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극지 탐사 항해

19.선상 업무협의

오선닥 2020. 6. 20. 20:51

▲미국의 맥머도 남극기지는 남극 최대 연구기지

 


아라빙호의 2번째 남극기지 방문
장보고과학기지의 기초조사가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19. 선상 업무협의

 

  2011년 1월 26일 오후 3시
  항만의 낭만적 분위기에 깊이 젖어들기 전에 배는 70명의 탑승객을 태운 채 리틀턴항을 출항했다.
  출항하자마자 선상훈련.
  선원법에 하루가 지나기 전에 훈련을 해야 하는 규정이 있지만 출항 상태에서 훈련하는 게 수월하다.
  비상대피, 구명조끼 입기, 구명정 타기 등이 훈련에 포함된다.
  위급상황을 만날 확률은 적지만 당하면 치명적이다. 적은 확률에 대비하는 것이 훈련이다.
  남극에 도착하면 어떤 업무를 할 건가?
  참여기관이 18개나 되다보니 업무조정이 쉽지 않다. 작업일정을 조정하고, 업무범위와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오전 8시 30분부터 전체회의에 들어갔다.
  오후에는 분야별 소회의를 가졌다.
  저녁식사 후엔 각 기관 책임자들만 모여 최종 업무조정에 들어갔다.
  협의 내용은 일반 국민들도 알 의무가 있다.
  왜?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니까.

 

  여러 기관이 모여 각 기관의 업무를 상호 조정해야 한다. 특히 AS-350헬기(인력 운송용) 및 KAMOV헬기(장비 운송용) 운용은 사용 시간과 장소를 정해야 하므로 아래와 같이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
- 현장조사 및 장비하역을 위한 헬기 운용계획 협의
- 건설지 정밀조사 세부계획 협의
  남극 과학기지 건설을 위한 팀워크라 선상에서 세미나를 자주 가지는 것이 특색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이를 중심으로 의견을 교환한다.
• 건설지 주변해역 해빙현황 및 거동 관련 세미나
• 건설지 주변해역 수심조사 관련 세미나
• 건설지 측량 관련 세미나
• 건설지 지반조사 관련 세미나
• 가설캠프 설치 관련 세미나
  한편 모든 탑승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로서 최소한 안전지식과 기본 장비 사용에 관한 상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 극지 안전교육
- 통신교육
- GPS 사용교육
  양외란의 임무는 무엇일까?
  남극탐사 단원 모두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하도록 배를 안전하게 운항하는 것이다.

 

  남위 50~60도에 걸쳐 있는 남극환류대는 강한 한류로 남극을 둘러싸고 있다. 이 때문에 남극의 거대한 얼음을 유지하고, 따뜻한 바닷물이 남극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여 생태계와 기후에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양외란과 맹수식 사이에도 남극환류대가 흐르고 있나?
  눈치 빠른 사람은 둘 사이엔 애정을 가로막는 남극환류대 같은 것이 흐르고 있음을 감지했을 것이다. 탁구대를 구분해 놓은 네트처럼 두 사람을 분리해 놓는 뭔가가 있는 느낌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티격태격하는데 선상에서 지루하지 않게 살아가는 방법인지 모른다.
  남위 60도를 통과할 무렵엔 배 밑으로 거대한 해류가 흐르는 느낌을 갖는다. 매초 1억톤의 유량이 0.5노트 속도로 흐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배의 울렁거림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머리 위 하늘은 파랗다. 아침 햇살조차 쨍쨍해서 기온은 영상 6도를 가리켰다. 긴 파랑이 너울져 처음 배를 타는 사람은 멀미를 하기도 했다.
  하루에 남위 5도(300해리)를 내려오던 배는 출항 5일째가 되자 어느덧 남극권(66°33'S)에 들어섰다.
  백야현상이 시작되었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훤한 밤이었다.
  이런 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잠을 미루고 자연스럽게 파티 분위기에 빠져든다.
  삼겹살 소주파티가 벌어졌다.
  당직에 들어갈 사람은 술을 마시면 안 된다. 백야의 하늘은 음료수를 마셔도 남극의 분위기에 젖게 만든다.
  양외란의 테이블엔 네 명이 앉았다.
  일항사와 일기사, 그리고 삼기사가 동석했다. 삼기사가 양외란의 대각선에 앉았다.
  “양외란은 약간 옆으로 보는 것이 더 매력적이야.”
  일항사는 삼항사 호칭 대신 그녀를 이름으로 불렀다. 간혹 부하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관심의 표현이라고 말하면서.
  좌석배치를 삼기사와 대각선으로 한 것은 삼기사가 삼항사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챘기 때문이다. 선내업무를 위해 둘 사이에 적당한 사회적 거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든, 아니면 남자로서 질투를 느꼈든 일항사 본인 외는 그 의도를 알 도리가 없다.

