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더 세월

더 세월(제 22회)

오선닥 2015. 5. 1. 11:33

세월호 1주기에 기념일 반응은?

육체는 멀쩡한데 마음이 아파요

트라우마!?

 

 

 

 

더 세월

(The Sewol)

 

제 22회

 

 

트라우마

 

유가족의 가슴마다 언어가 절규한다.

 

가족의 생활은 너무 많이 바뀌었고 모든 것이 무너졌다.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아이 생각만 자꾸 난다

아이들 생각에 꽃망울이 터지는 4월이 너무 싫다.

 

유가족의 절규를 듣고 있는 안산시민은 세월호 신드롬에 빠져 있다. 시민의 90퍼센트가 분노, 무력감, 불안 등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심리치료가 필요한 안산 시민만 약 17만 명.

 

사실 국민 전체가 집단적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봐야 한다. 부작위 살인죄로 2심에서 무기징역형을 받은 선장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격이 곤두박질쳤다고 말한다.

 

단원고 인근 3개동이 특히 스트레스가 많고 삶의 질이 낮다는 통계가 있다. 언론의 폐해가 매우 크다. 무분별한 기사와 영상 보도는 그들에게 상처를 줬다. 한국 언론은 지역, 이념, 세대를 가리지 않고 갈등의 담론을 조장했다.

 

사고 후 수개월이 지나 불면증과 악몽, 우울증 등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가 정신병 환자야? 왜 병원에가?”

 

피해 학부모들은 병원 진료를 기피했다. 정신과 병원은 얘기를 들어주는 곳이라고 홍보해도 그들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피해자나 유가족이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는 이유는 있다. 정치적 활동에 강하게 나가고 있는데 정부가 마련한 기관에서 심리치료를 받는 것이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1주기를 하루 앞둔 4월 15일

이순정은 안산 화랑유원지 내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 친구 윤다정은 자기 언니와 함께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언니는 세월호에서 아들을 잃었다. 그녀에게 1주기는 ‘기념일 반응’으로 악몽 같기도 하다.

 

친구의 언니는 희생된 여학생 한 명의 사진을 바라보며,

 

“쟤가 내 친구 딸이었다.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때 좋아하던 애였지.”

 

갑자기 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옆에 있던 이순정도 눈시울을 적셨다.

 

친구가 언니의 팔을 잡았다.

 

“언니 그만 해. 이쯤이면 되지 않았어? 눈물도 다 말랐을 텐데.”

 

이쯤으로 될 수 없다. 그녀의 언니는 한참을 더 서 있었다.

 

이순정은 갑자기 팽목항의 실종자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유가족이 오히려 부럽다고 했다. 시신을 들고 나오면 축하한다고 말했다.

 

실종자의 마음은 아프다.

견딜만하면 또 기억나고……힘들어서……방파제 난간을 잡고 울곤 한다.

 

흰 천에 덮여서라도 언니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이순정은 같은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하고 또 재를 거두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안산 합동분향소에는 학생 분향소만 있다. 일반인은 일찍이 철수했었다. 이순정이 여기에 온 것은 친구와 약속 때문이다. 분향소를 나온 이순정과 친구는 화랑유원지로 갔다. 오후의 햇살을 비스듬히 받으며 애인끼리 데이트하기 좋고, 친구끼리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어도 좋은 곳이다.

 

벚꽃이 흩날리는 유원지 벤치에 두 사람이 앉았을 때 친구 윤다정이 물었다.

 

“동업한다는 서 사장님은 건강이 괜찮으셔?”

 

죽은 순애 언니의 딸 소라에 대해서 먼저 물어볼 줄 알았는데 화제는 다른 곳에서 시작했다.

 

“사고 후 얼마간은 괜찮았었는데 최근 불안 증세를 보여 통원치료 중이야. 좀 호전되긴 했지만…….”

 

“트라우마 치료는 2, 3개월이 골든타임인데, 조금 일찍이 치료를 시작했더라면 더 좋았을 걸.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치료 받도록 독려해야 해.”

 

친구 윤다정은 참으로 다정하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머린컨설팅 사무실에 들렀을 때도 이순정의 동업자 서정민에게 상담사로서 다정한 이야기를 나눴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제쳐놓으면 그녀는 이성으로 호감을 받을 만하다.

 

그러고 보니 윤다정은 고등학교에서 학생 상담을 맡고 있으니 전문가에 속한다. 세월호 사고 이후에는 피해 학생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안산 온마음센터의 상담사 일원이기도 하다.

 

이순정이 친구를 쳐다보았다.

 

“그 사람 겉으로 보면 너보다 더 멀쩡해.”

 

윤다정은 웃지 않을 수 없다.

 

“몸이 나았다고 마음이 나은 것은 아니지. 정신과 치료는 받아봐야 알아.”

 

“이번 일로 트라우마가 무서운 줄 알았어. 마음의 암세포랄까…… 그런 것.”

 

“혹시, 동업하면서 서 사장님께 정신적 부담을 주는 건 아니지?”

