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극지 탐사 항해

25.베링해로 들어서다

오선닥 2020. 10. 9. 17:24

알류산열도로 둘러싸인
베링해로 들어가면
포근한 엄마의 품안에
안긴 기분

 


25. 베링해로 들어서다

 

부산을 출항한 지 일주일.
배는 많이 흔들리지 않았지만 가끔씩 크게 출렁였다. 해무가 끼기 시작하면서 시야가 좁아졌고 피칭(전후 상하 흔들림)을 하기 시작했다.
캄차카 반도 남동 200해리 바다를 지나가고 있다. 알래스카 놈(Nome)까지는 1,500해리 남았으므로 5일 더 항해해야 한다. 이틀 후면 베링해(Bering Sea)로 들어간다. 춥고, 바람이 세고, 파도가 높은 바다로 알려져 있지만, 겨울에 그렇다는 얘기이고 지금 여름은 호수처럼 조용하다.
주위 바다는 안개로 이불을 덮은 듯 시야가 절망이다. 지팡이로 더듬어서 가야 할 지경이다. 레이더의 도움이 없다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오후 들어 안개가 걷히면서 햇빛이 북태평양 바다를 비스듬히 비추기 시작했다.
해면이 수많은 잔주름을 만들며 반짝거렸다. 하늘엔 흰 구름이 몽글몽글 떠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비상경보가 울렸다. 곧 선내방송에서 ‘훈련’을 알렸다.
모두들 헬리콥터 갑판으로 모였다.
러시아 사람과 중국 여자도 갑판으로 왔다. 특별한 영어 설명이 없어 놀랐다가 훈련임을 알고 안심하는 기색이다. 집합하여 구명기구 사용법의 설명을 듣고 훈련에 임했다.
일항사의 설명에 따라 삼항사의 시범이 훌륭했다고 선장이 평했을 때 삼항사 양외란의 가슴은 벌렁거렸다. 칭찬에는 고래도 춤춘다고 하는데 가슴쯤 벌렁거림은 특별한 것은 아니다.
훈련을 마친 후 사람들은 오후의 따스한 햇살을 즐겼다. 한국엔 절전을 호소하는 찜통더위가 계속되지만 북태평양의 여름은 선선한 바람이 감돈다.

 

