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극지 탐사 항해

22.이탈리아 기지 탐방

오선닥 2020. 8. 16. 18:48

▲지진계 설치

 

남극 기지 건설을 위해서는

이웃 기지의 상황을

교훈 삼는 것이 좋지요

 

 

 

22. 이탈리아 기지 탐방

 

마리오쥬켈리 기지의 부두시설을 주의 깊게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차가운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와 유빙, 폭풍에 잘 견딜 수 있는 부두의 설치가 남극 공사에 가장 어려운 점이면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리오기지의 부두도 1985년 기지 신축 이래 설치와 파손이 반복되어 세 번째로 2008년 다시 건설된 부두라고 한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다시 건설했지만 마지막 것도 일 년 후 점검 결과 바다 속 부두안벽 바닥에 큰 호박돌만한 구멍이 나 있었다. 다시 무너질 염려가 있지만 아직은 손을 못 대고 방법을 강구중이다.
이태리 기지의 부두 위치는 반구형으로 들어간 해안 지형을 막아 건설한 것으로 파도, 유빙에 직접적으로 부딪히지 않으므로 전면 안벽에 충격이 덜하고 또 해저면이 바로 암반으로 구성되어 구조적으로 안정된 시설의 설치가 용이했다.
건설 방법은 먼저 해안선 해빙을 제거하고, 부두 전면의 안벽 위치를 굴착해, 육상에서 조립한 안벽 철골을 해저면 암반층 위에 설치한다. 안벽 거푸집을 만들어 콘크리트를 타설한다,
부두 크레인의 기둥에 육지쪽을 향해 아연철판을 반쯤 둘러놓은 것은 잦은 강풍에 자갈과 돌이 날아와 크레인 기둥을 때리기 때문이다.
“부두는 그렇게 건설하면 되는데, 비행장은 어떻게 지을까요?”
극지연구소 장학 대학원생의 질문이었다.
“폭 수십 미터, 길이 일 킬로미터 넘는 평탄한 자갈길이나 얼음길이 있으면 되지. 작은 비행기는 바다 위에도 내리는데 얼음 두께 30센티미터만 되도 이착륙이 가능하지.”
건설팀장의 친절한 대답이었다.
남위 90도 남극점에도 얼음길 비행장이 있다는 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연구원 7명이 이태리기지 방문을 마치고 오후 늦게 배로 귀환했다.
일정은 계획대로 이뤄졌다.
이로써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건설을 위한 남극 테라노바베이(Terra Nova Bay) 건설현장에서의 모든 현장 정밀조사는 13일간(2월 3일~15일)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2011년 2월 15일 밤
조사 임무를 완수한 아라빙호는 뉴질랜드 크라이트처치로 향해 출항했다.
항해 중 난간을 기대며 바닷물을 내려다보고 있던 양외란은 엉뚱한 생각에 잠겼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애완견도 키우고 온실에서 꽃과 채소를 재배하는 등 남극의 전원생활은 어떨까?”
엉뚱한 생각이 은연중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런 꿈은 접어. 이젠 남극 밖에서 동식물이나 흙을 가져올 수 없다구.”
언제 와 있었는지 수석연구원이 듣고 단호하게 말했다.
“개썰매 여행은 안 될까요?”
양외란은 옛날의 낭만이 생각나서 말했다.
“1991년 ‘환경보호를 위한 남극조약 의정서’ 이후 그런 여행도 금지됐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물의 반입은 병균 전염과 남극의 펭귄이나 물개 등에 천적이 될 수 있다. 흙을 들여오는 것은 미생물을 수반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흙이 동반하지 않는 수경재배는 가능하다.
“그럼, 가오리를 잘 보호해야겠습니다.”
모양이 가오리를 닮은 남극대륙을 빗대서 하는 말이다.
남극대륙을 휘감고 있는 수온 0도 가량의 바다가 가오리를 잘 보호할 수 있을지는 궁금하다.
선박과 항공기, 사람의 출입을 절제한다면 남극은 지켜질 것 같기도 하다.
국내 최초의 쇄빙선 아라빙호에 이어 두 번째 쇄빙선이 필요하나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선체위치와 자세제어를 통해 정밀 해저탐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무인잠수정 등 대형장비의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첨단 연구장비와 더불어 저소음·저진동·저탄소·저폐기물 배출 등 특수분야 기술을 접목해 국내 해양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선진 해양강국들 못지않게 전 지구적 규모의 해양환경, 자원 탐사, 기후변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된다.
양외란 같은 젊은이의 할 일이 많아지고, 특히 여성의 활약이 돋보일 것이다.

