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극지 탐사 항해

23.북극으로 향해 출항

오선닥 2020. 9. 13. 12:50

▲한국해양대학교 전경


지난겨울 남극 탐사 항해를 마친
양외란 삼항사는
이번엔 북극 탐사에 참여하는데
북극 탐사 과정을 지켜보자

 

 

 

23. 북극으로 향해 출항

 

“방선 중인 분들은 하선하십시오. 곧 출항하겠습니다.”
양외란 삼항사는 선장을 대신해서 선내방송을 내보냈다.
배는 떠났다.
2010년 7월 1일 오후 5시
‘쌍고동이 울어대는 이별의 인천항’을 출항한 것이다.
아라빙호는 북극 척치(Chukchi)해를 향해 나아간다. 가는 도중 부산과 알래스카 놈(Nome)에 기항하여 필요한 장비, 선식, 인원 등을 탑재할 예정이다.
떠나는 사람보다 남는 사람이 몇 배나 더 외로워진다는 말이 있다.
떠나는 사람은 목적이 있지만 남는 사람은 뭔가 상실감에 빠진다.
딸을 배 태워 보내는 전계린 박사는 쓸쓸하기 짝이 없다.
이별할 때 남는 사람이 억울한 것은 인생이 갑자기 차포를 뗀 장기판 같은 기분이기 때문이다.
‘내 재산 차포 다 떼고 당신한테 주는 위자료야.’
이혼할 때 남편이 위자료를 계산하면서 장기판을 인용한 비유는 어쩌면 적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판을 알고 보니 좀 이해가 되더라고.
출항 무렵 양외란은 엄마의 속도 모르고 제 할 말만 앞세웠다.
“엄마, 나 북극 배우고 올게.”
“얼마를 더 배워야 직성이 풀리겠냐? 극지를 배워 거기서 살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아라빙호가 북극으로 가는 이유는 전계린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방면에 그녀는 이미 박사이기 때문이다.
배는 베링해, 척치해, 동시베리아해 등에서 북극 연구를 수행한 후 두 달 후 한국으로 돌아온다.
북극항해를 통해 한반도 주변바다의 고수온 현상 원인과 북극 해류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북극해로 가는 길목인 베링해에서 해양과 대기를 탐사하며, 북극 공해상의 해빙과 북극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맨날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폭삭 늙기 시작한다”는 말을 시집도 안 간 딸이 말했을 때는 어이가 없어 폭삭 주저앉을 뻔했다.
“그래 가라. 네가 좋아하는 걸 내가 어떻게 막겠냐.”
말하고,
“어쨌든 건강하게 근무하다가 돌아오너라.”
손을 흔들어줬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모녀는 이별의 시선을 고무줄처럼 늘였다. 배가 부두에서 떨어지는 거리만큼이나 시선은 늘어났다. 그들은 석별((惜別)을 나누었다. 저녁 무렵의 이별, 석별(夕別)인데도 눈물조차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서쪽의 황혼 빛은 슬픔을 삼켜버렸나.
지독한 모녀.

 

부산에 기항(寄港)했다.
해양탐사에 필요한 장비를 싣기 위해서였다. 장비 적재에는 반나절이 소요됐다.
인천을 출항할 때 선원 25명이었는데, 부산에서 탑승자 17명이 추가로 승선했다. 모두 42명이 되었다. 탑승자는 연구원 12명과 지원인력 5명이었다. 연구원 중에는 중국학자 3명이 포함돼 있었다. 지원인력 5명은 유빙항해 전문가인 러시아인 2명과 임시 요리사 3명을 포함했다.
알래스카의 놈에 도착하면 이중 대여섯 명은 하선하고, 대신 수십 명의 극지 탐사원이 탑승하게 될 것이다.
인천에서 부산까지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는데도 체육관에서 몸을 푸는 사람이 있었다.
운동중독은 어쩔 수 없다. 열흘 후쯤 알래스카에 기항한다는 걸 들었던지 긴 항해에 적응하기 위해 심신을 담금질하는 것이다.
7월 3일 밤 부산 출항
출항하여 아치섬(朝島)을 지날 때 섬의 불빛이 유난히 밝았다.
국제해양대학교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형설의 빛.
대한민국 해양발전을 위해 주야로 공부하는 학생과 연구에 몰두하는 교수들이 눈에 선하다.
양외란의 동기 남학생 하나는 일찌감치 학문 쪽으로 진로를 택했다.
짜~식, 우린 반쯤 애인관계였는데….
문자 메시지라도 넣어볼까?
그러고 보니 전화번호를 모르겠네.
뭐…… 새 애인 하나 생겼겠지.
사랑은 닿기만 해도 삼월의 눈처럼 사라진다는데….
혼자 이모저모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투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삼항사, 아직 연안 항해 중이야. 견시(전방 주시) 잘해!”
선장이었다.
정신줄이 팍 당겼다.

