바닥이 다이버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식이다.


한 손에 하강줄과 랜턴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마스크를 눌러 귀에 가해지는 압력을 해제시켜 가면서 오리발로 킥을 계속한다.


“세월호가 보여야 하는데?”


이상했다. 무려 25미터나 내려갔는데도 깜깜하다. 하강줄이 없었더라면 게이지의 수심을 읽으면서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게이지는 두 곳에 있는데, 하나는 마스크 우측 눈 밑에 달린 컴퓨터 스크린에 나타나고, 다른 하나는 공기탱크와 연결돼 있다. 오른쪽 아래로 눈길을 돌려 수심을 읽으니 17미터.


“바닥이 나올 때까지 가는 수밖에 없군.”


감각적으로 수심 20미터 하강했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전문잠수사가 그보다 5미터 전방에서 선체와 만나고 있었다. 조류로 휘어진 하강줄이 길게 늘어서서 이동한 궤적이 길어진 것이다.


드디어 세월호 선체에 내려섰다. 하얀 선체가 손에 닿았다. 선체를 쓰다듬어 보았다. 아주 얇은 막 같은 것이 덮인 듯했다. 물이끼류가 얇게 앉은 것. 흙탕물이 지나가기도 하는데 선체 외벽은 비교적 깔끔한 편. 조류가 늘 씻어주기 때문일까.


선체가 어떤 방향으로 누워 있는지 앞뒤는 물론, 아래위도 구분이 가질 않았고 몇 층의 외부인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처음 잠수해서 하강줄을 설치하고 수색작업을 한 잠수사들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해경이 노끈 매듭 하나를 김수진의 왼쪽손목에 채웠다. 약 3m 길이의 다른 쪽 끝은 자신의 오른 손목에 감겨 있고.


“왜 이러시죠?”


“떠내려갈지언정 혼자 보내지는 않겠어.”


말은 주고받을 수 없지만 그런 뜻이다.


물이 가장 맑을 때인 지금 시계는 5미터 안팎에 불과하다. 5미터 밖은 어둠으로 덮여 있어 145미터짜리 선체를 볼 수가 없다.


수중의 세월호 선체 사진이 왜 없어?


물 밖에서는 아우성치곤 하지만 물속에 들어와 보니 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문잠수사가 안내줄을 깔면서 앞으로 이동했다. 새로 깔린 줄의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10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서 두 개의 랜턴 빛이 보였다. 다른 팀이 이동하고 있었다. 안내줄을 잡고 이동할 때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다이빙 경력이 쌓이면 물속에서 공기를 아껴 쓰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한다. 평소에 요가를 하며 신체를 적응시킨 잠수사들이다.


공기를 아끼는 지름길은 쓸데없는 동작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이것이 익혀지면 그대로 우주 유영을 하는 우주인의 동작과 닮아간다. 우주인들의 훈련장이 다이빙 풀장인 이유다.




우!?


하얀 선체를 짚어가며 천천히 전진하는 중 갑자기 큰 구멍이 나왔다. 속은 그야말로 검은 공간이다. 그 위를 가로질러 설치된 유실방지망이 나타났다. 깨진 유리창이 있던 곳이다. 저 컴컴한 곳에 학생들이 있었다니.


유실방지망을 고정시키기 위해 네 개의 C클램프가 끼워져 긴 볼트로 고정돼 있다. 이 정도면 선체 내부의 시신이 밖으로 빠져나갈 수는 없다. 나사 홈마다 벌겋게 녹이 슬어가는 중이다. 클램프 볼트를 하나씩 감아보았더니 느슨해진 볼트가 다시금 조여졌다.


유실방지망 점검은 이렇게 끝이 났다.


쉬운 일도 물속에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공기탱크의 공기가 135밀리바가 남았다. 아껴야 오래 머물 수 있다. 선체 외벽의 다음 창문으로 전진했다. 그곳엔 이미 노란색 공기호스가 들어가 있었다. 다른 팀이 선체 내부로 들어간 것이다. 그곳을 살짝 넘어가야 하는데 이때부터 난조를 보인다.


수중에서 줄이란 줄은 전부 조심해야 한다.


깨진 유리창 출입구 안을 들여다보니 시커먼 우물 속에 다른 잠수사가 들어서 있는 게 보였다. 기포가 올라오고 있다. 우리 쪽으로 다른 공기호스가 가로지르고 있다. 후진을 해서 조심스럽게 공기호스 위로 빠져나왔다.


게이지를 보니 120밀리바가 남았다. 머물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세월호 4층의 앞면 지점이 될 것이고, 거기에 가면 조타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나아가자 선체 한쪽에 가는 철근이 쳐진 난간이 보였다. 이 지점은 4층과 5층 사이의 끝단을 의미한다. 사다리처럼 한 칸씩 잡고 전진하는데, 그동안 여러 차례 작업하면서 남겨둔, 굵기와 색깔이 다른 안내줄들이 거미줄처럼 남아 있다. 잘못하면 줄에 엉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다이버들을 위협하는 사고 중에는 어망에 엉키는 일이 많다. 나이프가 필수 지참물인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나면서 선체 한편에 작은 원통 같은 것을 보았다. 현등이다.


