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항해 임무를 끝내고
한국으로 귀항할 준비
선상파티로 서로를 위로합니다
34. 선상파티
북극탐사 항해는 대체로 성공리에 끝마쳤다.
사흘 후면 놈 항에 입항하며 많은 사람들이 하선하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귀국일정을 헤아려보면서 비행기 시간과 호텔 예약, 서울 도착 시간을 살피면서 이것저것 생각하기에 바쁘다. 특히 여름 휴가철이라 호텔이나 항공기 예약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저녁 식당에 들어선 해양기상 연구원은 눈이 둥그레졌다.
“배를 탄 이래 이렇게 많은 음식 처음 보네.”
해삼, 장어, 육회, 연어, 새우……
쇠고기, 돼지고기…… 칠면조 고기는 웬일이람?
초밥, 김밥, 샌드위치, 장터국수……
포도, 수박, 토마토……
송편, 찰떡, 색깔떡…… 등등
포도주로 시작한 술은 산사춘, 복분자, 맥주, 소주……
이것도 모자라 위스키까지 꺼내 모처럼 거나한 파티가 벌어졌다.
명절이 아닌데도 이런 파티를 하는 것은 이별이 못내 아쉬운 탓이다.
한 연구원은 술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여성에게 산사춘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인삼주보다 더 건강에 좋아요.”
그러면서 계속 권했다. 알코올 농도 13도는 음료수와 다름없다고 하면서.
“비아그라보다 좋다는 얘기는 안 하네요.”
다른 연구원이 대화에 맥을 끊었다.
술 취한 분위기는 외국 사람들에게 색다르고 신기하게 보였다.
한국식 이별(Farewell)은 이렇게 요란하냐고 진지하게 묻는 외국인도 있다.
선장의 아이디어에 따라 양외란이 식당 벽에 커다란 천을 걸었다.
그리고 하얀 천의 맨 위쪽에 이렇게 썼다.
<술 마신 분은 한마디씩 써주세요>
외국인을 위해 ‘Couple of Words on this Cloth'를 부기했다.
먼저 선장이 큼지막하게 썼다.
“내년에는 북위 85도까지 가자!”
특히 85도를 빨간색으로 뚜렷하게 그렸다.
금년에는 북위 79도에서 멈췄지만 내년에는 기필코 북극점 가까이까지 가겠다는 각오다.
“지구를 지키자(Save the Planet!)"
지구기상 연구원은 영어를 괄호 속에 넣어 외국인을 위해 배려했다.
중국어도 등장했다.
“保八”
‘바오바’는 중국 경제성장 8% 지키겠다는 뜻이다.
경제성장과 북극탐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중국은 어디를 가나 돈이다.
글씨가 아닌 그림이 그려진 것도 있다.
따갈로어도 등장했다. 필리핀 여학생이 쓴 것이다.
북극곰감시인은 이렇게 썼다.
“Next Year I'll show You a Polar Bear."
내년엔 꼭 북극곰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놈 입항 예정 전날 오후 5시 무렵 선장이 직접 방송을 하여 당직자를 제외한 선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본선은 금년 하반기 남극 세종기지로 가는데 내년 5월경 돌아올 예정입니다. 계속 승선할 자는 신청바랍니다.”
다음 남극항해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선원 25명 중 두 명뿐이었다.
얼음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얼음을 헤치고 극지를 가는 스릴을 느끼며 청춘을 맡기겠다고 계속 승선을 희망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았다. 한국인의 도전정신은 높이 사야 한다.
8월 13일 아침이 되자 선내는 많이 분주해졌다.
놈 항에 입항했다.
하선할 사람은 발걸음이 빨라지고, 동작만으로도 하선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배에서 먼저 내리기로 한 4인승 헬리콥터가 오전 9시경 이륙했다.
한편 6인승 헬리콥터는 배에 남아 더 일을 해야 한다.