 

“동업보다…… 그는 늘 언니를 죽였다는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애.”

 

“같은 장소에 있었고, 더구나 혼자서 살아남은 부담은 계속 남을 테고…….”


윤다정이 뜸을 들이고는 “야, 네가 정말 잘해줘야겠다.” 라고 엉뚱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동업자로서 사업 잘하는 일밖에.” 이순정이 말했다.

 

윤다정이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았다.

 

“우리 솔직해보자. 너, 혹시, 서 사장님 사랑하는 거 아냐?”

 

“얘, 엉뚱하긴! 우린 엄밀하게 50대 50 동업자일 뿐이야.”

 

“내가 말하는 건 이유가 있어서야. 그분의 건강에 네 역할이 중요함을 말해주려는 거야. 악몽을 지우는 데는 언니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왜 하필 내야? 말하는 대신 이순정은 가만히 있었다.

 

“물론 희생일 수 있으나 하기에 따라서는 행복일 수도 있고.”

 

갑자기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누구나 일생의 중요한 문제에 이르면 멍하게 되는 것인가. 소라가 이모를 따르는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려는 순간에 윤다정이 말을 계속했다.

 

“그런 고민으로 널 고문하려는 건 아냐. 인생은 자기 계획대로 가기보단 환경에 맞춰지는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몰라.”

 

상담사한테 홀린 기분을 붙들고 이순정이 벤치에서 일어나자 윤다정도 따라 일어났다. 이순정은 휴대폰을 꺼내 서정민에게 전화했다.

 

"지금 별일 없으면 안산 화랑유원지로 와서 여성 동업자를 픽업하세요. 그리고 저녁식사는 와인을 곁들여 스테이크를 먹자구요. 한 분의 손님이 있는데, 윤다정이란 친구 알지요?"

 

상대방은 알아들었다고 했다.

 

 

 

상담사의 조언

 

안산 지역 52개 중·고등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이 시급한 과제다.

세월호 안에 갇혀 있었던 한 여학생은 평소 오빠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며 카톡으로 마지막 메시지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아프지 말고 씩씩하게 보내고 있었으면 좋겠어. 오빠 진짜 미안하고 사랑해. 잘 지내."

 

부모가 이런 편지를 읽고도 눈물이 남아 있을까.

 

살아남은 학생도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발밑으로 사라진 친구들의 모습, 비명, 놓쳐버린 손…… 그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꿈속으로 덮쳐 온다. 악몽 꾸는 날이 늘고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도 않다. 혼자 살아 돌아왔다는 죄책감 탓이다. 비교적 안정을 찾던 학생도 '힘들다'며 병원을 찾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그들은 어른들의 이런 조언에 상처받는다.

 

“살았으니까 열심히 공부해야지.”

“죽은 사람 목까지 살아야 해.”

“내가 네 심정을 알 것 같다.”

 

사람들은 유가족에게 개념 없는 말을 해서 상처를 주곤 한다.

 

“사건이 어떻게 된 거죠?”

“좋은 곳에 갔을 거야.”

“극복, 노력, 시간이 약이다.”

“신의 뜻이다.”

“힘 드는 거 있으면 연락해요.”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말도 힘들게 할 수 있다. 아무 말 안 하는 게 좋다. 종교가 더 상처가 되는 수가 있다. 조언도 도움이 안 된다.

 

혹시 필요하다면 이런 말은 할 수 있으려나.

 

“정우는 착해. 잘할 거야.”

“둘째 학교 보냈어?”

“밥 먹자.”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다. 함께하는 것이 좋다. 알아주는 말이 좋다. 대화는 현실적인 것이 좋다.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해줄게’ 정도는 이해될 것이다. 아이가 얼마나 착했는지, 뭘 잘했는지, 예뻤는지 등을 말하는 것은 아픈 기억을 후비는 것과 같다. 먼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낫다. 유가족을 위로하는 데는 답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사람들은 세월호 유가족이 격한 감정으로 나올 때 들어주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그들의 마음에는 잃어버린 가족밖에 없다. 그들은 자주 흥분한다.

 

"왜 죽었는지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는 끝까지 싸우겠다."

“여론이 냉담해지는 것은 견딜 수 있어. 처음부터 정치나 특례입학을 바라는 것도 아니니까.”

"차가운 물속에 남아 있는 아이들을 꺼내주기는 해야 하잖은가."

 

아이들에게 명예롭게 죽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이제까지 비뚤어진 세상과 싸우느라 치유는 시작도 못하고 있다

 

십여 명의 승객을 구한 '구조영웅' 김동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던 사실을 아는가. 그는 일 년 가까이 트라우마에 시달려 왔다. 일반승객 생존자는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대부분 치료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중에.

 

피해자가 많았던 제주도의 경우 10여 명 생존승객은 대부분 화물차운전기사다. 이들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때문에 지난 1년간 한 번도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제주도에 심리치료 시설이 불충분하여 치료도 받지 못했다. 뉴욕에 9.11 피해자 추모회관을 건립하고, 고베 지진 후 트라우마센터를 설립했던 이유를 알만하다.

