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니들이 게맛을알어

니들이 게맛을 알어(제 12회)

오선닥 2015. 12. 22. 18:51

여자는 돈을 많이 벌었다

번 돈을 잘 쓰는 자만이

인생을 번 사람이다

 

여자는 당찬 결단을 했다

남자는 사업의 목적이

뭔지를 분명히 안다

 

▲교회

 

 

 

제 12회

(마지막 회)

`

 

결단

 

사업의 번창으로 영일관은 물댄 동산 같다. 모름지기 러시아 킹크랩을 공급받기 시작한 후 3년 동안 수입이 좋았다. 번 돈으로 주변 땅 220평을 매입했다. 주택 하나가 딸려 있었으나 나지막하고 오래된 것이라 건물 값은 거의 없고 대지 값으로만 매입한 셈이다. 땅은 샀지만 무슨 용도로 어떻게 사용할 건지가 의논 사항이다.

 

영일관 응접실에서 오후 3시의 맑은 햇빛을 받으며 임동박과 오영애가 맥주를 앞에 놓고 근래 보기 드문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빠 처음 이야기했던 거 기억나세요?”

 

“뭔데?”

 

“돈 벌어서 교회 지어 헌당하겠다는 것.”

 

“농담으로 한 거 아니었어?”

 

“농담이 따로 있지요. 실은 농반 진반이었어. 마음은 진실이었으나 현실이 따라줄지가 궁금했으니까요.

 

“그럼 진담이었던 거로군.”

 

“이런 날이 올 거라고 기대했어요. 오빠와의 관계도 그렇고.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요. 오빠를 사업가로 해방시켜드리고 싶어요.”

 

여자는 뭔가 불안한 듯 손을 문지르고 있었다. 전에 없던 행동으로 얼굴에는 진지함마저 묻어 나온다.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를 느끼는 임동박.

 

“이런 심각한 화제는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맥주 김빠지려 해. 우리 잔이나 들자.”

 

분위기를 고르기 위해 반쯤 비어있는 잔에 임동박이 맥주를 부었다. 여자의 얼굴이 유난히 붉게 달아오른다. 임동박은 여자의 입에서 나온 ‘양심’이 뭘 의미하는지 희미하게 짐작할 것 같았다. 무의식중에 나온 단어는 아니다. 함바집 크기에서 시작하여 10여 년간 오늘의 영일관으로 키워온 그녀로서 의미 없이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 사장, 이 기회에 시집이라도 가면 내가 놓아주겠어.”

 

그녀 없는 영일관은 생각해본 적 없는 임동박으로선 솔직한 심정이다.

 

“오빠가 생각해주는 건 좋은데 난 이미 결심했어요. 제2의 김영한 인생이 되겠다는 것.”

 

대원각 요정을 사찰에 바친 김영한. 그런 분의 이름을 오영애가 아무렇게나 입에 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용광로에서 들어 올린 쇳물이 굳을까 걱정하듯 그녀는 단김에 말을 이었다.

 

“진지하게 말씀드릴게요.”

 

내용인즉슨 영일관의 오영애 지분 70퍼센트 중 50퍼센트를 빼내서 20퍼센트만 남기고, 경영은 임동박이 맡아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결국 임동박과 오영애의 영일관 지분은 60대 40으로 된다. 여자가 할 일을 남자가 어떻게 감당하느냐의 부분에서 그녀는 대안이 있다면서 고집을 꺾지 않았다. 요리는 현재의 여자 주방장이 잘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고, 영일관 관리는 사모님이 하셔도 된다는 것.

 

임동박이 계속 걱정을 놓지 않고 있자 오영애는 말한다.

 

“물론 저도 한켠에서 도와드릴게요.”

 

“당연히 그래야지.”

 

그녀는 새로 구입한 땅에 교회를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지분에서 빼낸 돈으로 땅값과 건축비를 충당하기에 족한데 오영애는 이런 것까지 섬세하게 계산한 것 같다. 교회 옆 남는 땅에는 원룸 식 기숙사를 지어 영일관 종업원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외국인 종업원도 고용하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중국, 러시아, 베트남, 필리핀 출신 다문화 종업원을 고용해 대중음식점으로 하자는 의견을 냈다. 임동박은 오영애의 제안에 깜짝 놀랐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무서울 정도다. 임동박의 시선을 받으며 그녀는 말한다.