기온 12℃, 수온 10.0℃, 염분 33.0‰
측정치는 기록으로 잘 보존해야 한다.
우측 선수방향으로 고래 한 마리가 힘찬 물줄기를 뿜었다. 또 한 마리가 나타나 수직으로 물줄기를 쏘았다. 흑등고래의 힘자랑이 물줄기의 높이로 말해주는 듯했다. 부부인가 본데 나름대로 어떤 신호가 내포돼 있을 것이다. 선원이 아닌 일반인은 처음 보는 이 신기하고 장엄한 모습에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7월 10일(토) 아침
배는 베링해의 서쪽 관문인 아투(Attu)섬을 통과해 베링해로 들어갔다.
섬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점령당한 적이 있다. 미국은 독립 이래 처음으로 영토를 외국에 점령당했다는 불명예를 안았다.
베링해?
면적 230만㎢ 한반도 10배
호상열도(弧狀列島) 길이 2,100km
덴마크 탐험가 비투스 베링이 캄차카와 알래스카, 알류샨을 유럽인으로는 처음 탐험했다. 그는 1741년 코맨더 제도의 베링섬에서 비타민C 부족으로 죽었다.
극지연구소의 지질학 전공 박사가 알류산열도의 궁금증을 많이 해소해줬다.
활화산의 연속인 알류샨열도는 태평양 지판이 북아메리카 지판 아래로 비스듬하게 들어가면서 바다가 깊어져 알류샨해구(海溝)를 만들었다고 한다. 물이 섞인 자갈과 모래와 점토는 지판 아래로 들어가면서 녹아 부피가 커지고, 부피가 커지면서 가벼워져 솟아올랐다. 이런 원리로 화산과 지진이 생긴다는 것이다.
베링해는 신선한 어류의 보고(寶庫).
이제 수온 8.3℃, 염분 33.0‰
어종은 명태, 청어, 가자미, 킹크랩, 핼리벗(Halibut)...
넙치류인 핼리벗은 길이가 2.3미터, 무게는 어른 몸무게의 3배나 된다고 하니 사진 한 장 올려야겠다.
야간당직을 마치기 직전 바다에 물새 떼가 새까맣게 앉아 있었다. 아마 천 마리정도는 되는 성싶다. 새를 보는 것은 반가운 일인데 육지가 가깝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행기든 배든 태평양을 지나 미국으로 갈 때는 대권(大圈)을 취한다. 배의 경우 베링해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북태평양 항로의 대권이다.
길은 직선으로 가야 한다고 배웠다.
바다는 직선으로 그어졌고 배든 비행기든 직선으로 항행하는 것이 빠르다.
그러나 배는 때론 둘러가야 한다. 암초를 피하고 얼음덩어리를 피해서 항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다는 정말 넓었다.
⌜저항하니까 위대하다⌟는 말로 표현되는 알래스카 대지도 보였다.
구름과 하늘과 친해지는 시간이다.
선실 스커틀 창을 통해 바다가 파란색으로 시선에 닿았다.
날짜변경선을 넘자 7월11일(일) 밤 12시는 10일(토) 밤 12시로 바뀌었다.
하루를 벌었다고 만면에 미소를 지을쏜가.
빠른 세월에 나이만 자꾸 먹는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돌아갈 때 되돌려 받는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겠지.
날짜변경선은 원래 경도 180도다.
그러나 국가별로 날짜를 조정하다보니 날짜변경선은 정확하게 180도가 아니다.
알류샨열도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러시아의 코맨더(Komandor)섬과 미국의 아투(Attu)섬은 지척에 두고도 날짜는 하루 차이 난다. 자기 나라 시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코만도르가 저기 보이는군요.”
러시아인이 당직중인 양외란 옆에 와서 소리쳤다. ‘코맨더’섬을 러시아 발음으로 호칭했다.
러시아 섬이 보이자 기분이 좋은 표정이다.
양외란은 오른쪽에 있는 아투섬을 가르켰다.
“저기 오른쪽 섬 보이나요? 아투섬인데.”
“미국 섬은 제 관심 밖입니다.”
러시아인의 반응에 웃음이 나왔다.
애국주의자가 되는 것을 탓할 수 없다.
위도 57N에서 날짜변경선을 넘어 미국 영해로 들어서자 미국 서부지방 표준시 서경 120도에 맞추었다.
YTN 방송 화면이 사라져 한국 소식이 심심했다.
인공위성 수신 장치 성능이 따라가지 못하나 보다.
라디오에서는 월드컵에서 스페인이 네덜란드를 1:0으로 물리치고 우승했다는 소식을 누군가가 전해줬다.
날씨는 방한복에 방풍복을 껴입어야할 정도로 추워졌다.
밤낮이 바뀌었으니 잠이나 자 두라고 누가 말했으나 밤낮은 바뀌지 않았고 계속 낮만 있을 뿐이다. 또 잠을 잔다 해도 잠으로 이루는 것이 꿈 말고 무엇이랴.
정년을 앞둔 연로 연구원이 간밤에 꿈을 꾸었다고 한다.
당연하다. 노인은 꿈을 꾸어야 한다.
『자녀는 예언을 하고,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늙은이는 꿈을 꾼다.』
바이블은 말하지 않았던가.

 

7월 12일 60N 175W를 통과했다.
배는 이미 서반구에 들어선 것이다.
지구본을 바라보면 배는 나선식으로 북동으로 올라가는 모습이다.
기온 6℃, 수온 9℃, 습도 91%
해무가 생길 만하다. 바다에서 증발된 수증기가 해면 근처 공기에서 응결되기 때문이다.
태양열은 지면에서 더 많이 반사되고 기온이 낮아지지만, 물에서는 더 흡수되고 수온이 더디게 낮아진다. 남극대륙의 기온이 북극해의 기온보다 낮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밤 11시 30분경 양외란은 조타수를 시켜 중국인 여성 연구원을 선교로 불러들였다. 서쪽 하늘에 꽤 높이 걸려 있는 태양이 구름과 함께 아름다운 황혼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나이의 그녀는 감탄할 줄 알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댕큐. 외란!”
잠을 자지 않았는지 그녀는 선교에 들어서자마자 감탄사를 연발했다. 아름다운 서쪽 하늘을 열심히 사진에 담기도 했다.
태양이 수평선 가까이로 내려감에 별은 점점 선명해졌다. 달은 없고 고요했다. 새벽 1시쯤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졌고 몇 개의 별들이 가까스로 내뿜는 별빛들이 총총했다.
저 별은 언제의 빛일까?
별은 사라지고 나서도 오랫동안 우리를 속인다. 수만 년 광년의 별은 수만 년 전 그때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 여성이 가까이 왔다.
“백야는(White Night) 어떻게 정의합니까?”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는 것 같았으나 양외란은 대답이 가능한 거라 마음이 놓였다.
“한여름에 태양이 수평선 아래 18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을 때를 말하는데, 그러니까 위도가 48도 이하인 지방에선 생기질 않지요.”
‘항해사는 그런 것까지도 아는구나’ 하는 듯 그녀는 머리를 끄덕이며 만족해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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