 

우울증 환자는 "나는 내 행동을 바꿀 능력이 없다" 등의 생각을 한다. 행복의 가장 기본 조건인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노예 삶을 살게 된다. 대화도 마치 영혼이 육체를 떠난 유체이탈(遺體離脫)의 화법을 쓴다.

 

고대안산병원의 세월호 백서는 말한다.

‘충격은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

 

백서의 통계자료(피해학생 74명, 일반생존자 10명, 가족·교사 200명)에서 생존 학생들의 스트레스지수가 한 달 후 완화되기 시작했다가 반년 후 다시 나빠졌다는 대목에서 서정민은 놀랐다. 자신의 상황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생존자의 전체 진료건수 중 정신과가 80퍼센트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마음의 병이 가장 큰 문제라는 뜻이다.

 

광화문 그랑서울 빌딩에 도착하자 서정민이 차 뒷문을 열었다.

 

“다 왔습니다. 내리시죠.”

 

안산을 출발하여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줄곧 대화에 몰입해 있던 두 여성은 차 문을 열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차 안에 남아 있을 뻔 했다. 서정민이 주차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그녀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초등 동창생처럼 그대로 서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지하1층의 스테이크하우스에 세 사람이 앉았다. 오후 6시 30분은 하루의 마지막 식사를 하기에 알맞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블 한쪽에 서정민과 이순정이 앉았고, 맞은편에 윤다정이 앉았다.

 

좌석 배치가 어색해 보여 서정민이 일어서려 했다.

 

“두 여성분이 나란히 앉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런데 윤다정의 생각은 다르다.

 

“오늘은 그냥 이렇게 앉으시죠. 두 분은 내담자시고 저는 상담자로서 마주보고 대화를 하고 싶어서 그래요.”

 

두 동업자를 일부러 나란히 앉혀 놓고 일과 사랑의 양면을 파악하려는 의도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메뉴를 주문하면서 대화는 시작됐다. 요즘 유행하는 빅데이터가 심리상담에도 이용된다는 사실은 서정민의 귀를 세우기에 충분했다.

 

“그럼 빅데이터는 세월호 문제의 중심 단어가 뭐라고 하던가요?”

 

“48%의 관심을 차지한 ‘슬픔’이라더군요.”

 

사고 1년이 지났는데도 한국 사회는 세월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빅데이터는 한국인의 마음이 불안→분노→수치→위로→응원→힘듦 순으로 옮겨 왔음을 보여준다고 윤다정은 설명했다.

 

일본에는 ‘슬픔 전문가’로 불리는 정신과 의사도 있다. 슬픔은 슬픔으로 대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의 저자는 유족의 슬픔은 개인적 차원의 심리 처방만으로 치유될 수 없고, 죽음의 이유를 사회적 의미로 재창조해야만 극복될 수 있다고 했다.

 

“세월호를 체제의 이물질로 몰아가는 사람을 유가족들은 참기 힘들지요.”

 

윤다정은 다소 진지함을 넣어 말했다.

이제 일 년이나 됐으니 그만해도 됐다, 보상금도 그만 하면 됐다, 말할 때 그들의 슬픔은 더 팽창한다고 지적하면서.

 

유병언법(은닉 규제)’과 ‘김영란법(청탁 금지)’의 국회통과가 그들의 정신적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뜻밖이다. ‘성완종 리스트’를 계기로 정치와 사회 분위기를 쇄신한다면 이것 역시 치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부패 형태가 ‘엘리트들의 카르텔’ 즉 관피아에서 비롯됐고, 관피아가 그들을 희생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정민이 듣고 보니 자신의 생각과 비슷함을 느꼈다. 4·16가족협의회와 국민대책회의가 광화문에서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를 주최하겠다고 했을 때 공감을 유보했지만, 그때는 일반피해자의 의견 청취에 소홀했던 가족협의회에 대한 서운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담사는 아직 할 말이 더 있는지 입술로 가져가려던 와인 잔을 다시 내려놓는다.

 

“참, 구조대원이나 자원봉사자에게 관심을 보여야 해요. 그들에게도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사고 후 한두 달가량이 가장 위험한 시기라 할 수 있지요.”

 

안타까운 일이 현실로 나타나버렸다. 팽목항과 안산에서 자원봉사를 해오던 40대 남성이 봉사 한 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상담사는 충격적인 사례는 가능하다면 피하려 했는데 좀 섣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바꾸었다.

 

“학생들은 전문의와 1대 1 상담치료를 받는데 서 사장님께서도 이제 본격적으로 전문의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순정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얘, 너도 서 사장님 도와드려야 해. 유원지에서 내가 했던 말 알아들었지?”

 

서정민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두 여성에게 시선만 보낼 뿐이다. 그러나 두 여성은 밀약이라도 한 듯 미소만 짓는다.

 

“와인은 언제 마실래요. 자 건배하죠!”

 

이순정이 딴청을 부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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