4인승이 먼저 얼음팀을 육상에 이송시켜 놓고 돌아오는 길에 해산물과 양배추 등 식품을 잔뜩 싣고 왔다.
연구 교수팀을 비롯해 몇 사람이 배를 떠났다. 이들은 이삼 일 안에 비행기로 한국에 도착할 것이다. 열흘 후 배로 부산에 도착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빨리 귀국하는 셈이다.
점심 무렵 손님 20여명이 배를 찾았다.
주로 백인 주민이었으나 목사를 비롯한 한국인도 서넛 명 포함돼 있었다. 제복을 입은 뚱뚱한 이누이트족은 사진 찍기에 인기였다. 함께 온 날씬한 백인 아가씨와 나이어린 소년은 눈인사를 많이 받았다.
손님에게 내놓은 음식은 주로 한국 음식이었다.
조기구이, 삼색나물, 빈대떡, 돌김무침, 김치찌개 등.
신형 쇄빙선을 본 손님들은 장비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갑판에서 기념사진 찍는 것이 마냥 기뻤다.
함께 탐사 항해를 하고 연구해온 사람들이 잇달아 하선하자 이별의 인사가 바빠졌다.
헬리콥터에 마지막으로 실었던 조종사의 짐은 많았다.
알루미늄 사다리, 고압가스통, 작은 짐 상자들 등. 비행기록을 책처럼 만든 두 개의 작은 알루미늄 상자에 보관하는 것이 특이했다.
배는 8월 14일(토) 오후 2시 놈을 출항하여 부산으로 향했다.
남은 승선인원은 모두 37명이다.
선원 25명과 지원인력 3명에다가 승객 9명.
승객 9명은 중국학자 3명, 러시아 얼음전문가 2명, 필리핀 여학생 1명, 그리고 한국학자 3명이다.
아리따운 필리핀 여학생이 남은 것은 그녀가 예뻐서가 아니라 미국 비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평소와 다름없이 잘 웃고 드러내는 가지런한 흰 이빨을 여전히 볼 수 있게 되었다.
놈 항에서 34명이나 하선하자 배는 너무 조용해졌다.
점심시간에 선원들이 연구원 식당을 쓰기 시작했다. 연구원이 몇 명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원들이 썼던 작은 식당은 회의실로 사용할 수 있었다.
출항하자 곧 시계를 한국과 6시간 차이로 조정했다.
항구를 출항해 베링해 깊숙이 들어서자 배가 몹시 흔들려 난간을 잡지 않으면 지탱하기 힘들 정도였다.
저녁 기온 9도로 한국으로 가고 있음이 점점 현실로 느껴졌다.
러시아 유빙항해사는 수온 8~14도C에서만 사는 물고기를 잡으러 캄차카 부근에 온 적이 있다고 한다. 일류신14 비행기를 타고 육백 미터 상공에서 적외선 장치로 수온을 측정하고 어군을 발견하면 어선에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바닷물은 회색이지만 어군은 보라색이어서 발견하기 쉽다고 한다.
어선은 보트를 내려 그물로 어군을 포위하여 30분이면 충분히 잡는다고 한다.
놈을 출항한 지 일주일 후 오후 헬리콥터 격납고에서 선원들이 탁구경기를 했다.
갑판부, 기관부, 전자부, 조리부로 나누어 단식과 복식 게임을 했다.
출전비로 한 명당 만원을 내고, 선장과 기관장이 금일봉을 보탰다.
열광의 다음에는 회식이 따른다.
야외 숯불 불고기 저녁은 외식과 다름없다.
등심, 삼겹살, 큰 새우, 야채, 김밥에다 후식으로 포도, 과일칵테일, 맥주, 음료수가 나왔다.
당직자 외는 얼마간의 술로 즐거워해도 괜찮다.
배는 56일 간의 항해를 마치고 8월 25일(수)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북극탐사 항해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마지막 회-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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