 

아라빙호는 부산항을 빠져나와 곧장 북동쪽을 향해 움직였다.
일본 쓰가루해협까지 직선으로 항해하면 되나 독도 남서 100킬로 지점(36.5N, 131.5E)으로 향했다. 무인해양기후관측기인 아르고플로트(Argo Float)를 바다에 던져 넣기 위해서다.
길이 1.2미터에 지름 20센티미터의 노란색 원통인 아르고플로트는 수심 2천 미터정도까지 가라앉았다가 떠오르면서 해수층의 수온과 염분을 측정해 위성으로 송신하는 장치다. 해수층의 상태와 해류를 알려주는 유용한 관측 장비다.
장비는 3~6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내장 프로그램대로 승강을 거듭하면서 측정한다.
“마지막 로프 조심조심 잡아주세요.”
기상연구원의 요청에 따라 장비를 물속으로 내리는 데 갑판원들이 동원됐다.
몇 년 전에는 어느 해운회사에 부탁했는데 잘못 내려졌던지 자료가 송신돼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장비는 동해에 8개, 캄차카반도 부근에 4개를 투하한다.
한 개 2천만 원 정도로 비용이 만만치 않다. 전세계에 3,200개 정도의 플로터를 띄운다고 한다. 한국은 100개 정도 부담한다니 20억원쯤 쓰는 셈이다.
한국이 제법이네.
선교에 항해사들이 모였을 때 이 궁금한 장비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유류사고, 해양쓰레기 등 해양오염의 실태도 파악할 수 있으니 바다의 암행어사로군요.”
삼항사 양외란에겐 궁금증을 자아내는 장비였다.
“암행어사 때문에 야간방뇨는 안 되겠네요.”
평소 뻥이 심한 이항사의 말이었다.
“선원들 좋은 시절 다 갔구려.”
해양오염 규제가 느슨했던 시절을 경험한 일항사의 말이었다.
“그래도 바다 환경은 선원들이 지켜야죠.”
양외란의 말에 일항사와 이항사는 그녀를 모범적인 선원이라고 추켜세웠다. 두 남자 선배가 여자 후배를 두고 농담을 서슴지 않는 것은 자주 보는 풍경이다.
여기저기 어선 몇 척이 보이고 흰색 혹은 빨간색의 부표가 보였다. 어선에서 설치해 놓은 것이다. 부표에 매여 있는 어망에는 물고기가 들어간다. 며칠 후 어선은 어망을 걷어 올려 어획고를 올릴 것이다.

 

우리나라가 쇄빙선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감격적인 일이다.
그동안 배를 빌려 연구 활동을 하는 데는 많은 제약이 따랐다.
이제 셋방살이에서 내 집으로 이사한 기분.
우리 손으로 만든 최신식 쇄빙선은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갈매기가 따라오다 갑판에 앉으면 한국의 새.
항해하다가 해수가 갑판 위로 올라오면 한국의 해수.
오가다가 만나는 바다, 구름, 수평선, 물결까지 한국의 것.
소유가 이렇게 자유와 기쁨을 동반한다는 사실에 양외란의 가슴은 뭉클했다.
대학에서 미생물과 고세균(古細菌)을 연구하는 한(韓) 교수는 일정한 시간마다 바닷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필터에 걸린 것을 냉동해 연구용으로 사용했다.
“한 바가지의 바닷물에서 귀중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의 감탄이었다.
기상청의 류(柳) 연구원은 여러 해역의 바닷물의 수온과 염분을 측정한다.
지점 40N 136E 수온 23.2℃, 염분 34.3‰. 꽤 짭짤하네.
그가 조사하여 기록한 내용이다.
아라빙호는 남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건조한 배이기도 하다.
25년전 남극에서 좌초된 아르헨티나 극지 운반선은 헬리콥터 격납고를 수동으로 열지 못해 150억 원짜리 헬리콥터 두 대를 잃어버렸다.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아라빙호는 격납고 문을 수동으로도 개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실패를 자산으로 삼을 줄 아는 민족의 발전은 지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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