 

  남극환류대를 통과하자 파도와 너울이 전보다 약해졌다. 파도는 남에서 북으로 일렁였다. 바다는 짙은 안개를 덮어쓰고, 외부 기온은 영상 2도까지 내려갔다. 대원들의 옷이 대부분 겨울용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목적지 테라노바베이(Terra Nova Bay)의 브라우닝(Mt. Browning)으로 가려면 두꺼운 해빙과 연두색의 유빙띠 사이로 통과해야 한다. 점점 선속이 감소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남위 70도를 통과해 남동 방향으로 변침했을 때 진눈깨비를 동반한 강한 남풍으로 배가 크게 흔들렸다. 흔들림이 거세어 3층 방에 있던 사람들은 1층 갑판으로 내려오기도 했다.
  “몸 가누기가 힘들어 헬스를 중지했습니다.”
  헬스장에서 젊은 연구원이 나오면서 말했다.
  저녁에 배가 너무 흔들려 러닝머신 사용이 힘들었다. 밤새 파도소리와 배의 진동, 좌우 20도의 롤링으로 걸음 떼기가 쉽지 않았다.
  한 여자 대원이 복도에서 넘어졌다. 남자 대원이 겨드랑이를 잡았는데 옆에서 볼 때 손의 위치가 어딘지 어색했다. 어색한 것도 양해되는 게 배라는 곳이다.
  잠을 설치는 중에 어느덧 목적지에 가까웠다. 목적지까진 60해리밖에 남지 않았으나 유빙 때문에 160해리나 돌아가야 했다.
  뉴지 출항 일주일 만에 남위 73°34'를 통과해서는 기수를 남동으로 변침해 로스해(Ross Sea)에 진입했다. 낮 기온이 영상 1도를 가리켰다.
  로스해는 육지 사이 깊숙이 들어간 남극해로 1841년 영국 제임스 로스에 의해 발견됐다. 남쪽으로 거대한 빙붕(Ice Shelf)이 형성되어 있다. 아문센이 1911년 남극점을 향해 출발한 웨일즈만이 있다. 하계기간 해빙되어 바다가 열리는 남극 최대 기지인 미국의 맥머도(McMurdo) 기지도 여기에 위치하고 있다.
  우측에 검은 섬이 보이자 육지를 처음 본 대원들은 카메라 샷을 눌러대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안도감.

 

  남극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환희가 뒤섞이는 순간이다.
  건설예정지에서 약 30km 떨어져 있는 멜본 화산과 그 앞의 해빙 절벽.
  안개 속으로 펼쳐진 눈 덮인 순백의 대지.
  “삼항사, 이리 와서 난간 앞에 서 봐요. 한 컷 찍게. 웨딩드레스가 따로 없어.”
  배경이 너무 아깝다고 하면서 일항사가 양외란을 모델로 세웠다.
  미래 신부의 아름다운 자태가 순백의 대지를 배경으로 나타났다.
  “남극에서 결혼식 올려라. 너무 아름다워.”
  책임 연구원도 한 마디 했다.
  신들이 사는 별천지가 배경이 된 셈이다. 인간이 접근하여 자국을 남기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양외란은 아이폰4로 찍은 사진을 서울 엄마에게 보내고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웨딩 사진 같지 않아. 엄마 딸 예쁘지?”
  남극대륙의 끝에서 영상통화가 되는 것에 엄마는 감동을 먹었다.
  “거기가 어디라구? 우리 딸 넘 예뻐. 결혼사진 같아. 사랑스러워.”
  어머니 전계린 박사는 딸이 예뻐 죽을 지경이다.
  선내방송이 나왔다.
  “오늘 오후 10시경 건설예정지 도착입니다. 내일은 설날입니다. 아침 7시 반까지 떡국을 먹은 후 9시경 헬기로 건설현장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대원 모두 참조해주십시오.”
  무엇보다 내일 2월 3일이 설날이라는 사실이 대원들을 기쁘게 했다.
  저녁 10시가 되었는데도 해는 비스듬하게 중천에서 강렬한 빛을 비추고 있었다.
  아라빙호는 건설예정지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 도착하여 닻을 내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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