 

“오빠는 중국인 며느리도 맞아들였잖아요.”

 

작년 가을 아들 임해준과 쉬라이는 한남동의 한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쉬라이는 칭따오호의 3항사를 마치고 칭따오시에 있는 무역회사에 근무하던 중이었다. 신랑이 계획대로 금년 박사 학위를 받으면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살 예정이다.

 

“러시아 아가씨 루나도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을 테고요.”

 

오영애가 벌써 여러 방면으로 연구한 흔적이 드러나 보인다. 러시아 마피아 장학금으로 공부를 마친 루나는 졸업 후 임동박의 물류회사에 근무 중이다. 청년 종업원은 공부를 병행하면서 근무토록 해서 평생 직장인으로서 긍지를 갖도록 하는 아이디어도 오영애가 생각해낸 것이다. 영일관 종업원은 벌써 다국적으로 구성돼 있다. 이미 동남아 출신 직원도 있다. 중국 조선족과 탈북자 종업원도 포함돼 있고. 이들의 정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숙사 확보가 중요하다.

 

“기숙사에 거주하면서 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고요.”

 

평소 생각해온 것을 오영애는 가감 없이 풀어나갔다. 그녀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평소 보지 못한 임동박은 교회 건립 착안이 믿어지질 않을 정도다. 그러나 성경책이 항상 그녀 곁에 있는 것은 보아 왔다.

 

“교회에는 목사가 있어야 하는데?”

 

다국적 사람이 설교를 들을 수 있을까 궁금해서 임동박이 물었는데,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다.

 

“외국인 목사를 초빙해서 영어로 설교하면 되잖아요.”

 

“그러면 한국어에 서툰 다문화 종업원에 도움이 되겠군.”

 

“외국인 목사가 한국어를 배우면 더 좋고요. 아니면 외국어로 목회하는 한국인 목사를 초빙하든지.”

 

“오 사장의 앞서가는 생각에 내가 좇아갈 수 없군.”

 

“어차피 앞으로는 다문화사회 아녀요. 지구상에는 6500개의 언어와 20만 개의 다문화가 있답니다. 지금 국제학교가 많이 들어서고 국제의료병원이 생긴다고 하고요. 이태원에는 이슬람 모스크도 생겼잖아요. 이제 하나만을 고집할 때는 지났습니다.”

 

그녀가 언제부터 다문화에 관심을 뒀단 말인가. 임동박이 자꾸 부끄러워지려 한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옹졸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생물의 세계만 진화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생각도 진화해야 한다고 말할 때 오영애는 마치 고래의 변천사를 알고 있는 것 같다.

 

지구상 모든 생물은 바다에서 생겼다. 등뼈동물이 발달하여 뭍에도 퍼져 진화했다. 고래가 네발짐승에서 진화했음은 고래 태아의 발육과정이 증명하고 있다. 초기 네 다리가 나타났다가 점차 뒷다리는 없어졌다. 30미터의 왕고래가 있는가 하면 4미터의 돌고래도 있다. 고래가 왜 바다로 도로 돌아갔는가? 수수깨끼지만 아마도 큰 덩치를 유지하려면 먹이가 많은 바다로 돌아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공룡이 먹이 부족으로 멸종되었으니.

 

“나 자신도 진취적이고 개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중국 며느리도 봤으니까. 그런데 오 사장은 나보다 몇 발자국 더 앞서가는 것 같아.”

 

“이제 순혈주의는 의미가 없어요. 책에서 봤는데, 사람이 우쭐대도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고래의 세상이라 하더라고요. 바다가 육지보다 넓다는 뜻이 아닐까요.”

 

“다국적 민속악단을 구성해도 되겠군. 한국의 해금(奚琴), 중국의 구정(古箏), 일본의 고토(琴) 등 각국의 전통악기로 ‘아리랑’ ‘모리화’ ‘사쿠라’ 등 3국의 대표 민요를 연주하면 되겠네.”

 

전통악기에 대해 관심이 많은 임동박이 말해 놓고는 너무 아는 체를 하는 게 미안해서 일부러 술잔을 부딪쳤다. 동업은 계속되겠지만 오영애는 교회 일에 더 비중을 둘 것이다. 시집을 간다면 모르지만 그러기 전에는 꺾일 고집이 아니다.