남극의 장보고 과학기지는 2014년 2월 12일 완공되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10번째로 남극에 2개 이상의 상주 기지를 운영하는 국가가 되었다.
두 기지의 경도 위치는 어떨까?
평면 세계지도 기준으로는 장보고 과학기지는 호주와 뉴질랜드 남쪽에, 세종 과학기지는 남미 대륙의 남쪽에 해당한다.
“남극에 두 개의 기지를 가지는 게 낭비가 아닐까요?”
양외란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의문을 가질 만하다.
“세종과학기지는 사실 남극 대륙 본토가 아니라 킹 조지 섬에 위치해 있어서 지나치게 따뜻하고 살기 좋은 동네라서 남극의 기후나 생태계를 연구하는데 어느 정도 제약이 있지. 게다가 킹 조지 섬은 조그마한 섬에 12개국의 과학 기지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남극의 맨해튼이라고 불릴 정도로 소위 문명화가 된 곳이라네.”
수석연구원의 설명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섬이 아닌 대륙 본토에 새로운 과학기지가 필요했고, 그래서 장보고 과학기지의 건설이 결정된 것이다.
장보고 과학기지가 위치한 테라노바 만은 킹 조지 섬과 달리, 인근에 다른 과학 기지가 거의 없다. 근처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독일 곤드와나 기지, 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이탈리아의 마리오주켈리 기지가 있지만 날씨가 따뜻한 여름에만 사람이 지내는 하계 기지이다. 1년 내내 사람이 지내는 상주 기지만 치면 가장 가까운 기지는 370킬로미터 떨어진 미국의 맥머도 기지이다.
“남극은 공간적인 고립뿐 아니라 시간적인 고립 역시 크다는 게 문제지.”
수석연구원은 ‘고립’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남극의 겨울에는 바다가 꽁꽁 얼고 날씨가 거칠어지는데다가 아예 해가 뜨지 않는다. 여름에 하루 종일 해가 떠 있는 백야와는 반대 현상이다.
장보고과학기지에는 약 100일간 해가 뜨지 않는 극야 기간이 있다.
“4월 말에서 8월 초까지의 긴 겨울이 마무리되고 다시 해가 뜨면 바깥 생활이 가능하겠네요.”
천체항해와 구면삼각을 공부한 양외란이 이런 계산은 빨랐다.
“남극의 긴 겨울이 마무리될 즈음 이곳 기지는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네.”
이 시기 기지에 방문하려면 반드시 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
일정이 바쁜 아라빙호가 북극항해를 마치고 장보고과학기지를 방문하는 시기가 대략 12월 초이기 때문이다. 그전 한 달가량은 비행기를 타고 기지에 방문할 수밖에 없기에 장보고 기지의 첫 손님은 언제나 비행기를 타고 온다.
“겨울에는 아라빙호조차 기지에 접근하기 힘드니 헬리콥터로 이동할 수밖에 없군요.”
“장보고 기지에는 활주로가 없으니 이웃기지 활주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지.”
남극의 풍부한 자원을 향한 남극 진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선진국들은 남극 기지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활주로 건설에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5km 떨어진, 이탈리아가 사용 중인 해빙 활주로를 이용하지. 얼음 두께 2미터 이상이면 육상 활주로처럼 이용할 수 있으니까.”
보통 10월 하순에 운영을 시작하여, 얼음이 녹아 항공기 이착륙이 어려워지는 11월 하순에 운영을 종료한다.
여름이 되면, 이웃 맥머도 기지(미국)에서 날아온 비행기가 가장 먼저 찾아온다.
프로펠러 회전으로 추진력을 얻는 비행기들인데, 75세 구형 비행기가 지구에서 가장 혹독한 자연환경의 남극까지 날아온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나라 민간 항공기의 평균 연령이 10 살인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노익장이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해빙의 두께가 얇아지면 더 이상 비행기가 이착륙을 할 수 없고, 해빙 활주로는 닫힌다. 이때부터 먼 거리 이동은 헬리콥터를 이용한다.
장보고 기지는 남극의 여름 기간에만 헬기 운행을 한다. 겨울엔 햇빛이 없어 어차피 헬기 운행이 어렵지만 조종사들이 여름에만 기지에 체류하기 때문이다.
헬기는 기지 주변에 설치된 헬리 패드(helipad)라 불리는 이착륙장을 이용한다.

 

미국 맥머도 기지는 세계 남극 기지의 허브로 통한다.
대형 수송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활주로가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맥머도 기지까지 배로는 일주일이 걸리지만 비행기로는 8시간이면 충분하다.
장보고 기지 대원들은 1년에 10억 원 정도 사용료를 내고 미국 등 다른 나라의 활주로를 사용하고 있다. 활주로 건설에 500억 원 이상 들고 유지보수와 운영에 매년 수십억 원씩 드는 것보다 사용료 지불이 경제적일 수 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이탈리아 기지에서 활주로를 건설하면 건설비 70억 원 가운데 절반을 한국이 부담하고 공동 활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긴 하다.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하는 가장 대표적인 연구는 기후변화 연구이다.
빙하의 움직임과 지각운동을 연구한다. 장보고 과학기지 주변에는 다양한 빙하들과 빙상, 빙붕 등이 있는데, 특히 데이비드 빙하는 남극의 빙하 중에서 가장 속도가 빠른 편에 속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빙하를 연구하기 위해서 육지와 해상에 설치된 지진계와 음향계, GPS를 이용한 빙하의 이동 관측, 인공위성 영상 등을 이용해 종합적인 관찰과 연구를 수행한다.
“남극 연구에 이런 첨단 과학이 동원되는군요.”
양외란의 호기심이 표출되고 말았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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