모든 배는 좌우현에 등을 켠다. 좌현은 적색등, 우현은 녹색등이다. 녹색등을 보았으니 배는 좌현으로 넘어져 있다는 증거다.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자 선체는 더 이상 연장되지 않은 채 끝이 났다. 4층 선수 끝단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서 아래로 90도 꺾어서 조타실 바닥이 서 있다. 김수진은 선체 끝에서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시커먼 낭떠러지가 펼쳐졌다. 약하지만 아래서 위로 조류가 솟아오르고 있다. 랜턴을 비추니 측면갑판 쪽에 설치된 방향컴퍼스가 뿌연 펄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다. 분명 그 안쪽이 조타실일 것이다.


여기서 누운 조타실 입구까지 가려면 수심 5m 이상은 더 내려가야만 한다. 남은 공기로 모험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 아래로는 수심 40m가 넘는 바닥이 있다.

검은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며,


“나머지 시신 9구를 찾기 위해서 해경과 해군 다이버들이 목숨 걸고 저 낭떠러지로 계속 왔다 갔다 했군.”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임무를 지우는 건 아닌가.


상체가 완전히 공간을 가로지를 때 그만 다리 부분이 아래로 슬그머니 가라앉고 말았다. 부력조끼에 공기를 주입해 두지 않았기에 강하게 발을 차지 않으면 부력을 만들 수 없는 상태다. 문제가 발생했다.


김수진의 두 발이 다른 잠수사의 머리 위로 내려앉기 시작한 것이다. 좁은 통로에서 당황한 채 몸을 격하게 움직이게 되면 두 호흡줄이 꼬이는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이 상황을 피하려면 숨을 깊이 들이마셔서 허파로 부력을 최대한 확보하고 오리발을 강하게 차면서 올라와야 하는데 이때 어쩔 수 없이 잠수사의 머리를 치게 된다. 사고는 나지 않더라도 난데없이 오리발로 머리를 얻어맞은 다이버는 기분이 참 더러울 것이다.


이제 다시 선체 위를 기어서 전진했다. 그때야 비로소 그녀의 위치가 4층 우현 선수 쪽 유리창의 두 번째 지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선체를 자세히 보았다. 세월호 선체의 외벽은 곡률반경이 큰 곡면에 가까웠다. 그녀는 판단했다.


“이러니 선체 외부에서 전문구조사도 걸어서 접근할 수 없었다는 건가?”


저체온증과 수압을 견뎌내면서 빛이 없는 통로를 더듬어 가는 잠수 영웅들.
그 속에는 해경도 들어 있다. 속죄양으로 되었다면 억울하다.


수중의 선체를 직접 보던 순간, 거대한 곡면 철판과 먹물 어둠 속 난장판이 된 객실 공간은 미지의 곳에 발을 디딘 기분. 이런 곳에서 손으로 더듬어 시신을 찾아내고 껴안고 물 위로 오르는 일을 반복했었다니.


20분간의 잠수 임무는 끝났다.


전문잠수사, 김수진, 해경 순으로 선 채 서서히 상승을 시작했다. 수면 도착 시각은 늦은 밤이었다.


왜 입수할 때보다 출수할 때가 더 힘들까?


수면에 도착했을 때 파도가 컸다. 철제 사다리가 3미터 높이의 바지선 위까지 45도 각도로 붙어 있다. 암벽등반의 경험이 있는 그녀였지만 40킬로그램이 넘는 장비를 멘 채 자력으로 올라와야 한다. 물속에서는 느끼지 못한 무게가 막상 수면으로 나오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이완된 근육에 중량이 더해지면 더 무거움을 느낀다.


텐더들이 사다리 끝까지 내려와 오리발을 회수한다. 한 손으로 줄을 잡고 다른 손으로 오리발을 벗는 것도 숨을 차게 만든다. 출렁거리는 물결에 몇 번 실패한 후에야 오리발을 벗었다.


갑판에 오르자 비로소 수많은 얼굴들이 걱정을 하다 무사히 돌아온 작업단을 보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벤치에 앉히고 장비를 탈착시켰다.


무거운 더블 탱크를 벗고 난 김수진은 갑자기 뒷골이 아파 왔다. 참기 어려워 얼굴을 찡그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뒷목을 주물렀다. 잠수 후 어떤 이상이 생길까 싶어 노심초사한 표정으로 그녀를 지켜보던 서정민과 이팔봉 회장은 괜찮은지를 물었다.


“저체온으로 인한 두통입니다. 한두 시간쯤 지나면 사라져요”


전문잠수사가 옆에서 설명했다. 진짜 그의 말대로 두통은 두 시간 동안 뒷목에 머물다 사라졌다.


김수진은 불철주야 이곳에서 잠수 수색을 하는 모든 잠수사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들 모두는 시신을 안고 올라오는 묵언의 수행자.


왜 못 찾나?
물속에 들어가 보니 어떻게 찾나가 문제였다.

천안함 사건의 준위 한주호, 세월호의 민간 잠수사 이광욱의 희생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재난은 지구촌에 태어난 모든 생명에게 숙명처럼 가까이 존재한다. 재난은 피해자를 가리지 않는다. 무차별적 특성을 갖고 있다.


재난은 4단계 주기를 갖고 있다.
예방, 대비, 대응, 복구.


세월호의 경우, 대응 단계에서는 비교적 좋았다. 30분 만에 해경123정과 헬기 그리고 어업지도선과 민간 소형어선들이 가세해 구조를 기다리며 선체 밖으로 빠져나온 승객 172명 전원을 구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에 있는 사람을 한 명도 살려내지 못한 책임을 어찌하랴.
김수진이 물속 진실을 어떻게 보고할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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