 

“오빠, 그동안 잘해주셔서 고마워요. 이제 사모님, 아니 언니한테 잘해주세요.”

 

당장 이별이라도 할 것같이 말하는 오영애를 바라보는 임동박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는 사람을 배웅하듯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의 관계를 불륜의 호수에서 헤엄을 치는 것처럼 느꼈다고 여자가 고백했을 때 그는 양심의 본질에 대해서 모처럼 질문해 보는 사람 같았다.

 

“십년 남짓밖에 안 되는데 더 돈을 번 후에 뜻을 펼쳐도 되잖아?”

 

그녀의 결심이 바뀔 리 없지만 그런 질문이 나오고 말았다.

 

“욕망은 무지개보다 더 다채로운 빛깔로 우릴 유혹해요. 욕심은 끝이 없어요. 경영은 오빠가 잘하시니까 제가 없어도 되잖아요.”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십년이면 벌써 한 옛날(十年一昔)이라는 일본 속담이 있고, 황하의 동쪽이 삼십 년 후엔 황하의 서쪽(三十年河東 三十年河西)이 될 수 있다는 중국 속담도 있다. 십년이라는 세월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라는 것은 그도 안다.

 

“넌 마르고 닳도록 영일관을 지킬 줄 알았는데…….”

 

세월이 흘렀다 해서 애국가의 동해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닳아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일본 기미가요(君が代)의 조약돌이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일도 없다. 인생이란 막막하기 때문에 가는 것인지 모른다. 막막하지 않다면 걸음을 멈춰 쉬었을 것이다. 임동박의 생각은 얄궂은 상황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녀도 한때는 마르고 닳도록 요식업을 하려 했으나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갑자기 심각해진 여자의 얼굴이 임박동의 눈에 들어온다.

 

“오 사장, 지금 울고 있어?”

 

슬픔은 괴로움을 수반하는 게 아니라 인생의 무상을 깨달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표현인가. 그녀는 인생의 비밀을 냄새 맡으려는 듯 눈을 감고 몰입해 있었다. 마음이 먼저 무릎을 꿇어 그녀의 눈가를 적셨는가. 냄비 속 찌개가 바글거려 뚜껑이 살며시 열리는 것처럼 그녀는 심혼이 무르녹는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가 기러기가 된 기분이에요.”

 

임동박은 그 뜻을 안다. 숲에서 사는 새는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울지만 만리길 먼 땅으로 가는 기러기들은 서로를 돕기 위해 운다는 말. 동업을 하면서 서로 의견 차이가 나면 그녀는 자주 그렇게 말하곤 했다. 서로 도와가며 여기까지 온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이해심 덕분이라고 말하기를 그는 주저하지 않는다.

 

방안에는 오후의 햇살 위에 무거운 정적이 덮기 시작했다. 종업원들은 지금 오수를 즐기는 시간이라 이 방의 이야기를 엿듣지는 않을 것이다.

 

“솔직히 오붓한 연애의 시간을 갖고 싶었으나 거룩한 뜻을 세운 그대의 신앙에 흠집을 낼까봐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군.”

 

“오빠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이런 게 바로 사랑 아닐까요.”

 

“우린 순애보를 연기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지만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협력과 사랑을 표시할 수 있으니까.”

 

“이보다 더 순수한 사랑이 어디 있어요. 진정한 이해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울퉁불퉁해진 세상에서 균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지만 오영애의 큰 꿈은 위기에서 도망치지지 않을 것이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교환의 합리성이 그녀에게 있다. 현실과 신앙의 저울추가 평형상태에 이를 때까지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냄새를 맡고 목소리를 들으면 숭배의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는 숭고한 대상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어떤 시선이 그것들을 발견해주는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네가 인생의 맛을 알어?”

 

임동박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일부러 장난기를 섞어 말했다.

 

“오빤 게맛을 알어?”

 

임동박이 자주 쓰는 ‘니들이 게맛을 알어?’를 패러디하는 오영애의 눈빛이 맑다. 남서향집 방안 깊숙이 들어온 동짓날 긴 햇살이 무척 따스하게 느껴진다. 지구가 무리 없이 돌아간다면 영일관의 게 요식업도 다문화가족과 함께 무리 없이 이어나갈 것이다.

 

 

<끝>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화만사성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